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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CG가 아니라 ZTCG로 이뤄진 바이러스

heojohn 2021. 5. 7. 12:36

[강석기의 과학카페]

2021.05.04 17:50

지난 2011년 탄소질 운석 11점을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1969년 호주에 떨어진 머치슨 운석과 1994년 남극에 떨어진 론울프 누나탁스 94102 운석(사진)에 2-아미노아데닌(Z)이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NASA 제공

 

1977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옛 소련의 모스크바대 보리스 반유신 교수팀의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를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인 시아노파지 S-2L의 게놈 DNA가 ATCG가 아니라 ZTCG로 이뤄져 있다는 발견이다. DNA를 이루는 염기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인 아데닌(A) 자리에 2-아미노아데닌(줄여서 Z)이 쓰인다.

 

시아노파지 S-2L의 게놈 DNA의 염기 조성을 분석하자 시토신(C)과 구아닌(G)이 각각 35%를 차지하고 Z와 티민(T)이 각각 15%를 차지했다. Z가 정말 A를 대신해 T와 염기쌍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ATCG 대신 ZTCG로 이뤄진 DNA를 ‘dZ-DNA’라고 부른다(d는 deoxy(데옥시)를 뜻한다). 물론 Z가 DNA의 유일한 비정규 멤버는 아니다. 예를 들어 5-메틸시토신은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 후성유전 효과를 보인다. 그러나 Z는 다른 비정규 멤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AT 염기쌍은 수소결합이 2개인 반면 ZT 염기쌍은 수소결합 3개로 이뤄져 있다. 반면 5-메틸시토신은 C처럼 G와 수소결합 3개로 염기쌍을 이룬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은 게놈에서 정규 염기의 일부를 대체하는 반면 Z는 시아노파지 S-2L에서 A를 100% 대체한다.

 

그런데 Z는 자연계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분자로 이를 만드는 세포 생물체도 알려져 있지 않다. 바이러스는 기생생물체이므로 다른 염기와 마찬가지로 Z 역시 감염한 숙주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따라서 시아노파지 S-2L의 숙주인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들텐데, 그 생합성 메커니즘은 미스터리였다.

시아노박테리아를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인 시아노파지 S-2L의 전자현미경 이미지다(왼쪽). 시아노파지 S-2L의 게놈 DNA는 ZTCG로 이뤄져 있다. Z는 A와 비슷한 분자이지만 ZT 염기쌍은 수소결합(점선) 3개로 이뤄져 열역학적 특성은 2개인 AT 염기쌍보다 역시 3개인 GC 염기쌍에 더 가깝다(오른쪽). 바이러스학/사이언스 제공

 

발견 44년 만에 생합성 과정 밝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30일 dZ-DNA가 보고된 지 44년 만에 Z의 생합성과 복제 메커니즘을 밝힌 논문 세 편을 나란히 실었다. 아울러 dZ-DNA를 게놈으로 삼는 바이러스가 추가로 발견됐고 그 기원이 생명의 등장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도 나왔다.

 

중국 톈진대가 주축이 된 공동 연구팀(1977년 논문 저자의 한 명인 러시아 농업미생물학연구소 이반 쿠디야코브 박사도 공동 연구자로 이름을 올렸다)의 논문과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가 주축이 된 공동 연구팀의 논문은 dZ-DNA의 벽돌인 dZTP(데옥시Z삼인산)를 만드는 과정을 독립적으로 규명했다. 한편 프랑스 프랑수와자코브연구소가 주도한 연구팀은 이 벽돌로 dZ-DNA를 만드는 효소를 밝힌 논문이 실렸다.

 

연구결과 시아노파지 S-2L의 게놈에 들어있는 PurZ 유전자의 산물이 dZTP 합성의 첫 단계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로 밝혀졌다. 시아노파지 S-2L이 박테리아 표면에 붙어 세포 안으로 게놈을 투입하면 전사와 번역이 일어나 PurZ 효소가 만들어진다. PurZ는 박테리아 세포질에 있는 dGMP(데옥시구아닌일인산)를 dSMP로 바꾼다. 한편 박테리아 게놈에는 dSMP를 dZTP로 바꾸는 효소의 유전자가 존재한다.

 

바이러스 게놈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자 PurZ 유전자가 있는 바이러스가 60여 종이나 발견됐다. 이 가운데 두 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역시 dZ-DNA임이 밝혀졌다. 시아노파지 S-2L가 예외적인 존재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아노파지 S-2L의 게놈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게놈을 복제하는 DNA중합효소의 유전자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숙주인 시아노박테리아 안에서 dZ-DNA인 시아노파지 S-2L의 게놈이 어떻게 복제되는가는 미스터리다. 프랑수와자코브연구소의 과학자들은 PurZ 유전자가 발견된 다른 바이러스의 게놈에는 혹시 DNA중합효소의 유전자가 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대다수에서 바이러스 게놈을 복제하는 DNA중합효소의 유전자가 존재했다. 시아노파지 S-2L가 예외적 존재라는 말이다.

 

이 효소의 활성을 조사한 결과 예상대로 dZTP를 벽돌로 써서 dZ-DNA를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정규적인 DNA의 벽돌인 dATP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이 효소에 DpoZ라는 이름을 붙였다.

 

게놈에 DpoZ 유전자가 없는 시아노파지 S-2L이 숙주인 시아노박테리아 안에서 게놈을 어떻게 복제하는가는 여전히 미궁이다. 논문에는 언급이 없지만 아마도 숙주의 게놈에 DpoZ의 활성을 지니는 효소의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이들 바이러스는 번거롭게 A 대신 Z를 쓰는 게놈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박테리아 방어체계 무력화

지상의 미생물체인 남조류(시아노박테리아). 우주론과 입자물리학회지 제공

 

먼저 박테리아의 방어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 박테리아는 DNA 가닥의 특정 염기를 인식해 자르는 ‘제한효소’로 침투한 바이러스의 게놈을 파괴한다. 그런데 제한효소 대다수는 dZ-DNA 서열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게놈이 dZ-DNA인 바이러스는 거침없이 증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안정성이다. AT 염기쌍이 수소결합 2개로 이뤄진 반면 ZT 염기쌍은 수소결합 3개로 이뤄져 있다. GC 염기쌍이 수소결합 3개로 이뤄져 있으므로 dZ-DNA 이중나선은 모든 염기쌍이 수소결합 3개라는 말이다. 그 결과 고온이나 중성을 벗어난 환경에서도 이중나선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바이러스의 생존력이 높다는 말이다. 한편 Z는 A에 비해 복제 오류도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박테리아(진정세균)와 아케아(고세균), 진핵생물의 게놈 데이터베이스에서 PurZ 유전자와 가까운 유전자를 찾아본 결과 PurA 유전자가 걸렸다. PurA는 IMP(이노신일인산)를 AMP(아데노신일인산)로 바꾸는 첫 단계를 촉매하는 효소다. 그런데 고세균의 PurA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진정세균이나 진핵생물의 PurA 유전자보다 바이러스 PurZ 유전자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운석에서도 발견된 분자

아이슬란드의 헤들뤼뢰이그(Hellulaug) 온천 환경. Visit Westfjords 제공

연구자들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놓았다. 먼저 바이러스가 고세균의 PurA 유전자를 탈취한 뒤 돌연변이를 통해 다른 촉매 활성을 지닌 PurZ 유전자로 진화시켰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dZ-DNA는 몇몇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의 방어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개발한 전략인 셈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dZ-DNA를 지닌 세포 생물체가 발견지지 않았으므로 그럴듯한 얘기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개연성은 낮아 보이지만 훨씬 흥미롭다. 35억 년 전보다 이전 지구에 처음 생명체가 나타났을 때부터 Z가 유전물질의 재료로 쓰였지만 그 뒤 A에 밀려 사라졌고 오늘날 그 흔적이 몇몇 바이러스의 게놈으로 남아있다는 얘기다. 고세균의 조상인 초기 세포 생명체 가운데 게놈이 dZ-DNA로 이뤄진 종류도 있었을지 모른다.

 

흥미롭게도 이 시나리오를 뒷받침하는 발견을 담은 논문이 지난 2011년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 실렸다. 미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천체생물학센터가 주축이 된 공동연구자들은 탄소질 운석 11점에 포함된 핵산염기를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운석 2점에서 Z의 존재를 확인했다.

 

탄소질 운석에서 아데닌과 구아닌, 우라실(U) 등 생명체가 이용하는 염기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 결과 운석에 존재하는 아미노산과 염기 등 유기물질을 재료로 해서 지구의 생명이 탄생했다는 시나리오가 나왔다. 그런데 운석에서 Z도 발견됐다는 건 초기 생명체가 Z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만일 그랬다면 dZ-DNA를 지닌 세포 생물체는 왜 사라졌을까.

 

아마도 정규 DNA에 비해 dZ-DNA가 너무 안정해 융통성이 없는 분자였기 때문 아닐까. 모든 염기쌍이 수소결합 3개로 이뤄진 dZ-DNA는 지구의 환경이 온화해지면서 경쟁력을 잃었을 수 있다. 이중나선이 풀려야 하는 전사와 복제 과정에서 dZ-DNA는 정규 DNA에 비해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규 DNA는 수소결합이 2개인 AT의 비율을 조정함으로써 환경에 적응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저온에 사는 세포 생물은 게놈 DNA에서 AT의 비율을 높여 전사와 복제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온천 같은 고온 환경에 사는 고생물 가운데 여전히 dZ-DNA를 지닌 종류가 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지구 어딘가에 이런 세포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시아노파지 S-2L을 비롯한 몇몇 바이러스의 게놈은 아데닌(A) 대신 2-아미노아데신(Z)을 쓴 dZ-DNA로 이뤄져 있다. 최근 이들 바이러스 게놈의 PurZ 유전자와 DpoZ 유전자가 dGMP에서 dZTP을 만드는 과정과 게놈복제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로 밝혀졌다. dZ-DNA의 ZT 염기쌍은 수소결합(점선) 3개로 이뤄져 있다. 사이언스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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