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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잊기 위해 무심코 빠진 유혹… “약물로 느낀 쾌락은 허상”

heojohn 2022. 6. 18. 01:03

[한국형 절망사 보고서]② 

마약 사범 10년 새 두 배… 연예인·재벌 전유물 아냐
약물 사망자 절반은 여성… 남녀노소 모두의 문제
개인의 문제 아닌 사회 시스템 실패로 보고 접근해야

입력 2022.06.17 06:00
 
 
 
 
 

‘절망사(deaths of despair)’는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 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이 만든 표현으로 알코올 중독, 약물 중독, 자살이 원인이 된 죽음을 포함한다. 현대 사회는 촘촘한 사회복지 시스템과 의료기술의 발전 덕분에 기대 수명이 증가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중년 백인의 사망률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를 연구한 디턴이 절망사가 원인이라는 걸 찾아내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절망사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비즈는 한국 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은 절망사의 현실을 진단하고, 해결책과 대안을 고민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A씨는 전문직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내가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A씨는 불안감을 잊기 위해 미국 유학생 친구가 권유한 대마초에 불을 붙였다. 대마초는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다는 말을 믿었다. 그게 2020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불과 1년 뒤 자신이 필로폰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A씨는 그 이후 힘들고 슬플 때면 대마초를 찾았다. A씨가 수사당국을 피해서 언제까지 약물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수사당국에 적발되면서 형사 처벌을 받게 됐다. 학교 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금전적인 문제도 생겼다. 처음 대마초를 피울 때보다 A씨의 현실은 더 암울해졌다. 그는 더 큰 쾌락을 찾아 나섰다. 엑스터시, 코카인, 필로폰을 차례로 투약했다. 투약량도 점점 늘어 하루 0.3그램(g)까지 했다.

A씨의 현실은 달라졌을까. 달라졌다면 달라졌다. 괴로움을 잊게 해줄 것 같던 약물은 ‘현실’을 ‘지옥’으로 바꿔버렸다. 약물로 인한 쾌락과 도취감은 짧았지만, 발한·오한·정신증·신경증 등 부작용과 ‘죽어버려라’ 같은 환청이 A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약물 중독 재활센터 경기 다르크에서 입소자들이 성경을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는 QT(Quiet Time) 활동을 하고 있다./정재훤 기자

경기 남양주의 경기 다르크(DARC)에서 A씨를 만났다. 경기 다르크는 2019년 개소한 약물·마약 중독 재활 치유센터다. 임상현 센터장이 자신과 같은 약물 중독자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만든 곳이다. 지금은 12명의 중독자가 함께 모여 생활하면서 마약·약물의 유혹을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임 센터장과 입소자 여럿이 함께 모여 성경을 하루에 한 장씩 읽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20·30대 남성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경기 다르크를 찾아오기 전 약물이라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절망의 낭떠러지 끝까지 밀려났던 이들이다. 지금은 경기 다르크와 임 센터장을 만나 조금씩 새로운 삶의 희망을 키워나가고 있다.

A씨는 어떻게 이곳까지 온 걸까.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잘 안되면서 스스로 소중한 인간이라고 여기지 못했던 것 같다”며 “비관적 상황을 다시 약물로 해소하면서 악순환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약물에 의한 쾌락은 허상”이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나에게 절망하고 비관하고 좌절하고 결국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게 된다”고 덧붙였다.

경기 다르크에서 만난 이동재(23)씨도 A씨처럼 인생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약물을 시작했다. 역시나 중독성이 약하다는 대마초를 처음 접했지만 결국 필로폰까지 투약하게 됐다. 그는 “누구보다 멋있고 잘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깡패도 해보고 알바도 했지만 성취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계속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욕심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스무살 때부터 태국 여성들을 상대하는 호스트바에서 일했던 이씨는 손님으로부터 대마초를 배웠고, 1년 만에 하루 0.3~0.5g의 필로폰을 투약하는 중독자가 됐다. 몸무게는 48kg까지 줄었고, 어떤 일을 해도 만족감을 얻을 수 없게 됐다.

삶이 피폐해지자 이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약물의 아이러니를 이렇게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할 용기를 얻기 위해 약을 더 해야지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핑계로 약을 더 하고 싶어서 죽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약물 중독이 남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2020년 국내 약물 사망자는 365명이었는데, 남성이 190명, 여성이 175명이었다.

걸그룹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온 B(28)씨는 꿈이 좌절되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여러 가지 일을 시도했으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남자친구를 만났다. 부모와 친밀한 기억이 없었던 B씨는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B씨는 결혼을 했고, 곧 아이가 생겼다.

그러나 결혼을 한 뒤 다정했던 남자친구가 돌변했다. 임신한 B씨를 옆에 두고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다. 참다 못한 B씨는 남자친구에게 화를 냈다. 폭행이 시작됐다. 남자친구는 임신한 B씨의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다음 날 B씨는 집을 나왔고, 아이를 지웠다.

이후 B씨의 우울증은 심해졌다.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한번은 유서까지 쓰고 술을 마신 채 7층 난간까지 올라갔다. B씨는 “이제 죽어야겠다고 밑을 봤는데, 너무 무서웠다. 죽을 용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보다 못한 B씨의 친구는 B씨를 불러냈다. B씨는 그날 친구가 주사기를 꽂는 것을 보고 친구의 권유에 함께 투약했다. B씨는 “생전 느끼지 못한 행복이었다. 현실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B씨는 필로폰에 중독됐다. 행복은 얼마 안 가서 환각과 환청으로 변했다.

그래픽=손민균

A씨와 이씨, 그리고 B씨는 처음부터 약물 중독자였던 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평범한 20대들이었다.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이 있었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거나 외면하기 위해 약물을 시작했다. 그러나 약물로 인한 부작용은 삶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괴로워진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쾌락을 줄 수 있는 약물을 찾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사회 전 계층으로 확산된 약물 중독… 가장 큰 요인은 ‘정신적 부담’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한국의 절망사 연구: 원인 분석과 대안 제시’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에는 약물 사용자 대다수가 연예인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등 특정 계층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사회 전 계층으로 확산됐다. 더 이상 마약은 영화나 드라마 속 재벌, 연예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울증과 좌절감에 시달리는 대학생과 직장인, 주부를 파고들고 있다.

한국마약운동퇴치본부가 대검찰청을 통해 받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마약류 단속 인원은 총 1113명으로, 1년 전보다 3.4% 증가했다. 지난해 단속된 마약류사범은 총 1만6153명이다. 2010년 단속된 7212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이제는 매달 1000명 이상이 마약을 하다가 적발되고 있는 셈이다.

약물 중독이 사회 전 계층에 퍼져있으며 그 수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1년 단속된 마약사범을 19가지 직업군으로 분류한 결과, ‘무직’이 5492명으로 전체의 34%를 차지했다. 회사원은 1010명으로 6.3%, 학생은 494명으로 3.1%를 기록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마약 사범 중 회사원은 4.5%인 437명, 학생은 113명으로 1.2%에 그쳤다.

그래픽=손민균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마약이 빠르게 전파되는 이유를 일상생활 속 스트레스와 우울감 등 정신적 긴장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 40년 동안 약물 중독에 빠졌던 임상현 센터장(70)은 “약물을 끊으려고 하면 끊지 못한다”며 “약은 참을 수 있지만 끊기는 어렵다. 끊는 것과 참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왜 약물을 할 수밖에 없었는 지를 찾아내 연결고리를 끊고 결과적으로 삶과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며 “약을 하다 보면 약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 약물 중독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

약물 중독과 그에 따른 절망사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개인의 연약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좌절과 절망이 반복되고,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사회 구조의 탓이 크다.

경기 다르크에서 만난 C(35)씨는 고졸이었지만 요리·소믈리에·미용 등 각종 자격증을 따고 건설 현장부터 호텔까지 다니며 쉬지 않고 일했다. 우연히 투자한 부동산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큰 돈을 벌기도 했다. C씨는 나중에 나만의 호텔을 짓자는 꿈을 꾸면서 20대를 버텼다.

이런 C씨의 발목을 잡은 건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서 시작된 우울증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성공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C씨는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커졌다. C씨는 우울증을 잊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댔다. 마약은 C씨의 사업과 일상에 나쁜 영향을 줬다. 결국 C씨가 진행하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어렵게 쌓아올린 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C씨는 수차례에 걸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한국마약퇴치운동봉부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D(26)씨는 외로움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약물을 찾았다. 갓 스무살이 됐던 D씨는 클럽에서 만난 한 남성의 권유에 대마초를 피우게 됐고, 곧 LSD, 필로폰, 펜타닐까지 손을 댔다. D씨는 남자친구와 싸울 때마다 약물을 찾았다. 그는 “약물을 하는 애인,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 함께 투약하며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냥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D씨는 어린 시절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와 떨어져 삼촌, 사촌언니와 함께 살았다. D씨는 삼촌에 대해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D씨의 삼촌은 6살이었던 그를 집에 방치한 채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역시 약물 중독자였다. 함께 생활한 사촌언니는 어린 D씨가 친구들과 노는데 방해가 된다며 집에서 내쫓았고, 버스에 태워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

D씨는 “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어린 시절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랐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외로움을 약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C씨와 D씨 모두 유년기의 학대 경험이 약물 중독으로 이어진 사례다. 적절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두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릴 일도, 약물을 찾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25년간 마약 중독자로 살았고, 그 뒤 20년을 중독 회복자로 일한 박영덕(59)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 실장은 한국의 마약 문제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중독자들을 범죄자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을 사회와 격리하는 것이 답이 아니고, 약물에 중독되게 된 과정을 세세하게 파악해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회가 이들을 중독자로 만들었다면 이들을 약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다.

박 실장은 약물에 중독되는 과정이 곧 ‘절망사로 향하는 지름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표현했다. 개인마다 마약을 접하는 계기는 다르지만, 그 이면에는 어렸을 때 불우했던 가정사, 꿈을 이루지 못한 절망감에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약을 계속 찾게 된다는 것이다. 약물의 위험을 느끼고 뒤늦게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약물 중독에 뒤따라오는 각종 정신질환과 자기 혐오는 다시 마약에 손을 대게 한다. 박 실장은 “절망한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마약에 기대어 희망을 찾는 행위는 다시 절망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