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다윈의 [종의 기원] 비판

현대 다윈주의자 마이어의 견해에 대한 비판

heojohn 2020. 3. 10. 01:33

 

 

종의 기원은 다소 애매하지만, 유신론적 해석이 가능했다. 다윈은 제1원인으로서의 창조주의 창조를 부정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종합설 그룹의 일원으로서 저명한 다윈주의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이에 대해서 다윈이 생각한 종의 특징은 유형론적 종의 개념과 유명론적 종의 개념을 혼합한 것이라는 애매한 말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종의 기원은 당시까지 주류 사조로서 성경과 린네의 이론으로 설명되었던 종류대로창조되었다는 창조주의적 유형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다윈은 진화에는 목적성이 없다는 주장에서 유형론적 종의 개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다윈은 다만 창조주의 창조가 한 개 또는 소수의’(one or a few) 원시 생명체만 만든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마이어는 다윈의 변이의 원천적 동력을 가리키는 자연선택론에 대하여,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칸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서에도 이처럼 독특한 이론은 없었다. 다윈의 이론은 사실상 목적론을 기계론적인 설명으로 밑바탕에서부터 치환하게 했다고 평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그의 재해석은 정적인 상태 또는 항상상태였던 세계를 진화하는 세계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우주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독특한 위치를 동물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단계로 바꾸어 놓은 점이라는 평도 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비판했듯이 마이어는 허구적 다윈의 가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찬양하고 선전한다. 마이어는 다윈의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을 때, 진화적 사고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Toulmin 1972: 326). 언어학과 사회학에서는 특히 그랬다. 진화적 사고를 그럴 듯한 과학의 개념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다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주의를 다윈주의로 언급하는 잘못이 나타나고 있다. 생물학에서 진화주의의 존재는 뷔퐁(Buffon), 라마르크, 지오프로이(Geoffroy), 챔버스(Chambers)를 비롯하여 독일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비록 다윈이 진화주의가 승리하도록 했지만, 명확히 그 창시자는 아니다.

그러나 자연선택을 비롯한 다윈 패러다임의 여러 측면들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9세기 중엽을 풍미하던 많은 이데올로기들과 완전히 상충되었다. 특수 창조에 대한 믿음 및 자연 목적론의 설계 주장과 함께 본질주의(유형론), 물리주의(환원주의), 목적원인론(목적론) 등이 다윈의 사고와는 철저히 반대되었다. 이러한 교리에 따르는 사람들은 다윈의 연구에 자신들을 경악시키는 반대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 이 세 가지 이데올로기는 하나하나 패배했으며, 이들의 소멸과 함께 생물계에서 결정주의, 예견성, 진보, 완벽성 등의 개념들도 약해졌다.

다윈이 내세운 새로운 중요한 개념들 중 일부, 즉 변이진화, 자연선택, 우연과 필연의 상호관계, 진화에 있어 초자연적인 힘의 배제, 생물계에 있어서 인간의 위치 등을 비롯한 몇 가지 다른 이론들은 과학 이론일 뿐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중요한 철학적 개념이며, 또한 이런 개념들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특징적으로 만들었다.

특수 창조를 부정하는 것만으로도 이전에 널리 퍼져 있던 세계관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러한 점이 바로 세지위크(Sedgwick)나 아가시스(Agassiz) 등과 같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훼웰(Whewell)과 허셜(Hershell) 등과 같은 철학자들까지도 다윈을 심하게 반대했던 이유였다. ‘창조주의를 대신할 세계관이 이전에 어디에 있었는가?’ ‘만약에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었는가?’

 

마이어의 주장을 보면, 번 평가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번 평가에서 다윈이 물리주의와 결정주의를 패배시켰다고 말하면, 다윈의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물리주의와 결정주의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다윈과 마찬가지로 다윈주의자들의 주장도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번 평가는 다윈의 이론을 하나의 가설이라고 보는 입장에서는 다윈주의자들의 지나친 자화자찬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이 아니라 검증이 필요하지 않는 철학일 뿐이다. 번 평가에 창조주의를 반대하기 위해서 다른 대안이 없다면, 마이어도 다윈의 진화론을 진리처럼 주장해도 좋다는 토마스 헉슬리의 다를 바 없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이어는 다윈의 이론에 근거하여 창조주의를 반대하는 다윈주의자들이 매우 정당하게 과학자의 길을 가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창조주의를 반대하는 세계관을 가진 자들은 사실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윈주의자 마이어는 현실적으로 다윈주의의 의미들 대부분은 명확히 다윈의 생각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잘못 표현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진화의 종합설이 진행되는 동안과 그 이후에는 <다윈주의>라는 용어가 자연선택의 영향에서 나타나는 진화의 적응 변화와 변형 진화 대신 변이 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고백했다. 이 말은 이제 현대 진화론은 다윈의 본래적인 진화의 개념이 현대진화종합설과 신다윈주의를 거쳐 변이 진화개념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마이어가 말하는 변이 진화는 어떤 생물학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인가? 마이어는 이것이 어떤 구체적인 생물학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을 따름이다.

 

진화의 종합설이 나오는 동안에 발전된 새로운 다윈주의는 자연선택과

방황과정에 대한 균형적인 강조를 비롯하여, 이밖에 전체적으로는 진화도

아니며 특별한 경우에는 자연선택도 아닌 결정론적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가지 모두 확률론적 과정이라는 믿음, 다양성의 근원이 진화의 한

요소로 중요한 만큼 적응도 중요하다는 믿음, 그리고 생식적 성공을 위한

선택이 생존하기 위한 질적 특징의 선택만큼 진화에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다는 점으로 특징지워진다.

 

여기에서 마이어는 다윈의 진화론은 이미 오류인 것이 판명되었으니 새로운 다윈주의의 입장에서는 믿음인식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이어가 다윈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믿음과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시인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진화론자답게 새로운 변명을 늘어놓는다. “어떤 사건이 <흔히(usually)> 일어난다고 하여도, 반드시 항상 일어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진화적 과정이 보여주는 영원히 존재하는 다양성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마이어의 이 말은 다윈주의자들에게 어제의 다윈주의가 오늘 부정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다른 대답을 새롭게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비밀지령과 같은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미 다윈이 주장하는 변이는 라마르크적인 후천적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오류를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과 오늘날 변이의 한계는 부모의 유전형질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마이어의 고백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스스로 사망 선고하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이어는 이 말에서 돌연변이를 의미하는 변형 진화도 틀렸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무엇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현대 다윈주의자들이 이미 사망 선고된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이런 식으로 억지스럽게 꾸려가는 것을 과학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 과학이론은 검증에서 실패하면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을 이렇게 현대의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해보면, 그것은 이제 오류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19세기 물활론적 자연발생론이다. 그런데도 현대 다윈주의자는 창조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믿음의 방편으로 억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다윈의 진화론은 종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성의 발현이라는 품종의 변화를 귀납적으로 종합하여 상위 분류 단계인 에까지 확대 적용하려고 했던 추론의 오류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의 마지막 구절에서 진술한 구절을 다시 생각하면서 비판적 결론을 맺도록 하자. “창조자”(the Creator)에 의하여 불어넣어졌다는 생명이 행성이 확고한 중력법칙에 의해 회전하는 동안에 그토록 단순한 발단에서 극히 아름답고 경탄할만한 무한의 형태가 산출되었고 지금도 산출되고 있다는 견해에는 장엄함이 있다.” 이 진술을 보면 결국 이신론자의 주장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면 달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다윈이 자연선택론을 중력법칙과 같은 자연법칙으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결국 고대부터 내려온 자연발생론이 그의 이론대로 약간 진화된 변종일 뿐이다. 그럼에도 현대의 다윈주의자들은 이런저런 새로운 이론을 덧붙이면서 누더기가 된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대의 다윈주의자들은 다윈과 달리 무신론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윈주의가 부정되면 그들의 반창조주의적 무신론도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진화론에 대한 문제는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반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이어가 말하는 다윈주의의 무신론적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발전배경이 되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무신론적 유물론과 결합되는 과정을 이해해야 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물사관은 다윈의 진화론을 발판으로 유물 진화론으로 진화한 것이고, 과학적 무신론의 원형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받아들여 과학적 무신론의 원형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