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 김윤수 기자
입력 2020.11.14 06:00
식품·의약품 맛 평가 대신하는 미각센서
단·신·쓴·짠·감칠맛에 와인 떫은맛까지
英 연구팀, 식감 측정 위한 원천기술 개발
전자혀(왼쪽)가 사람의 혀(오른쪽)를 흉내낸 것을 표현한 그림./사이언스다이렉트(ScienceDirect) 캡처
사람을 대신해 맛을 측정해주는 ‘전자혀’가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각뿐 아니라 식감까지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이 해외에서 개발됐다.
국내에서 전자혀를 개발 중인 고현협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14일 "현재 전자혀는 맛을 내는 화학성분만 감지하는 화학 센서에 가깝다"며 "사람 혀의 일부분만 모방하고 있는 전자혀가 식감까지 느낄 수 있다면 식품·의약품 개발 과정에서의 활용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논문 소개 사이트 ‘유레칼러트(EurekAlert)’는 영국 리즈대 연구팀이 실리콘으로 사람 혀의 복잡한 표면과 습윤성(표면에 수분이 배어드는 성질)을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연구성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ACS 응용물질 및 계면(Applied Materials & Interfaces)’에 지난달 26일 게재됐다.
◇정확한 미각센서, 5가지 기본 맛 넘어 다채롭게 느낀다
혀의 표면은 작은 돌기들로 이뤄져있다. 돌기 아래의 미뢰(味蕾)에는 미각을 감지하는 세포들이 모여있다. 미각세포는 액체 속 특정 성분을 감지해 그 정보를 뇌로 전달, 사람이 맛을 느끼도록 한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맛은 5가지다. 당(糖)은 단맛, 산성 물질은 신맛, 염분은 짠맛, 무기물과 카페인 등은 쓴맛,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은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사람이 느끼는 다양한 맛은 이 5가지 기본 맛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고현협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팀이 지난 6월 개발한 ‘전자 혀’(왼쪽)와 이것을 구강 모형에 부착한 모습(오른쪽)./UNIST 제공
음식, 음료 등 식품을 개발할 때 맛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다. 피실험자를 모집하는 경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맛에 대한 평가가 주관적일 수 있다. 맛을 내는 성분들의 농도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전자혀가 필요한 이유다. 전자혀는 의약품 개발 과정에도 활용된다. 약의 쓴맛을 줄여주는 물질을 첨가할 경우 아직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전자혀가 대신 맛볼 수 있다.
전자혀는 키요시 토코(Kiyoshi Toko) 일본 규슈대 교수가 20년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고안하고 개발했다. 그는 지난 2000년 5가지 기본 맛을 감지할 수 있는 최초의 전자혀를 개발하고 그 성과를 국제학술지 ‘센서와 작용기 B: 화학(Sensors and Actuators B: Chemical)’에 ‘미각센서(Taste Sensor)’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발표했다. 2006년 상용화도 맨 처음으로 이뤄졌다. 2014년 학술지 ‘센서(Sensors)’에 게재한 논문에서 그는 "(개발한)미각센서는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Intelligent Sensor Technology)를 통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다"고 말했다.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의 제품 ‘TS-000Z’(왼쪽)와 제품의 미각 측정 원리를 설명한 그림(오른쪽)./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 홈페이지 캡처
현재 제품들은 혀의 점막이 ‘탄닌’이라는 성분에 눌려서 느껴지는 떫은맛, ‘캡사이신’ 등에 의한 아픈 느낌인 매운맛처럼 미각 외 감각들도 일부 감지할 수 있다.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와 프랑스 업체 인스트루먼트 솔루션(Instrument Solution) 등 업체는 자사 제품이 현재 풍성함(richness), 날카로움(sharpness), 금속성(metallic)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한다. 인텔리전트 센서 테크놀로지 제품 ‘TS-000Z’는 맛을 내는 성분이 혀에서 사라지고 난 후 생기는 ‘끝맛’까지 포함해 11가지 맛 정보를 알 수 있다. 끝맛은 센서에 들어온 성분에서 한차례 맛을 느낀 후 센서를 세척해 다시 한번 감지하는 방식으로 측정된다.
◇고현협 교수팀, 와인 떫은맛 감별하는 로봇 소믈리에 개발
특히 떫은맛 감지 기술은 와인의 품질 평가를 위해 중요해지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는 떫은맛을 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전자혀가 개발됐다. 지난 6월 고 교수 연구팀은 다공성 구조 물질인 ‘뮤신’을 이용해 이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뮤신은 탄닌과 만나면 전기전도도가 변한다. 이 변화를 측정해 떫은맛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떫은 맛보다 수십분의 1 수준으로 옅은 맛도 느끼는 전자혀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미각 전문가는 수십 마이크로몰 농도의 떫은 맛을 검출할 수 있는 데 반해 이번에 개발된 전자 혀는 2~3마이크로몰 농도 수준의 떫은 맛까지 검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험결과 전자혀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등 종류별 와인의 떫은 맛을 정량적으로 감별해냈다. 감지 속도도 센서에 물질이 닿는 즉시 맛을 느낄 정도로 빨랐다.
고 교수는 "개발한 전자혀가 더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고, 여러 맛이 섞여있을 경우 구분해낼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잡한 혀 표면구조 따라해 식감까지 정복
전자혀가 여전히 느끼지 못하는 맛의 요소가 남아있다. 식감이다. 씹을 때 느끼는 감각, 즉 혀의 표면과 음식 사이의 기계적 마찰로 생기는 식감은 뇌가 인식하는 맛에 영향을 미친다. 아삭아삭하거나, 부드럽거나, 질기거나, 쫀득쫀득하거나 하는 느낌을 준다. 전자혀가 식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실제 혀 표면의 복잡한 돌기 구조와 습윤성을 모방해야 한다. 이 수준까지 발전한 전자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혀 표면(왼쪽)과 영국 연구팀이 실리콘으로 만든 표면(오른쪽). 색깔로 높이를 구분해 표현했다./ACS 응용물질 및 계면 캡처
최근 영국 리즈대 연구팀이 처음으로 새로운 전자혀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은 성인 15명의 혀 표면을 광학 스캐닝 기술로 분석했다. 돌기의 밀도, 지름, 높이를 측정해 그 전체 구조를 컴퓨터로 재구성했다. 재구성한 구조를 설계도로, 실리콘을 재료로 삼아 3차원(3D) 프린터로 출력했다. 실리콘 표면이 적절한 수분을 머금을 수 있도록 계면활성제를 첨가, 실제 혀의 습윤성을 구현했다.
실
험결과 실리콘 표면은 사람 혀와 비슷한 마찰 특성을 보였다. 전자혀에 활용할 경우 사람과 비슷한 식감을 느낄 것이라는 의미다. ‘식감센서’에 닿는 음식물의 마찰 특성을 측정한 후 아삭함, 부드러움, 질김 등으로 분류해 식품 개발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연구팀은 "혀를 모방한 표면은 식품·의약품 개발을 가속화하고 소프트로봇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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