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유혹 받아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와
인류와 가장 친밀한 가축 중 하나인 닭이 비교적 최근인 3500년 전 가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동남아시아에 벼농사가 시작된 시기 닭의 조상이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며 가축화가 시작된 것이다. 동남아에서 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진출한 닭은 가축화 이후에도 상당 기간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지며 식량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레거 라슨 영국 옥스퍼드대 고고학과 교수 연구팀은 닭의 가축화 기원을 분석한 결과 3500년 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6일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와 ‘유물’ 등 두 편에 발표했다.
인류는 주변 동물을 인간 보호하에 기르며 고기나 다른 이익을 얻는 가축화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소와 돼지, 개 등 다양한 동물이 가축화됐다. 지금은 1년에 600억 마리가 도축되는 닭도 그중 하나다. 개의 가축화 시점은 2만 7000년 이전으로 추정되고 소와 돼지는 8000~9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닭은 기원도 아시아로만 추정되고 가축화된 시기도 1만 년 전에서 6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등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89개국 600개 이상 지점에서 발견된 닭의 뼈를 방사선탄소연대측정으로 분석해 지역별 닭의 출현 시기를 특정 지었다. 이와 동시에 뼈가 발견된 사회와 문화, 매장 위치와 역사적 기록을 조사해 지역에 닭이 도입된 시기를 추정했다. 닭을 가축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단순 유입됐는지도 함께 살폈다.
분석 결과 닭이 처음으로 가축화한 것은 기원전 1500년경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벼농사가 시작되면서로 나타났다. 가장 오래된 닭의 뼈가 태국 중부 신석기 시대 유적인 ‘반 나 와트’에서 발견됐는데 이 뼈가 묻힌 시기가 기원전 1650년부터 1250년 사이로 분석됐다. 당시는 지역에 건식 벼농사가 도입되던 시기다. 벼농사는 닭의 야생 조상인 적색야계를 나무에서 땅으로 끌어 내리는 자석 역할을 했다. 이후 사람과 가금류 사이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며 가축화도 이뤄졌다.
동남아에서 가축화를 거친 닭은 기원전 800년 이후부터 그리스, 에르투리아, 페니키아 해상 무역상의 경로를 따라 아시아 전역으로 퍼진 후 유럽으로도 퍼졌다. 유럽에는 기원전 800년 이후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부 유라시아와 북서아프리카 등지에서 발견된 닭의 유골 23개를 분석한 결과 기원전 800년까지 닭이 이 지역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닭이 지중해 지역에 퍼진 후에도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반도 등 추운 기후를 가진 지역에 닭이 정착하는 데는 1000년이 더 걸렸다.
유럽에서 닭고기와 달걀을 지금처럼 섭취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 이후인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닭을 숭배하고 식량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분석 결과 유럽에 초기 유입된 닭 중 상당수는 도살 흔적 없이 땅에 묻혔다. 사람과 함께 묻힌 경우도 많았다. 수탉을 수평아리와 함께 묻거나 암탉끼리 묻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로마 제국이 전 유럽을 점령한 이후 닭고기와 달걀을 음식으로 대중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슨 교수는 “닭을 가축화한 시기와 장소에 대한 우리의 기존 이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보여준다”며 “건식 벼농사가 닭의 가축화와 전 세계 확산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나오미 사익스 영국 엑서터대 교수는 “닭을 먹는 게 너무 흔한 일이라 사람이 닭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라며 “닭과 인간의 과거 관계는 훨씬 더 복잡했고 수세기 동안 닭이 숭상되었음도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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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한 기자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