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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마저 복제한 존재, 진짜 '나'일 수 있을까

heojohn 2025. 3. 17. 00:07

입력2025.03.15. 오전 8:00

봉준호 신작 '미키 17'이 던진 질문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세계적인 관심 속에 개봉했다. 미래 우주 식민지를 배경으로 인간이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복제인간을 활용하는 세계를 그린다. 식민지 개척을 위해 만든 '소모 가능한(expendable)' 인간 미키는 우주 식민지 '니플하임'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 죽을 때마다 복제돼 다시 태어난다.

그러던 중 열일곱 번째로 재생된 미키가 임무 수행 중 또 죽음의 위기를 겪는다. 그가 사망했다고 오인한 시스템이 열여덟 번째 미키를 복제하면서 예기치 못한 혼란이 시작된다.

● 복제인간, 현실에선 어디까지 가능할까.

미키 17은 복제인간이란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로 인간과 현대 과학의 관계를 탐구한다. 죽어도 또다시 살아난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까. 죽음과 재생을 반복하며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깊이 갈등하는 주인공 미키는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거리를 던진다. 그 출발점은 복제인간이란 기술이 현실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지의 문제다.

미국 국립 인간유전체 연구소(NHGRI)의 정의에 따르면 복제 기술은 과학적 방법으로 세포, 유기체, 또는 DNA 서열 등 생물학적 개체의 동일한 유전적 사본을 만드는 과정이다. 1996년 7월 5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복제 양 돌리가 탄생하면서 복제 기술의 가능성이 처음으로 실현됐다.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연구팀은 성체 양의 유선 세포에서 채취한 DNA를 활용해 난자와 정자가 아닌 체세포 핵치환(SCNTSomatic-Cell Nuclear Transfer)기술로 돌리를 복제했다. 돌리의 성공은 복제 기술이 생물학적 연구와 의학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이후 복제 기술은 소, 돼지, 개 등 다양한 포유류로 적용 범위를 넓히며 빠르게 발전했다. 유전자 편집 연구와 복제 기술이 결합해 희귀 질환 치료, 장기 이식을 위한 맞춤형 동물 연구, 멸종 위기 종 복원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 복제 기술은 어떨까. 인간 복제의 초점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보다 배아 복제(배양) 기술로 난치병 치료에 필요한 세포와 조직을 생성하는 데 맞춰져 있다. 배아 복제는 배아에서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특정 세포로 분화시켜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기술이다.

2001년 미국의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ACT) 연구팀은 체세포 핵치환 기술을 이용해 인간 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복제 배아는 6세포기 단계에서 성장이 멈췄고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2013년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OHSU) 연구팀이 체세포 핵치환 기술로 인간 배아를 복제하고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도 배아 연구는 지속 중이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윤리적 이유로 수정 후 14일까지만 실험실에서 배양하도록 제한한다. 배아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측에선 이 제한조차 불충분하다고 주장하며 배아 연구가 생명의 도구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학적으로도 복제 기술은 아직까지 성공률이 매우 낮고 복제된 개체의 건강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복제된 배아의 발달이 부진하거나 착상 후 성장 과정에서 유전자 변이와 같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또한 복제된 조직이나 세포의 기능이 장기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도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

1996년 7월 5일 영국 로슬린 연구소에서 탄생한 복제 양 돌리. 돌리는 성체 양에서 채취한 DNA를 활용해 체세포 핵치환(SCNT) 기술로 복제된 양이다. 이제 유전자 편집 기술과 결합한 복제 기술은 희귀 질환 치료, 멸종 위기종 복원 등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Barros 제공
● 기억의 'Ctrl+C & Ctrl+V' 디지털화 가능할까

복제인간이란 설정은 다양한 영화와 소설에서 다뤄졌지만 '미키 17'은 원 개체의 기억과 경험까지 복제인간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점이 특별하다. 이 기억의 연속성은 미키를 단순한 생물학적 복제체가 아닌 감정과 의식을 지닌 독립적 존재로 만든다.

기억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여전히 같은 사람일까? 관객은 미키가 죽고 부활할 때마다 이 미키들이 과연 같은 존재인지 아니면 새로운 존재인지 혼란에 빠진다. 동시에 신체 복제를 넘어 기억과 정체성까지 재현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기억을 저장하거나 이어받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알아보려면 먼저 인간 뇌에서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억이란 정보를 신경 신호로 변환(인코딩)해서 뇌의 신경 회로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이 정보를 다시 활성화(검색)하는 과정이다.

뇌는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 뉴런 간의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방식(시냅스 가소성)으로 기억을 저장한다. 이 과정에서 단기 기억은 주로 해마에서 처리되며 학습과 반복을 거쳐 장기 기억으로 변환돼 대뇌 피질에 저장된다. 결
국 기억은 뇌의 특정 영역에서 신경 회로가 변화하며 생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기억이 뇌에서 깜빡이는 전기적 신호에만 의존하지 않고 RNA, 단백질, 유전자 발현 같은 분자적 변화 방식으로 저장, 전이되는 복잡한 기억 메커니즘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201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군소(Aplysia)를 대상으로 RNA가 기억 전달에 관여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한 그룹의 군소에게 전기 자극을 가해 특정 반응(방어 반사 반응)을 학습시킨 뒤 이 그룹의 신경세포에서 RNA를 추출해 학습하지 않은 다른 군소에게 주입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RNA를 주입받은 군소에게서 동일한 반사 반응이 나타났다. 이 연구는 RNA를 조작해 기억의 형성을 바꾸거나 다른 개체로 이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근엔 기억을 디지털 형태로 저장, 전송하려는 기술적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로 뇌의 신경 신호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 외부 기기와 연결하는 기술이다.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신경과학 스타업인 뉴럴링크는 2024년에 신체 마비 환자의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 커서를 조작하도록 돕는 데 성공했다. 이외에도 싱크론과 패러드로믹스 등 여러 기업과 세계 각국의 대학들이 BCI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만약 이 기술이 의식의 전달을 넘어 기억을 증강하거나 전송하는 수준까지 발전한다면 영화 속 기억의 저장과 전이도 실현될 가능성이 열린다.

 SF가 묻는다, 복제인간은 도구인가 존재인가

만약 복제인간이 기억과 경험을 온전히 이어받는다면 과연 그를 원 개체와 동일한 존재로 간주할 수 있을까.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억은 단순한 데이터 이상의 존재다.

기억은 감정, 경험, 환경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물이므로 이를 완벽히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설령 기억이 모두 이전되더라도, 새로운 복제인간이 겪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그 개체의 정체성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은 인간의 육체와 기억이 함께 계속 복제된다는 설정과 이 복제 인간들이 시스템 오류로 동시에 존재한다는 갈등을 결합시켰다.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인간 정체성의 본질과 미래의 복제 기술이 인간 정체성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선천적 유사성을 지닌 일란성 쌍둥이조차 환경에 따라 성격과 행동이 달라지듯이 복제인간 역시 창조자의 의도와 달리 독립적인 선택과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미키 또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과정에서 앞선 미키의 기억을 이어받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경험과 갈등을 쌓아간다.

복제인간의 정체성은 기억의 연속성뿐만 아니라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복제인간의 개별적 경험과 선택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복제인간이 원 개체과 완전히 동일한 존재로 간주되지 않더라도 그들을 최소한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법적 지위, 가족 관계, 사회적 역할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최근 챗GPT 이후 인공지능(AI)이 급속도로 발전하며 AI와 관련된 권리와 그 위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처럼 인간 복제 기술도 기술이 발전할수록 혼란스러운 과정
을 겪어야 할 것이다.

영화 '미키 17'은 복제 기술이란 첨단 과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예리하고 독창적인 관점으로 포착한 불편한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복제인간이 단순한 도구로 머물지 아니면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관객을 스크린 속 세계에 더 깊이 몰입시킨다.

나아가 이 영화는 인간이 과학기술로 생명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윤리적 딜레마까지 직시하며 미래 과학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재정의할지 묻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다움의 본질을 확장하거나 재구성할 힘을 갖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이 힘을 일방적으로 발휘하기는 어렵다. 결국 미래의 복제 기술은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렸다.

이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위협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열 수도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은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방향에 대한 이 질문을 던진 점만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 복제가 아닌 맞춤형 기술을 선택한다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복제 기술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희귀 질환 치료와 손상 조직 재생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할 점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이 꼭 인간 복제여야만 할까. 현재 인간 복제 기술은 윤리적 문제를 떠나서 성공률이 낮고 복제된 개체에서 발달 이상이 자주 발생하는 등의 기술적 문제 탓에 주요 연구 분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엔 복제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Induced Pluripotent Stem Cells)와 생식세포 편집(Germline Editing) 기술이 떠올랐다.

2006년 당시 일본 교토대에서 연구하던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성체 쥐 세포를 배아와 유사한 상태까지 되돌리는 데 성공하면서 iPSC 기술을 개발해냈다. 야마나카 교수는 인간 세포에도 이 기술을 적용해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2010년 설립된 교토대 iPS 연구소(CiRA)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iPSC는 성체 세포를 재프로그래밍해서 배아와 같은 다능성 상태로 전환함으로써 치료 목적에 필요한 모든 유형의 인간 세포를 대량으로 생성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무엇보다 배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명 윤리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iPSC가 주목받고 있다.

iPSC의 또 다른 강점은 환자의 세포를 이용하므로 면역 거부 반응이 없는 맞춤형 치료 조직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기술은 재생 의학, 질병 모델링, 약물 발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며 특정 질병과 관련된 세포를 생성해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하는 과정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생식세포 편집 기술 또한 유전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질병 치료와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기술은 인간의 생식세포(정자, 난자) 또는 수정란 단계에서 DNA를 직접 수정해 유전적 질환을 예방하거나 건강한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다.

특히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기술로 낭포성 섬유증, 헌팅턴병과 같은 단일 유전자 질환은 물론 다유전자 질환에도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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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림 객원기자 lumen0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