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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 창조론(연재 8회): 여섯째 날의 창조(2)

heojohn 2024. 3. 16. 07:46

여섯째 날의 창조(2)

 

2), ‘아담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

 

모세는 하나님이 창조의 마지막에 사람(아담)을 만드시는 모습을 매우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은 아담의 창조에 대하여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יֹּאמֶר אֱלֹהִים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וְיִ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고 선포하셨다(1:26).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이처럼 특별하게 땅과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목적과 권한을 주시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창조 톨레도트에서 사람의 창조목적에 관한 서술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아는 지식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알아야 할 부분이다.

 

이 구절에서 한글성경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번역한 것에서도 보듯이, 하나님은 자신에 대해서 1인칭 복수 대명사로 표현하시고, ‘나아세’(נַעֲשֶׂה: ‘우리가...만들고’)라는 복수 동사를 쓰셨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표현하는 복수 명사 엘로힘은 성경에서 단수 동사를 써서 단수로 표현한. 기독교에서 이 구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를 직역해보면,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들의 형상과 우리들의 모양대로 사람(단수)을 만든다. 그리고 그들(사람의 복수)이 땅과 생물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 구절의 문법적 구조를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나아세동사의 목적어 아담’(사람)은 뒤에 나오는 웨이레뚜’(וְיִרְדּו: 다스린다) 복수 동사의 주어가 된다. 다시 말하자면 만든다의 목적어인 아담은 단수인데, 하나님은 단수 아담을 주어로 복수 동사 웨이레뚜’(다스린다)를 쓰셨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해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וַיִּבְרָא אֱלֹהִים אֶת־הָאָדָם בְּצַלְמֹו בְּצֶלֶם אֱלֹהִים בָּרָא אֹתֹו זָכָר וּנְקֵבָה)라고 서술했다(1:27).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면서 단수 명사 첼렘’(צֶלֶם: 형상)을 반복 사용하여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모세는 오토’(אֹתֹו)라는 3인칭 단수 대명사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그(아담)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말한 뒤에[ 3인칭 복수대명사 오탐’(אֹתָם)을 써서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셨다는 말을 덧붙여 놓았다(한글 번역에서는 생략되었음). 그렇다면 그 의미는 단수의 오토를 남자와 여자로 나눠서 복수의 오탐으로 창조하셨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이 1:26에서 웨이레뚜동사를 복수형으로 말씀하신 이유와 그 말씀에 대한 구조적 의문은 아담이 남자와 여자의 복수로 창조됨으로써 해결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분 하나님이 삼위일체로서 동일본질(consubstanialis)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삼위일체의 경륜적 일치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성자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 아들도 그와 같이행한다고 말씀하셨다(5:19).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는 어떤 불일치도 없었다고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인은 창조 톨레도트(1:27)에서 삼위 하나님 중에서 인간을 직접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이 어느 분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해 기독교적인 관점은 요한의 해석에 따르는 것이다. 요한에 의하면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1:3). 요한에 의하면 그분은 창조 톨레도트의 첫 날에 빛으로 이 땅에 임재하셔서 창조를 실행하셨다. 창조주에 대해 요한과 다른 해석은 기독교적인 창조론이 아니다. 그런 해석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과 유대교적 창조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손들

 

모세에 의하면 하나님이 창조계획에서 선포하신 아담과 실제 창조된 아담은 다르게 나타난다. 그런 사실은 1:26에서 사람의 창조계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들의 형상과 우리들의 모양대로라고 하신 말씀과 1:27에서 모세가 창조된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서술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1:27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는 서술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모양대로는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창조된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바뀌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직접 창조하신 하나님은 키데무테누(모양대로)’를 반영하지 아니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뻬첼레모)만 반영하셨다. 대신에 아담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창조하셨다. 이런 서술이 단순한 모세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히브리어 사전과 성경의 용례를 보면, ‘형상’(첼렘)은 겉모양 또는 우상 등을, ‘모양’(데무트)은 원형을 닮은 것들을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며 우주만물에 대해 명령하시는 분이시고, 형상은 대개 남성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에게 여성적인 형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세계에 여성의 형상은 아예 없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은 왜 사람에게 그의 데무트를 주시지 않고, 대신에 여자를 주셨는가? 사람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결정에 속하는 일이다. 결국 사람의 세계에 하나님이 데무트대신에 여자를 만들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세계와 사람 세계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데무트의 결여는 하나님에 의하여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창조된 사람의 정체성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람의 정체성 문제는 앞으로 신학 연구에서 주제로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모세에 의하면 아담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이 온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계획하셨다. 여기서 3인칭 복수 대명사 그들은 처음 창조된 남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포괄하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은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알고 믿는 자들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그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신 사람과 그 자손들의 역사적 행적에서 발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현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각종 생물과 사람에게는 그들의 DNA에 각각의 생명정보가 들어있고, 그 생명정보가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정보에 의하여 창조된 사라이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가장 큰 죄악이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 앞에 사람이 아니라 동물일 뿐이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아담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수행하는 것은 사람에게 필연으로 따르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의 모든 개체마다 DNA에 담긴 생명정보가 다르고, 그것이 그대로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 상식이 되어 있는 시대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는 물론, 그 자손들도 데무트가 결여된 DNA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르지 않는 것은 죄악이 될 수밖에 없다. 모세는 하나님이 인간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과 죄악이 관영함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서술했다(6:5). 현대사회에서 하나님과 그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 추종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무시하고, 죄악에 빠지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모세가 1:27에서 하나님이 처음 계획과는 달리 데무트를 빼고, ‘첼렘만으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나눠 창조하셨다고 서술한 것을 읽으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의 DNA데무트의 결여가 죄악의 본성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나 그의 DNA데무트가 결여된 탓으로 죄악에 이끌리는 본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죄악의 경향성을 극복하기를 바라고 계신 것이 아닐까?

 

아담의 자손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악은 그들을 이끌어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과 같이 살게 하려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오히려 정죄하고 살해한 것이다. 그들의 자손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는 과학적 무신론이 등장했고, 현대사회는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현대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 기독교인이 그런 사회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맞게 되돌리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태만한 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외식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