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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창조론 (연재 2) 창세기 1장 첫 날의 창조: 천지, 흑암과 빛, 그리고 밤과 낮

heojohn 2024. 10. 5. 23:13

1. 첫 날의 창조: 천지, 흑암과 빛, 그리고 밤과 낮  

 

1) 태초(최초)에 창조된 천지 한글성경은 창세기 1:1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는 말로 번역했다. 이 구절에서 첫 글자로 나오는 히브리어 원어 ‘뻬레쉬트’(רבְּרֵאשִׁית)를 번역한 “태초에”라는 말이 오해를 불러온다. ‘뻬레쉬트’는 전치사 ‘뻬’와 최초 또는 첫째라는 서수(序數) ‘레쉬트’가 결합한 부사구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하나님이 ‘첫째에 창조하신 것’은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뻬레쉬트’는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순서를 나타내는 서수어이므로 “태초에”라는 말보다 ‘최초에’, ‘첫째에’ 또는 ‘처음에’라는 로 번역했더라면, 훨씬 더 쉽게 정확한 이해가 가능했을 것이다. 현대과학적 개념으로 하늘과 땅은 우리우주의 시공간(空間)과 그 안에 있는 지구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히브리어 하늘(하샤마임: הַשָּׁמַיִם)은 하나님의 궁전이 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창세기의 천지는 현대적 개념의 우주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늘과 그 아래에 있는 땅(하아레츠: הָאָרֶץ) 즉 지구를 의미한다. 특히 당시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는 해와 달과 별이 모두 창세기의 땅(하아레츠: הָאָרֶץ)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그림 예시 참조). 모세의 창세기 1장은 “천지”의 “천(하늘 天)”에 해당하는 ‘하샤마임’(הַשָּׁמַיִם)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 곧바로 “지(땅 地)”에 해당하는 ‘하아레츠’(הָאָרֶץ)의 상태를 설명하는 2절로 넘어간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보여주는 천지 그림 예시

 

1:2에서 모세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פְּנֵי הַמָּיִם׃)고 서술했다. 창세기 1:2를 읽으면, 1:1이 시간을 한정하는 종속절이냐, 또는 제목과 같은 선언적 의미의 독립절이냐는 해석의 문제에 부딪친다.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독립절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그밖에도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읽어보면 독립절로 해석해야 할 이유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하나님의 창조 방식은 큰 것을 먼저 만드시고, 그 안에 작은 것들을 따로 창조하여 채워 넣으시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서술은 땅이 토후’(혼돈)하고, ‘보후’(공허)한 상태로 깊은 물 밑에 있었다. 여기에서 깊음으로 번역된 테홈은 깊은 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호쉐크’(흑암)가 깊은 물 위를 덮고 있었다. 물론 깊은 물 밑의 땅까지도 흑암에 덮혀 있었다. 모세는 또 루아흐’(하나님의 영)가 깊은 물 위의 흑암 속에서 메라헤페트’(מְרַחֶפֶת: 운행한다의 분사)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서술했다. 그렇다면 모세는 흑암 속에서 1:2의 상황을 그의 눈으로 본 것처럼 어떻게 서술할 수 있었을까? 일반 독자들은 모세가 상상해서 묘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흑암 속에서 모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인정한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그런 능력을 주실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을 가진 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2을 독립절로 보면, 여기서 모세가 사용한 하이토‘(הָיְתָה) 동사의 완료형 시제는 1절의 완료형 동사 빠라’(בָּרָא)와 같이 뻬레쉬트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완료형 동사는 문장에서 과거에 완료된 사건을 서술한다. 그러므로 문맥상으로 보면, “천지인 하늘과 땅이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별개의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 창조 톨레도트를 읽는 현대인들은 하늘과 땅의 창조 사이에 시간을 특정할 수 없다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현대인들은 땅(지구)보다 하늘(우주 공간)이 훨씬 먼저 만들어졌다고 해야 쉽게 납득할 수가 있는데, 모세는 그렇게 서술하지 않고, 동시에 만들어진 것처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상식을 가진 현대인들은 대개 현대과학이 주장하는 빅뱅우주론을 인정하고 있다. 현대과학의 태초는 약 138억 년 전 빅뱅의 때이고, 우리 우주의 물질은 그때 처음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구는 약 46억 년 전에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창조 톨레도트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기를 고집하는 기독교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빅뱅과 우주와 지구의 연대에 관련하여 과학계의 주장을 부정함으로써 과학적 상식을 가진 현대인들과 교회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고 있다. 특히 현대교회에서 나타나는 그런 갈등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이 창세기 1:11:2의 종속절로 보고, 우주와 지구가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이해하면서 우주와 지구의 태초를 약 6,000년 전이라고 계산하는 젊은 지구(우주)론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지가 하루 24시간 6일 동안에 만들어졌다는 것과 여기에 아담의 계보 연대를 더하여 우주와 지구의 역사가 아무리 길게 잡아도 약 10,000년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문자적 근본주의자들의 해석은 하나님을 태초천지야, 나와라! 뚝딱!’이라는 말로 우리 우주를 만들어낸 마술사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다. 모세는 여기에서 캄캄한 흑암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병아리를 품은 어미 닭처럼 깊은 물 위를 메라헤페트’(운행)하고 있었다고 서술하지 않았는가?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읽으면, 하나님이 땅에서 그의 창조목적인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 사전에 얼마나 치밀하게 창조 계획을 세우시고, 또 생태계 창조를 얼마나 세심하게 진행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우주 나이 138억이라고 주장하는 빅뱅우주론과 지구 나이 46억 년이라고 인정하는 오랜 지구론을 믿는 현대인들과 갈등할 이유가 없다. 기독교의 전통은 미국 장로교단에서 오랜 연구 끝에 결론으로 제시한 창조 연대의 해석 방법들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방법으로 창조하셨을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 신화를 믿는 당시 헬레니즘 사회에서 이방 민족의 신화를 인용하면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해석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 과학 문명이 만들어낸 이기들을 사용하는 일부 근본주의자들이 기독교 창조론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는 것을 타협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기독교에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일찍이 시편 저자는 904절에서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고 노래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천 년이 하루 또는 한 순간과 같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시간의 길이를 사람이 알 수 없다는 의미를 말한다. 하나님의 시간을 사람이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우주의 연대에 대해 현대과학이 설명하는 시간을 그대로 믿어도 기독교 신앙과 거듭남에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을 부정하는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창세기의 태초부터 현재까지 약 6천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어쨌든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창조에 걸린 6일 창조의 시간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가 첫 하루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 서술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

 

2). 흑암과 빛의 의미와 시간적 길이

 

히브리인들은 히브리인의 날자 계산법에 따르면, 하루는 해지는 시각에 시작해서 해뜨는 시각에 끝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창조 톨레도트에서도 하루는 밤에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시간을 그런 계산법으로 사람의 시간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창세기에서 첫 하루의 시작은 첫 밤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찾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 톨레도트에는 첫 밤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1:2에서 땅을 덮고 있는 깊은 물위에 흑암(חֹשֶׁךְ: 호셰크)이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흑암은 최초에 천지창조가 시작된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하늘과 땅이 동시에 창조되지 않았다면, 땅의 창조 때에 흑암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수밖에 없다(이것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어쨌든 하나님은 그 흑암을 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창조의 첫날 밤은 그 흑암이 만들어진 때 시작된 것이다.

 

한글성경을 보면 창조의 첫 날에 대해 오해하게 만드는 심각한 번역의 오류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번역 오류는 1:2에서 처음 나오는 히브리어 호셰크흑암으로 번역했으나, 1:41:5에서는 호쉐크를 다른 말인 것처럼, “어둠으로 번역한 것이다. 특히 그 사이 1:3에서 하나님이 예히 오르’(יְהִי אֹור : 빛이 있으라)라고 처음 명령하시는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창조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거나, 처음 창조된 것이 빛을 비추는 낮의 태양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더 많아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라는 1:4의 구절과 1:5에서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시니라”(וַיִּקְרָא אֱלֹהִים לָאֹור יֹום וְלַחֹשֶׁךְ קָרָא לָיְלָה)는 구절을 읽고, 또 연속적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וַיְהִי־עֶרֶב וַיְהִי־בֹקֶר יֹום אֶחָד׃)고 번역된 문장을 바로 이어서 읽기 때문이다.

 

초기에 한글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쓰인 것으로 알려진 KJV는 창세기의 호셰크darkness(흑암)으로 일관되게 번역하고 있고, 다른 영어 성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글성경이 1:2호셰크흑암으로 번역해놓고, 이를 1:41:5에서는 어둠으로 번역했다. 이 오류는 밤이 앞에 있고, 낮이 뒤에 오는 히브리인들의 전통적 역법과 창세기의 첫날 하루에 대해 심각한 오해를 초래하도록 만들었다. 성경을 이렇게 번역한 것은 오역을 넘어 고의적 왜곡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한글성경만 읽으면, 밤이 시작하는 시점을 제대로 알 수 없다. 모세의 서술에 따르면, 첫날 밤이 1:2호세크’(흑암)에서 시작되었다고 분명히 알 수 있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글성경은 1:4호셰크’(흑암)를 다른 말처럼 어둠으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이 밤을 어둠으로 말씀하신 것처럼 오해하게 되면, 뒤이어 나오는 저녁을 첫 날의 밤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따라서 올바로 이해하는 첫날 밤의 시간은 1:2흑암에서 1:3의 빛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게 올바로 이해하면 첫날 밤의 시간적 길이는 결코 짧은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두 번째의 번역 오류는 욤 에하드’(יֹום אֶחָד)첫째 날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히브리어 에하드는 하나(one)를 가리키는 기수(基數)이지 첫째를 가리키는 서수(序數)가 아니다. 히브리어에서 첫째를 가리키는 서수는 이미 앞에서 말했듯이 1:1에서 태초에라고 번역된 뻬레쉬트에서 전치사 ’(בּ)를 뺀 레쉬트’(ְרֵאשִׁית)이다. 한글성경의 오래된 번역 대본인 KJV욤 에하드the first day로 번역했고, 한글성경이 그 번역을 따랐다. 그러나 그것보다 뒤에 나온 ASV 등에서는 올바르게 욤 에하드one day로 번역했다. ‘욤 에하드를 한글성경에서 히브리어 본래 의미를 따라 어느 날’(one day) 또는 이 글에서처럼 첫날이라는 말로 번역했다면, 한글 성경 문자주의자들에게도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욤 에하드는 옛날에 일어난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사거의 발생일을 알지 못할 때 어느 날이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이 최초에 창조’(뻬레쉬트 빠라)하신 것은 빛이 아니라, 분명히 천(하늘)과 지()였다. 그때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에 의하여 빛이 있었을지라도 땅은 분명히 흑암()의 시간에 갇혀 있었다. 그렇다면 1:1태초1:2 사이에는 현대인들이 알고 있듯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보여주지 않으신, 우주 창조의 긴 시간이 있었다는 추정이 분명히 가능하다고 암시된다. 하나님이 태초부터 긴 시간의 흑암을 밤과 낮의 하루로 연결하여 말씀하셨고, 모세는 그것을 욤 에하드’(어느 날)라고 서술하였지만, 일부 성경 번역자들이 이를 오역 또는 왜곡함으로써 신자와 독자들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 한마디 덧붙인다면, “태초에 하나님의 창조를 실제 본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창조의 시작이 언제였는지를 알려 주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의 법칙을 연구하는 물리학에 의하면, 우주와 지구가 24시간 하루의 짧은 밤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영원히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시는 분으로 믿는다. 따라서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창조에 사용하신 6일이라는 시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카이로스시간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인간의 시간이 아니므로 인간이 알 수 없는 시간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서 굳이 말하지 않는 하나님이 창조에 사용하신 시간적 길이를 과학의 연구에 맡겨두는 것이 더 좋다고 양해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 태초의 시간적 길이에 달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적 교양을 가진 현대인들이라면, 일부 근본주의자들처럼 오류가 많은 번역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근거로 우주와 지구가 약 6,000-10,0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을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창조 사역 6일과 안식하는 하루로 나눠서 보여주신 일주일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의 생활 시간표를 제정해주신 뜻으로 이해하는 것 이외의 다른 이해는 무익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할 수 있다.

 

3) 창조주의 지구 임재

 

창조 톨레도트에서 첫날의 낮은 모세가 흑암에서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때 시작되었다. 에 대해서 가장 많이 연구한 사람은 영국국교회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 주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영국국교회의 설립과 KJV 영어성경 번역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연대기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는 말씀에 의해서 생겨난 빛이 BC. 40041023일 일요일 아침 해가 뜨면서 비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셔 주교에 의하면 그날부터 24시간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하나님이 가르쳐주시지 않은 시간을 사람의 시간으로 계산했던 사람들은 모두 실패했다. 예수 그리스도조차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12:32)고 했다. 하나님의 시간은 앞에서 인용했던 시편 90:4절의 기자가 말한 바와 같이 천 년이 하루 또는 밤의 한 순간일 수도 있으므로 사람으로서는 계산 불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시간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처럼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약 6,000년이라고 믿는 것이 성경적 진리를 믿는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쓸데없이 과학과 기독교의 갈등을 야기할 뿐이다. 그런 주장은 기독교의 믿음에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며, 여러 가지 해석의 하나일 뿐이다. 과학이 46억 년 전에 지구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해도 굳이 시비를 걸 필요가 없이 과학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해도 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를 쇠퇴의 길로 빠지게 한 가장 큰 원인은 기독교가 과학과 싸워서 패배한 것이다. 과학이 사실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 과학은 창조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창조 6일의 하루가 24시간인지, 아닌지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알려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것이 빛이고, 그 빛에 의하여 24시간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의 관점은 잘못 번역된 한글성경까지 문자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첫날은 밤이 없었거나, 또는 빛이 나오기 이전에 있었던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시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매우 불완전한 창조자로 만드는 해석이다.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지구에 빛이 있기 전의 모든 우주적 사건들이 첫날의 밤 즉 호셰크’(흑암)의 시간 동안에 일어났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기독교가 어셔 주교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천동설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무지한 자의 주장 또는 거짓말이 된다.

 

곧 알게 되겠지만,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 넷째 날에 광명체(해와 달과 별들)를 만드시고, 땅에 빛을 비추게 하시고, 주야를 주관하게 하셨다고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다(1:14-18). 그렇다면 창조의 첫날에 비친 빛은 넷째 날의 빛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아직 땅에 비치지도 않은 해의 빛이 첫째 날의 낮이 되었고, 그때부터 24시간 하루가 시작되었으며, 그래서 성경적 지구의 나이는 약 6,000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히브리어 원어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물론, 현대인들의 과학적 상식까지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제대로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런 무지한 주장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째 날의 빛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그 빛에 대해서는 이미 사도 요한이 잘 해석해놓았다. 요한에 의하면 빛은 주 하나님이다(1:1-5). 주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요한은 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4:11)고 쓰고, 또 새로 창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고 썼다. 요한에 의하면 어린 양은 알파와 오메가이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요한이 받은 계시는 최초의 창조주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주도 알파와 오메가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말해준다. 따라서 창조 첫날의 빛은 이 땅에 생태계와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 주 하나님이 임재하셨던 사실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한 해석이다.

 

요한이 받은 계시는 생명이 물질에서 화학작용으로 저절로 생겨났다는 과학적 무신론을 강력하게 부정한다. 요한에 의하면 태초부터 함께 계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창조 이전에도 계셨고, 현재도 계시고, 태양이 필요 없는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도 계실 것이다. 그때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을 것이다. 사도 요한의 해석은 모세가 서술한 창조 톨레도트의 처음 빛을 약 1,500년이 지난 뒤에 창조주 하나님의 지구 임재라고 새로 인식함에서 나온 해석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요한의 해석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기독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어린 양의 피로 거듭나게 됨을 온전히 믿는 길이다.

 

창조 톨레도트에서 모세는 이 땅에 빛으로 임재하신 주 하나님을 환상에서 보았지만, 출애굽 때에는 스스로 있는 자’(3:14)라고 하신 분을 직접 만나 대화하기도 했다. 요한에 의하면 모세가 창조의 첫날에 본 빛은 햇빛이 아니라. 이 땅에 창조주로 임재하신 주 하나님이다. 모세는 그 빛에 의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빛을 해석하는 요한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가장 기독교적인 창조 톨레도트 이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요한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창조 이후에 하나님이 지구에 임재하여 사람과 대화하신 성경의 기록이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를 위해 이 땅에 임재하셨다는 요한의 해석을 부정하는 반기독교적 세계관들이 퍼져 있다. 하나님의 창조를 사실로 믿는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그런 세계관들이 오류임을 입증하고 반박하는 데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은 이전의 모든 관념론적 철학과 종교와 진리를 배척하고, 유물론적 관점에서 우주 및 인류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는 찰스 다윈(Chartles Darwin, 1809-1882)1859년에 종의 기원에서 발표한 생물학적 다윈주의 진화론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다윈이 발표한 진화론적 세계관에 그들의 역사적 유물론을 접목했다. 이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장은 유물론적 진화론 또는 진화론적 유물사관으로 불려지고 있다.

 

셋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바탕으로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이 러시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에 성공한 이후,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생명의 기원에서 발표한 화학적 진화론이다. 이는 지구 생명이 물질의 화학작용으로 생겨났다는 유물론적 과학주의 세계관이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는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해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에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한 것이 과학적 무신론이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아편으로 취급하면서 인민을 미신으로 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배척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특히 기독교를 가장 적대시(敵對視)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넷째로는 우주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의 개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에서 양자요동과 중력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서술하는 위대한 설계의 저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의 세계관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창조를 부정한다. 호킹은 우리우주가 무에서 양자 거품으로 생겨난 많은 우주 중에서 하나라고 주장했다. 호킹에 의하면 창조자 없이 무에서 우주가 수없이 많이 생겨났으며, 우주 만물은 결국 아무 곳에서나 자발적 창조에 의하여 생겨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창조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그런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열심히 예배와 기도와 제물을 바칠지라도 기뻐하지 아니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