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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어떻게’ 창조하셨을까?(3)

heojohn 2019. 3. 18. 23:08

 

 

2. 흑암, 그리고 광명들과 별들

 

모세의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은 제4일에 창조된 광명들과 별들을 제3일에 만드신 하늘의 궁창(비레키아 하샤마임)에 있게 하셨다. 성경에는 이 부분에 관련하여 창세기에 서술된 것보다 진일보한 우주관을 보여주는 욥기의 서술이 있다. 욥은 하나님이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26:7)라는 말과 하나님은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흑암(호셰크: 여기서는 어두움이라고 오역했다)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26:10)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비를 위하여 명령하시고 우뢰의 번개를 위하여 길을 정하셨음’(28:26)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 이런 말들은 욥이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창조 이전에 이미 그 구조와 운행 계획을 세우고 계셨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38장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창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서술이 있다. 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흑암(아라펠: 캄캄함으로 번역될 수도 있는 말)으로 만든 강보(하툴라)가 바다를 싸고 있다는 표현이다(38:8-9).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흑암의 강보는 욥이 26:10에서 말한 수면에 그어진 경계이며, 빛과 흑암(호셰)의 지경임을 확인하는 말씀이다. 바다를 흑암의 강보가 싸고 있다면, 그것은 하늘과 땅, 곧 우주의 바깥이 어둠으로 싸여 있다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이 욥에게 네가 하늘의 법도(후카)를 아느냐 하늘로 그 권능(미쉬타르)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38:33)고 반문하는 부분은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하신 말씀에 비해 매우 진전된 설명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욥기의 저자에게 우주의 구조와 작동원리를 법도에 따라 그의 권능으로 통치하심을 말하시고 있다. 창세기와 욥기를 비교해서 읽어보면, 하나님은 듣는 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그의 수준에 맞춰서 소통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 다만 그의 말씀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문제를 야기한다.

 

창세기나 욥기의 서술은 고대 히브리인들이 맨눈으로 보는 수준에 맞춰서 설명하셨다. 그러므로 그 설명들이 현대인들의 수준에서 사실과 다른 것이라면, 인간 저자의 이해 부족 탓이거나, 문학적 저작이라고 돌려서 비유로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된다. 욥기의 저자에 대해서는 대개 3가지 가설들이 제기되어 있다. 1설은 잠언 및 시편과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다윗 또는 솔로몬이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 저술 시기는 BC. 1,000년 무렵이 된다. 욥기의 서술 수준이 창세기보다 발전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설이다. 2설은 BC. 1,500년경에 모세가 저술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창세기와 욥기는 서술 방법과 수준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저자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3설은 족장시대의 문헌으로 보는 것이다. 그 근거는 욥이 재앙 전보다 두 배의 복을 받은 후에 친지들로부터 받은 화폐단위(케쉬타)와 야곱이 세겜에서 밭을 살 때 썼던 화폐단위(크시타)가 동일하다는 점이다. 3설이 옳다면 저작 시기는 BC. 2,000년경이다. 만약 그렇다면 창세기보다 발전된 욥기를 쓴 저자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계열이 아니라, 아브람을 축복한 살렘왕 멜기세덱 계열 히브리인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 어쨌든 욥기는 저자의 정보에 대해서는 단정할 만큼 충분한 자료가 없으나, 성경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욥기는, 앞으로도 살펴보겠지만, 전체적인 서술을 보면 토라의 우주관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아마도 거의 같은 우주관이 공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이하게도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은 하나님이 흑암의 강보 안에서 싸안고 있는 것이었다.

 

창세기 제4일의 큰 광명은 낮을 주관하는 해를 가리키는 것이고, 작은 광명은 밤을 주관하는 달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외에 밤에 보이는 별들도 포함된다. 현대 우주론에서는 창세기의 광명들과 별들을 똑 같이 우주물체인 별들로 본다. 별들은 스스로 빛을 내거나 빛을 내는 별들의 빛을 반사하는 별들로 구분될 뿐이다. 별이 빛을 내는 것은 그 별이 가진 물질에서 핵융합이 일어나면서 초고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별마다 색깔이 다른 것은 별의 구성 물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별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의 모습은 별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동시에 수백-수천 개의 수소폭탄이 계속해서 폭발하는 것과 같다. 지구에 열과 빛을 공급하는 태양도 그런 별의 하나이다. 지구의 크기에서는 한 개의 수소폭탄만 터져도 그 지역 일대는 초토화가 되고 만다. 수소폭탄은 인류에게 최종병기이지만, 우주에서는 용광로에 불을 지펴서 새로운 별의 재료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핵융합을 통해서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우주공간에 흩어져서 다음 별들이 태어나게 하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창조자 하나님이 설계하신 우주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며, 우주 발전의 역사를 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별들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별이 다른 별들의 빛을 반사하여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별들도 많이 숨어 있다. 현대에는 그런 별들을 비가시광선인 X-선 망원경 등을 이용하여 볼 수 있다. 광대한 우주에는 아직 우주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별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나 창조의 방법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욥기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별들 중에서 대표적으로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9:9)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욥을 질책하시면서 그가 이 별들을 창조하셨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셨다. 여기서 별들의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것이다. 참고로 영어번역(ASB)과 비교해보라. ‘네가 묘성의 띠를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Canst thou bind the cluster of Pleiades, or loose the bands of Orion?(38:31).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 Canst thou lead forth Mazzaroth in their season? or canst thou guide the Bear with their train?(38:32). 여기서 나오는 별들은 성경에서 계속 언급되는 것들이므로, 실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욥기에서 별들에 관한 서술을 현대인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면, 먼저 별자리를 알아야 하는데, 별자리의 위치 기준은 동서양이 서로 달랐다. 그래서 별을 잘못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대 서양에서는 천동설을 주장했던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가 점성술에 이용하기 위하여 황도를 30도씩 나눠놓은 12궁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천문 관측이 발전되고 지동설이 나오면서 여러 가지 견해들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이 천구의 경도와 위도를 정하고, 1928년 총회에서 황도를 따라서 12, 북반구 하늘에 28, 남반구 하늘에 48개로 총 88개의 별자리를 확정한 것이 현대 천문학의 기준이 되었다. 동양 천문학은 중국의 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중앙에 삼원(三垣)을 두고 동서남북에 각 7개의 수(宿)를 나눠서 총 28수가 되게 한 것이 기준이었다. 이것은 중국인의 중화사상을 뒷받침하는 우주관이기도 했다. 3원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늘나라의 궁궐인 자미궁(紫微宮)이 있는 자미원, 삼태성을 비롯한 큰 별자리들이 있는 태미원(太微垣), 작은 백성 별들이 사는 구역인 천시원(天市垣)이다. 그러나 이제 동양 천문학은 신화로 격하되었고, 현대 천문학은 국제천문연맹의 기준을 따르는 별자리 이름을 쓰고 있다. 별들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동한다. 하나의 별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별을 보는 관점의 통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고대 히브리인들이 쓴 욥기에 나오는 별들이 오늘날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동안의 자료들을 이용해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영어로 번역된 별 이름은 70인역의 헬라어를 따라 번역한 것이다. 한글성경은 영어번역을 다시 따라서 번역했다.

 

묘성(昴星)은 황소 별자리에 있는 플레이아데스(Playades) 성단에 속한다. 플레이아데스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명령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Atlas)의 일곱 딸들 이야기에서 나왔다. 고대인들의 맨눈에 비친 묘성에는 일곱 개의 별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렉트라(Electra)를 주성(主星)으로 하여 각각의 별에 7딸들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러나 망원경이 발명된 이후에는 묘성의 별들이 점점 많이 발견되었고, 현재는 2000개가 넘는 별들로 이루어진 별무리, 즉 성단(star cluster)으로 밝혀졌다. 삼성(三星)은 그리스 신화에서 사냥의 신 오리온(Orion)의 이름을 딴 오리온 별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욥기 저자의 눈에는 오리온의 허리띠 부분에서 3개가 서로 묶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삼성이라고 했다. 가끔 보면 삼성을 삼태성과 같은 별로 인용하는 문헌이 있는데, 두 별들은 각각 다른 것이다. 삼태성은 서양 별자리로는 큰곰자리 발바닥이다. 북두칠성 아래에 작은 별과 짝을 이룬 쌍별이 세 개가 연이어 있다. 이 별들을 상태, 중태, 하태라고 하며, 묶어서 삼태성(三台星)이라고 한다. 삼태성은 고대에 궁수를 선발하는데 시력검사를 위해 쓰였다고 한다. 욥기 저자는 삼태성을 가리켜 삼성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북두성(Bear)은 작은곰자리 알파별로서 북극성을 가리키며, 북두칠성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큰곰별자리에서는 꼬리 끝이다. 지구 자전축은 23.5도로 기울어진 상태로 25,800년을 한 주기로 일주하므로 북두성(北斗星)은 다른 별로 교체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지구의 자전축이 일주하면서 춘분점의 세차 현상 때문에 북극과 남극의 천구에서 별들이 작은 원을 그리면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극성은 이 원 안에 있는 별 가운데 천구의 북극에 가장 가깝게 위치하는 별이 되는 것이다. 북반구에서 관측자들은 북극성을 보고 위도와 북쪽 방향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는 제우스가 만들었다. 제우스에게 유혹되었던 님프가 여신의 벌을 받아 곰이 되었다. 사냥꾼 아들은 곰이 된 어머니를 몰라보고 창으로 찌르려는 찰나에 제우스가 나타나서 두 모자를 하늘로 올려 두 개의 곰자리 별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어성경에서 Mazzaroth는 그 정확한 의미가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발음 그대로 음역한 것이다. 어떤 영어성경에서는 zodiac, constellations, stars 등으로 번역하기도 했고, 여기서는 한글로 열두 궁성으로 번역했다. 다른 한글성경에서는 대개 별들이라고 했다. Mazzaroth가 사용된 문장의 맥락을 보면, 하나님은 별들이 계절에 따라서 위치가 변하는 것을 자신이 주관하신다고 말씀하실 때 이 말을 사용하셨다. 따라서 점성술 용어인 열두 궁성이라고 하기보다는, ‘별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리라고 본다.

 

이번 칼럼에서는 별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들을 욥기에서 살펴보면서 물질적 우주의 창조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인들에게 성경을 문자 그대로해석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드러났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별들을 띠로 묶거나 띠를 푼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므로 비유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별들이 움직이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법칙에 따르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일일이 이끌어 내시거나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은 일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말들을 문자 그대로믿지 않으면,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와 무오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계속 주장할 것인가? 현대 우주론을 과학상식의 하나로 알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사실이라고 주장하여 그들이 모두 교회를 떠나게 할 것인가? 과학을 부정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변증한다고 언제까지 말할 것인가? 기독교의 창조신앙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않고 자신도 속이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옛 우주관을 버리고, 현대인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새 우주관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창조신앙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옛 우주관을 버리고 새 우주관을 믿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창조신앙은 하나님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창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