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들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췌장암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췌장암은 초기에 별다른 증상이 없어 '침묵의 암'이라 불린다.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가 힘든 경향이 있다. 기존 진단법보다 간편하고 저렴한 혈액검사가 보편화되면 초기 췌장암 발견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레드 피셔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 교수가 이끄는 공동 연구팀은 췌장암 종양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감지하는 췌장암 혈액검사법 'PAC-MANN'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13일 발표했다.
췌장암 생존율이 다른 암에 비해 낮은 이유는 조기 발견이 어렵기 때문이다. 진단을 받을 즈음에는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가 많다. 미국암학회(ACS)에 따르면 5년 생존율이 전체 암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하며 전이된 후 진단된 경우 생존율은 3% 이하로 떨어진다.
기존 진단법에는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조직검사가 있지만 비용이 높거나 침습적 방식이란 단점이 있어 정기적인 검진에 활용하기 어렵다. 학계에선 비용이 적게 들면서 환자 편의성이 높은 혈액검사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췌장암 진행 시 증가하는 단백질인 'CA 19-9'를 바이오마커로 찾는 데 성공했다. 다만 아직 진단 기술 개발로 이어지진 않았다.
연구팀은 췌장암 종양에서 다량으로 분비되는 단백질 분해효소 프로테아제에 주목했다. 프로테아제는 암세포가 주변 조직을 침범하고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프로테아제 중 하나인 기질 금속 단백질 분해효소(MMP)가 췌장암 환자의 혈액에서 높은 농도로 검출된다는 점을 이용해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혈액 내 프로테아제의 활성 강도를 측정하는 나노 센서를 개발했다. 센서는 자성을 띠는 나노입자와 형광물질이 결합된 펩타이드로 구성됐다. 췌장암 환자의 혈액 샘플에 센서를 투입하면 프로테아제가 펩타이드를 잘라내면서 형광물질이 방출된다. 자성을 가진 나노입자로 센서의 다른 구성물을 제거한 뒤 남아있는 형광물질 신호의 강도를 분석하면 췌장암 여부를 알 수 있다.
356명의 혈액 샘플을 분석한 결과 이 진단 기술은 췌장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을 98%의 특이도(암이 없는 사람을 정확히 판별하는 비율)로 구별했고 암 환자를 73%의 민감도(암 환자를 정확히 찾아내는 비율)로 검출했다. 기존 바이오마커 CA 19-9에 대한 반응까지 결합하면 1기 췌장암 감지율이 85%까지 증가했다.
연구팀은 "프로테아제는 여러 생리적 기능을 수행하는 효소인 만큼 특정한 암 신호를 감지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아주 뚜렷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향후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의료현장에 폭넓게 도입되기 위해선 민감도를 더욱 개선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추가적인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정확성에 대한 추가 검증 또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향후 췌장암이 아닌 다른 암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다.
<참고 자료>
- doi.org/10.1126/scitranslmed.adq3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