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오파린의 [생명의 기원] 읽기

『생명의 기원』읽기-1(오파린과 번역자의 서문)

heojohn 2020. 4. 10. 00:40

1. 1936년 제1

 

오파린의 서문(영어-도우버2판에서)

 

오랜 동안 나는 어떻게 지구 상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사로잡혀왔고 15년 이상 나를 그토록 깊게 자극한 그 문제의 해답을 찾는 탐구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다. 이 선상에서의 숙고와 연구의 열매가 일련의 과학적 논문과 대중적 에세이로서 보여졌다. 1923년 나는 이 문제에 관한 소책자를 출판하였고 여기에서 생명이 원시 유기물질의 단계적 진화 중에 등장하였다는 나의 견해를 처음으로 밝혔다. 후에 나는 이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고자 하였고, 천문학자, 지질학자, 생화학자와 관련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행한 다양한 조사로부터 파생된 데이터로 실증하고자 하였다. 이 다양한 소스로부터 거둬드린 정보는 1936년 나의 책 생명의 기원에서 통합되었는데, 그 번역본이 지금 독자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다.

 

생명의 시작의 문제는 나의 호기심을 사로잡고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맥밀란 출판사가 거대한 영어권 대중들 에게 이 책을 제공할 번역본의 출판을 맡아준 것에 빚을 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미국인과 다른 영어권 탐구들의 관심을 끌고 나아가서 이 책에서 제시한 엄청나게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를 공부하고 연구하도록 촉진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직접 내 책의 번역을 담당하고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였으며 내 논의의 정신 뿐 아니라 정확한 의미를 영어로 잘 옮겨준 S. 몰규리스 교수에 특별히 빚을 지고 있다.

 

A. I. 오파린

모스크바 19371121

 

 

 

번역자 소개문

 

이 놀라운 책은 내가 오파린의 공헌이 과학자와 비과학자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여 영어권 독자들에게도 알려져야겠다고 절실하게 느끼고 15년 전에 번역한 것이다. 그 책이 여러 해가 흘러 재발간된다는 것은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한 인정이며, 나는 이 판의 서문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을 기꺼이 수락하는 바이다.

 

만일 내가 이 책의 제목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그 다소 껄끄러운 제목 생명의 기원대신에 생명의 출현을 제안하겠다. 이것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필수적인 기본 가정을 혼란시키고 그 만큼 문제에 관한 잘못된 경향을 만들어 내는 생명의 기원이란 제목에 담긴 함의를 피해보고자 함이다. 우선, 그 제목은 두 가지 중요한 오해를 감추고 있다. 하나는 과정의 기간에 관한 것이다. ‘기원이란, 특히 성경적 전통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날카롭게 선형화된 유한한 창조의 이벤트를 내포하며, 무한한 시간에 걸쳐진 과정이 아니다. 현대 고생물학자들은 우리에게, 거의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식물과 동물 종들을 풍부하게 만들어낸 생물체의 진화에는 약 10억년의 기간이 걸려왔다고 말한다. 지구는 거의 5억년 동안 이에 대한 틀림없는 기록을 보관해왔다. 종의 진화에 관하여, 독자들은, 지구 표면에 역사적 유물로서 기록된 이 생각할 수 없이 긴 5억년이라는 기간 동안, 사람과 그에 가까운 선조가 남긴 발자국은 그 기간의 0.2%에 불과한 백만년 가량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주지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파린 저서의 주제인 생명의 기원은 다윈이 승계하여 전개한 종의 기원의 이야기를 또 다시 10억년 가량 앞서가는 문제이며, 이 시기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기록이 없다. 다윈의 책이 잘 문서화되었고 그의 생각이 매우 논란거리임에도 구체적인 실제 증거로서 보강될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10억년을 포괄하는 오파린의 이야기는 확실한 증거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성질 상,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론은 매우 사변적이다. 탄탄한 사실적 기초가 없으므로, 그러한 이론의 건전성 혹은 수용성은 오직 과학적 탐구의 다양한 영역에서의 기존 지식과의 합리적인 일관성이라는 기준을 따르는지 여부로서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생명의 기원은 특정 장소와 시간에 귀착시킬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헤아릴 수 없이 긴 기간에 걸쳐 진행된 단계적 과정이었으며, 모든 생물의 종의 진화에 소요된 것보다 아마도 수백만 년은 더 걸린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과정이었다. 오파린이 생명의 발생에 필수적인 서두로서 긴 화학적 진화를 가정하였다는 것은 생명의 기원 이론에 대한 그의 위대한 공헌 중 하나이다. 우리는 비유기화학에서 유기화학으로, 유기화학에서 생화학으로 진행되는 세 개의 구별된 화학적 단계를 지나는 진화과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유기화학자가 비유기화학자가 꿈꾸지 못한 놀라운 것들에 익숙하다면, 생화학자에 의해 그 일상 업무에서 목격된 놀라운 일들은 유기화학자의 상상을 흔들고 질투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지구의 역사에서의 이러한 변천은 고립된 이벤트가 아니라 그 실현을 위해서 영겁의 시간을 필요로 했던 계속된 흐름이었다. ‘기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해석함에 있어, 우리는 문화적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을 보통의 인간적인 시간 프레임 밖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두 번째 오해는 생명이라는 단어 주위에 형성된 연상들로부터 생겨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생명은 기거나, 정교한 부속물은 아니어도 원형질의 돌출, 섬모, 편모 따위로서 적어도 꼼지락거릴 수 있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생명은 활보하는 코끼리의 형태로 보여질 필요가 없으나,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어떤 현미경 차원의 무세포적 유기체로서 외에는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원시적인 무세포적 유기체조차도 복잡한 구조와 압도적인 기능을 갖고 있으며 생명의 시작부터 수백만년에 걸친 계보 끝에 만들어진다. 아마도 오파린이 그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듯, 그것은 약 20억년 전 뜨겁고 진한 수프” (원시 대양에 대한 할데인의 재미있는 묘사를 빌면)로부터 분리된 현미경 크기의 교질 체계 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일반인들과 달리 생물학자는 동물로부터 식물을 분리하는 경계선을 알지 못하며, 비생물 물질로부터 생명체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그러한 차이가 단순히 관념적이며 현실에 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을 세포 유기체와 동일시하는 것이 자연발생 이론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는 일은 흥미롭다. 박테리아와 같은 그러한 원시 유기체에 관한 파스퇴르의 이제는 고전이 된 유명한 실험들은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로부터 나온다는 원리를 천명함으로써 생물체 자연발생의 문제를 한번에 끝내버렸다고 믿어진다. 자연발생의 문제를 풀고자 노력했지만 구더기떼와 파리떼라는 의심스러운 보상을 받은 보다 순진한 실험자들은 파스퇴르와 달리 기술과 과학적 정확성, 비판적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결함의 요령이 없었기에 잘못된 해답을 얻었지만, 모두 같은 질문을 하였다. 기본적으로 그 질문은 비생물체가 생물체로 변화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하면 생물발생이 가능한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스퇴로의 명확한 실험들이 이 기초적인 문제에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단지 살아있는 유기체는 아무리 그것이 간단하더라도 유기물질로부터 유래할 수 없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행성의 진화 과정에서 때때로 비유기, 유기 물질은, 수십억 년 후에 그것으로 하여금 유기체로 발달할 수 있게끔 해주었던 조직을 갖춘 것이 틀림없다. 이것은 거꾸로 수십억년이 더 흐른 후에 흙, , 그리고 공기를 무한한 다양성을 가진 식물과 동물 형태로서 가득 채우며 행성 표면으로 퍼져나갔다. 생물발생의 가능성을 인정하거나 부인하기 위한 실험을 고안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할지 모르며 파스퇴르의 실험들조차 이를 부인하지 않지만, 생물발생은 합리적이고 일관된 논리적 필요인 것으로 보인다.

 

만일 무생물로부터 생물로의 그러한 변화가 옛날에 일어났다면, 이것이 항상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묻는 일이 더욱 적절하다. 카바나우가 말하기를, “생명이 계속적으로 지구상에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러한 새로운 기원의 증거가 없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데, 만일 그러한 기원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유기체를 다루는데 있어 익숙한 방법으로 다루기에는 너무나 작은 유닛으로서 존재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표면의 조건이 생명의 기원에 최적의 시기였던 때 이래로 변화가 너무나 심하여 현재의 새로운 기원이란 것이 일어난다 해도 매우 드물 것이다.” 지난 수십억 년간 지구의 조건은 급격한 변동을 겪어 생물발생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파린은 만일 생명발생이 현재 일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지구상에 서식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선조 유기체들이 생명발생의 산출물을 재빠르게 파괴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찰스 다윈이라는 저명한 생물학자가 1871년 쓴 편지에서 오파린과 비슷한 생각을 표현했다는 것이 후자가 내놓은 뛰어난 아이디어의 공헌을 결코 줄이지 않을 것이다. (이 편지의 발견은 G. 하딘의 공이다.)

 

생명 유기체의 첫 생산을 위한 모든 조건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지금 존재한다고 종종 이야기된다. 그러나 만일 (정말로 만일) 우리가 현 시대에서, 모든 종류의 암모니아와 인을 함유한 소금, , , 전기 등이 있는 어느 따뜻하고 작은 연못에 단백질 복합체가 화학적으로 형성되어 훨씬 더 복잡한 변화를 겪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러한 물질들은 즉각적으로 먹히거나 흡수되어 버릴 것이며 이것이 생명체가 형성되기 전과 다른 경우이다.”

생명의 기원은 유기화학으로부터 생화학으로, 무생물에서 살아있는 물질로, 자연계의 비활성 영역에서 활성 영역으로의 전이였다. 그러나 생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획득된 유기물질의 새로운 형질인가 아니면 유기물질의 조직화의 결과 생긴 무엇인가? 과민성, 운동성, 성장, 재생이 생명체를 무생명체로부터 구별 짓는 도우미가 되겠지만 이것들이 원시 생명의 근본적 형질을 대표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지구 역사의 어느 시기가 완전한 불모, , 유기체의 부재로서 특징지어졌다고 생각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그러므로 생명체계의 근본적 형질 혹은 형질들은 세포 유기체의 등장에 선행하는 매우 복잡한 단백질 고분자에서 출현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핵산을 함유한 단백질은 성장하거나 자기복사나 복제로서 직접 재생산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유기체만의 구성성분이다. 그러나 유기 복합체로서 그것들은 자라나거나 재생산할 수 없다. 바리어스나 유전자도 둘ㅠ다 핵단백 시스템을 대표하지만 그것들이 적당한 세포나 핵 안에 통합되지 않는다면 자신을 복사하거나 복제할 수 없다. 재생산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이 핵단백은 생명시스템인가 비생명 시스템인가? 자기 재생산에 관련된 합성에 필요한 자유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기에 그들은 에너지의 전환, 수송, 저장이라는 생명체계에 특징적인 근본 형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어떤 촉매체계에 관련된 신진대사의 능력은 자유에너지를 전환하는 기제와 연결되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근본 형질이며, 우리는 H. F. 블럼('시간의 화살과 진화’, 1951)의 공으로 이 주제의 극도로 중요한 측면에 대한 뛰어난 분석을 얻고 있다.

 

우리는 생명체계의 근본적 형질로서, 두 가지 시각적으로 활발한 대립체들 중 오직 하나만 형성하는 신진대사(, 유기합성의 경우처럼 활성 복합체의 DL 형 중 하나만 형성하고 둘다 하지는 않는다)를 들 수 있다. 어떻게 생명체계의 이 현저한 특징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비생명물질로부터 생명물질로의 변신에 기여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거의 백년 전에 엥겔스가 생명은 단백질의 존재의 현현이라는 명제를 세웠지만, 그는 실제로 생명은 단백질 효소를 통한 촉매의 현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식물과 동물 유기체 내에서의 화학 반응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촉매 없이는 생명이 없었을 것이다. 사실, 원형질은 효소로서 특정 활동을 하는 단백질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효소는 생명물질이 아니다. 거의 모든 효소는 그 자체로서 촉매적으로 활성화된 모종의 비유기 부속물을 필요로 하지만 단백질과 조합하여 이 활동성은 크게 증가한다. 아마도 효소는 이러한 비유기 촉매로부터 진화했으며 그렇게 생화학 반응의 템포는 수천, 심지어 백만 배 향상되었을 것이다. 지난 5억 년 간 생 유기체의 다양성은 그 전 수십억 년 동안 상대적으로 매우 느린 진화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전개되었는데, 이 다양성은 원시 금속 촉매와 단백질의 연합으로부터 생겨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백질 촉매(효소)가 식물과 동물 생명의 등장 초엽에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효소 시스템이 진화 과정에서 고도로 다양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초적인 패턴은 선사 시대에 걸쳐 남아있었다. 가장 오래된 유기체가 생화학 촉매의 기초적인 원리를 획득했고 새로운 원리가 고안되어 이를 대체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매우 낮은 수준의 이끼벌레류도 수십억 년 동안 형태상의 통일성을 유지해왔다고 가정한다면, 중금속 전자전이 효소는 생 유기체가 지구에 서식한 이래 계속 세포 호흡에서 활동해 왔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진화는 이끼벌래류에서(그리고 아마도 그보다 오래 전부터) 척추동물로 발달해왔지만 중금속 전자전이 효소체계는 세포호흡의 기초구조로서 수십억년 동안 유지되어왔다.

 

유사하게, 만일 매우 숭엄하게 오래된 선사 시대에 있었던 낮은 수준의 빵곰팡이(Neurospora)를 생각한다 해도, 수백만 년 간의 효소체계가 조금의 변경이 있더라도 인간을 포함한 고등 유기체 속에서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조효소(소위 비타민 B 복합체)는 보편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각 요소가 합성되는 생화학 반응의 사슬이 대부분의 파생 유기체에서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 생화학적 단일성은, 조효소가 진화 이전부터 수립된 기초 신진대사 계획의 일부분이 되었고, 자연선택을 통해 활동하면서 고도로 다양한 동식물을 창조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 유기체에서 신진대사를 위한 에너지를 저장하고 변형하고 움직이는 수단으로서 유일하게 알려진 것은 고에너지 인산염 대(bond)의 구조, , 아데닐산 아네도신2인산 아데노신3인산이다. 화학적으로 핵산에 관련된 이 구조는 생명의 시작부터 자유 에너지의 이송에 엄청난 역할을 하였으며, 비생물로부터 생물 단계로의 전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그 구조는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긴 선사시대를 거쳐 유지되었다. 이것 역시 가장 필수적인 생명의 특질의 하나이며, 비생물이 생물이 된 이래로 유기 세포구조에서 유지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유 에너지의 이송을 위한 이 중요한 구조는 생물학적 세팅을 벗어나면 단지 유기물질일 뿐이다.

 

만일 생명이 단백질 존재의 현현이거나 더 정확히는 단백질 효소에 의한 촉매의 현현이라면, 생명의 기원은 단백질의 기원에 실제로 잇따르지는 않더라도 그것과 일치해야만 했었다. 단백질이 효소를 선행했는가 혹은 효소가 단백질을 선행했는가? 만일성장과 재생산이 핵단백질에 달려있다면 핵단백질은 단백질과 생 유기체의 출현을 선행했어야 한다. 그러나 단백질의 합성은 에너지 변형자나 적절한 효소의 도움 없이는 일어날 수 없었다. 생명의 진행에서 무엇이 먼저인지에 관한 이러한 일련의 추론은 이 추론이 잘못된 전제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이해함에 있어 아무런 구체적인 소득이 없이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생명 시스템의 존재에 전적으로 불가결한 물질이, 이 필수적 부속물을 생산할 능력을 자체적으로 가진 것으로 보이는 생명 시스템이 존재하기 전부터 생겨났는가 하는 역설을 풀고자 하는 논쟁의 연속 사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문제는 무생명으로부터 생명의 출현이 오직 ABCDL 이라는 위계적 순서만을 따랐다고 하는 암묵적 가정 위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그 문제는 정말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은 연속적인 사건이 이루는 사슬의 끝 고리로서가 아니라 몇 가지 요소의 우연적인 조화에 의해 발생할 수 있었다.

 

16페이지 그림 생략

 

세포가 생명 단위로 간주되는 한, 생명의 기원은 역설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학에서의 다른 원소들처럼 세포는 생물학에서의 그 궁극적 단위로서의 특권을 상실하였다. 원자이론과 세포이론 둘 다 폐기되었다. 세포는 분리 불가능한원자처럼 이제는 극도로 작은 개별 입자들로부터 형성된 고도로 조직적인 통합 시스템으로 인식된다. 몇몇 단위 자체가 고도로 조직화된 개체이므로 생명의 궁극적 입자가 발견되고 규명되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생명 단위로서의 세포의 개념은 원자와 함께 창밖으로 내던져졌다.

 

세포가 핵과 세포질이라는 두 가지 주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이 오랜 동안 인정되었다. 핵은 나아가 핵소체와 염색체로 구별되는데, 염색체는 소섬유로 구성되어 자기분열로 번식하는 유전자라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입자들은 주로 디옥시리보핵산(DNA)이 매우 풍부한 핵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다. DNA는 독특한 핵 구성물일 뿐 아니라 가장 가능성 높은 유전물질이다. 핵은 효소가 매우 부족하고 그 유일하게 보여질 수 있는 생화학적 잠재성이란 핵산의 합성이다. 그러나 세포로부터 떨어져나온 핵산은 그 생동성을 급격하게 잃어버리며, 핵을 제거한 세포로 들어가면 기능을 하지 못한다. 에너지 요구물을 공급하기 위한 필수 메카니즘이 없이는 그것은 완전히 세포질에 의존하는데, 그러나 기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세포질에 리보핵산(RNA)를 공급하며 그 상호관계는 공생으로서 표현되어야 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세포질로부터 떨어져있는 핵은 미래도 현재도 없다.

 

원형질은 임의로 부서질 수 있을만큼 불안정한 고도로 복잡한 교질 시스템이다. 그 생애에 걸쳐 그것은 꾸준하게 역동적인 상태에 있으며, 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 신진대사 메카니즘에 의해 공급된 에너지가 항상 필요하다. 그러나 신진대사란 제때에 제 장소에서 일어나야만 하는 화학반응의 정규적인 연속사건인 까닭에, 원형질은 그 활동이 (교대 작용과 비작용에 의해) 엄격하게 제어되는 효소의 고도로 통합된 시스템임이 분명하다. 효소 패턴에 어떤 방해가 생기면 이는 원형질의 질서있는 구조를 파괴할 것이다. 원형질 구조의 변경은 효소의 조화로운 기능을 방해할 것이다.

세포질은 미토콘드리아, 마이크로솜, 골지체, 염색체 등 조직의 복잡성의 정도가 다양한 몇 가지 유형의 입자로 구성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질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큰 지질핵단백질 세포기관이다. 그것은 완전히 통합되어 실제로는 구조적으로 단일체를 형성하고 기능적으로는 정규적인 발전소 역할을 하는 효소복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들은 호기성 산화물(지질산, 아미노산, 트리카르복시산 사이클)과 산화적 인산 그리고 몇 가지 합성물로 구성된 다양한 반응을 촉매한다.

 

그러나 그 핵으로부터 분리되면 세포질은 계속적인 미래가 없다. 그것은 잠시 동안은 다양한 기능(민감성, 수축, 호흡 등)을 보이며 미립자가 전달해온 에너지를 공급받지만 어느 시간 한도를 넘어서서 그 핵과의 동반관계를 박탈당한 상태에서는 그 성장과 재생과 차별화와 특정 단백질을 합성하는 능력은 현실화하지 못한다. 세포의 생명은 그리하여 핵과 세포질 사이의 계속된 상호작용의 결과로 간주된다. 그러나 상호작용은 자연적인 공생관계에 있을 수 있도록 그들 사이의 정합성에 조건 지어진다. 혼자서는 계속되는 현재가 없는 핵과 그 내용물(유전자), 혼자서는 계속되는 미래가 없는 세포질 (그리고 그 다양한 내용물), 에너지의 수송 및 전송을 담당하는 아데닐산 고에너지 인산염 파생물과 핵산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병렬에 의하여 성장과 재생산을 위한 단백질을 합성한다. 더군다나 단백질 합성은 서로 다른 유기체에서 생명의 현현에 높은 정도의 독특성을 각인시키는 고도의 특성화된 단백질을 지향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덧붙여질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만일 그것이 어떤 사건이나 외부의 영향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다면 세포는 미래를 획득하게 되며 그 미래는 영원이다.

 

생물학적 공생의 몇 가지 사례를 랜덤으로 뽑아보면, 세포나 미립자 레벨에서 뿐 아니라 비생명물질의 생명물질로의 변화 중 거대분자 레벨에서도 작용했을 수 있는 패턴으로서 이 현상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붉은 피의 색소인 헤모글로빈은 엄격한 동물의 산물로서만 보통 간주된다. 최근에 헤모글로빈이 박테리아를 고정시키는 니트로겐을 가진 콩 뿌리에서도 형성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생물학적 관찰의 광범위한 의의는 뿌리나 미세유기체들은 그들 혼자서는 이 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오직 감염된 뿌리에서만 헤모글로빈은 합성된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생명체계가 공생관계에 들어가고 이 상호관계로부터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는데, 두 시스템 중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복잡한 물질의 합성물이다. 이 경우에 창조적인 상황은 생물학적인 막다른 골목에서 끝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리고 진화의 과정은 막다른 골목으로 가득 차 있다) 자연의 변종을 내놓는 대신에 이 이벤트가 새로운 생물학적 시대를 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관련 이야기는 헤모글로빈에 화학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초록 색소인 엽록소에 관한 것이다. 이 색소는 식물 내에서 엽록체라는 특수한 세포기관에서 발견된다. 엽록소는 빛 스펙트럼의 보라색과 적색 범위 내에 있는 파장을 흡수하여 복사 에너지를 가둔다. 이것이 엽록체를 포함한 식물 세포에 동화 과정을 수행할 자유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이 메카니즘 없이는 세포가 동화작용을 수행할 수 없다. 엽록소 자체는 엽록체의 부속물로서가 아니면 광합성 작용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흥미롭다. 엽록체는 조류(藻類)와 보다 고등 식물의 세포질로 둘러싸인 작은 초록색 물체이다. 광합성 반응의 연속사건은 엽록체로 시작해서 엽록체로 끝난다. 주변의 세포질로부터 분리된 엽록체는 빛에 노출되면 물로부터 산소를 만들 수 있지만 이 반응에서는 이산화탄소를 산화제로 쓸 수 없다. 분리된 원형 그대로의 엽록체는 광합성을 수행할 수 없는데, 이는 이것이 세포질과의 협업에 의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에서 취할 수 있는 자유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광합성은 공생적인 구성에서부터 나타났다. 파트너쉽의 참가자들 단독으로는 이 합성을 할 수 없다. 분리되어 독립된 상태로 존재하는 엽록소, 엽록체 그리고 세포질은 유기물질의 레벨로 남을 것이다. 식물 세포 내에서의 이 세 가지의 연속 (우연에 의한)이야말로 무한한 태양 에너지원에 마개를 달고 생물학적 과정을 위해 쓸 수 있게 함으로서 진화론적 잠재성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었다.

 

바이러스에 관한 결론적인 한 마디를 덧붙여야겠다. 바이러스와 유전자 모두 자동 재생산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가장 단순한 물질을 대표한다. 둘 다 대체로 혹은 전적으로 핵단백질 거대분자이다. 식물 바이러스는 리보핵산(RNA)만을 함유하고 있고 동물 바이러스는 RNADNA 둘다 갖고 있는 한편 유전자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을 함유한다. 그러나 바이러스와 유전자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어느 것도 적절한 유형의 세포 내에서가 아니라면 재생산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유전자()과 세포질이 서로 들어맞는다면(, 동일한 혹은 매우 가까운 종에 속한다면) 그들의 공생관계는 정상적인 발달 속에서 정점을 맞는다. 만일 바이러스와 숙주 세포가 서로 맞는다면, 바이러스는 보통 배증하고 그렇게 하면서 숙주(기생관계)를 파괴한다. 버려진 바이러스는 다른 세포에 침투하지 않는다면 비생명물질 상태로 전환한다. 그러나 앤두류스가 1951년 레벤호크 강의에서 지적한대로, 안정적인 바이러스-숙주세포 평형상태가 달성될 수 있으며, “완벽한 공생에 평화롭게 순응하기까지 더욱 더 밀접한 연합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유전자로 변했을 수도 있을까?

열역학적으로 유도된 화학적 진화는 아마도 비생명 상태에서 생명 상태로 변하지 않고 비정형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직 유기물질이 높은 정도의 조직화를 달성하고 그러한 물질의 연속을 통해 (유일한 중재자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다양한 경향성을 획득했을 때에만 원시생명은 자연에서의 새로운 차원 - 그 자신의 조직화를 이루는 물질 - 으로서 등장할 수 있었다. 자연선택은 확률변수 위에서 작용하지만, 생명체가 불가항력적으로 따라온 수많은 노선의 진화론적 방향을 잡았다.

 

S. 몰규리스

195286

네브라스카 오마하

 

 

2. 일본어 판

 

역자 서문

 

본서의 저작에 대해 원저자 오파린은 1937년에 다음과 같이 서슬하고 있다.

 

"생명이 언제 어떻게 이 지상에 출현했는가라는 문제에 내가 마음을 기울이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문제의 해결을 목표로 밤낮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된지 벌써 15년이 경과하였다. 그 사이의 연구와 사색의 결과에 대해서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과학논문으로 발표하고 또 일반기사로서도 썼었다. 1923년에 나는 이 문제에 바쳐진 소책자를 발행했는데, 그 안에서 나는 생명이 제일차 유기물질의 점차적 진화의 결과 출현한 것이라는 견해를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후 나는 이러한 견해의 발전에 힘써, 천문학자, 지질학자, 생화학자 등을 시작으로 각 관련과학 부문의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 최근의 연구 성과를 이용하여 나의 견해를 뒷받침하고자 하였다. 이리하여 각 방면으로부터의 재료를 종합하여 1936년에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본서이다.“

 

1938년에는 본서의 영문판이 나왔다. 영문판은 네브라스카 대학의 생화학 교수 S. 몰규리스의 손에 의해 많은 유용한 주석을 포함하고 있다.

 

원저자 오파린은 소련과학아카데미에 있어 제일급의 지도자이며, 오늘까지 생물화학에 관한 우수한 실증적 연구논문을 몇 개나 발표하고 있다. 물질로부터 생명으로의 이행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실증적 연구를 계통적으로 정리한 것이 적어 아직 미답의 처녀지로 있었다. 진화론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생물의 형태변화의 측면만이 주목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파린은 생물체내의 물질대사의 양식, 에너지변환의 타입에 주로 관심을 두고, 그들 상호의 연관, 이행 및 발전의 모든 단계를 추구하여 거기서 생명진화의 현저한 흔적을 밝히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오파린은 이 일을 분명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견지에 서서 수행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나는 초판의 역자서문에 다음과 같이 써놓은 것이었다.

 

"본서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많은 자료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또한 생명에 관한 종래의 사상을 어떠한 태도로 비판하고 있는가 하는 그러한 방법적 특색이 그 학설의 내용과 나란히 최대의 매력이 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원저자는 본서에 있어서 뛰어난 생화학자일 뿐아니라 뛰어난 철학자로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자라고는 해도 헤켈류나 드리슈(Driesch)류의 철학자로서가 아니다. 본서를 읽는 사람은 바로 알겠지만 거기에 소위 철학은 전혀 없다. 그러나 본서는 자기 전문분야 밖으로 나가면 치매에 빠져 일반적 세계관 및 방법에 관해서는 이를 천시하는 것밖에 모르는 전문가에 대해서는 과학에 방법이나 철학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또 개별과학과 철학의 연계가 어떻게 있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것이 있을 것이다. 본서는 철학과 과학의 마땅한 관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새로운 전형으로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 나는 본서가 전문 생물학자, 생리학자, 생화학자 뿐 아니라 일반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믿고, 굳이 번역을 기획한 것이다."

 

본 번역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태평양 전쟁 중 발행자인 이와자키 테츠타(岩崎徹太)씨가 관헌의 무법한 탄압을 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출판사를 해산할 때까지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몇 개의 판본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많은 선배와 친구, 전문 연구자 분들, 특히 자원과학연구소 야마구치 세이자부로(山口清三郎)씨의 후의에 의한 비평과 수많은 주의를 받고, 다소 개정을 하였던 것은 전쟁 중 역자에게는 다시 없이 마음 든든한 일이었다. 지금 여기에, 새로운 환경 하에서 다시 본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는 때에, 이 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19469

                                                             사카히토 (山田坂人)

 

3. 대중판(1953판-일어번역)

 

번역자 "머릿말"

 

일세기 전에 나온 다윈의 <종의 기원>에 따라 이 지구상의 다양한 생물들이 같은 선조로부터 분기했다고 하는 것이 명백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생물 진화의 이전 역사, , 생명체가 어떻게 이 지구상에 탄생했는지의 문제는 20세기가 되기까지 의문스러운 상태로 남겨져 있다. 1923년에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책 한권을 내놓아, 이 문제에 관해서 확실한 해답을 주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는 상태이다.

마침 나는 20년 정도 전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오파린선생에게 크게 신세를 졌었다. 오파린 선생에게 그 후 <생명의 기원>의 문제가 어떻게 발전해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기념으로 준 것이 그 사이 늘려져 있던 본서의 원본인1953년판인 것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종래의 책과 달리,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 있고 최근의 혹성의 생성원인에 관한 학설, 그 외 새로운 자료도 더해져 있어, 나는 본서의 번역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동경대 소비에트 의학연구회의 사람들에게서도 이 번역을 부탁받은 참이기도 했다.

마침 일본생화학회에 출석하기 위해 오는 오파린선생을 맞아들일이할 때를 맞추어 일본에서 선생에게 증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나에게는 기쁘기 그지없다.

 

195510월 츠게우에 히데오미 (자식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