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제시한 이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창조자(Creator)에 의하여 숨을 쉬게 된 최초의 한 개 또는 몇 개의 생물적 종의 자손들이 자연선택에 의한 변이의 축적에 의하여 다른 종으로 진화했으며,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다윈의 진화론을 비판하자면 종과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세 가지 중심 개념의 파악이 중요하다. 이 세 가지 개념만 제대로 이해하면 다윈의 이론은 어려울 것이 없다.
(1) 종-변종
다윈은 ‘종’(species)이라는 말과 함께 변종, 원(시)종, 초기종(공통조상)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다윈의 시대에 자연적 ‘종’에 대한 분류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의 분류 방법을 따르고 있었다. 린네는 자연계를 먼저 광물계, 식물계, 동물계의 3계로 나누고, 계 밑에 강-목-속-종이라는 단계를 두어 전체적으로는 5단계의 계통으로 분류했다. 린네는 종 하위에 ‘변종’을 넣어 두었는데 이는 현대적 분류법에서는 품종 또는 아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윈도 처음에는 린네의 분류법에 따라 종과 ‘변종’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린네의 기준에 의하면, 일차적으로 종이란 서로 다르게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생물의 분류단위를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이 ‘종류별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다윈이 말하는 종의 개념은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린네의 ‘종’의 개념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어떤 종의 자손은 점진적으로 조상과는 다른 ‘변종’이 되고 나아가 자연선택에 의한 변이의 누적에 의해 다른 ‘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생명체인 원시생물 또는 어느 종의 조상 개체 이외에는 모든 생물 개체가 그 ‘종 안에서의 변종’이다. 새로운 종으로 분류될 수 있는 조상 개체가 나타나면 그것에는 새로운 ‘종’으로 이름이 붙여지게 되고, 그 후손들은 다시 변종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윈에 의하면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진화가 일어났고, 오늘날 생물의 각 ‘종’은 이렇게 진화되어온 생물의 역사적 결과물이다.
다윈이 살고 있던 무렵에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 사람들은 ‘종’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므로 ‘종’은 불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유형론(類型論)적 상식이 다윈에 의해 뒤집혀진 것이다. 다윈의 이론대로라면, 사람은 당시 사람들의 믿음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원숭이에서 진화된 동물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2) 변이-진화
생물은 어느 개체도 똑 같지 않게 태어난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생물의 다양성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윈은 이런 메커니즘(mechanism)을 변이라고 부른다. 생물에서 변이가 만들어지는 직접적인 실례는 과학적인 실험 이외에도 식물재배를 하는 화훼업자나 동물사육을 하는 목축업자들이 품종 개량을 위해 인공적으로 잡종교배를 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다윈은 이렇게 인공적으로 품종의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의해서도 똑 같은 변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이는 종내(種內) 변이에 한정되는 것이다. 인공적으로 일으킨 변이가 종간(種間) 변이로 유전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관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윈은 자연에서의 변이는 매우 느리게 점진적으로 누적되고 보존되면서 진행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손은 부모로부터 조금씩 다르게 태어나서 변종이 되며, 이렇게 사소한 변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면, 다른 ‘종’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곧 다윈의 진화이론이다.
그런데 다윈의 시대에는 아직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았던 때이므로 자손에게 나타나는 변이가 부와 모의 유전자의 조합 현상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전체적인 창조’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를 사용하여 범생설(pangenesis)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다윈은 범생설에서 제뮬(gemmule)이라는 부모의 형질 입자가 자손에게 그대로 유전된다고 가정했다. 그런데 그는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제뮬에는 라마르크가 제안한 후천성 유전, 곧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윈은 이러한 제뮬이 자손에게 유전되면서 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왓슨(James Watson, 1928- )과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이 1953년에 유전자의 실체인 유전물질 즉 DNA(deoxyribo nucleic acid) 구조를 발견하면서 폐기되어야 했다. 현대 유전학에 의하면, 자손에게 나타나는 형질은 부모의 DNA 조합에 의해서만 발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다만 현대 유전학자 일부는 라마르크의 이론을 “후성유전설”이라고 이름 붙여서 다시 주장하고 있기도 하나, 이런 주장은 주류 유전학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3) 자연선택, 자연도태, 적자생존
생물의 각 개체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의 신체적 기능과 주위의 환경에 의하여 생존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먹이를 놓고는 같은 종끼리도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상위 포식자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생물은 이렇게 생존을 위해 생사를 다투는 경쟁 생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우자를 만나 짝짓기하고 출산한 자손들을 안전하게 키워내는 일에 계속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 조건의 위험들을 모두 극복해야만 생물은 자손을 번식하여 자신의 ‘종’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어느 것 하나라도 실패하면 그런 ‘종’은 바로 멸종되고 만다. 다윈은 이 과정에서 조상으로부터 유리한 형질을 물려받은 개체가 자연에서의 생존경쟁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것이 다윈이 말하는 자연선택 이론이다. 다윈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인위적인 사육 또는 재배하는 조건하에서 인공선택으로 동식물에게 품종의 변이를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동일하게 자연의 선택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다윈은 “아무리 경미한 변이라도 유용한 점이 있으면 보존되는 이 원리를, 인간의 선택능력과 구별하기 위해 나는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로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에는 ‘보존의 원칙’과 ‘최적자 생존’의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다윈은 여기에다 맬서스(Thomas R. Malthus, 1766-1834)의 『인구론』에서 ‘생존경쟁’(struggle for survival) 이론을 덧붙여 놓았다. 즉 제한된 생존환경 조건에서 생존경쟁에 유리한 개체는 살아남고 불리한 개체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선택’이라는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자연선택과 자연도태라는 말은 동의어로 번역된다. 오늘날 우리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데, 이는 ‘자연선택’과 같은 개념이다. 다윈도 『종의 기원』 개정 5판(1869년)부터는 월리스의 비판과 충고를 받아들여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면서, 오히려 ‘적자생존’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했다. 이렇게 알고 보면 다윈의 진화론은 매우 단순한, 사실과 다른 매우 엉성한, 추론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해온 이론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진화론자들의 저서에서도 ‘자연선택’이라는 용어에는 진화를 위한 어떤 미지(未知)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연이 신적 능력을 가지고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이 종교적 도그마(dogma)로 ‘진화’해온 이유가 바로 이 말의 뜻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 다윈주의자들조차 ‘진화’를 물활론적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연선택’이란 말에서 ‘자연’이란 다윈이 말한 ‘신’(조물주: Creator)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서론’의 끝에서 “나는 자연선택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는 변이의 원인에 대해 자연선택 이외에는 설명한 것이 없다. 다만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라마르크적인 후천성 유전설과 같은 제뮬설을 다른 기회에 피력한 적은 있다. 그리고 그는 자연선택에는 어떤 목적이나 방향성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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