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조론 연구 자료실

자연에는 두 종류의 입자가 있다

heojohn 2022. 3. 4. 23:43

[사이언스N사피엔스]

2022.03.03 14:00

보존과 페르미온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같은 입자라도 번호를 붙여 모든 입자의 궤적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4구 당구에서는 빨간 공이 둘, 흰 공과 노란 공이 각각 하나씩 있다. 흰 공이나 노란 공으로 빨간 공을 모두 맞히는 것이 4구 당구의 기본 규칙이다. 여기서 빨간 공 둘은 ‘같은 공’이라 할 수 있다. 크기와 질량과 색깔, 내부 구성물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정의하는 ‘같은 입자’도 비슷하다.

 

두 입자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내재적인 물성이 같으면 같은 입자이다. 예컨대 지구에 있는 전자와 달에 있는 전자는 모두 같은 입자이다. 이들 전자의 질량과 전하량, 스핀이 모두 같기 때문이다. 양성자와 전자는 같은 입자가 아니다.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보다 1800배 정도 무겁고 전기전하의 부호도 다르기 때문이다. 뮤온이라는 입자는 전자와 모든 성질이 똑같지만 단지 질량만 200배 정도 더 무겁다. 반전자라는 입자는 전자와 모든 성질이 똑같지만 단지 전기전하만 반대이다. 따라서 전자와 뮤온은 다른 입자이고, 전자와 반전자도 다른 입자이다.

 

당구를 치다 보면 가끔 두 개의 빨간 공이 한꺼번에 너무 빨리 튕겨나가서 어느 공이 어느 공인지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사실 이 구분을 쉽게 하려고 노란 공과 흰 공은 다른 색을 쓴다. 그러나 우리가 빨간 공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우리의 눈이 그다지 민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카메라로 촬영해서 천천히 돌려보면 어느 공이 어느 공인지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빨간 색의 ‘같은 공’ 둘은 ‘구별할 수 있다.’ 고전역학의 세계에서는 같은 입자라도 번호를 붙여 모든 입자의 궤적을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구별이 가능하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입자를 ‘구별할 수 없다.’ 이는 인간 능력이나 장비의 한계라기보다 우리 우주의 본성이다. 신이 있다 하더라도 같은 두 입자를 구별할 수 없다. 양자역학에서는 전자의 위치가 확률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한 입자의 궤적을 끝까지 무한의 정밀도로 추적한다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구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고전역학에서도 경우의 수를 따질 때 중요한 요소이다. 예컨대 네 개의 공에서 두 개를 선택해 구별해서 줄을 세우는 경우의 수는 4x3=12이지만 네 개의 공에서 순서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두 개를 고르는 경우의 수는 6가지로 줄어든다. 이는 순열과 조합의 차이이다.


양자역학에서 같은 입자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결과로 이어진다. 같은 입자 둘로 이루어진 계를 기술하는 파동함수를 생각해 보자. 간단한 예를 들자면 하나의 전자가 1번 상태에 있고 다른 전자가 2번 상태에 있다. 여기서 두 입자를 뒤바꾸는 작업을 수행해 보자. 만약 입자를 바꾸는 작업을 두 번 수행하면 우리는 당연히 원래의 파동함수와 정확히 똑같은 파동함수를 얻을 것이다. 이는 입자를 뒤바꾸는 작업을 한 번 수행한 결과를 제곱했을 때 1이 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같은 두 입자를 바꾸면 전체 파동함수는 원래 파동함수와 부호가 같거나 (+1) 반대(-1)가 된다. 부호가 같을 때를 대칭적, 다를 때를 반대칭적이라 하며, 같은 두 입자를 바꾸었을 때 파동함수가 대칭적인 입자를 '보존'(boson), 반대칭적인 입자를 '페르미온'(fermion)이라 한다.


페르미온의 이름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에서 따왔다. 엔리코 페르미(1901-1954). 위키미디어 제공

같은 두 입자를 바꾸었을 때 반대칭의 결과를 내는 페르미온은 놀라운 성질을 갖고 있다. 전자는 대표적인 페르미온이다. 만약 두 개의 전자가 같은 상태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두 입자를 바꾸는 것이 의미가 없다. 그러나 어쨌든 페르미온은 두 입자를 뒤바꾸면 부호가 바뀐다.

 

따라서 원래의 파동함수가 음의 파동함수와 같게 된다. 따라서 이 파동함수는 0이 될 수밖에 없다. 파동함수가 0이라는 뜻은 이런 상태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전자 둘이 같은 상태에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까 페르미온은 배타원리를 만족하는 입자들이다. 반면 보존은 같은 상태에 여러 개의 입자가 동시에 있을 수 있다. 두 입자를 뒤바꾸어도 파동함수가 똑같기 때문이다. 

 

페르미온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위대한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에서 따왔다. 페르미는 독일 괴팅겐을 방문하고 있던 1924년 양자역학에서 같은 두 입자의 문제를 연구했다.

 

1925년 파울리의 배타원리가 발표되자 이듬해인 1926년에 배타원리를 따르는 입자들의 통계분포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얼마 뒤 영국의 폴 디랙도 독립적으로 보다 일반적인 논의를 통해 페르미와 같은 결론에 이른다.

파울리의 배타원. 원자 속 전자들은 스핀이 서로 다른 경우에만 같은 에너지 상태(한 집)에 있을 수 있다. 과학동아DB

디랙은 두 입자를 바꾸었을 때 파동함수의 반대칭성으로 배타원리를 만족하는 전자를 설명했으며 대칭적인 파동함수로는 배타원리를 만족하는 전자를 설명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이들의 이름을 따서 파동함수가 반대칭적이고 배타원리를 따르는 입자들의 통계를 페르미-디랙 통계라 부른다. 페르미온은 '페르미-디랙 통계'를 따른다.


파동함수가 대칭적인 보존은 인도의 물리학자 사티엔드라 나트 보즈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즈는 1924년 플랑크의 복사법칙을 유도하는 새로운 계산법을 발견했는데 그 논문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보즈의 결과에 크게 감명 받아 논문을 대신 투고했으며 자신도 그와 관련된 논문을 곧바로 작성했다. 보즈는 빛, 즉 광자가 서로 구별할 수 없는 입자들로서 하나의 상태에 여럿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이런 성질을 만족하는 분포를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라 부른다. 보존은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른다. 보존은 한 상태에 수많은 입자가 함께 존재할 수 있으므로 모든 입자가 단 하나의 상태로 행동하는 아주 특이한 상태를 보일 수 있다. 이를 '보즈-아인슈타인 응축'이라 한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자연에는 두 종류의 입자가 있다. 하나는 그 파동함수가 반대칭적이며 '페르미-디랙 통계'를 만족하는 페르미온이고 다른 하나는 그 파동함수가 대칭적이며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는 보존이다. 페르미온은 파울리의 배타원리를 따른다. 한편, 고전적인 입자는 서로 구별할 수 있으며 배타원리를 따르지 않는데 이런 통계를 '맥스웰-볼츠만 통계'라 한다. 

 

(왼쪽 끝)폴 디랙, 볼프강 파울리 와 루돌프 파이얼스, 위키미디어 제공

디랙은 새로운 통계법을 발견한지 얼마지 않은 1928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위대한 방정식을 발표한다. 이를 디랙방정식이라 한다. 디랙방정식은 한마디로 말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한 방정식으로, 예컨대 상대론적으로 운동하는 전자를 양자역학적으로 기술하는 데에 적합한 방정식이다. 이보다 두 해 전에 나왔던 슈뢰딩거방정식은 비상대론적인 방정식이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동등한 자격을 가지며 시공간 자체에 대해 어떤 대칭성이 성립해야 하는데 슈뢰딩거방정식에서는 공간에 대한 미분이 제곱으로 들어가는 반면 시간에 대한 미분은 1차로 들어가기 때문에 일단 그 형태부터 상대론적이지 않다. 디랙은 시공간 모두에 대해 미분의 1차항으로만 구성된 새로운 방정식을 제시했다. 다만 이 방정식이 성립하려면 방정식을 이루는 모든 항들이 보통의 숫자가 아니라 숫자들의 집합체인 행렬이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디랙방정식의 핵심이 되는 행렬은 행과 열이 모두 네 개인 4x4 행렬인데 여기에는 파울리가 스핀을 기술하기 위해서 도입했던 2x2의 이른바 ‘파울리 행렬’을 포함하고 있다. 그 결과 디랙방정식은 전자의 스핀을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전자의 파동함수 또한 4x4 행렬에 조응해 네 개의 성분을 갖는 4x1 행렬로 주어지는데 이는 두 개의 성분을 갖는 전자의 스핀이 한 쌍으로 들어가 있는 것과도 같다. 디랙은 처음에 이 결과를 양의 에너지를 가진 풀이와 음의 에너지를 가진 풀이로 해석했다. 그러나 나중에 디랙방정식의 또 다른 두 성분은 전자와 전기전하가 정반대인 입자, 즉 양전자를 기술한다고 결론지었다. 반전자는 1932년 영국의 칼 앤더슨이 결국 발견하게 된다. 디랙방정식은 전자의 스핀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함께 결합되었을 때에만 나타나는 성질임을 잘 보여준다. 특히 스핀은 시공간의 대칭성과 관련이 있는 양으로서 전자가 직접 회전하지는 않지만 회전효과를 주는 내재적 각운동량임을 알 수 있다.


페르미온과 보존의 특성이 스핀과 관계가 있음을 증명한 사람은 마르쿠스 피어르츠와 배타원리의 주인공인 볼프강 파울리였다.

 

피어르츠는 파울리의 조수를 지내기도 했었다. 파울리는 194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같은 입자의 통계와 스핀의 관계를 완전히 규명했다. 파울리의 논증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아우르는 복잡한 과정이었으나 그 결과는 아주 단순하다. 스핀이 반정수(1/2, 3/2, ...)인 입자들은 파동함수가 반대칭이며 따라서 페르미-디랙 통계를 따르는 페르미온이다. 스핀이 정수(0, 1, 2, ...)인 입자들은 파동함수가 대칭적이며 따라서 보즈-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는 보존이다. 이를 스핀-통계 정리 또는 스핀-통계 관계라 한다. 


전자는 스핀 1/2인 페르미온으로서 그 성분이 +1/2, -1/2 두 가지밖에 없다.  빛, 즉 광자는 스핀이 1인 입자이다. 보통 스핀이 1인 입자를 벡터 입자라고도 부른다. 지난 2012년 유럽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발견된 힉스 입자는 스핀이 0인 입자로, 대개 스칼라 입자라 부른다. 자연의 기본입자들 중에서 스칼라 입자를 직접 관측한 것은 처음이다. 광자와 힉스는 보존이다.


스핀은 내재적인 각운동량으로서 두 입자가 하나의 계를 이룰 때 각각의 스핀이 더해져 전체 스핀을 새로 구성할 수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핵자는 지금 우리가 알기로 쿼크라는 더 기본적인 입자들로 구성돼 있다. 쿼크는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다. 양성자나 중성자는 세 개의 쿼크로 구성돼 전체적으로 스핀 1/2인 페르미온이 된다.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된 수소는 스핀이 1/2인 두 입자의 집합체이므로 그 결과는 정수의 스핀을 갖는 보존이다. 이때 가능한 스핀값은 0(=1/2-1/2) 또는 1(=1/2+1/2)인데, 수소의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전체 스핀이 0인 상태와 1인 상태가 미세하게 갈린다. 이는 전자와 양성자의 스핀이 갖는 자기모멘트가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이를 초미세구조라 한다. 이들 에너지 차이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파장은 약 21cm로 마이크로파 파장보다 조금 더 길다.


이는 우주에서 수소가 많은 성간물질 속에서 관측할 수 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대표적 사진인 '창조의 기둥'. 지구에서 약 700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성간물질과 가스를 찍었다.  NASA 제공

※참고자료

-Dirac, Paul A. M. (1926). "On the Theory of Quantum Mechanic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A. 112 (762): 661–77. 디랙은 이 논문으로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강영, 《스핀》, 계단.

-Markus Fierz (1939). "Über die relativistische Theorie kräftefreier Teilchen mit beliebigem Spin". Helvetica Physica Acta. 12 (1): 3–37.
-Wolfgang Pauli (15 October 1940). "The Connection Between Spin and Statistics" (PDF). Physical Review. 58 (8): 716–722.
-S. Weinberg, Lectures on Quantum Mechan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관련 태그 뉴스

  •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