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6일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발표한 2021년 4분기 통계에 따르면,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국내 환자는 4만 5000여 명이다. 그에 반해 지난 한 해 동안 실제로 장기이식이 이뤄진 사례는 단 1400여 건에 불과하다. 기증받을 장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식할 수 있는 장기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장기 부족은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의료문제다. 이종장기 이식(Xeno-transplantation)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꼽힌다. 사람이 아닌 다른 종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으로, 이종장기를 만들 동물로는 돼지가 쓰인다. 계통학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를 쓰기에는 규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미니돼지는 장기 크기가 사람과 비슷하고, 영장류에 비해 대량 번식이 쉽다.
다른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한 시도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1964년 침팬지의 신장을 이식하려던 시도가 처음이다.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현재는 각막이나 피부, 심장 판막을 비롯한 일부 장기이식에서 이종장기가 활용되고 있지만, 심장이나 신장, 폐, 간 등 고형 장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윤리적 쟁점과 함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종장기 이식의 위험요소로는 면역거부 반응과 혈액 응고 장애, 내인성 바이러스 등이 꼽힌다. 면역거부반응 중 이종이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초급성면역반응이다. 이는 돼지의 세포의 표면에서 발현되는 당단백질인 알파갈(α-gal)이 원인이다.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돼지의 알파갈에 대한 자연항체를 갖고 있어 이식된 장기에 결합해 수초~수분 내에 혈전을 만들고 장기를 파괴한다. 그 이후에는 급성면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사람의 장기를 이식받은 경우에도 나타날 수 있어 장기이식 수술 환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이식한 돼지의 장기에 사람의 혈액이 흐르며 나타날 수 있는 혈액 응고 장애도 해결해야 한다. 1월 21일 미국 앨라배마대 연구팀이 발표한 신장 이식 수술도 신장의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수술 3일 차에 혈액 응고 현상이 관찰됐다. 뇌사 상태인 환자를 대상으로 수술한 만큼 원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오랜 진화에 걸쳐 돼지의 유전체에 끼어들어 간 바이러스 유전자도 이종장기의 잠재적인 위협요인 중 하나다. 돼지 세포에서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DNA로 남아있지만, 인체에서는 바이러스로 발현돼 사람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11일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팀은 살아있는 환자에게 돼지의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승인을 받아 1월 8일 수술을 진행했고, 초급성면역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48시간을 넘겨 생존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후 약 2달이 지난 3월 10일 환자는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사망했다. 현재까지 이종심장 이식 사례 중 가장 긴 생존 기간으로 기록됐다.
연구팀은 이종장기 이식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10개의 유전자가 편집된 돼지를 사용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돼지의 알파갈을 발현하는 3개의 유전자와 성장을 촉진하는 1개의 유전자를 제거하고, 염증반응과 혈액 응고 등 면역반응을 유발하는 6개의 유전자를 삽입했다. 유전자 편집 돼지는 미국의 바이오기업 리비비코어에서 개발했다. 다만, 이종장기의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알려진 돼지의 내인성 바이러스 유전자는 교정하지 않았다.
박정규 서울대 의대 교수(전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는 “이종장기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정확한 위험요인을 판단하기 어려워 내인성 바이러스에 대한 의논이 많았다”며 “다만 지금까지 축적된 연구에 따르면 돼지의 내인성 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감염될 위험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종장기 이식 연구자들이 이번 심장 이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종장기 이식이 단계적으로 발전할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종장기 이식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장기를 돼지로 교체하는 것과 한번 교체한 장기를 평생 사용하는 것이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사람의 장기를 이식 받기 전까지 환자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종장기 이식으로 짧게는 3달, 길게는 1년가량 환자가 생존할 수 있는 수준만 달성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의 숫자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릴랜드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오는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릴 세계이식학회(TTS)에서 발표될 전망이다.
박 교수는 “같은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에서 나온 장기를 이식해도 장기마다 기능적, 생리학적 특징이 달라 성패가 엇갈릴 수 있다”며 “각 장기의 특징에 맞는 연구를 더 많이 축적해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전자가 편집되지 않은 이종장기 이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에서는 돼지의 췌도 세포를 이식하는 임상시험계획승인신청서(IND)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다. 췌도는 췌장에 분포하는 내분비 조직으로, 상대적으로 초급성면역반응 유발 가능성이 낮다. 박 교수는 “당뇨병 환자 중 인슐린 주사만으로는 관리할 수 없는 사례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 진행 가능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메릴랜드대와 앨라배마대 연구팀의 연구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본격적인 이종장기 상용화를 위한 연구가 시작될 전망이다. 하지만 심장과 신장 이외의 폐, 간 등 고형 장기 연구는 부족한 상황이다. 미세한 혈관이 장기 전체에 퍼져 있는 폐의 경우 혈액 응고 장애 문제를 극복해야 하고, 다양한 단백질을 만드는 간의 경우에는 돼지 세포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이 인체에 미칠 영향에 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현재까지 이종장기는 장기 부족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꼽힌다. 차세대 기술로 사람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돼지에서 장기를 키우는 키메라 기술 등이 있지만, 상용화되기까지 여전히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종장기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술로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유전자 편집이 손꼽힌다. 국내의 유전자 편집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관련 제도와 인프라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박 교수는 “유전자 편집 돼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과 충분한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며 “환자들의 생명과 직접 연관된 만큼 연구를 축적하고 기술력을 갖춰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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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3월호, 돼지 심장 이식 성공 이종장기 시대 앞당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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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 기자alwaysa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