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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미줄에 걸려든 뱀의 처절한 몸부림

heojohn 2022. 9. 14. 05:20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입력 2022.09.14. 00:00
 
뱀독보다 강한 독 지닌 검은과부거미
강력한 소화효소로 살 녹인뒤 빨아들여
암컷이 수컷보다 30배 더 커, 짝짓기 중 잡아먹기도
 

 

검은과부거미 암컷이 자신의 거미줄에 걸려든 물뱀을 막 잡아먹기 직전의 모습. /247wildlife instagram

먹으려는 자의 집념과 먹히지 않으려는 자의 처절함이 빚어내는 야생의 각본없는 드라마는 아프리카 사바나나 아마존 정글 같은 광활한 대자연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닙니다.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의 번화가에서도 짐승끼리의 먹고 먹히는 혈전이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집채만한 야수들이 벌이는 싸움보다 더 섬뜩하고 잔혹한 살육전이 벌어지곤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동영상도 그런 경우예요. 생각지도 못하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맞닥뜨린 가련한 뱀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인스타그램(247wildlife)화면부터 보시죠.

 

뱀은 100% 육식입니다. 그것도 대개 살아있는 동물들을 공략합니다. 싱싱한 피가 흐르고 근육이 펄떡펄떡 뛰는 살아있는 먹잇감만 공략합니다. 간혹 다른 동물이 낳아놓은 알을 훔쳐먹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팔팔한 사냥감을 잡은 뒤 산채로 꾸역꾸역 삼키거나, 그게 아니면 독니로 물어죽이거나 죄어 질식사시킨 뒤 먹죠. 죽여서 먹을 뿐, 죽은 먹잇감을 탐하는 스케빈저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 본성을 가진 뱀이기에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리는 지금의 모습이 가여우면서도 낯설기만 합니다. 자동차 바퀴에 쳐놓은 겹겹의 거미줄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몸부림을 치면 금세 거미줄을 찢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쉽지가 않아보입니다. 보기보다 훨씬 탄탄하고 촘촘하게 쳐진 거미줄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뱀의 몸은 오히려 더욱 배배 꼬이면서 탈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비관적인 상황으로 바뀌어갑니다.

최대 30배까지 차이가 나는 검은과부거미의 암컷과 수컷. /Sean McCann. University og Toronto

옴짝달싹할 정도로 신체가 꼬여버리고 기진맥진한 뱀의 몸뚱아리 위로 거미줄의 주인인 살며시 접근합니다. 죽음의 기운이 도사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예요. 그런데 뱀과 거미 사이의 덩치 차이를 좀 보세요. 뱀이 충분히 한입거리로 해치우고도 넉넉할만큼 몸집 차이가 엄청납니다. 벌레인 사마귀가 파충류·양서류·새를 잡아먹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는 사마귀의 덩치가 먹잇감들을 충분히 공략할만큼 컸기 때문이죠. 이 짧은 동영상은 몸부림치는 뱀을 향해 거미가 접근하는 데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이 거미의 정체가 검은과부거미(black widow spider)인 이상 뱀의 운명이 어떻게 됐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당당한 몸집의 검은과부거미 암컷. 복부의 빨간 무늬가 트레이드마크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홈페이지

고작 3㎝ 정도의 몸집을 가진 이 거미는 덩치는 크지 않지만, 피식자 입장에서는 가혹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식습관 때문에 악마거미로 악명이 자자합니다. 이 뱀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짦은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검은과부거미는 조심스럽게 뱀의 몸뚱아리 옆을 기웃거리다가 적당한 타이밍과 장소를 확보하는 즉시 날카로운 이빨을 뱀의 몸통에 꽂아넣었을 것입니다. 그 이빨에서 뱀의 몸안으로 소화효소액이 주입됐겠죠. 이 소화효소액은 뼈와 비늘로 둘러싸인 뱀의 피하조직과 내장을 흐물흐물하게 녹여서 오레오 쉐이크처럼 부드러운 반죽으로 만들어줬을 거예요. 그럼 거미는 걸쭉한 주스처럼 이를 쪽쪽 빨아먹었겠죠. 조금이라도 자비심이 있는 거미였다면, 우선 독을 주입해 뱀을 절명시키는 최소한의 아량을 베풀었을지도 모릅니다. 검은과부거미가 몸속에 품은 독은 통상적인 뱀독보다 열 다섯배 가량 세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사람이 쏘여도 근육통, 메스꺼움, 횡격막 마비 등의 증상이 닥칠 수 있어요. 어린이나 노약자는 당장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고요. 덩치가 작은 짐승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거미줄을 치고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는 검은과부거미 암컷. /미 미주리주 홈페이지

동영상에 나오는 거미처럼 거미줄을 치고 위풍당당하게 자기 영역을 구축한 검은과부거미는 암컷입니다. 복부의 새빨간 무늬는 이 족속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죠. 뱀을 잡은 대박 횡재를 한 이 암컷 거미도 오늘 흡입한 뱀즙을 보양식 삼아서 건강하고 튼튼한 2세를 생산할 가능성을 조금 더 높였을 것입니다. 검은과부거미의 짝짓기 습성은 사마귀와 호롱아귀를 70대 30의 비율로 섞어놓은 듯 합니다. 우선 짝짓기를 하는 과정, 또는 짝짓기를 전후해서 수컷이 암컷에게 잡아먹혀 말그대로 ‘일심동체’가 돼버릴 가능성이 매우높다는 점, 알을 한 개씩 낳는게 아니라 여러 개가 뭉쳐있는 알주머니 형태로 산란한다는 건 사마귀와 빼닮았습니다. 암컷이 수컷 몸집의 30배가 넘는 엄청난 덩치 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수컷들은 뜨겁고 치열한 번식욕을 보인다는 건 호롱아귀와 유사하죠. 검은과부거미커플의 짝짓기 순간을 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동영상입니다.

 

https://tv.kakao.com/v/431952944

 

 

 

 

한편의 액션영화같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유전자를 이식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수컷이 암컷이 곤히 잠든 밤시간을 틈타 살금살금 접근합니다. 수틀리면 한 방에 식사감으로 전락하고 말지만, 암컷은 곤히 잠들었는지, 귀찮아서인지 별다른 기별을 하지 않습니다. 수컷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목적을 달성하고 달아납니다. 이 수컷에게는 번식의 의지와 살고 싶다는 의지가 적절히 배합돼있었던 것 같습니다.

검은과부거미 수컷이 암컷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한 뒤 목숨을 걸고 짝짓기를 하고 있는 모습. /National Geographic. Nat Geo Wild Youtube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암컷들과 짝짓기 기회를 얻으려는 수컷들의 경쟁이 투쟁 수준으로 격렬하게, 또한 매우 정교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례로 암컷 한마리를 두고 거미줄 근처에 무려 40마리의 수컷들이 몰려와서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이들은 경쟁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모종의 화학적 체계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요. 수컷은 또한 아직 생식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미성숙 암컷 개체에도 짝짓기를 시도하는 정황도 연구팀에 포착됐습니다. 짝짓기 횟수와 가능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행동양태는 아직 연구할게 많다고 합니다. 미적 관점에서 거미줄은 음침하고 폐쇄된 공간의 상징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곳도 결국은 매일마다 먹기위해 죽이고, 살기위해 도망치고, 2세를 낳기 위한 번식이 이뤄지는 치열한 삶의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