KFE ・ 2020. 4. 21. 22:19
필라멘트에서 인공태양까지 지구의 불 밝히는 ‘텅스텐’
화산 폭발 시 뿜어져 나오는 마그마의 온도는 1200℃입니다. 강철도 녹여버리는 용광로 내부 온도는 1500℃ 남짓입니다. 단단함의 대명사인 철광석을 비롯해 자연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물질은 1000℃가 넘는 초고온의 세계에서 위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플라즈마 온도가 무려 1억℃에 달하는 인공태양의 내부는 어떨까요? 약 1500만℃에 달하는 태양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지구에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온도는 약 1억℃! 인공태양이라 불리는 핵융합 장치에서는 1억℃의 플라즈마를 자기장으로 제어해 공중에 띄워놓는 방법을 활용합니다. 1억℃를 견딜 수 있는 물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플라즈마가 직접 닿지 않아도 만들어지는 진공용기 내벽의 온도는 마그마의 온도 못지않게 뜨거워집니다. 때문에 핵융합 상용화의 길은 초고온의 온도를 견디는 동시에 강력한 플라즈마와의 충돌을 이겨낼 재료를 찾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 여정을 가능케 할 재료, 플라즈마의 열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재료는 무엇일까요? 녹는점으로 따진다면 3642℃의 탄소가 최고입니다. 하지만 국제핵융합로 ITER가 택한 재료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텅스텐입니다. 녹는점은 탄소보다 낮은 3422℃지만 플라즈마 입자와의 강한 충돌을 견디는 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인공태양 KSTAR도 디버터의 새로운 대면재로 텅스텐을 채택했습니다. 초고온 플라즈마와 당당히 대면하는 텅스텐의 세계, 국가핵융합연구소 DEMO기술연구부 홍석호 부장의 안내로 소개합니다.
원자번호 74번, 텅스텐은 녹는점 3422℃로 금속 중 내열성이 가장 높다. <사진=위키피디아>
핵융합 실증 시대, 플라즈마 대면재의 첫 번째 기준이 바뀌다
“고성능 플라즈마의 중심부 온도는 무려 1억℃, 가장자리도 1000℃를 훌쩍 넘습니다. 다행히 플라즈마는 단단한 자기장 그물에 쌓여있어 토카막 장치와 직접적으로 맞닿진 않더라도 간접열기만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초고온 플라즈마를 견뎌낼 수 있는 토카막 대면재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홍석호 부장은 높은 내열특성과 플라즈마와 중성자와의 충돌을 이겨낼 만큼 단단한 저항성, 여기에 낮은 삼중수소 보유량, 낮은 방사화 등의 기준을 소개합니다. 이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원소로 크롬(Cr), 나이오븀(Nb), 몰리브덴(Mo), 텅스텐(W)와 같은 내열 금속들이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중성자에 손상이 적고, 높은 침식 저항성을 가지는 원소는 텅스텐(W)이 유일합니다.
녹는점 또한 3422℃로 현존 금속 중 최고입니다. 영화 속 히어로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를 만든 비브라늄(상상속 물질)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질량 또한 탄소보다 10배나 무거운 약 20g/㎤에 달해 플라즈마에 의한 침식이 매우 작습니다. 홍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녹는점이 높다는 이야기는 플라즈마에 대한 저항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쯤에서 머리를 갸우뚱해 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탄소는 텅스텐 보다 녹는점이 200℃가량 높습니다. 순수 탄소 결정체인 다이아몬드는 영원을 상징할 정도로 단단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 텅스텐에게 자리를 내주었을까요? 이유는 우수한 대면재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텅스텐에 대해 설명 중인 국가핵융합연구소 DEMO기술연구부 홍석호 부장.
“탄소는 내열성은 높지만 플라즈마 저항성이 약해요. 핵융합 기술이 발전하고 플라즈마의 성능이 향상될수록 플라즈마 입자와의 물리적 충돌과 화학적 반응에 의해 탄소 내벽재의 표면 침식(Erosion)이 심해져 결국 플라즈마의 성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탄소는 텅스텐과 달리 중수소나 삼중수소와 화학적 반응에 의한 침식이 매우 심각합니다.”
가정에서 프라이팬을 오래 사용하면 점점 코팅이 벗겨져 음식은 쉽게 타고, 몸에 해로운 성분도 나오듯 핵융합 장치 내벽에 부착한 탄소 타일도 플라즈마 실험이 누적될수록 플라즈마와 부딪힌 충격에 의해 깎이고 파이는 침식 현상이 진행됩니다. 더 큰 문제는 탄소 타일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입자가 플라즈마의 성능까지 떨어트린다는 점입니다. 촛불을 켜면 검정 그을음이 나와 천장이나 벽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은 현상인데요. 핵융합 반응 중 떨어져 나온 탄소가 중수소와 반응하면 불순물인 메탄(CD4)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핵융합 반응을 유도해야 하는 연료인 중소수 중 일부가 불순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고, 불순물로 인해 플라즈마 성능은 저하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더구나, 플라즈마로 들어가지 않은 메탄은 진공용기 내부에 탄소 박막의 형태로 연료를 머금은 상태로 쌓이게 되는데, 삼중수소를 사용하는 ITER의 경우 진공용기 내부의 삼중수소 보유량을 700g으로 제한했습니다. 따라서, 탄소를 핵융합로의 내벽 재료로 사용하게 되면 이러한 삼중수소 보유량 제한에 걸려 결국 운전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기억하실까요? 2008년 KSTAR의 첫 불을 밝힌 플라즈마의 온도는 200만℃, 지속시간은 248밀리초(ms)였습니다. 12년이 지난 2019년 KSTAR는 1억℃ 플라즈마 8초 연속 운전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두 수치만 단순 비교해도 플라즈마 온도는 50배, 운전시간은 30배가 넘게 강력해졌습니다. 따라서 핵융합 연구 초기 최적의 내벽 소재로 꼽혔던 탄소 소재는 더 강력해진 플라즈마 운전을 위해 텅스텐에 자리를 양보해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성장기에 안성맞춤이던 유치가 시간이 지나며 더욱 튼튼하고 강력한 영구치로 세대교체 하듯 말이죠.
탄소로 만든 플라즈마 대면재 궁금하다면?
☞ 초고온 플라즈마가 닿는 첫 번째 벽, ‘탄소’ 자세히 보기
탄소 타일이 부착된 KSTAR 내부의 실제 모습
금속 중 녹는 점 가장 높아 고온에서 안정성 돋보여
핵융합 대면재의 세대교체에 나선 텅스텐을 좀 더 알아볼까요! 원자번호 74, 녹는점 3422°C, 끓는점 5930°C, 밀도 19.25g/㎤! 텅스텐은 스웨덴어로 ‘무거운(tung) 돌(sten)’이란 뜻인데요. 1783년에 스웨덴의 엘야아르 형제가 원소 분리에 성공하며 붙여준 이름입니다.
홍 부장은 텅스텐을 한마디로 초고온에서 강도와 안정성이 뛰어난 원소라고 소개합니다. 금속 원소 중 녹는점이 가장 높아 내열성이 우수하며, 고온에서 열팽창이 거의 없고 증기압이 낮습니다. 물질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하중을 뜻하는 인장 강도가 원소 중 가장 높아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전기저항도 높아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로 오랜 기간 사용되고 있습니다. 순수 텅스텐 분말은 부드럽지만, 다른 금속과 결합하면 강도가 강철보다 더 센 강도를 자랑합니다. 연마제, 드릴, 절단기 등의 재료로, 초고온 초고압 환경에서 활약하는 로켓과 미사일의 엔진 노즐, 방사선 차폐체 등 쓰임은 다양합니다. 특히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탱크나 대포, 미사일 등 군사용으로도 사용돼 각국은 텅스텐을 군사적 전략 원소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1970-80년대를 전후로 텅스텐이 핵융합로 내벽 소재로 채택됐던 적이 있었습니다.”
홍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텅스텐은 이미 30~40년 전 핵융합장치의 대면재로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엔 플라즈마의 성능이 지금보다 낮고 운전시간이 짧아 득보다 실이 많았습니다. 전자를 많이 보유한 금속은 텅스텐이 플라즈마 운전 성능을 떨어트리는 원인으로 지목됐던 것이죠. 하지만, 플라즈마 내부의 텅스텐 원자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뜨겁고 강력해진 플라즈마의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텅스텐의 장점이 다시 부각됐습니다.
빨간색 원부분이 ITER 디버터.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 운영 기간 동안 텅스텐은 총 10만 초에 달하는 강력한 플라즈마 운전을 견뎌야 합니다. ITER는 한 번에 400초까지 연속운전하는 플라즈마 샷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는 텅스텐이 ITER 가동 기간 동안 10MW/m2의 열속이 전해지는 20초 운전을 5000샷 버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20MW/m2 300샷도 이겨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ITER 기준을 충족하면 자타공인 핵융합 상용화를 뒷받침할 대면재로 자리매김할 전망입니다.
ITER와 KSTAR, 텅스텐으로 플라즈마 대면재 세대교체 중
ITER뿐만 아니라 독일의 핵융합 장치 ASDEX-U와 중국의 EAST도 텅스텐을 내벽재로 택했습니다. 한국의 인공태양 KSTAR도 지난해부터 토카막 내 플라즈마의 열을 빼주는 역할을 하는 디버터를 텅스텐으로 교체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고성능 플라즈마 실험과 핵융합실증로(DEMO) 관련 연구 수행을 위해 2020년까지 보다 강력한 대면재로 교체할 계획입니다. 지금보다 더 강력한 플라즈마 실험이 진행될 DEMO 디버터에 텅스텐 대면재를 사용하면 2.5년간 교체 없이 유지할 수 있지만, 탄소 대면재는 침식이 심해 하루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과 충격에 가장 센 재료를 찾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가공기술 개발은 또 다른 도전입니다. 같은 소재를 이용한 철강제품도 각국의 기술력에 따라 품질이 차이 나듯 텅스텐을 가공하는 기술력이 필요합니다. KSTAR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디버터는 대부분 플라즈마와 맞닿는 부분은 침식에 강한 텅스텐을, 장치와 닿는 부분은 냉각 효과가 좋은 구리가 닿도록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두 재료의 성질이 워낙 다른 데다 열팽창률도 4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고난도의 접합 공정이 필요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2012년부터 텅스텐 연구를 추진해 텅스텐과 구리합금(CuCrZr)의 접합기술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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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주로 디버터 부분만 텅스텐으로 교체할까요? 토카막은 플라즈마의 열속이 보다 강한 부분과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으로 나뉩니다. 특히 디버터 부분은 10 MW/m2의 열속을 견뎌야 하지만 다른 부분은 3 MW/m2 이하의 충격만 견디면 됩니다. 따라서 열속이 강한 디버터 부분만 텅스텐으로 교체해도 다른 부위는 기존의 탄소나 다른 소재로 성능 유지가 가능합니다.
KSTAR는 2021년 디버터의 대면재를 ‘텅스텐’으로 교체하면 지금보다 더 우수한 고성능 플라즈마를 밝히며 상용화의 길에 속도를 낼 것입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더 강력한 플라즈마를 완성할 텅스텐과 KSTAR 콤비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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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재료는 무엇일까?|작성자 K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