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러나 '아직'/시대의 징조

기후위기의 마지노선, 심해가 끓고 있다

heojohn 2021. 8. 28. 23:29

2021.02.13 12:00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의 한 장면. 투모로우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해류가 제대로 흐르지 못해 급작스러운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21세기폭스사 제공

 

바다는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도록 이끈 원동력이자 안식처다. 그런 바다가 기후변화 위기에 직면했다. 널리 알려진 표층 수온이나 해수면 상승 이야기가 아니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 심해마저 기후위기에 따른 수온 상승에 몸살을 앓고 있다.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에 전 세계 190여 개국이 모여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약속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파리협정이다.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대기 평균기온 상승을 2.0℃ 이하로 제한하고, 나아가 상승 폭이 1.5℃을 넘지 않도록 전 세계가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파리협정은 2016년부터 효력이 발생했고 교토의정서가 만료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된다. 한국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전 세계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균기온은 계속해서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연중평균기온은 2016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해양생태계의 변화 역시 심각하다. 어류자원의 변화와 잦아진 자연재해 등 위기를 체감하게 해주는 현상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심해 수온 상승, 수십 년 지속될 것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발표한 지난해 육상과 바다의 평균 온도. 붉은색이 진할수록 높은 온도를, 푸른색은 낮은 온도를 나타낸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제공

 

수온 상승은 기후위기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1월 13일 국제학술지 ‘대기과학 발전’에 발표된 바다 수온 측정 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바다의 평균 표층 수온은 195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표층을 넘어서 심해까지 온난화의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수심 200m보다 깊은 곳을 의미하는 심해는 아직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 중 하나다. 바다는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넓고 바닷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마다 압력이 증가해 사람이나 관측장비를 심해로 내려보내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심해 환경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심해에서 일어나는 해류순환은 지구의 에너지 순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적도의 따뜻한 표층 해류가 극지방으로 열에너지를 운반하면 극지방에서 이 물이 식어 심해로 흘러가고 다시 적도 지역에서 용승해 열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순환이 이뤄진다.

 

그런데 이런 순환이 기후변화로 끊길 위험에 처했다. 지난해 5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는 앞으로도 심해 수온의 변화가 이어지고 이로 인해 해양생태계와 지구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아이작 브리토-모랄레스 호주 퀸슬랜드대 지구 및 환경과학과 연구원팀은 기후변화를 예상할 때 사용하는 ‘일반순환모델(GCM)’을 이용해 심해 수온의 변화를 예상했다. 그 결과 당장 육상에서 온실가스의 배출이 감소하더라도 심해 수온은 205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doi: 10.1038/s41558-020-0773-5

 

심해와 표층 해류는 전 지구적으로 순환하며 에너지와 물질을 운반한다. 푸른색은 심해의 해류를, 붉은색은 표층 해류를 나타낸다. Brisbane 제공

 

심해 수온 상승이 위험한 이유는 대기와 심해 사이의 순환을 통해 온도가 낮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다 표층은 대기와 맞닿아있어 물질과 에너지 교환이 빨리 일어난다. 하지만 대기와 심해는 해류를 통해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는만큼 순환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전 지구적으로 순환하는 해류 대순환의 경우, 이동 속도가 초속 10cm 수준으로 매우 느리다.

 

심해는 대기, 표층으로부터 온 물질과 에너지를 교환하며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심해는 부피 기준으로 전체 바다의 90~95%에 이른다. 온실가스 등 환경오염물질이나 열에너지 대부분도 심해에 보관된다. 지구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심해 환경은 지구의 에너지 저장고로 지구가 흡수하는 전체 태양에너지의 90% 이상이 저장된다”며 “여기에 전 지구 기온 상승으로 인한 에너지가 추가돼 심해에 저장된 막대한 양의 열에너지가 방출되기 위해서는 바다 표층이나 대기와 비교해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해 수온 상승에 따른 생태계 변화는 기후속도(Climate velocity)를 통해 알 수 있다. 기후속도는 기후변화에 따라 생물 종의 서식지가 이동하는 속도를 의미한다. 연구팀이 당장 온실가스 총 배출이 없어지는 상황을 가정해 분석한 결과 2050년 이후의 바다 표층 기후속도는 연간 약 6.03km다. 기후변화에 따라 표층 생물 종이 매년 6.02km씩 서식지를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심해의 평균 기후속도는 연간 약 76.47km로 표층 기후속도의 12배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남 교수는 “심해 생태계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양한 생물이 살고 상호작용하며 전체 해양생태계와 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며 “심해에서 생물 이동이 본격화되면 지구 전체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해 수온 상승 그대로 두면 재앙 올 것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연구팀이 심해 생태 연구를 위해 음파탐지기를 입수시키고 있다. 이처럼 심해 환경 연구를 위해서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제공

 

미국국립해양대기청(NOA A)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남대서양의 수심 1360~4757m의 심해 수온을 측정한 결과를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지오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측정한 10년간 심해 수온의 변화는 0.02~0.04℃ 수준으로, 대기와 표층 수온의 변화에 비하면 미미해 보인다. doi: 10.1029/2020GL089093

 

하지만 심해는 상대적으로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아 작은 온도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평소 심해 수온 변화는 0.001℃ 수준으로 0.04℃의 수온 변화도 결코 작지 않다. 에너지 순환과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심해의 온도 상승이 계속된다면 지구 환경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심해에 녹아있는 만큼 수온 상승에 따라 방출된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할 수 있다. 심해는 기압이 높고 수온은 낮아 기체가 녹아 있기에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빙하기 시기에 지구 대기에서는 이산화탄소가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연구자들은 이때 사라진 이산화탄소가 심해에 저장돼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이산화탄소가 일시에 배출되면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심해 연구에 사용하는 압력계 장착 역전 에코사운더(PIES)의 모습. 심해 연구자들은 수온, 염분 등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바다 아래로 내려보내 데이터를 수집한다. (출처 NSF-OOI/UW/CSSF, Dive1739, V14)

 

심해 해류에 교란이 생기며 전 지구적인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해류 변화의 가장 가능성 높은 원인은 극지방에서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의 염도를 낮추는 현상이 꼽힌다. 하지만 수온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해류의 변화가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관찰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해류의 변화를 분석한 중국과학원 해양연구소의 지난해 2월 ‘사이언스’ 논문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3년까지 25년 동안 태평양 지역에서는 해류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대서양에서는 해류가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 교수는 “심해 해류순환의 원동력은 염류와 온도에 따른 밀도 차이인 만큼 심해 수온 변화는 해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해류는 지구 에너지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해류에 교란이 생기면 2004년 개봉한 영화 ‘투모로우’처럼 이상기후와 자연재해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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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2월호, 기후위기의 마지노선, 심해가 끓고 있다

https://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2102N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