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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고대의 하늘

heojohn 2020. 5. 31. 02:32

2019.09.19 14:00

 

                     태양계는 가장 큰 태양과 다양한 크기의 크고 작은 행성으로 구성돼 있다. NASA

 

과학이 충분히 발달한 지금 21세기에도 우리는 여전히 '해가 뜬다', '별이 진다'는 표현을 쓴다. 과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써 왔을 뿐더러 우리의 일상 경험과도 잘 맞기 때문이다. 과학이 태동하기 훨씬 전의 고대 사람들이 지구중심설, 즉 지구는 우주에 고정돼 있고 나머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세계관을 받아들인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 옛날 플라톤은 영원불변의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수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기본적으로 이 체계를 수용했다. 당대에 살았던 에우독소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개의 동심천구를 도입해 천체들의 운동을 설명했다(‘동심천구설’).


각 천체는 자기만의 투명한 수정천구에 붙어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고 있었다. 천체가 수정천구에 붙어 있으면 지구로 추락하지 않는다. 또한 그 상태로 완벽한 원운동만 한다면 지구에서 관측한 천체의 운동은 등속원운동만 가능할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이 천상을 가득 채운 제5원소, 즉 에테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는 완벽했던 만큼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천체들이 완벽한 원으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천체 중에는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등 겉보기 밝기가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원운동 여럿을 조합하면 불규칙한 운동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아폴로니우스와 히파르코스는 여러 개의 보조원 등을 도입해서 정교하게 지구중심설을 구축했다.


이 성과를 그대로 이어받아 집대성한 사람이 프톨레마이오스였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서기 150년경에 《천문학 대전》을 써서 지구중심설을 완성했다. 이 책은 고대 천문학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천문학 대전》은 훗날 9세기 초반 이슬람 세계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어 훨씬 더 유명해졌다. 아랍어 본의 이름은 《알마게스트》로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뜻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방식은 좀 복잡하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설명한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태양과 행성의 복잡한 움직임. 위키피디아 제공

 

먼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행성의 움직임이었다. 행성(行星)은 순우리말로 떠돌이별이라 한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아주 멀리 있는 별을 배경으로 해서 바삐 움직이는 별이 행성이다. 고대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천체는 모두 별이어서 현대적인 개념의 별과는 조금 다르다. 예컨대 금성은 ‘샛별’이고 지구는 ‘우리별’이 아닌가. 행성이 스스로 빛을 내지 않고 태양빛을 반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후대의 갈릴레오였다.


밤하늘에 바삐 움직이는 행성으로는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렇게 일곱이 대표적이다. 동양에서의 음양오행이 여기 대응된다. 영어에서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에 그리스 신화의 신들 이름이 붙는다. 머큐리(Mercury)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 비너스(Venus)는 미의 신 아프로디테, 마스(Mars)는 전쟁의 신 아레스, 주피터(Jupiter)는 최고의 신 제우스, 새턴(Saturn)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행성은 주전원이라고 하는 가상의 원 주위를 돌고, 주전원의 중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복잡한 운동을 한다. 이때 주전원의 중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궤적을 이심원이라고 한다. 지구는 이심원의 중심인 이심에 있지 않고 약간 비껴나 한쪽에 치우쳐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세팅한 이유는 물론 행성의 운동을 관측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지구가 이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행성의 운동 속도가 일정하지 않거나 밝았다가 어두워지는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행성이 주전원 주위를 돌면서 주전원의 중심이 다시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에 지구에서 봤을 때 행성이 꽈배기 모양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행성의 꽈배기 운동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 유명한 화성의 역행운동 때문이다. 지구에서 화성의 운행을 관측하면 한쪽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원래 방향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체적인 궤적인 한번 꼬인 꽈배기 모양이다. 태양중심설에서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안쪽 궤도를 돌고 화성이 바깥쪽 궤도를 돌면 공전 주기가 적당히 다를 때 지구에서 관측되는 화성의 역행운동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서도 주전원을 도입하면 화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 화성의 사례는 원운동의 복합적인 운동으로 얼마나 다양한 운동을 기술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가 새로 도입한 개념도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심원의 내부에 동시심(equant)이라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심은 이심을 가운데로 해서 지구와 대칭되는 위치에 존재한다. 동시심은 천체가 항상 일정한 각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관측되는 지점이다. 지구에서 관측한 천체는 일정한 각속도로 움직이지 않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산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행성은 주전원 주위를 돌고, 주전원의 중심은 이심을 기하학적 중심으로 하는 커다란 이심원 주위를 돌고, 이심에서 조금 벗어난 동시심을 중심으로 일정한 각속도로 운행한다. 이 결과를 이심에 대해 동시심과 대칭적인 위치에 있는 지구에서 바라보면 실제 관측한 행성의 운동을 잘 설명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체관에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고정돼 있다. 자전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구 또한 둥근 공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의 아리스토텔레스도 월식이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현상임을 인식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다. 달을 가린 지구의 그림자가 둥글기 때문이다.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무위키 제공

 

지금도 일부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번은 모 공중파 방송사에서 지구평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과학자가 각각 세 명씩 함께 만나서 토론하는 자리에 나간 적이 있었다. 원래 그 프로그램은 지구평면설의 허구성을 취재하던 중이었는데 이 주장을 펼치는 분들이 전문 과학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그날의 대화는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했다. 그분들은 방송에서 과학자들과 만나 얘기를 나눈 것 자체를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 쓰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가령 이분들은 우주에서 찍은 수많은 지구 사진을 모두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조작품이라고 치부했다.

 

NASA가 지구가 평평하다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우주에서 찍은 모든 사진을 검열해서 공 모양의 지구로 만들어 배포한다는 얘기이다. 이분들의 이런 주장을 미리 알고 있던 나는 중국 우주선이 우주에서 찍은 사진을 검색해 거기에 찍힌 둥근 지구를 보여주었다. 중국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진실을 숨기려는 NASA의 음모에 동참할 리가 없으니 이 사진도 조작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게 내 주장이었다. 그분들은 이 사진을 한 번 검토해 보겠다고 했으나 아마도 새로운 음모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2300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금 이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방송 녹화하는 내내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날 두 시간에 걸쳐 녹화한 내용 중 본 방송에 나간 분량은 약 30초였다.

 

                                     1968년 12월24일 아폴로8호가 찍은 ‘지구돋이(Earthrise)’. NASA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는 지구의 가장 가까운 곳에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 여기서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상계가 시작된다. 달 바깥쪽에 수성과 금성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다. 태양은 금성 바깥에서 지구 주위를 돈다. 그 바깥쪽으로 화성, 목성, 토성이 차례로 위치해 있다. 오랜 경험으로 사람들은 수성과 금성이 태양 주변에서 일정한 각도 이상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 최대 이각이라 한다. 태양중심설을 가정하고 지구 안쪽 궤도에 수성과 금성이 있다고 세팅하면 이 두 행성이 최대 이각을 가지는 이유를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에서는 수성과 금성의 최대 이각이 자연스럽게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할 방법이 없지는 않으나 조금 거추장스럽다. 수성과 금성의 주전원의 중심이 지구와 태양을 잇는 직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수성과 금성이 자신의 주전원 주위를 돌더라도 지구에서 봤을 때 태양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가장 바깥쪽 천구에는 항성이 붙어 있다. 항성은 우리말로 붙박이별이라고 한다. 너무 멀리 있어서 언제나 같은 곳에 있는 것으로 관측되는 별들이다. 행성은 이 항성천구를 배경삼아 밤하늘을 돌아다닌다. 이를 포함한 모든 천구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를 돈다. 한편 프톨레마이오스는 천 개가 넘는 항성의 위치 및 밝기를 조사해 항성표도 만들었다.


고대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전혀 없지 않았다. '제9화 헬레니즘 시대의 과학(바로가기)'에서 소개했듯이 헬레니즘 시대의 아리스타르코스는 이미 태양중심설을 주장했었다. 그럼에도 결국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이 1,500년을 지배했다. 관측결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천구의 개수가 수십 개에 이르는 등 상당히 복잡했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무엇보다 그때까지 관측한 결과를 대체로 잘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연주시차 문제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태양이 돈다.”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도 잘 맞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써서 '천문학 혁명'을 촉발한 해는 1543년이었다.

 

참고자료

-김영식 외, 과학사, 전파과학사
-김성근, 교양으로 읽는 서양과학사, 안티쿠스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