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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도 ‘나쁜 말벌’의 얼굴을 알아본다?

heojohn 2021. 1. 28. 17:00

통합적 정보 처리 과정을 통해 전체 얼굴 인식

2021.01.28 10:57 심재율 객원기자

 

벌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사회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숫자가 많아도 질서 있게 움직이고, 어떤 계급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벌은 어떻게 그러한 사회생활을 이끌어갈까?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은 벌이 그 많은 동료 벌의 얼굴을 인식하고 기억하는가 하는 점이다.

말벌(wasp)의 뇌는 마치 인간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다른 말벌을 인식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곤충이 서로의 얼굴을 통합적(holistic) 정보 처리를 해서 인식한다는 첫 번째 증거라고 과학자는 주장했다.

이번 연구는 또한 사회적인 동물이 동료의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도록 진화했는지에 대한 단서라고 과학자들은 말했다.

벌집을 짓고 사는 말벌. © 픽사베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을 구별할 때 코의 모양이나 입술의 형태 같은 특징을 가지고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의 전체적인 특징을 한꺼번에 통합적으로 정보 처리하는 방법으로 인식한다. 사람들은 얼굴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고 사람을 구분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눈, 코, 입, 귀 등을 따로 떼 내어 놓으면 구분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말벌의 인식능력을 파악하는 실험 방법 고안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와 히말라야 원숭이를 포함한 다른 영장류는 인간들과 동일한 통합적 처리 과정을 거쳐 얼굴을 파악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면 곤충이 실제로 서로를 인식할 때 통합적 정보 처리 과정을 거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앤아버 미시간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엘리자베스 티베츠(Elizabeth Tibbetts) 교수 연구팀은 말벌에 대한 안면 인식 실험 방법을 고안했다. 연구팀은 각각의 말벌의 사진을 찍고 얼굴의 안쪽 부분을 변형시켜, 다리, 더듬이, 몸은 같지만 얼굴은 다른 사진 쌍을 만들어냈다.

연구팀은 말벌을 훈련시켜 두 말벌 얼굴 중 하나가 ‘나쁜 말벌’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훈련 기간 동안, 연구팀은 모든 벽에 ‘나쁜 말벌’ 얼굴 사진이 있는 작은 상자에 말벌을 넣었다. 상자 바닥은 가벼운 충격을 줄 만큼 전기가 흘렀다. 전기 충격이 말벌에게 불편함을 일으킬 정도는 되지만, 공포감을 일으켜서 학습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전기 충격이 없는 곳에서도 유사한 실험을 실시했다. 전기 충격이 없는 작은 상자에도 말벌 얼굴 사진으로 도배했다. 그러나 작은 상자 바닥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았다.

환경이 불편하지도 않았고 편안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작은 상자 안에 도배된 말벌 얼굴 사진은 ‘좋은 말벌’이 됐다. 결국 말벌은 ‘나쁜 말벌’과 ‘좋은 말벌’의 얼굴을 인식하는 훈련을 받았다.

말벌의 한 종류인 유럽 말벌 © 엘리자베스 티베츠

 

이어진 다음 단계 실험에서 한쪽 끝에 ‘좋은 말벌’ 얼굴이 있고, 다른 한쪽 끝에 ‘나쁜 말벌’ 얼굴이 있는 조금 더 큰 상자에 말벌을 넣었다. 연구원들은 훈련된 말벌을 상자 중앙에 5초 동안 매달아 주위를 둘러보게 했다. 그리고 말벌을 풀어 놓고 어느 말벌 얼굴 사진으로 다가가는지 지켜보았다.

예상대로 말벌은 곧장 ‘좋은 말벌’ 얼굴 사진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진짜 주목할 실험 결과는 말벌에게 얼굴 전체가 아닌 일부 눈과 코만 보여주었을 때 나타났다.

좋은 말벌, 나쁜 말벌 구분

눈과 코만 떼어 놓은 사진만 본 말벌은, 사진 속의 눈과 코만 가지고는 ‘좋은 말벌’인지 ‘나쁜 말벌’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부분적인 얼굴만 본 말벌은 더 이상 ‘좋은 말벌’만 향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말벌도 얼굴 전체을 보고 좋은 말벌인지 나쁜 말벌인지를 인식한다는 표시이다.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영국왕립학회보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최신호에 발표했다.

사이언스 매거진은 록펠러 대학의 신경과학자 윈리치 프라이왈드(Winrich Freiwald)의 말을 인용하여, 통합 정보 처리가 크고 복잡한 두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 대해 일부 과학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말벌이 통합적으로 정보를 처리했다는 증거로 삼을 수 있는지, 단 한 번의 실험을 가지고 그렇게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호주 국립대학의 심리학자 엘리너 매코네(Elinor McKone)는 “이 실험이 사람이 얼굴 인식을 시험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방법을 영리하게 변형한 것이며, 말벌도 통합적으로 얼굴 전체를 보고 얼굴을 인식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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