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 연구/기독교 역사 이야기

"예수" 외치며 참수의 칼날 받은 한국 첫 순교자들

heojohn 2021. 9. 2. 07:58

이지선 기자 입력 2021. 09. 02. 05:30 댓글 191

 

양반가문 자손들..고종사촌 정약용 형제로부터 천주교 알게돼
어머니 유언따라 '천주교식 장례'..조정에서 체포령 내려 전주서 집행

전북 완주 초남이성지 바우배기의 순교자 묘지(천주교 전주교구 제공)2021.9.1/© 뉴스1

 

(전주=뉴스1) 이지선 기자 =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복자 윤지충과 권상연, 이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윤지헌의 유해가 200여년만에 발견됐다. 세 사람 모두가 조선시대 양반 가문 출신의 친·인척 관계인 사실이 함께 밝혀지면서, 험난했던 이들의 신앙활동이 재조명되고 있다.

1일 천주교 전주교구에 따르면 지난 3월11일 전북 완주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일대 묘역을 성역화하는 작업 중 복자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의 유해가 발견됐다.

 

해당 지역은 전라도 지역 첫 천주교 신자로 알려진 유항검 소유의 땅이었다. '호남의 사도'라고도 불리는 유항검은 윤지충·지헌 형제와는 이종사촌, 권상연과는 내외종간 사촌이었다.

1759년 전라도 진산(현 충남 금산지역)에서 태어난 윤지충 바오로는 1784년 고종사촌인 정약용 형제의 가르침으로 천주교를 알게됐다.

이후 3년 간 교회 서적 등을 통해 교리를 공부한 뒤 인척인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어머니와 동생 윤지헌, 이종사촌 권상연에게도 교리를 가르쳐 신앙을 받아들이게 했다. 또 유항검과 자주 왕래하면서 널리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던 1790년 중국 베이징에 있던 구베아 선교사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렸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이 가르침을 따르고자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에 태웠다. 또 이듬해 윤지충·지헌 형제의 어머니가 사망하자 어머니 유언에 따라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

당시 권상연은 '신주와 같은 나뭇조각을 공경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이를 금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기기보다는 차라리 형벌과 죽음을 택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 완주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순교자 묘지 위치(천주교 전주교구 제공)2021.9.1/© 뉴스1

 

당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일화가 조정에까지 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지충과 권상연을 체포해오라'는 명령이 진산 군수에게 내려왔다. 체포령 소식을 들은 이들은 피신했지만, 그들 대신 숙부를 감금하자 즉시 자수했다.

진산군수는 그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권유하며 달랬다.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전주의 전라감영으로 옮겨졌다. 전라감사는 이들을 고문하며 신자들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고문 중에도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며 제사의 불합리함을 설명했고, 끝내 사형이 결정됐다. 불효·불충·악덕 죄로 군문효수형(목을 베고 군문에 매달던 형벌)이 언도된 이들은 1791년 12월8일 전주 남문밖에서 참수됐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칼날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은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10년 뒤인 1801년 10월24일 신유박해 때 능지처참형을 받고 같은 장소에서 순교했다. 순교한 뒤 고산에 갇혀있던 아내와 가족들은 모두 노비로 유배됐다.

이후 초남이성지 바우배기가 순교자들의 묘소라는 이야기는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던 2005년 초남이성지 초대 담당 김환철 신부가 묘역을 정리해 십자가와 표지판을 세우고 관리해왔다. 이후 지난 3월11일 초남이성지 담당 김성봉 신부가 복자 윤지헌의 묘소를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다.

 

전주교구 관계자는 "이들 유해가 발견된 곳은 유항검 복자의 가족묘가 원래 위치했던 곳"이라며 "중한 죄를 지은 자로 간주된 이들의 시신을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의 땅에 매장한 것은 커다란 사랑과 형제애의 표출이라 할 수 있는데, 가까운 혈육이기 이전에 신앙에 있어서 이들이 그야말로 동지요, 형제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항검·관검 형제는 혈육의 정을 뛰어넘어 누구보다 첫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모셨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주교들과의 만남에서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을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이라고 부른 바 있다.

letswin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