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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팀이 양자 물질에서 액정과 유사한 물질 상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 이론적 예측은 있었지만, 물질에서 실제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18일 김범준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부연구단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스마트폰 화면 등에서 쓰이는 액체도 고체도 아닌 ‘액정’ 유사 물질 상을 양자 물질에서 관측했다고 밝혔다.
물질은 대부분 고체, 액체, 기체 세 가지 상으로 존재하지만 액정을 포함한 제4의 상 ‘네마틱’은 액체와 고체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 액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고체처럼 분자 배열이 규칙적이다. 네마틱 상은 반세기 전부터 양자역학적인 스핀계에도 존재할 것이란 이론적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 물질에서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스핀은 전자의 각운동량으로, 전자가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라면 스핀은 자전에 해당한다. 자석은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 고체 상태로, N극과 S극이라는 2개의 극으로 이뤄진 자기 쌍극자를 형성한다. 반면 스핀 네마틱은 자성은 없으며 4개의 극으로 이뤄진 사극자가 정렬돼있는 상태다.
기존에 개발된 대부분의 실험 도구가 쌍극자에만 민감하게 설계돼 있어 스핀 네마틱 검출은 어렵다. 연구팀은 사극자 존재를 X선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를 설계했다. 미국 아르곤연구소와 협업해 공명 비탄성 X선 산란 장비 'RIXS'를 4년여에 걸쳐 개발했고,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가속기 빔라인에 개발한 분광기를 구축해 실험을 진행했다.
유력 고온 초전도체 후보물질로 꼽히는 이리듐 산화물에 X선을 조사하며 스핀의 거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이리듐 산화물은 230K(-43.15℃) 이하의 저온에서는 쌍극자와 사극자가 공존했고, 260K(-13.15℃) 온도까지는 쌍극자가 사라지고 사극자는 남아있었다. 230~260K의 온도 범위에서 스핀 네마틱 상태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스핀 네마틱 상의 발견은 스핀 액체 탐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공동 저자인 조길영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컴퓨터 등 양자 정보 기술에 활용하기 위해 학계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스핀 액체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스핀 네마틱은 스핀 액체와 공통적인 물리적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스핀 액체 탐색의 핵심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이리듐 산화물에서 고온 초전도 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이론적으로 스핀 네마틱 상도 스핀 액체처럼 스핀 양자 얽힘을 통해 고온 초전도 현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에서 이리듐 산화물의 전자 농도를 변화시켜가며 고온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지난 14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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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세영 기자moon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