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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제사건의 해결사, 유전계보학

heojohn 2021. 3. 16. 11:33

월간 과학과기술

[칼럼] 미제사건의 해결사, 유전계보학

한국과총 2021. 3. 5. 11:47

 

 

※본 포스팅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과학과기술> 10월호에 게재된

칼럼을 옮긴 것입니다.

2018년 4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던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인 일명 ‘골든 스테이트 킬러(Golden state killer)’가 DNA 감식 기술로 검거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엄청난 인력과 많은 과학적 수사 방법을 동원했지만 끝내 해결하지 못했던 이 사건의 범인을 어디서 어떻게 무슨 근거로 체포하였다는 것일까? 지금 법과학 분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포렌식 유전계보학(Forensic Genetic Genealogy ; FGG)’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둘러싼 팽팽한 논쟁에 대해 알아보자.

DNA 세포 ⓒmadartzgraphics ⓐpixabay

골든 스테이트 킬러

1973년부터 1986년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수십 건의 살인, 강도,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FBI를 비롯한 수사기관은 범인 검거를 위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은 노력을 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하였다. 2001년, 사건 당시 증거물의 DNA 감식을 통해 몇 건의 사건이 동일인에 의한 범죄인 것이 밝혀졌지만, DNA가 일치하는 용의자도 없었고, 미국의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인 CODIS에도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2016년 다시 수사가 진행되었고, 드디어 2018년 4월 24일, 최소 12건의 살인, 45건의 강간, 그리고 120여 건의 강도 사건 범인으로 70세 나이의 조셉 드안젤로(Joseph James DeAngelo Jr.)를 체포하였다. 무려 43년 만에 연쇄살인범을 찾은 것이다. 범인 검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은 바바라 래벤터(Barbara Rae-Venter)라는 전직 변리사 출신의 유전계보학자였다. 그녀는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사건 발생 당시 범죄 현장 증거물에서 확보된 DNA로부터 친족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형태의 정보를 분석해 커티스 로저스(Curtis Rogers)가 창립한 ‘GEDmatch’라는 무료 온라인 친족 찾기 사이트(https://www.gedmatch.com/login1.php)에 업로드하였고, 가계 분석 등을 통해 범인과 친족 관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리고 가계 구성원들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확실히 범인이 아닌 사람을 배제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연쇄 살인범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하였다. 즉, GEDmatch에서 찾은 범인의 추정 친족과 고조부를 공통 조상으로 하는 가계도를 그리고, 그 구성원에 대해 한 명씩 세밀히 조사한 것이다. 여기에 DNA 분석을 통해 얻어진 범인의 인종(생물지리학적 조상정보)과 피부색, 눈동자색 등 표현형 정보를 더해 용의자의 수를 대폭 줄인 후, 마지막으로 용의자의 시료를 은밀하게 확보해 STR 프로필이 서로 일치함을 확인하였다. 조셉 드안젤로는 2020년 8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50여 건 이상의 미제사건들이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건과 동일한 방식을 통해 해결되었다.

골든 스테이트 킬러의 체포 이후,

유전계보학을 이용해 많은 미제사건이 속속

해결되고 있다

포렌식 유전계보학 (Forensic Genetic Genealogy, FGG)

우리는 부모로부터 각각 50%씩의 DNA를 물려받는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25%가 같고, 사촌끼리는 12.5%가 같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유전법칙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DNA를 공유하고 있는지 분석해 친족 관계를 밝힐 수 있다. 여기에 전통적인 계보학적 분석을 더한 것이 FGG다.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약 1,400만 명의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를 찾거나 특정 질환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았다. 23andMe, Family Tree, Ancestry 등의 민간 유전체 분석 회사들이 분석과 컨설팅을 제공해왔다. 그리고 분석된 DNA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GEDmatch라는 사이트가 등장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족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 내 유럽계 백인의 60% 이상이 이런 방식으로 식별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었다. 수사기관은 유전계보학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GEDmatch에서 범인의 친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고, 즉각 실행에 옮겨 골든 스테이트 킬러를 체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먼저 사건 당시 증거물에서 게놈 전체(Whole genome)의 SNPs(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 단일염기다형)를 분석한 후, GEDmatch 사이트에 자료를 올려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을 찾고, 여러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용의자의 범위를 좁힌다. 최종적으로 용의자가 버린 종이컵이나 담배꽁초 등에서 DNA를 확보하고, STR 프로필 분석을 통해 범인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유전계보학은 미제사건의 해결은 물론이고 불상변사자의 신원 확인, 그리고 결백한 재소자의 석방, 입양아의 신원 확인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유전계보학은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Forensic DNA Database, FDD)를 활용하는 가족검색(Familial search)과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는 STR(Short Tandem Repeat) 프로필을 수록하고 있지만, 유전계보학으로 친족을 찾기 위해서는SNP 분석이 이용되고 있다. 또한 유전계보학은 일반인들의 DNA 자료를 친족 찾기에 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골든 스테이트 킬러의 체포 이후, 유전계보학을 이용해 많은 미제사건이 속속 해결되고 있다.

프라이버시 논쟁

유전계보학을 활용해 해결되는 미제사건들이 늘어가면서, 개인의 유전정보를 동의절차 없이 수사에 활용하는 것이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베로젠(Verogen) (https://verogen.com/) 이라는 회사가 GEDmatch를 인수하였는데, 이용자들이 사전에 수사기관 활용여부에 동의를 하는 경우(옵트인 ; Opt-In)에만 자료 검색이 되도록 정책을 변경하였다. 처음에는 수사기관이 GEDmatch에 수록된 일반인의 DNA 자료를 활용해 미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에 대해 큰 반감이 없었다. 오히려 거의 모든 언론과 시민들은 새로운 과학적 수사 방법에 대해 환호하였고, 평범한 개인이 범인 검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대 강력범죄가 아닌 사건에까지 유전계보학을 활용하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많은 윤리학자와 유전계보학자들은 일반 국민들의 DNA 정보를 수사에 활용하는 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위구르인의 식별을 목적으로 방대한 DNA 정보를 수집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의 인권침해도 보고되었다. 범죄 해결을 통한 안전 사회의 구현과 민감한 DNA 개인정보의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미국 법무부에서 유전계보학의 수사 활용에 대한 지침을 발표하였는데, 살인과 강간 등 중대 범죄에 한정하여, 다른 모든 수단을 사용한 후에만 허용하도록 하였다(https://www.justice.gov/olp/page/file/1204386/download).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된 많은 우려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포렌식 유전계보학의 수사 활용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정의는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임시근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과학수사학과 교수 sikeun.lim@skku.edu

[출처] [칼럼] 미제사건의 해결사, 유전계보학|작성자 한국과총유전계보학 sikeun.lim@skku.edu

 

고려대학교 생물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유전자과에서 22년간 근무하였고, 2019년부터 성균관대학교 과학수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DNA 감식을 통해 사건사고의 해결과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 운영에 기여하였으며, 법과학 발전을 위해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출처] [칼럼] 미제사건의 해결사, 유전계보학|작성자 한국과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