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러나 '아직'/시대의 징조

북극 폭염과 텍사스 한파, 아마존 산불과 육식 선호.."모든 재난은 연결돼 있다"

heojohn 2021. 9. 8. 20:52

김한솔 기자 입력 2021. 09. 08. 19:37 수정 2021. 09. 08. 20:04 댓글 4

 

유엔 산하 연구기관 '상호 연결된 재해 위험 2020/2021' 보고서

[경향신문]


북극 빙하를 녹인 폭염과 미국 텍사스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일으킨 한파, 코로나19와 방글라데시 접경지역에 닥친 사이클론 암펀, 브라질 아마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에서 중국의 주걱철갑상어 멸종까지. 지난 1년 전세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별개의 재난들이 탄소 배출과 환경 파괴를 고리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유엔산하 싱크탱크의 보고서가 나왔다.

독일 본에 위치한 유엔 산하 환경 재해 연구기관인 유엔대학 환경 및 인간안보연구소(UNU-EHS)는 8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상호 연결된 재해 위험 2020/2021’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우리 모두에게”

“아무도 섬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우리 모두에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보고서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일어난 10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재난을 분석, 재난과 재난 혹은 개인과 재난이 밀접하게 연결돼있음을 밝혀냈다.

2020년은 전세계 기온이 기록적으로 높은 해였다. 북극권 베르코얀스크의 기온은 38도까지 올라갔다. 빙하가 녹아 북극을 덮은 해빙의 양은 역대 두 번째로 적었다. 북극의 온도가 높아지자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모여있는 ‘극 소용돌이’의 움직임이 불안정해졌다. 극 소용돌이에 갇혀있던 찬 공기는 그대로 북아메리카 쪽으로 남하했고, 미국 텍사스 주에 이례적인 한파가 시작됐다. 갑작스러운 폭설과 한파에 전력 수요가 늘면서 텍사스의 전력망은 무너졌다. 자체 전력망을 가진 텍사스는 다른 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도 없었고, 결국 400만명의 전기가 끊겼고 210명이 추위로 사망했다.

어떤 재난은 다른 재난과 결합해 더 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남서부 숀도르브 지역에 사는 이들의 절반 가량은 빈곤층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치자 해외에서 일 하던 많은 이들이 수입이 끊겨 본국으로 돌아왔고, 격리 기간 동안 사이클론 대피소에 수용됐다. 1999년 이후 가장 강력한 사이클론인 ‘엄펀’이 몰아쳤지만 주민들은 격리자들이 모여 있는 대피소를 기피했다. 여기에 사이클론은 6000개에 가까운 1차 건강센터를 망가뜨렸고, 이 지역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대유행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사이클론 엄펀으로 이 지역에는 100명이 넘는 사상자와 130억 달러 이상의 피해, 그리고 49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최근 몇년 간 아프리카 지역에서 최악의 식량 손실을 일으키고 있는 ‘사막 메뚜기떼’도 사이클론과 연결되어 있다. 1㎢를 뒤덮을 만큼 많은 사막 메뚜기떼는 하루에 3만5000명분의 곡류를 먹어치우고 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사이클론들이 사막 메뚜기떼의 번식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사이클론의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간 메뚜기떼들의 활동 범위도 넓어졌다. 기후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높아지면서 태풍의 에너지원인 사이클론의 빈도와 강도는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의 주 저자인 UNU-EHS 수석과학자 지타 세베스바리 박사는 “사람들은 뉴스에서 재난을 접하면 나와는 멀리 있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수천㎞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재난도 서로 관련이 있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불에 탄 브라질 아마존. 보고서 갈무리.


■개인도, 개인의 행동도 재난에 연결돼 있다

재난은 개인의 행동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 ‘육식’을 선호하는 개인의 선택은 브라질 아마존 산불의 원인이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불 탄 아마존 우림의 면적은 피지섬의 크기보다 크다. 숲이 줄어들자 한때 ‘지구의 허파’였던 아마존은 이제 흡수하는 탄소량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배출원이 됐다. 보고서는 아마존 산불의 원인으로 전지구적인 육식 소비를 들었다. 육식은 어떻게 아마존 산불 증가로 이어질까. 아마존에서 산불은 숲을 농경지로 전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경지에서 재배된 콩의 77%는 닭 등 가금류를 위한 동물 사료로 쓰인다. 보고서는 “비록 고기가 아마존에서 직접 생산되진 않지만, 세계적 공급망들의 상호 연결을 통해 아마존 파괴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빙하기를 버텨냈던 중국의 주걱철갑상어는 인간의 남획과 대형 댐 건설로 멸종했다. 주걱철갑상어의 자연 서식지인 양쯔강에는 대형 댐이 여럿 건설됐다. 보고서는 “댐이 주걱철갑상어 멸종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주요한 원인”이라며 “2억년 동안 존재했던 주걱철갑상어는 인류의 과잉소비와 개입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2020년 멸종된 것으로 선언됐다”고 했다.

■“문제가 연관돼 있다면 해결책도 연관되어 있다”

보고서는 재난의 상호 연결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근본 원인을 도출했다. 인간이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저평가 된 환경비용과 의사결정 편익’, ‘불충분한 재난 위험 관리’가 대표적인 3가지 원인이다. 이를테면 온실가스 배출은 북극 폭염을 일으켰고, 텍사스의 한파로 이어졌다. 규제를 피해 비용을 아끼려고 자체적인 전력망을 구축했던 텍사스에는 갑자기 닥친 한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재난 관리 실패로 다수의 사망자를 낳게 되는 흐름이다.

보고서는 이처럼 상호 연결된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난의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절충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의 다른 주저자인 잭 오코너 박사는 “우리가 전세계에서 목격하는 재난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또한 개인의 행동과도 연관되어 있다”면서 “하지만 좋은 소식은,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면 해결책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