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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인류세’ 선언 예정... “1950년부터 인류가 자연 압도”

heojohn 2023. 8. 20. 01:21

 

2023.08.18 15:25

세계지질과학총회

장태수 교수가 18일 HJ비즈니스센터 광화문점에서 지질시대 '인류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학기자협회 제공.

올해 7월 전세계 기온은 관측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캐나다, 하와이 등에서는 역대급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는 지구온난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구온난화는 인류의 이산화탄소 배출과 상관관계에 놓여있다. 지구가 인류의 영향을 받는 '인류세'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다. 

 

지구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한 것을 ‘지질시대’라고 한다. 지질 연대별로 누대, 대, 기, 세, 절 등의 단위로 나누는데 현재는 ‘신생대-제4기-홀로세-메갈라야절’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홀로세 다음 인류세를 맞이해야 할 때라는 지질학계 목소리가 나온다. 

 

 

인류세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이자 대기화학자인 폴 J. 크루첸 전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연구소 연구원이 2000년 처음 제안한 지질시대 용어다. 지질학자가 아닌 대기화학자가 지질시대 신조어를 만든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지구 생태계와 환경을 바꾸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태수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8일 열린 ‘지질과학총회 기자간담회’에서 “인간은 250만 년 전 등장해 자연에 적응하고 융합, 순응해왔다”며 “인간이 하나의 생물종 역할을 해왔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자연을 바꾸는 조절자 역할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인류세 등장 전까지는 인간이 아닌 자연이 스스로 지구 환경을 조절해왔다는 설명이다. 천문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지구의 공전, 자전축 기울기의 영향을 받아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빙하기, 간빙기 등을 맞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밀란코비치 이론’이라고 한다. 장 교수는 “이 이론을 대입하면 앞으로 언제 빙하기 등이 도래할지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며 “미래는 이 이론에 맞춰 이미 결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단, 이 이론에서 벗어나 급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일어날 때가 있다. 화산이 폭발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변하면서 기후가 바뀐다. 이러한 불규칙한 상황을 제외하면 대체로 천체 운동동을 통해 지구가 알아서 기후를 조절해 나간다. 

 

그런데 자연이 아닌 또 다른 인자가 기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포착되고 있다. 산업혁명과 함께 석탄, 석유 사용이 늘고 인간 스스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기후가 바뀌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현재가 바로 ‘인류세’라는 것. 

 

국제지질과학총회(IUGS)는 2009년 ‘인류세 실무그룹(AWG)’을 출범하고 지난 15년간 인류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류세 표식지(인류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 퇴적층) 후보 12곳을 선정했으며, 지난 7월 캐나다 크로포드 호수 퇴적층을 인류세 표식지로 최종 선정했다. 

 

인류세 시작점은 1950년으로 보고 있다. 크로포드 호수 퇴적층을 살핀 결과, 이 시기부터 인간의 영향을 받은 퇴적층이 확인됐다. 20세기 중반은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농도가 급작스럽게 상승한 시점이기도 하다. 1950년 이산화탄소 수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을 ‘폭발적 가속화’라 부른다. 인류가 자연을 압도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방사성 낙진(핵폭발 후 주변 땅에 떨어진 방사성 물질)도 인류세를 결정하는 주요 지표다. 1950~60년대 특히 원자 폭탄 실험이 많이 진행됐는데, 그 결과물이 전 지구적으로 흔적을 남겼다. 방사능 물질 ‘플루토늄’은 1960년대 검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인류세 연구를 위해 글로벌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남대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와 함께 ‘인류세 국제공동연구 프로젝트’를 꾸렸다. 이 프로젝트의 오스트리아 수장은 마이클 와그리치 비엔나대 지질학과 교수로, AWG 구성원이다. 내년에 부산에서 열리는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IGC)’에서 두 대학은 인류세 세션을 공동으로 주관할 예정이다. 

 

인류세에 대한 국내 자체 연구도 진행 중이다. 한강에서 밀려온 퇴적들이 쌓여있는 강화도 조간대와 중국으로부터 산업 오염 물질이 흘러 들어오는 이어도에서 인류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이어도 해역 1차 조사에서는 높은 수은 함량이 측정됐다. 

 

IGC 조직위원회는 내년 부산에서 열리는 2024 IGC에서 인류세를 공식적으로 선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현재 IUGS에게 해당 내용을 제안했으며 조율 과정에 있다. 

문세영 기자moon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