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다. 화장대 위에 있는 작은 탁상시계마저 잠들어 있다. 한복을 입은 인형 하나가 유리상자 속에서 제 맵시를 뽐내고 있다. 언제나 같은 인형의 표정은 생동감이 없다. 그것은 달포 가까이 빗물을 뿌리고 있는 장마처럼 지루할 뿐이다. 이윽고 교회의 종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그제서야 그녀는 부시시 일어났다. “열두시다.” 열두 시간의 수면제 효력에서 깨어난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러나 곧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런! 얼핏 설핏 반 하루를 꿈속에서 보내고도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베게 위로 팔을 뻗친 그녀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 머리맡에 놓아둔 과일 바구니에서 포도송이를 집어 한 알을 따냈다. 포도 한 알을 입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