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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에는 왜 액체방울이 존재할까?

heojohn 2020. 9. 12. 23:34

강석기의 과학카페]

2020.09.01 16:21

 

                                                                픽사베이 제공

 

파스타집에서 주문을 하면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빵 몇 조각을 내놓는다. 그런데 빵을 찍어 먹는 기름장이 좀 별나다. 고깃집에서는 참기름이지만 이건 연둣빛이 도는 올리브기름이고 중간중간 시커먼 물방울(발사믹식초)이 보인다. 기름과 물(식초)이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장 인심이 좋아 식초의 양이 많으면 두 층으로 나뉜다. 위쪽에는 기름이 뜨고 아래는 식초가 자리한다.

 

기름과 물을 믹서기로 세게 섞어 한 액체로 만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작은 방울이 생기면서(보통 양이 적은 쪽이) 서로 합쳐져 커지다가 궁극적으로는 두 층으로 나뉜다. 이런 현상을 물리화학에서는 ‘상분리(phase separation)’라고 부른다. 서로 친하지 않은 두 물질이 각각 어느 양을 넘으면 끼리끼리 존재하는 게 엔트로피 감소(서로 분리되면 공간적인 제약이 생기므로)를 감안하더라도 열역학적으로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상분리는 도처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습기를 머금은 저녁 공기는 한 상(one phase)이지만 새벽에 온도가 이슬점 아래로 떨어지면 물분자가 모여 물방울(이슬)을 만들며 두 상(공기와 이슬)으로 분리된다. 아이스커피는 나올 때는 두 상이지만(액체인 커피와 고체인 얼음) 수다를 떨다 보면 얼음이 녹아 어느새 한 상(희석된 커피)으로 바뀌어 있다(물론 상분리의 반대 방향이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상분리가 생명과학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올리브기름의 발사믹식초 방울처럼 세포 안에 작은 액체방울이 가득 들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이것들이 상분리를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 핫이슈가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액체방울들이 생명현상이나 질병을 이해하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2009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상분리로 만들어진 세포 내 액체방울을 보고한 논문이 실리기 전까지 과학자들은 세포 안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줄도 몰랐다. 심지어 논문이 나가고도 한동안은 소수의 과학자를 빼고는 주목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수년 전부터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18년 ‘사이언스 선정 10대 과학성과’에 뽑히기에 이르렀다. 최근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저명한 학술지에 거의 매달 논문이 나오고 있는 세포 내 상분리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는 상분리를 통해 두 상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이게 열역학적으로 가장 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인의 실체 170년 만에 드러나

 

세포 안이 균일한 액체 상태가 아니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진핵세포는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핵을 포함해 미토콘드리아, 리소좀 같은 여러 세포소기관이 존재하는데 다들 지질이중막에 둘러싸여있다. 여기까지는 생물 시간에 배운 익숙한 내용이다.

 

그런데 세포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고전적인 세포소기관이 아닌 여러 구조물들이 보인다. 예를 들어 분열하지 않는 핵 내에는 구형의 구조물이 존재하는데, 인(nucleolus)라고 부른다. 인의 존재가 처음 관찰된 건 1840년이다. 그 뒤 연구결과 인은 ‘단백질을 만드는 공장’인 리보솜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인의 표면에는 지질막이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의 형태가 생체고분자가 실뭉치처럼 서로 얽혀 단단한 구조를 이룬 결과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밖에도 세포질이나 핵질(nucleoplasm. 핵 내 액체)에 막이 없는 다양한 구조물이 존재했고 다들 이런 식으로 형태를 유지한다고 믿었다.

 

이런 구조 가운데 하나인 ‘P과립(P granule)’은 예쁜꼬마선충의 배아 세포에 존재하는데, 단백질과 RNA로 이뤄진 덩어리로 생각됐다. 그런데 고성능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P과립들이 올리브기름 속 작은 식초방울들이 서로 만나 하나로 합쳐지는 것 같은 현상이 관찰됐다. P과립이 액체라는 말이다.

 

그리고 막이 없음에도 세포질과 분리돼 존재할 수 있는 건 역시 올리브기름 속 식초방울처러 상이 분리된 상태로 있는 게 더 안정하기 때문이다. 단백질과 RNA가 상호작용하며 안정한 액체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독일의 두 막스플랑크연구소(분자세포생물학・유전학 및 복잡계물리학) 연구자들이 2009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내용이다. 2011년 인(nucleolus)도 액체방울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존재가 알려진 뒤 170년 만에 물리적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2009년 연구를 이끈 앤서니 하이만 박사는 2017년 발표한 한 리뷰논문에서 제각각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세포 내 막이 없는 액체방울들을 통칭해 ‘생분자응집체(biomolecular condensates)’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생물학자들에게 낯선 응집물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한 건 생성 메커니즘이 응집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식물에선 온도센서 역할도 해

 

세포 안에는 막이 있는 세포소기관뿐 아니라 막이 없는 다양한 구조물이 존재한다. 최근 이들 대부분이 상분리로 형성된 액체방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통칭해 생분자응집체이라고 부른다. 여러 유형의 세포에 존재하는 액체방울을 한 세포에 담았다. 아래는 예쁜꼬마선충의 배아세포에 존재하는 P과립(흰색)이 시간(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액체방울임을 알 수 있다. 흰색 선은 세포핵 경계를 나타낸다. ‘네이처 리뷰 분자세포생물학' 제공

그렇다면 세포 안에 왜 이처럼 다양한 액체방울이 존재할까. 그래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기능)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물리적 법칙에 따라 상분리가 일어나 그저 존재하는 것일 뿐일까. 연구결과 생분자응집체은 여러 기능이 있고 형성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분야는 이미 너무 방대해져 필자의 이해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여기서는 최근 발표된 몇몇 연구결과만 소개한다.


‘네이처’ 5월 14일자에는 리보솜 공장 인(nucleolus)에 대한 이해를 높인 연구결과가 실렸다. 앞서 말했듯이 핵 내 구조물인 인에서는 리보솜RNA의 성숙과 리보솜의 조립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NPM1을 비롯한 여러 단백질이 관여한다. 미국 프린스턴대가 주축이 된 연구자들은 NPM1 단백질과 미성숙 리보솜RNA(인트론이 포함된 전사체)가 상호작용하며 핵질과 상분리가 일어나 안정한 액체방울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울러 인에서 만들어진 리보솜은 역설적으로 인에서는 불안정한 분자복합체라 바깥으로 밀려나 결국 핵질로 방출된다. 리보솜 공장에서는 완제품 출하도 열역학의 법칙에 따라 힘 안 들이고 일어나는 셈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달 27일 식물이 상분리 현상을 이용한 온도센서를 지니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쌍떡잎식물의 모델인 애기장대는 우리가 쾌적함을 느끼는 온도 범위에서 꽤 민감하게 반응한다. 22도에서는 성장 기간이 길어 한참 뒤에나 꽃이 피는 반면 불과 5도 높은 27도에서는 어느 정도 자라면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고 씨를 맺는다.

 

최근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정재훈 교수팀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동연구자들은 애기장대가 22도보다 27도에서 훨씬 빨리 꽃을 피우는 현상을 ELF3 단백질의 상분리 현상으로 설명했다. 22도에서는 ELF3가 개별 분자로 존재해 개화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능을 하지만(왼쪽) 27도에서는 상분리로 액체방울을 만들면서 개화유전자가 발현한다(오른쪽). 네이처 제공

성균관대 생명과학과 정재훈 교수팀과 영국 케임브리지대 공동연구자들은 애기장대가 ELF3 단백질의 상분리 메커니즘을 통해 이런 미묘한 온도변화를 감지해 성장 패턴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ELF3은 개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억제(전사억제인자)하는 역할을 하는데 27도에서는 상분리가 일어나 액체방울에 갇히면서 억제 작용을 하지 못해 꽃이 일찍 핀다는 것이다.

 

이는 새벽에 온도가 내려가 이슬이 형성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다만 여기서는 온도가 올라갈 때 상분리가 일어난다는 게 다르다.

 

ELF3는 다른 식물에 존재하는데 흥미롭게도 감자나 야생잔디에서는 이런 온도 민감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세 식물의 ELF3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해봤고 애기장대에만 아미노산 글루타민의 반복서열(polyQ)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2도에서는 ELF3 단백질이 개별 분자로 존재하며 전사억제인자로 작동하지만 27도에서는 글루타민 반복서열이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안정화돼 상분리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애기장대 ELF3 유전자의 이 부분을 야생잔디의 서열로 바꿔치기하면 27도에서도 상분리가 일어나지 않아 꽃이 늦게 핀다.

핵 내부에 있는 인은 리보솜을 만드는 곳으로 그 구조는 미스터리였지만 2011년 액체방울임이 밝혀졌다. 최근 연구결과 NPM1 단백질과 미성숙 리보솜RNA의 상호작용이 안정한 인의 구조를 이루고 있고 생산물인 리보솜은 여기에 끼지 못해 핵질로 방출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네이처’ 제공

신경퇴행성 질환의 배후

 

최근 세포 내 상분리가 주목받는 건 생명현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이런 기초연구결과뿐 아니라 의학에도 큰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에 큰 부담이 되는 신경퇴행성질환이 상분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흔한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뿐 아니라 드문 헌팅턴병과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 모두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뭉쳐져 신경세포가 파괴된 결과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많은 경우 상분리를 거쳐 액체방울로 존재하던 단백질이 점점 굳어져 젤 상태를 거쳐 결국은 섬유를 형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예를 들어 루게릭병은 TDR-43 단백질 섬유가 신경세포에 엉겨 붙으면서 세포가 하나둘 죽으면서 근육이 점차 마비돼 발병한다. TDR-43은 핵 안에 존재하며 RNA와 상호작용을 하는 단백질이다. 그런데 루게릭병 환자의 신경세포를 보면 세포질로 빠져나와 섬유를 형성하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들 대다수는 TDR-43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존재한다. 돌연변이로 아미노산이 바뀌면 TDR-43 단백질의 성격이 바뀔 수 있다. 그 결과 상분리 직후에는 단백질과 RNA이 상호작용을 하며 액체방울을 유지하지만 오래지 않아 단백질이 RNA를 밀어내고 자기들끼리 상호작용하며 더 안정한 구조(섬유)를 형성한다. 이 과정은 세포 단위에서 일어나므로 수년~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발병한다. 따라서 상분리로 형성된 액체방울을 안정화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한다면 루게릭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국내에도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고 있다. 바이러스 생존에 불리하다는 고온다습의 조건에서도 이처럼 기세가 등등한 건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아미노산 하나가 바뀌면서 인체 세포 표면의 ACE2 단백질에 더 잘 달라붙게 돼 감염력이 6배나 높아진 결과라는 설명이 있다.

 

아미노산이 바뀌면서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고 그 결과 다른 분자와 물리화학적 상호작용이 미묘하게 바뀌면서 병을 유발하거나 감염력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물리와 화학의 법칙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분자들로 이뤄진 물질적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씁쓸하게 느껴진다.

 

단백질 섬유가 쌓여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발생하는 신경퇴행성질환 역시 상분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루게릭병의 경우 상분리로 액체방울을 이루는 RNA와 TDP-43 단백질의 상호작용에 변화가 생기면서 촉발된다. TDP-43 단백질이 RNA를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섬유를 형성해 세포질로 빠져나가 곳곳에 달라붙어 쌓이면 결국 세포가 죽게 된다. 네이처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