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만연한 지역에서 변이 출현 위험 높아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 몸 속에서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여러 차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서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를 처음 발견해 보고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내려면 저소득국가에 만연해 있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도 함께 퇴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HIV는 인체 내 면역기능을 파괴하는 바이러스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을 일으킨다.
남아공 콰줄루나탈대와 남아공 AIDS연구프로그램센터 공동연구팀이 HIV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의 혈장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16일간 머물며 변이 32개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변이 중에는 베타 변이와 유사한 형태로 백신 효과를 피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발견됐다. 연구팀은 HIV 감염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화를 부추긴다며 이를 예방하려면 먼저 HIV 치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는 의학논문 사전공개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에 지난 7일 실렸다.
오미크론 변이 전에 유행했던 영국발 알파 변이와 남아공발 베타 변이 역시 면역저하자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면역저하자의 몸속에서 바이러스들이 수 개월 머물면서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냈고 이들 중 항체를 피해 살아남은 변이들이 증식해 바깥으로 나와 퍼진다고 분석했다. 오미크론 변이 역시 최근 세계에 우세종으로 퍼져 있는 델타 변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 유전계통을 분석한 결과 약 18개월 전에 잠시 나타났던 변이종에서 파생된 것으로 확인됐다.
리차드 러셀 콰줄루나탈대 의대 수석 감염병전문의는 "코로나19 대유행은 전세계 공중 보건 문제이며, 이를 멈추기 위해서는 같은 목적으로 HIV를 종식시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미크론 변이 첫 발생지로 꼽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전세계 HIV 감염자의 3분의 2가 몰려 있다. 이중 800만명이 HIV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
러셀 전문의와 함께 공동 연구자인 툴리오 데올리베이라 남아공 스텔렌보스대 전염병대응및혁신센터 교수는 지난 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코로나19 대유행을 끝내려면 HIV 감염률이 높은 아프리카 지역에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하고 HIV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실었다.
그들은 논평을 통해 이 지역에 HIV가 만연해 있는 현실과, 백신 불평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HIV 환자들이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해지면서 오미크론 변이처럼 예상치 못한 변이가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무리 고소득국가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높이고 효과적인 치료제를 개발해도 이들 지역에서 색다른 변이가 나와 퍼진다면 또 다른 대유행이 시작될 위험이 크다는 얘기다.
지금보다 더 치명적인 변이가 출현해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이들 지역에서 HIV 치료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코로나19 백신 공급과 함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7일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국경없는의사회 전문가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고소득국가에서의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저소득국가의 HIV 약물 공급이 제한돼서는 안 된다는 논평을 '랜싯'에 실었다. 현재 코로나19 치료제로 가장 촉망받고 있는 화이자의 팍시로비드는 HIV 치료제인 리토나비르와 함께 복용해야 효능이 크기 때문이다. 팍시로비드가 상용화화면 리토라비르의 상당수가 코로나19 치료에 활용돼 HIV 치료용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하며 화이자 스스로 리토나비르를 제조할 수 있도록 역량을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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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아 기자zzung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