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감퇴나 인지장애 등을 일으키는 뇌세포 골지체의 구조적 변형과 연관된 핵심 이온채널이 확인됐다. 이 채널을 타깃으로 한 치료법을 찾으면 인지장애를 동반한 뇌질환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이창준 인지및사회성연구단 단장 연구팀과 김호민 바이오분자및세포구조연구단 CI(Chief Investigator) 연구팀이 세포 속 단백질의 변형과 운송을 담당하는 골지체의 형태 유지와 기능에 핵심적인 이온채널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팀은 뇌세포 골지체의 이온채널 손상과 인지장애의 관계를 밝혀 뇌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 표적도 제시했다.
골지체는 세포에서 우체국 역할을 한다. 소포체로부터 합성된 지질과 단백질 등을 받아들여 가공·변형시키고 다른 세포 소기관과 세포 외부로 운송한다. 골지체의 형태와 기능을 유지하려면 이온채널 내부가 약산성(pH 6.0~6.7)이어야 한다. 약산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골지체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는 인지장애를 동반한 알츠하이머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창준 단장 연구팀은 2023년 해마의 별세포와 신경세포에서 높게 발현하는 막단백질 'TMEM87A'가 뇌세포의 골지체 내 산도를 조절하는 양이온 채널임을 밝히고 ‘골프캣(GolpHCa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김호민 CI 연구팀과 함께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이용해 3.1 옹스트롬(1/1억 cm)의 초고해상도로 골프캣의 3차원 분자 구조를 규명했다. 또 전기생리학 실험과 분자동역학 분석을 통해 이온의 이동경로를 제시하고 골프캣이 세포막 통과 단백질의 전압 변환에 따라 통로가 열리는 전압 의존성 채널임을 확인했다.
골프캣은 세포 외부에서 세포막으로 이어지는 내강 도메인과 7개의 세포막 관통 나선을 가진 막 관통 도메인 구조로 이뤄졌으며 막 관통 도메인의 중앙에는 텅빈 구멍인 '공동'이 있다. 공동은 골지막에서 유래한 포스파티딜에탄올아민의 지방산 사슬에 의해 물리적으로 차단돼 이온이 통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압이 가해지면 전압 감응센서 역할을 하는 막 관통 도메인의 세 번째 나선이 활성화돼 개방된다. 이때 골프캣의 깔때기 모양 내강 안쪽에 분포해 있는 음전하를 띈 잔기가 나트륨, 칼슘, 세슘 양전하 이온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골프캣은 이처럼 양이온이 이동하는 통로이며 음이온 채널과 함께 골지체의 막전압을 적절히 조절해 내부 산도 등 항상성 유지에 기여한다.
연구팀은 골프캣 손상에 따른 생물학적 기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골프캣 유전자가 결손된 생쥐의 뇌세포를 관찰했다. 그 결과 골프캣 손상 시 골지체가 파편으로 나뉘거나 부어오르는 등 비정상적인 구조를 보였다.
이는 골지체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글리코실화(단백질 변형의 일종) 작용을 방해하고 생쥐의 학습과 기억력에 손상을 일으켰다. 골프캣의 정상적인 작동이 인지 기능에 중요하며 골프캣을 표적으로 하면 인지장애 치료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호민 CI단장은 “이번 연구는 신경생물학, 구조생물학, 분자동역학, 글리코믹스(당질체학) 등 다양한 첨단바이오 분야 연구기술이 총망라된 기초·공학 융합연구의 결과”라며 “학문 간 장벽을 허물고 협력해 우수한 성과를 거둔 성공적 사례”라고 말했다.
이창준 단장은 “골지체의 형태적·기능적 변화가 어떻게 기억력에 관여하는지 밝혔다”며 “골치체의 분자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면 다양한 신경 퇴행성 뇌질환에서 발견되는 인지장애에 대한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지난 11일 온라인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