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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이며 모습 숨기던 블랙홀, 우리 '코앞'에서 찾았다

heojohn 2020. 5. 10. 23:11

이정호 기자 입력 2020.05.10. 21:55 댓글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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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근 발견된 1000광년 거리의 블랙홀(빨간색 궤적)과 주변의 두 별(녹색 궤적)이 중력의 균형을 이루며 회전하고 있는 개념도. 연구진은 두 별의 이상한 움직임을 정밀 분석해 흔적 없이 숨어 있던 블랙홀을 발견했다. ESO 제공

 

2014년 개봉한 미국 영화 <인터스텔라> 후반부의 절정은 주인공 쿠퍼(매튜 매커너히)가 탄 우주선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어떤 돌발 상황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어둠 속으로 밀려 들어가던 쿠퍼가 자신이 지구에서 떠나기 직전의 시간과 공간으로 연결되는 장면에선 탄성이 절로 터진다. 지구에 딸을 두고 우주선을 탄 것을 후회하던 쿠퍼는 블랙홀 속 공간에서 ‘스테이(STAY·지구를 떠나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수십년 전 딸의 방으로 힘겹게 전달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었다.

 

유럽남방천문대 소속 연구진

1000광년 거리서 블랙홀 발견

우리 은하의 크기를 감안하면

‘뒷마당’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 장면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블랙홀이 말 그대로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블랙홀에서라면 시공간을 넘나드는 일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블랙홀은 분명 존재하지만, 현실 속에선 실존을 가늠하기 어려운 곳이다.

최근 과학계에서 이런 블랙홀의 정체성을 뒤집는 발견이 나왔다. 우리 ‘코앞’에서 블랙홀을 찾은 것이다. 유럽남방천문대(ESO)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저널’ 최신호에 별자리 ‘망원경 자리’ 인근에서 지구에서 1000광년 떨어진 블랙홀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 중 지구에서 가장 가깝고 블랙홀 주변을 도는 별을 맨눈으로 볼 수도 있는 거리다.

1초에 약 30만㎞를 가는 빛의 속도로 1000년을 달려야 하는 ‘1000광년’이라는 거리를 ‘코앞’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문용재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는 “우리 은하의 지름인 10만광년보다 100분의 1이나 짧은 거리에 블랙홀이 있다는 얘기”라며 “천문학적 개념으로는 가까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 은하 중심의 블랙홀은 지구에서 2만5000광년 거리에 있고, 지난해 포착된 블랙홀은 5500만광년이나 떨어진 다른 은하에 있다. 이번에 확인된 새 블랙홀과 비교하면 아득히 먼 곳이다. 새 블랙홀 발견을 이끈 유럽남방천문대 소속 토마스 리비니우스 박사는 미국 매체 ‘디 애틀랜틱’에 “우리 은하의 크기를 감안하면 이번 블랙홀은 ‘뒷마당’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특이하게 X선 방출하지 않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지만

쌍성계의 궤도운동 관찰 중에

미지의 중력 발견해 존재 확신

이렇게 코앞에 있던 블랙홀을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블랙홀 특유의 ‘소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블랙홀에 있어 소음은 X선 방출을 뜻한다. 블랙홀은 주변의 가스를 삼키면서 뱅글뱅글 회전할 때 X선을 표출하는데, 이것이 블랙홀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알림음’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별이 눈으로 보이는 가시광선을 뿜어내 존재를 알린다면 블랙홀에선 X선이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에선 특이하게도 X선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블랙홀을 찾았을까. 유럽남방천문대 연구진은 ‘HR6819’라는 쌍성계를 관찰하다 별 두 개의 중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움직임을 발견했다. 칠레에 있는 ‘라 시자’ 관측소의 지름 2.2m짜리 망원경 속에서 두 개의 별은 ‘제3의 중력’이 있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궤도 운동을 했다. 두 씨름 선수가 거칠게 힘을 겨루고 있는데 그 곁에 서 있던 ‘투명인간’이 두 사람의 허리를 낚아채 비틀거리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두 별 간의 움직임을 정밀 계산한 연구진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강력한 중력을 발견하고 블랙홀의 존재를 확신한 것이다. 리비니우스 박사는 “태양의 4배 이상 질량을 가진, 보이지 않는 물체를 발견했다”며 “그럴 만한 천체는 블랙홀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해 또 다른 천체의 존재를 추측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천문학 연구 방식이다. 중력의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다. 1781년 발견된 천왕성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행성이 있다는 점을 유럽 과학계가 예측했고, 결국 1846년 해왕성 관측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구에서 1000광년 떨어진 우주에 있는 블랙홀을 발견한 칠레 소재 ‘라 시자’ 관측소의 MPG/ESO 2.2m 망원경. ESO 제공

 

인류에 위협될 만한 거리는 아냐

‘조용한 블랙홀’ 발견을 계기로

블랙홀 찾는 방법 다변화될 듯

천문학계가 지금까지 은하계에서 발견한 블랙홀은 20여개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억개의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조용한 블랙홀’은 블랙홀을 찾아내는 방법을 다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혹시 새로 발견된 블랙홀이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위험하지는 않을까. 리비니우스 박사는 ‘더 애틀랜틱’에 “인류에게 위협을 가할 만큼 가까이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깝다고는 해도 태양계나 지구를 빨아들일 만한 거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블랙홀 주변을 정상적으로 회전 중인 두 개의 별이 증거이다. 공상과학영화나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블랙홀에 의해 재앙이 일어나는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