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네덜란드의 대기과학자 파울 그뤼천은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와 환경에 영향을 미쳐 지구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두고 '인류세'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다.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지질과학총회에서 인류세 공식 선포를 할 수 있을지, 인류세를 공식적인 지질시대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인류의 활동으로 일어난 생태계의 변화는 이미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마리아 도넬라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류스대 생물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8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인류의 활동으로 지구 환경이 바뀌면서 생물종의 몸 크기도 바뀌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현재로선 유력한 인류세 시작 시기인 1950년대 이후 지구상에 존재하는 4292개 생물종 전반에서 몸집이 작아지는 변화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어류 등 해양생물의 몸집이 크게 줄어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 무분별한 생물 포획 등으로 인해 생물종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선행 연구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미코 하이노 노르웨이 베르겐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2015년 같은 개체군 내에서도 가장 몸집이 큰 동물이 먼저 멸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2018년 펠리사 스미스 미국 뉴멕시코대 생물학과 교수는 생물종 전체로 봤을 때 몸집이 큰 종이 작은 종에 비해 지구상에서 먼저 사라졌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는 대형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우선적으로 사냥됐거나 기후변화로 인해 서식지를 잃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다만 지금까지 연구는 같은 종 내 크기 차이에 집중돼 있어, 환경 변화에 따른 몸집 크기의 변화가 생물종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았다.
도넬라스 교수 연구팀은 생물종 전반에서 신체 크기의 변화가 어떻게 발생했으며 서로 다른 종 사이에 변화의 차이가 있는지 관찰하기 위해 전 세계 다양한 식생에 서식하는 6개 생물분류군에 속하는 생물 4292종의 데이터를 모았다. 어류 1971종, 식물 1201종, 무척추동물 628종, 포유류 66종, 양서류 및 파충류 33종, 해조류 등의 해양 저생생물 393종 등이었다. 전체 비교 개체수는 총 5025개였다.
이들의 몸 크기가 1960년~2020년 사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비교·분석한 결과, 총 5025개 생물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생물종의 평균 신체 크기가 줄었다. 포유류 등 평균 신체 크기가 커진 종도 일부 있었다. 대다수 생물종(96.4%)에서 신체 크기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중 72%는 동종 내 비교한 것보다 다른 종과 비교했을 때 크기 변화가 더 컸다.
특히 바다에 서식하는 어류의 몸집은 일관되게 작아졌다. 다른 생물종의 경우 동종 내에서도 다양한 양상을 보인 반면, 어류의 크기는 동종·이종 어떤 기준으로 비교해도 60년 동안 꾸준히 몸집이 줄었다. 연구팀은 고래·상어 등 대형 어류에 대한 무분별한 포획, 높아진 해수 온도 적응을 위한 신체적 변화, 먹이자원 고갈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이처럼 크기에 따른 선별적인 멸종이 발생하며 어류 생태계가 교란될 경우, 향후 어류를 포함한 다양한 생물종의 전반적인 크기, 유전적 구조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 이어 생물의 크기 변화로 인해 먹이사슬 속에서 어떤 연쇄 효과가 발생하는지 알아볼 계획"이라며 "농작물, 어류 같은 단백질 공급원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간의 영양분 공급에 차질이 생기거나, 특정 생물과 관련된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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