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최대 난제 ‘작업계획’
AI 발달로 해결 가능해져
복잡한 돌발상황 쳐해도
스스로 계획 세워 행동
정교한 움직임 구현 위해
델타 액션 러닝으로 교정
‘아파트’ 댄스 동작도 재현

전시장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방위연구계획국(DARPA)이 개최한 ‘로봇챌린지’ 참가작이었다. 고등방위연구계획국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재난 대응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자 로봇을 재난 현장에 활용할 수 있을지를 점검하기 위해 로봇챌린지 행사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는 지구에서 로봇 개발을 가장 잘한다는 연구진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하지만 로봇들의 움직임은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사람들은 공상과학(SF) 영화에 등장하는 날렵한 로봇을 기대했지만 움직임은 거북이처럼 느렸고, 수시로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주변 상황을 인지한 뒤 행동으로 옮기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로봇의 상용화는 요원한 일로만 여겨졌다.

최근 인공지능(AI)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로봇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AI로 로봇의 지능이 빠르게 개선되고 빅테크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에 나서면서 연구실에 머물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메타에서 하드웨어를 총괄하는 앤드루 보스워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회사 내부에 공유한 메모를 통해 “라마의 플랫폼 기능을 극대화하고자 새로운 로보틱스 그룹을 신설했다”며 “소비자용 휴머노이드 연구개발(R&D)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메타가 개발한 AI 라마를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메타는 로봇 개발을 위해 중국의 유니트리 로보틱스, 미국 피겨AI 등의 로봇 기업과 협업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챗GPT를 개발해 AI시대를 연 오픈AI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오픈AI는 미국 당국에 제출한 상표 등록 신청서에 ‘로봇’ 분야를 포함했을 뿐 아니라 팀을 구성해 로봇 개발에 나서고 있다.
로봇 분야에서 오픈AI와 메타의 강점은 AI다. 기존 로봇은 정해진 시나리오 내에서 움직이는 게 최적화된 만큼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이를 분석하고 대처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이 센서, 카메라 등을 통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복잡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작업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자연어처리’처럼 인간의 음성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도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인간과의 소통도 원활해졌다.

김익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AI로봇연구소장은 “피겨AI는 로봇과 챗GPT 연동을 기반으로 로봇이 사람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고, 실시간으로 주변 환경을 이해하고 적응하는 작업을 보여줬다”며 “그동안 로봇에서 난관으로 뽑혔던 ‘작업계획’이 AI를 통해 많은 부분에서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작업계획이란 로봇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작업과 그 순서를 결정하는 과정을 뜻한다.
로봇의 두뇌가 진화하면서 휴머노이드의 상용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BMW그룹은 피겨AI의 로봇 피겨01과 다음 버전인 피겨02를 자동차 생산설비 적용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으며 아마존은 미국 로봇 업체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물류창고에서 테스트하고 있다. 피겨AI는 올해 초 첫 고객에게 로봇을 납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기반으로 AI 시대를 연 엔비디아는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플랫폼 공급에 나서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엔비디아가 올해 초 발표한 플랫폼 ‘코스모스’는 로봇과 같은 물리적인 AI 시스템의 개발을 돕도록 설계됐다.
이 플랫폼은 텍스트, 이미지 등 센서로 확보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리적인 세계를 가상 공간으로 옮겨놓을 수 있다. 이곳에서 로봇은 마치 실제 환경과 마찬가지로 훈련하며 학습한다. 로봇이 실제 환경에서 훈련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데 AI를 통해 이를 해결한 것이다. 이미 피겨AI를 비롯해 뉴라로보틱스, 애자일로봇 등 수많은 로봇 기업이 코스모스를 통해 로봇을 훈련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보스턴다이내믹스도 상용화를 위한 로봇을 지난해 출시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540도 점프, 백플립 등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애물을 피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이족 보행, 점프가 가능하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가 팔굽혀 펴기 하고 있다. [사진 = 보스턴다이내믹스]
휴머노이드 로봇의 움직임도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 카네기멜런대와 엔비디아 공동 연구진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정교한 움직임을 재현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로봇의 움직임이 정교해졌다고 해도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로봇을 시뮬레이션하는 공간과 우리가 사는 실제 물리 환경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델타 액션 러닝’을 이용했다. 이는 로봇의 행동을 기반으로 행동 오차를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즉 실제 환경과 시뮬레이션 환경의 차이를 좁혀 나가면서 로봇을 훈련시킨 셈이다. 이 방식을 휴머노이드 로봇에 적용했더니 로봇은 덩크슛은 물론 수비수를 피해 뒤로 점프하며 슛을 던지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슛동작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골을 넣고 선보이는 세리머니 동작은 물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 ‘아파트’의 댄스 동작도 재현해냈다.
연구진은 “향후 스포츠, 재활 치료,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며 “향후 휴머노이드 로봇의 민첩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김익재 소장은 “데이터가 쌓이면 첨단 AI 모델이 학습을 통해 성능을 향상하는 것처럼 하나의 로봇 플랫폼으로 다양한 작업이 가능해지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이 다양한 생성형 AI 모델을 내놓은 것처럼 다양한 AI 휴머노이드 로봇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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