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10

“기독교 창조론, 과학적 무신론 반론해야”

허정윤 박사, 22일 온라인 창조론 오픈포럼서 발표 기독일보 장지동 기자(zidgilove@cdaily.co.kr) 허정윤 박사(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알파와오메가창조론연구소)가 지난 22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22회 창조론 오픈포럼에서 ‘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허 박사는 “창조 톨레도트(태초의 지구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지구 생태계 창조 이야기)는 모세가 보고 들은 것을 고대 히브리인들의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라며 “그것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유대교의 교리처럼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첫 날의 창조한 밤과 낮(흑암과 빛) 부분에서 창세기 1장 3절을 보면 처음 창조의 명령(미완료형)으로 ‘빛이 있으라’라는 지..

창세기 1장의 현대적 해석에 의한 ‘알파 창조론’(10)

기독일보 6. 다섯째 날의 창조: 물고기와 새 모세는 창조 다섯째 날 하나님이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יֹּאמֶר אֱלֹהִים יִשְׁרְצוּ הַמַּיִם שֶׁרֶץ נֶפֶשׁ חַיָּה וְעֹוף יְעֹוףֵף עַל־הָאָרֶץ עַל־פְּנֵי רְקִיעַ הַשָּׁמָיִם׃) 하시니, 물에서 번성하는 어류들과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새들이 종류대로 창조되었다고 서술했다(1:20). 기독교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네페쉬 하야’(נֶפֶשׁ חַיָּה: 생물)를 종류별로 창조하셨다는 서술을 의심 없이 믿는다. 창세기에 의하면 ‘네페쉬 하야’에 속하는 것들로는 이 구절에서 말하는 어류와 조류, 그리고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땅의 생물..

기독교 창조론과 과학적 무신론

현대인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학을 부정하는 일부 근본주의 신자들의 그릇된 행태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으므로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은 그동안 틀려서 뒤집힌 이론이 많으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성경과 과학의 역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모세의 토라를 믿었던 고대의 유대교는 이후 몇 개 종파로 나뉘면서 해석과 사용하는 성경이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교를 개혁하면서 탄생한 기독교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이 더 많이 일어났다. 교회가 동로마 정교회와 서로마 가톨릭교회로 분열된 이후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만이 성경해석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폐해는 가톨릭교회에서 면죄부..

<인터뷰> ‘알파 창조론’과 ‘오메가 창조론’

오늘날의 신학동향 - 창조신학 ‘알파 창조론’과 ‘오메가 창조론’ 기사입력 : 2020.08.27 08:03 ▲지금까지 ‘알파창조론’을 연재했는데 알파창조론은 무엇인가? = 알파창조론은 창세기 1장을 범위로 하고, 히브리어 원어를 텍스트로 삼았다. 창세기 1장 안에 알파창조론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고, 나머지는 불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모세의 설명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저자인 모세는 그가 살았던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으로 창조의 계시를 설명했다. 그래서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설명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알파창조론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탈피하여 과학적 사실과 일치하는 기독교 창조론을 제시했다는 ..

넷째 날(2):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의 옛 하늘과 옛 땅

넷째 날 창조 톨레도트에서 1:16-18은 모세가 그의 설명을 덧붙여놓은 것이다.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구절들에서 모세는 낮을 주관하는 큰 광명과 밤을 주관하는 작은 광명은 각각 해와 달이고, 그밖에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기 위해 별도 있었다고 서술했다. 하나님은 시간을 하늘에 있는 광명들이 주관하게 하셨다. 병들은 작은 광명이 주관하는 밤에만 보이게 하셨다. 여기에서 ‘주관하다’는 뜻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멤쉐레트’(לְמֶ..

넷째 날(1): 광명과 궁창의 해석

넷째 날의 창조 톨레도트에 의하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고 명령하셨다(1:14).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땅에서 눈을 들어 ‘하늘의 궁창’에서 광명을 보았다. 여기서 광명을 뜻하는 ‘메오르트’(מְאֹרֹת)는 복수이다. 그러므로 그때 모세는 먼저 큰 광명인 해가 떴다가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저녁이 되었고, 작은 광명인 초승달..

둘째 날(2), ‘라키아’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되다

현대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물은 원자 크기로 나눠질 수 있다.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회전하는 궤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전자궤도가 원자의 껍질이 된다. 전자의 수가 많으면 회전하는 궤도의 층이 여러 겹이 된다. 그런 경우에는 가장 바깥 전자궤도가 그 원자의 껍질이 되다. 그것을 ‘전자껍질’이라고 한다. 전자껍질은 다른 원자의 전자껍질과 결합하면 더 크고 무거운 원자가 되거나, 원자가 여러 개가 모인 분자를 만들 수도 있다. 분자는 표면을 이루는 원자의 가장 바깥 전자껍질이 나눈다. 원자 단위로 물을 나누면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이고, 물은 그것들이 결합된 분자(H₂O)이다. 물을 분자 단위로 나누면, 미세한 물방울의 수증기가 된다. 원자나 수증기 분자들은 기체가 되어 대기를 형성한다...

창세기의 ‘욤’(날)과 ‘라키아’(궁창)의 현대적 해석

Ⅰ. 서론 기독교 성경에는 창조자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였다고 서술하는 창세기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의 하나는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창조론이 현대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놓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갈등하고, 논쟁하고, 심지어는 교회를 떠나기까지 한다. 이 문제의 심층을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창세기의 서술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창조자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들조차 창세기를 읽을 때, 모순적인 서술들에 부딪쳐 이해하고 믿을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창세기를 현대인들이 읽고 올바로 해석하기 위하여 먼저 문헌의 배경부터 알아보자. 창세기는 BC. 약 ..

하나님의 창조를 서술하는 동사

한글성경으로 창세기를 읽으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바라’(בָּרָא: 창조하다)라는 한 가지 창조 명령만으로 진행되었다고 오해하기 쉽다. 실제로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물에 따라 창조 명령에 각기 다른 동사를 사용하셨다. ‘바라’는 ①조각하다 ②창조(생산)하다 ③낳다 ④먹다 등의 다의적 의미를 포괄하고 있으므로 개별적 창조 명령에 적합하지 않은 말이다. ‘바라’는 모세가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쓴 말이다. 하나님의 각 창조 사건에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 구절 뒤에 모세가 추가적으로 설명하는 구절이 접속사(וְ) + 동사로 이어져 나온다. 그리고 찬양하는 후렴구와 창조 한글성경으로 창세기를 읽으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바라’(ב..

창세기 언어 '테홈'의 번역과 의미의 변화(1)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는 언어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창세기의 언어는 창조 이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진행되면서 의미가 계속 변했다. 의미의 변화는 사물의 역할이나 위치 또는 질량 등이 바뀌는 것이므로 개념도 바뀌게 한다. 그 변화를 알면 처음에 몰랐던 의미가 새로 드러나기도 한다. 번역 성경에서 언어의 변화를 알려면 원어 성경을 동시에 살펴봐야 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조금 복잡하다. 게다가 번역 성경에서는 언어를 오역한 것도 있다. 번역 성경을 읽으면서 언어의 오역과 의미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 선입견에 의해서 잘못된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다. 창세기를 읽으면, 누구에게나 숱한 의문이 일어난다. 의문 없이 창세기를 읽는 사람은 천재 아니면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