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창조론 연구 자료실/창조론 연구를 위한 과학 뉴스

하지마비 환자, 뇌파 인식모자 쓰고 로봇옷 입고 걷는 시대 열린다

heojohn 2020. 4. 24. 23:47

 

2020.04.22 12:00

 

김래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단 책임연구원(왼쪽)이 뇌파로 조종하는 외골격로봇을 찬 채 움직이는 연구원을 지켜보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이달 13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검은 모자를 쓴 한 연구원이 외골격로봇을 착용한채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뎠다. 옷처럼 입는 외골격로봇은 흔히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의 움직임을 돕기 위해 사용된다. 보통 외골격 로봇은 살짝 힘을 주거나 조종장치로 작동하지만 이 로봇은 그런 장치가 필요없다.

 

대신 여러개 전극이 달린 모자가 그 역할을 한다. 로봇을 착용한 사람은 머리 속에 움직임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실제로 연구원이 앞으로 가겠다는 생각에 집중하자 로봇의 상태를 알려주는 모니터에서 움직인다는 신호가 나왔다. 김래현 KIST 바이오닉스연구단 책임연구원은 "뇌파를 이용해 조작하는 외골격 로봇은 뇌파 측정 장치와 뇌파를 분석해 의도를 파악하는 기술, 의도를 로봇에 전달하는 기술이라는 세 가지 기술의 합작품"이라며 "세 분야의 협업이 필요한 정밀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뇌의 신호를 바로 기계에 전달하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CI) 기술이 발달하면서 생각만으로 작동하는 외골격로봇이 신체마비 장애인의 재활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 그르노블대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사지마비 판정을 받은 청년이 뇌 신호로 로봇을 걷게하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뇌 조종 외골격로봇은 한층 현실에 가까워졌다. 지금까지 뇌파로 움직이는 외골격로봇으로 다리를 쓰기 불편한 장애인의 감각을 되찾아준 경우는 있어도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하는 장애인이 직접 외골격로봇을 움직이며 걸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팀의 로봇을 움직이는 컨트롤러는 머리에 씌운 뇌파 측정장치다. 김 연구원은 두피에 전극을 붙여 뇌파를 읽는 비침습 방식을 택했다. 최근 뇌파 측정 연구는 뇌 속에 전극을 박아 신호를 읽는 침습형 방식이 우세하다. 뇌를 둘러싼 막이나 두개골의 방해 없이 깨끗한 뇌파를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을 내려받겠다는 목표로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나 생각을 그대로 언어로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 중인 페이스북은 모두 센서를 뇌에 삽입하는 침습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르노블대 연구팀도 뇌와 두피 사이에 측정장치 두 개를 삽입해 로봇을 움직였다. 하지만 뇌 속에 무언가를 설치한다는 것이 일으킬 부작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김 책임연구원이 비침습 방식을 선택한 이유다. 대신에 김 책임연구원은 신호를 정확하게 분석해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실험실 단계에서는 90% 이상 신호를 읽을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뇌가 내리는 신호를 받아도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를 해석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사람의 뇌는 87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고 세포마다 1000개 이상 신호를 주고받는 시냅스를 갖고 있다. 이를 많아야 수천 개의 전극으로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연구팀의 외골격로봇이 뇌파를 받아 움직이는 방식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KIST 제공

 

인간의 생각을 곧바로 파악하는 기술은 여전히 개발 중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김 책임연구원팀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인간의 ‘상상’을 활용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을 학습시켜 정확한 뇌 신호를 내도록 하는 원리다. 페이스북은 사과라고 말하는 걸 상상하고 이에 따른 뇌파가 발생하면 사과라는 글자를 출력하는 ‘발화 상상’을 적용하고 있다.

 

외골격로봇은 착용자가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학습하는 운동 상상을 통해 움직인다. 운동 상상을 통한 정확도는 70~80% 수준이다. 대신 신호를 빠르게 전달하는 것은 로봇을 손으로 조작하는 것보다 1.5배 빠르다. 지금의 외골격로봇은 손목시계 형태의 컨트롤러를 통해 버튼을 일일이 눌러 조작해야 한다. 김 책임연구원은 “응답 속도와 신호 전달량을 합해 정보전달력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기존 대비 150%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외골격로봇은 아직 하반신마비 환자를 상대로 실험하지는 못했다. 완벽히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때 사후처리에 관한 규정도 미비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김 책임연구원은 “환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쓰고싶다는 답변이 많았지만 여전히 고려할 사항이 많아 테스트를 바로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BCI 연구가 빠르게 활성화하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로 장애인을 서서 걷게 할 로봇 개발이 가능하리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15년 전 음성인식 제어기술이 처음 소개됐을 때도 말이 되느냐는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미 상품화가 끝났다”며 “점점 간편하고 직관적인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연구실의 기술이 장애인들에게도 도움을 주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래현 책임연구원은 "뇌파를 활용해 제어하는 기술이 장애인 뿐 아니라 직관적인 제어를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활용되는 미래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