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후 백신을 맞으면 '슈퍼면역'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백신을 맞고 코로나19에 걸려도 슈퍼면역을 가지게 될 확률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오미크론 변이로 국내에서 확진자 규모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슈퍼면역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 늘면 코로나19가 자연스럽게 풍토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피커두 타페세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분자미생물학 및 면역학 교수팀은 이같은 분석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면역학’에 26일 공개했다. 연구팀은 미국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오리건보건과학대 관계자 104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코로나19 감염 이력이 없는 백신 접종자 42명과 감염 이력이 있는 백신 접종자 31명, 돌파 감염을 경험한 백신 접종자 31명 등 3개의 그룹으로 나눠 혈액 샘플을 채취하고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알파와 베타, 델타 변이에 샘플을 노출시켜 면역 반응을 검사했다.
그 결과 감염 이력이 있고 이후 백신을 맞은 그룹의 중화항체 역가(항체를 희석시켜도 면역 반응을 보이는 농도)는 백신만 접종한 그룹에 비해 10.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알파, 베타, 델타 변이에 대해서는 각각 16.9배, 32.8배, 15.7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런 중화항체 역가는 중화항체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돌파 감염을 경험한 접종자의 경우 백신만 접종한 그룹보다 각각 6배, 11.8배, 17.0배, 8.5배 높았다.
이번 연구는 오미크론이 등장하기 전에 진행돼 오미크론이 분석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미크론에 의한 감염에서도 유사한 면역 증강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경증 반응을 보이다가 곧 슈퍼면역을 얻고 감염 상황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구팀은 앞서 지난해 12월 16일 의학학술지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돌파 감염 후에 높은 수준의 면역반응이 일어난다는 분석을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사람이 백신을 맞아도 뛰어난 면역증강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타페세 교수는 “감염 후 백신을 맞던, 백신을 맞은 후 돌파감염을 겪던, 놀라울 정도로 정말 강력한 면역반응을 얻게 된다”고 했다.
오미크론이 전국에서 확산하면서 돌파감염 사례도 늘고 있다. 24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오미크론 감염자 9860명 중 48.4%에 해당하는 4774명이 2차접종을 마쳤다. 타페세 교수는 “오히려 오미크론의 확산이 코로나19의 풍토병화를 이끌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슈퍼 면역자들이 늘어나며 코로나19에 대한 인간의 면역 범위가 커진다는 예상이다.
일각에선 오미크론 확산으로 감염자가 늘면서 백신을 맞지 않고도 자연면역을 얻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팀은 이미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코로나19 경증이나 무증상 환자도 항체 면역이 지속된다는 분석을, 미국 록펠러대 연구팀은 지난해 10월 네이처에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체내에 형성되는 기억 B세포가 장기 면역력 형성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타페세 교수는 “자연면역 형성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크고 연구실에서 테스트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며 “하지만 백신을 접종받으면 거의 대부분 슈퍼 면역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슈퍼면역을 가진 사람이 늘면 코로나19가 풍토병으로 전환될 수 있다. 오미크론이 델타보다 전염성이 약 2배 강하지만 증상이 경미한 점도 풍토병화 전망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오미크론이 확산된 국가들에서 최근 확진자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 다만 아직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24일(현지시간) 이사회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마지막 변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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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원 기자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