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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항해

heojohn 2020. 10. 1. 09:02

[사이언스N사피엔스]

2020.10.01 06:00

 

만년의 찰스 다윈.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다녀온 후 무려 18년 이상 은둔하다시피 하며, 진화론의 여러 이론을 다듬어갔다. 위키피디아 제공

 

인간이 가지는 궁극적인 궁금증 중의 하나는 기원에 관한 것이다. 지구의 기원, 우주의 기원, 그리고 우리 인간의 기원 등이다. 과학의 역사는 간단히 말해 이 기원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해 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에 관해 최초로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은 역시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신체부위에 관하여》, 《동물의 역사》 등에서 생물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분류했다. 그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는 18세기까지 군림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한 개념 중에 ‘존재의 큰 사슬(The Great Chain of Being)’이라는 것이 있다.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까지 하나의 큰 사슬처럼 위계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개념이다. 사슬의 최상위에는 인간이 있고 태생이냐 난생이냐, 온혈이나 냉혈이냐 등의 기준으로 동물들이 사슬을 빈칸 없이 채우고 있다. 사슬의 각 단계별로는 전환이나 이동이 없다. 존재의 큰 사슬이 중세의 종교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인간 위에 천사가 있고 그 위에 신이 있으면 완벽하다.


근대적인 생물분류법을 제시한 사람은 스웨덴의 칼 폰 린네(1707~1778)였다. 린네는 1735년에 출간한 《자연의 체계》에서 식물을 분류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책의 초판은 12쪽이었으나 훗날 개정판에서는 천 쪽이 훨씬 넘을 정도로 방대해졌다. 이후 1746년에 출간한 《스베치카의 동물》에서 6개의 강(포유, 조류, 양서, 어류, 곤충, 벌레)으로 동물을 분류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간을 유인원과 함께 같은 속으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같은 급으로 분류한 것은 린네가 처음이었다.


1753년에는 《식물의 종》을 출간했다. 여기서 린네는 생물의 학명을 붙이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명법이라 불리는 이 명명법에서는 해당 생물의 라틴어 속명(명사형)과 종명(형용사형)을 이 순서대로 붙여 부른다. 즉,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면 호모 속의 사피엔스 종의 생명체란 뜻이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분류하다보면 어느 카테고리에도 포함되지 않는 변종들을 접하게 마련이다. 변종, 또는 잡종의 존재는 린네에게 충분히 당황스러웠다. 그는 여전히 창조주가 세상의 모든 종을 만들었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잡종이나 변종은 자연에 너무 흔하다. 린네 자신이 잡종을 만들어내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생물의 종이란 신이 창조한 이래 고정불변이라기보다 현실의 자연에서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린네는 종의 가변성을 받아들였다.


린네와 거의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프랑스의 조르주루이 르클레르 드 뷔퐁(1707~1788)은 진화론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36권에 달하는 《자연의 역사》라는 책을 써서 (훗날 제자들이 8권 추가) 자연의 삼라만상은 자연 속의 원인에 따른 것이며 모든 것이 연속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념 때문에 뷔퐁은 린네의 분류법을 지지하지 않았다. 연속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서로 다른 모습의 다양한 종들도 원래는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쉽게 이를 수 있다. 현재의 다양한 종이 공통조상에서 유래했다는 발상은 근대적인 진화의 개념과 일치한다. 다만 뷔퐁은 진화가 아니라 퇴화의 관점에서 종의 변화를 생각했다. 그래서 비교해부학으로 퇴화기관을 연구했고, 유인원은 인간이 퇴화한 결과라는 놀라운 주장까지 내놓았다. 훗날 다윈은 뷔퐁을 “근대 최초로 종의 기원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과학자”로 평가했다.

 

한편 뷔퐁은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기도 했다. 뷔퐁은 태양이 혜성에 부딪혀 그 일부가 떨어져 나와 지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지구가 아주 뜨거웠을 때부터 식는 데에 얼마나 걸리는지를 각종 금속과 광석을 달구었다가 식히는 실험을 통해 추정했다. 뷔퐁이 얻은 나이는 약 10만년이었다. 이 값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의 나이인 약 46억년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에 적힌 대로 지구와 우주의 나이를 6천년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나름 과학적인 실험과 추론으로 성경을 뛰어 넘는 시간척도를 제시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방사성 원소가 발견되기 전인 19세기 말까지도 지구의 나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체계적인 이론으로서의 진화론을 처음 정립한 사람은 프랑스의 박물학자이며 뷔퐁의 애제자였던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1744~1829)였다. 라마르크는 생물학, 무척추동물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으로 1801년 《무척추동물의 분류 계통》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는 무척추동물을 연구하면서 생물종의 진화 개념을 발전시켰다. 라마르크의 진화이론은 1809년에 출간된 《동물철학》에 잘 담겨 있다. 라마르크는 두 가지 요소로 진화를 설명했다. 첫째, 생명체는 선천적으로 더 복잡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둘째, 환경이 생명체를 적응시키는 힘이 작용한다. 이때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떤 기관을 더 사용하기도 하고 덜 사용하기도 한다. 그 결과 많이 사용한 기관은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 한 개체에서 일어난 이런 변이는 후대에 전해진다. 이를 용불용설이라고 한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를 용불용설은 아주 쉽게 설명한다. 즉, 고대의 사슴이 더 높은 가지의 나뭇잎을 먹기 위해 목을 늘린 결과 현대의 기린처럼 목이 길어졌다는 논리이다. 용불용설의 핵심은 용불용의 결과로 생긴 기관의 변이가 유전된다는 점이다. 변이가 유전되지 않으면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획득형질의 유전을 인정하는 주장이라 현대 진화론과는 맞지 않는다.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면, 예컨대 열심히 근력운동을 해서 ‘몸짱’이 되면 그렇게 발달된 근육이 자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용불용설은 라마르크가 효시라고 할 수는 없다. 획득형질의 유전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는 통념이었다. 라마르크는 용불용설을 하나의 요소로 포함해 과학이론으로서의 진화론을 정립했다.


라마르크가 《동물철학》을 발간했던 1809년 영국에서는 찰스 다윈(1809~1882)이 태어났다. 이해에 하이든이 사망했으며 멘델스존과 소설가 앨런 포가 태어났고, 다윈이 태어난 2월12일 미국에서는 링컨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의사였고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은 의사이자 생물학자이면서 시인이자 발명가로 이름이 높았으며 초기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다윈은 특별한 구석 없이 아주 평범한 삶을 살았다. 여느 의사집안과 마찬가지로 다윈도 의대진학을 종용받고 에든버러 대학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 비위가 약해 해부실습이 힘겹기도 했고, 마취제가 없던 시절이라 비명이 난무하는 수술참관도 어려워했다고 한다.

 

픽사베이 제공

 

이 무렵 다윈은 박물학에 관심 있어 관련 활동을 하기도 했다. 부모의 다음 욕심은 목사였다. 다윈은 그 뜻에 따라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대 신학부에 입학했다. 다윈은 여기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16세기 갈릴레오도 그랬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의 욕망은 한결같이 의대 아니면 법대이다. 그러나 또한 한결같이 자식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윈은 케임브리지에서 시간낭비만 했다고 투덜거렸지만 거기서 존 스티븐스 헨슬로라는 식물학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다윈은 헨슬로의 추천으로 자신의 일생을 뒤바꿀 여정을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31년부터 5년 동안 다윈은 영국 해군 탐사선 비글호에 무급 박물학자 자격으로 승선해 세계일주 항해에 동행했다. 27세의 젊은 선장 피초로이가 이끄는 비글호의 주된 임무는 남미 해안선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대영제국이 가장 활발하게 식민지 경영에 나설 때였다. 지도제작은 제국주의가 세계로 뻗어나가 위한 필수작업이었다. 비글호는 남미 해안을 돌아 대륙 서쪽에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를 거쳐 호주와 남아프리카를 경유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 뒤 1839년에는 《비글호 항해기》를 출판했다.


잘 알려진 대로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거치며 생물종의 진화에 대한 생각을 촉발할 수 있었다. 특히 갈라파고스 제도의 독특하고 다양한 생물들--대형 거북, 바다이구아나, 핀치새 등--은 다윈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애초에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검은새, 휘파람새, 굴뚝새 등 여러 종류의 새로 추정되는 표본을 채집했다. 지금은 다윈핀치라 알려진 이 새들을 정작 다윈 자신은 핀치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표본수집에 다소 소홀하기도 했었다.


다윈이 채집한 새들의 정체를 밝힌 것은 비글호 항해가 끝난 뒤 다윈에게서 표본을 넘겨받아 조사했던 영국의 조류학자 존 굴드였다. 굴드는 다윈이 채집한 새들이 핀치의 새로운 종(변종이 아니라)들이라고 판정했다. 원래 조상이 같은 핀치였는데 갈라파고스 각 섬의 환경에 따라 다양하고도 새로운 종으로 갈라졌다면 종의 안정성 또는 불변성을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 흔히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양한 종류의 부리를 가진 핀치를 보고 현지에서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마냥 진화론을 떠올렸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윈이 자신의 진화론을 정리하기까지는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주었고 시간도 꽤 걸렸다. 여기에는 당대의 지질학자였던 찰스 라이엘(1797~1875)과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1766~1834)도 포함된다. 라이엘은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떠날 때 자신의 저작인 《지질학 원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책은 성경에 적힌 대로 지질의 역사를 기술하려는 창조론적 지질학과 결별하고 과학적인 지질학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였다. 라이엘의 말을 빌면 “홍수론자들을 침몰시키기” 위한 저작이었다.


라이엘에 따르면 과거 지질학적 변화는 현재의 지질학적 변화를 야기하는 자연의 법칙과 똑같은 법칙이 작용된 결과이다. 이를 동일과정설이라고 한다. (동일과정설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라이엘이 태어난 해에 세상을 떠난 제임스 허턴이었다.) 한마디로 《지질학 원리》는 지질학을 신학이나 초자연적 서사에서 탈출시켜 과학으로 해방시킨 책이다. 현재의 지구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작용이 점진적이고 느리게, 그러나 오래 축적되면 긴 시간에 걸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대비되는 학설이 격변설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지질학적 구조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의 급격한 변화로 형성되었다는 이론이다.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는 성경의 주장은 격변설과 더 잘 어울린다.


평범한 자연의 법칙에 따른 오랜 세월에 걸친 지구의 변화라는 라이엘의 철학은 다윈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특히 지층 속의 다양한 생물화석은 시대별 생물과 지층의 변화를 보여주는 타임라인과도 같아서 다윈의 흥미를 끌었다.


한편 라이엘이 태어난 이듬해에 출간된 맬서스의 《인구론》도 다윈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한 마디로 말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식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사람들이 엄청난 생존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이 극한 환경에 잘 적응한 자들은 살아남겠지만 취약한 사람들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다윈이 《인구론》을 읽은 것은 《비글호 항해기》가 나오기 전인 1838년이었다. 생존경쟁, 적응과 도태 등의 개념은 다윈이 자신의 진화론을 구축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를 끝내고 영국으로 돌아온 직후인 1837년에 종의 변형에 관한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1842년에는 35쪽짜리 진화론에 관한 개요를 썼고 이를 바탕으로 1844년에는 책자 분량의 원고로 정리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이후로는 따개비의 생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 1854년 그 결과를 책으로 발표했다. 이후 라이엘 등 주변의 강력한 권고로 다윈은 종의 전환에 관한 기록과 자료를 정리했고 1856년부터 본격적으로 《종의 기원》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매사에 꼼꼼한데다 더 이상 논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결과물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다윈의 작업 진도는 빠르지 않았다.


그러던 1858년 6월의 어느 날, 다윈은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1823~1913)라는 박물학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월리스는 탐험가이면서 박물학자로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주인공 인디애나의 박물학자 버전쯤 되지 않을까 싶다. 월리스는 당시로서는 영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오지를 탐험하며 동식물 표본을 수집했고 그 결과를 책이나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1854년부터 62년까지 8년 동안 진행된 말레이군도 탐험이었다. 이 시기에 채집한 동물표본만 12만점이 넘었고 수십 편의 논문도 투고했다.


그 중에서 특히 종의 기원을 다룬 두 편의 논문이 1855년과 1858년에 나왔다. 55년 논문에서는 생물종이 가지치기 하듯이 진화를 통해 다양하게 분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진화의 메커니즘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58년 논문은 《원래 유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려는 변종들의 경향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다윈의 편지에 동봉되었다. 둘은 이전부터 편지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월리스는 편지에서 다윈의 논평과 함께 라이엘의 논평도 부탁했다. 이 논문에는 자연선택을 주 내용으로 다윈이 구상했던 진화론의 메커니즘이 거의 그대로 담겨 있었다. 다윈이 큰 충격을 받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다윈과 가까이 지내던 라이엘과 식물학자 조지프 후커가 나섰다. 이들은 월리스의 논문과 함께 다윈의 42년 및 44년 원고를 하나로 묶어 린네학회에 보냈다. 저자란에는 다윈과 월리스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논문은 별 탈 없이 발표되었다. 이 과정에서 라이엘과 조지프는 월리스에게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월리스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빨리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진화론이라고 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우선권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결말이 해피엔딩이라 큰 논란이 일지는 않았다. 당사자인 월리스는 라이엘과 후커의 이런 결정에 반발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환영했다. 다윈과 월리스의 학계에서의 비대칭적인 지위도 아마 작용을 했을 것이다. 다윈은 이미 학계에서 이름이 높은 학자였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월리스는 58년 자신의 논문을 다윈에게 보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를 수는 있으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학자가 이름이 높은 학자와 함께 공동저자로 논문을 발표할 수 있다면 그건 전자에게 엄청난 기회이면서 영광이다. 아마도 당시 월리스의 심정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이 사건이 있은 뒤 다윈은 서둘러 집필 작업을 진행했고 결국 이듬해인 1858년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월리스는 훗날 자신이 58년에 쓴 논문의 가장 큰 결과는 다윈에게 《종의 기원》을 더 빨리 마무리할 수 있게 한 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의 기원: 1859년 11월 출간돼 인류의 세계관을 뿌리째 흔들어놓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오클랜드박물관 제공

 

※참고자료

쑨이린, 《생물학의 역사》(송은진 옮김), 더숲.
조너선 와이너, 《핀치의 부리》(양병찬 옮김), 동아시아.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이필렬 옮김), 새물결.
Jane R. Camerini, Alfred Russel Wallace, Encyclopædia Britannica, January 04, 2020;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Alfred-Russel-Wallace.
이종호, 《천재를 이긴 천재들》, 글항아리.
김영식, 박성래, 송상용, 《과학사》, 전파과학사.
존 그리빈,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과학》(강윤재, 김옥진 옮김), 들녘.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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