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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국을 점령한 공포의 뱀대가리

heojohn 2021. 9. 15. 00:32

[수요동물원] 

정지섭 기자 입력 2021. 09. 15. 00:00 댓글 23

 

1990년대 사육·관상어로 들여온 가물치 미 전역으로 퍼져
산성수·바닷물 등 극한환경에서도 생존해나가
미 정부의 당부 "잡았다면 놔주지말고 얼려죽이라"

 

작년 1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물고기 판매업을 하는 두 사람이 검찰에 전격 체포됐습니다. 이들이 판매하던 물고기 중에는 현행법상 허가받지 않은 어종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가물치였습니다. 검찰은 “미국 담수에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외래유해종인 가물치를 불법으로 판매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습니다. 오는 11월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는 두 사람은 가물치를 판매해왔음을 앞서 인정해왔기 때문에 관건은 유무죄 여부가 아닌 형량인 상황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상대로 상해나 사기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엄정한 기소절차에 나선 것을 보면 가물치라는 물고기를 미 당국이 얼마나 몸서리치도록 싫어하고 또한 두려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포획한 가물치를 정면에서 본 모습. 주위에 돋은 날카로운 이빨은 사냥감을 단단히 붙잡거나 뭉텅뭉텅 잘라내도록 기능한다. /미 지질조사국(USGS) 홈페이지

 

한반도에서 외국에서 침투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선구자 격인 미국흰불나방과 황소개구리에 이어 악어거북, 최근에는 독두꺼비와 피라냐까지 유해생물로 지정됐습니다. 외래종의 침투가 아메리카에서 아시아 방향으로만 이뤄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역으로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가 그 동네 자연을 쑥대밭으로 만든 짐승들도 적지 않죠. 그 선봉에 바로 가물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모들 기력 회복을 위한 약재, 그리고 하천의 포식자인 토종 물고기 정도로 알려진 가물치이지만 미국에서는 첫손에 꼽히는 ‘괴어(怪魚)’입니다. 오죽하면 이름도 ‘뱀대가리고기(Snakehead Fish)’이겠습니까. 하천, 개울, 강 등 민물이 흐르는 어느 곳이든 완벽하게 적응에 성공한 뒤 물고기나 파충류, 양서류, 새 등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포식자의 본능을 발휘하며 생태계 최고 강자로 우뚝 섰거든요.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물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됐습니다.

최대 1미터 길이까지 자라는 가물치는 한 배에 5000개 이상의 알을 낳고 모성본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 지질조사국(USGS) 홈페이지

 

아시아·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가물치는 어떻게 먼 바다건너 미주대륙까지 건너가게 됐을까요. 경로는 마치 붉은귀거북이 한국의 냇가를 점령한 경로와 비슷합니다. 산채로 수출돼 관상어나 민물고기 시장에서 거래되던 가물치들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대 몸길이 1미터까지 자라는 이 물고기는 도대체 생존에 있어서 약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한 생존에 최적화돼있습니다. 개울가, 하천, 운하, 강, 연못, 호수 등 민물이 흐르거나 고이는 어떤 곳은 물론 얕은 소금기가 있는 물에서도 거뜬히 버텨낼 수 있습니다. 다음 동영상은 미국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가물치의 위험성을 경고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 동영상의 일부입니다.

 

원산지인 동남아에서는 산성이 높은 물이나 수중 식물이 빽빽하게 들어차 어지간한 고기가 살기 힘든 곳까지 진출해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에 물고기 중에서 드물게 공기 호흡까지 가능합니다. 물이 말라붙은 곳에서도 장시간 버틸 수 있다는 얘기이죠. 그래서 몸을 꿈틀거리며 물과 물 사이 뭍을 기어 이동하는 것도 이 물고기에겐 과히 어렵지 않습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비단구렁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수조속에서 헤엄치는 어린 가물치. /미 지질조사국(USGS) 홈페이지

 

이렇게 극한의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가물치는 조금 더 과장을 하자면 사는 것보다 죽는게 더 힘든 운명을 타고났다고나 할까요. 이런 괴물 같은 물고기가 먹성도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면 뭐든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입주변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줄지어 돋아있습니다. 바로 삼키기가 애매한 먹잇감을 뭉텅 잘라내기도 합니다. 멀쩡하게 헤엄치던 고기가 가물치의 입속에서 순식간에 두 동강난채 피를 줄줄 흘리며 힘겹게 마지막 아가미짓을 하는 모습에선 자연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물치의 앞모습은 뱀대가리고기라는 영어 이름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다. 거기에 뱀에게는 없는 날카로운 이빨까지 갖추고 있다. /메릴랜드주 야생동물보호국 홈페이지

 

1990년 중반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미 전역에서 가물치가 발견됐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중심부 워싱턴 DC를 유유히 흐르는 포토맥강까지 출현하기에 이르렀죠. 기겁한 미 정부는 2002년 가물치를 유해생물로 지정하고, 이 물고기를 사고팔거나 방생하는 모든 행위를 엄금하게 됩니다.

미 당국은 포획한 가물치는 얼려서 죽일 것을 권장하고 있다. /메릴랜드주 야생동물보호국 홈페이지

 

하지만, 이미 가물치는 오늘도 미국의 물가를 유유히 헤엄치며 번성하고 있습니다. 한번에 5000개씩 알을 쏟아내고 이틀 내에 부화시키는 이들의 번식 능력을 제어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부모로서의 본능도 뛰어나 번식철이면 안그래도 드센 성질이 더욱 난폭해지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래서 미 정부에는 가물치를 포획했을 때 행동요령까지 만들었습니다. 잡은 가물치는 절대로 놔줘서도 안되고 뭍에 놓아서도 안됩니다. 몸을 꿈틀거리며 물속으로 다시 들어갈 공산이 크거든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죽여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합니다. 죽이는 방법으로 미 정부가 제안한 것은 동사(凍殺), 얼려죽이기입니다. 잡은 가물치는 즉석에서 냉동시키거나, 아니면 얼음 덩어리를 위에 올려놓고 살처분하라는 것인데, 교살(絞殺)이나 참살(斬殺) 보다는 좀 더 처치가 용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물에 잡힌 가물치. 아마 이 가물치는 다시 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메릴랜드주 자연보호국 홈페이지

 

가물치는 미국인들에게 여전히 이국적이면서도 매혹적인 관상어로 인기가 있지만, 점차 가물치의 사육을 금하는 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물치 사육에 대한 제재가 없는 주들끼리 가물치들을 거래 혹은 이송하는 것 조차 연방법에서는 금하고 있다고 하네요. 모르긴 해도 우리가 지난 30여년간 파랑볼우럭(블루길)·큰입우럭(배스)·황소개구리·붉은귀거북 등의 무시무시한 생존력에 겪었던 경외감과 공포심 이상의 것을 미국인들은 가물치에게서 경험한 모양입니다.

 

위의 동영상은 메릴랜드주 야생보호국이 만든 것으로 가물치를 손질하는 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황소개구리·파랑볼우럭·큰입우럭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이것들을 이용한 음식을 개발하고 안내했던 한국의 과거 모습이 떠오르시지는 않나요. 동영상에는 가물치 고기를 손질하면서 중간에 기생충을 제거하는 장면도 보입니다. 아무래도 이 방법이 퇴치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지는 매우 신중하게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