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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동물원] 울타리 넘어 새로운 세상 향해 '몸만들기' 나선 수달들

heojohn 2021. 1. 20. 08:06

정지섭 기자 입력 2021. 01. 20. 07:0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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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방사 목표로 간택된 암수 1쌍
번식위한 '커플'이 아닌 생존위한 '동반자' 인연
한강에 수달 서식 흔적 확인되면서 복원 프로젝트 시작돼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작년 9월의 어느날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의 수달 우리에서 ‘드르륵’하고 격리문이 열리면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수달 두 마리가 난생 처음으로 한 공간에 마주하게 됐습니다. 덩치가 큰 녀석은 산좋고 물좋은 강원도 화천에서 온 세 살 난 수컷 ‘달봉’이었습니다.

주위를 경계하고 있는 수컷 수달 '달봉'. /서울대공원

 

상대적으로 아담한 몸집을 한 상대방은 이곳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나고 자란 열 살 암컷 ‘돌강’이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연상 도시 처녀와 연하 농촌 총각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핏 짝짓기와 번식을 염두에 둔 소개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좀 다른 목적의 합사입니다.

성별에 상관없이 이들이 먼길을 떠날 경우 서로를 의지해 잘 지낼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우정 테스트였습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첫 술에 배부를리 없는 법입니다. 상대방을 친구로 마주하기 앞서 짐승 특유의 본능이 발동했는지 서로를 향해 으르렁하며 싸우려 했습니다. 부상당할 것을 우려해 이날 첫 만남은 신속하게 마무리됐고, 당분간 서로의 낯을 익히는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헤엄치던 도중 수면위로 얼굴을 내민 수달 '달봉'. /서울대공원

 

이 수달들은 특별한 미션을 부여받았습니다. 중·장기 프로젝트로 준비되고 있는 수달의 야생 방사가 현실화할경우 가장 먼저 모험을 떠날 수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달이나 화성 탐사를 떠나기 위해 맹훈련을 받고 있는 우주 비행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체 건강한 수달 중에 출신지가 다르고, 나이 차이도 제법 나는 암수로 고른 까닭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눈이 맞아 번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커플'보다는 ‘버디'로 지내며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향후 야생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달이 암·수 어떤 성별이라도 새롭게 무리를 이루고 대를 이을 수 있을 가능성까지 감안했습니다.

서울대공원에서 나고 자란 암컷 수달 '돌강'. /서울대공원

 

우주 비행사들의 활동기록이 중요한 탐사 자료가 되는 것처럼, 수달들이 야생에 방사된다면, 이들의 행적은 복원에 속도를 내기 위한 소중한 연구자료가 됩니다. 이 때문에 ‘돌강’과 ‘달봉’의 몸에는 위치추적이 가능하게해줄 작은 칩이 이식돼있습니다.

수달은 천연기념물 330호이자 멸종위기종 야생동물입니다. 이런 수달을 강에 풀어놓아 야생에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서울대공원과 강원도 화천에 있는 한국수달연구센터가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보호와 전시가 주 기능인 동물원이 어떻게 방사를 추진하게 됐을까요? 그건 동물원의 또 다른 기능인 ‘종 보전’과 연관이 있습니다. 수달은 최근 전국의 하천과 계곡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탈진한 채로 구조돼 보살핌을 받고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수달 '달봉'이 메기로 보이는 민물고기 사냥에 성공한 모습. /서울대공원

 

서울과 경기도를 흐르는 한강 수계에서도 최근 3~4년부터 수달의 배설물과 털, 그리고 먹다남은 물고기의 사체 등이 잇따라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40여년만에 처음있는 일입니다. 이곳에 수달이 산다고 충분히 결론내릴 수 있는 정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반길만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일정 개체수 이하로 서식할 경우 불가피하게 근친 교배로 이어져 유전적으로 병약한 개체들이 태어나게 되고 이는 절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경기도 과천서울대공원에서 나고 자란 암컷과, 멀리 강원도 화천 출신의 수컷을 맺어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들이 한강과 그 지천, 멀리는 낙동강과 금강 등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생 수달들과 새로운 무리를 이룬다면 유전적으로 더 건강한 개체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수달은 최근 야생에서 제법 많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달 경북 포항시 북구 장성동의 연못에서 수달이 물고기를 포식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뉴시스

 

서울대공원은 작년 동물원 금붕어광장 연못에 야생적응훈련장을 만들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가운데 인공 섬을 조성했고, 갈대를 심고, 야생 수달들이 드나드는 은신처도 꾸몄습니다. 기존에 있던 수달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입니다. 가장 커다란 차이는 먹이입니다. 그동안에는 사육사가 직접 미꾸라지를 공급해줬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직접 물에다 메기와 동자개 등 팔딱팔딱 뛰는 민물고기를 풀어놓고 직접 사냥해서 먹도록 유도했습니다.

자신들을 돌봐주는 사육사들에게 익숙한 수달들이 야생에서는 사람을 기피하도록 훈련시킨 것 역시 익혀야 할 생존술 중 하나입니다. 사육사를 반기고 졸졸 따라올 때마다 돌을 던진다거나 큰 소음을 내는 일을 반복해 ‘사람은 무서운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과정이죠. 일부러 정을 떼는 과정이 아쉽지만 야생에서 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지난해 7월 강원 화천군 간동면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서식하고 있는 수달 가족이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뉴시스

 

수달은 다 자란 성체 몸길이가 최대 1.5m정도고 몸무게는 10㎏안팎까지 나갑니다. 비교적 왜소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민물 생태계 최고의 포식자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수달연구센터와 한국수달보호협회를 이끌고 있는 한성용 박사는 “현재 한반도 자연에서 수달의 천적은 없다고 보면 된다. 자동차 로드킬, 그리고 야생 민물고기를 포식할 때 감염될 수 있는 기생충 정도가 생존의 위협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수달은 타고난 사냥꾼입니다. 드라큘라가 ‘형님'할 정도로 정도로 날카롭고 긴 송곳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송곳니는 미끌미끌한 메기나 잉어 같은 큼직한 민물고기를 먹는데 더없이 유용한 도구입니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외모의 수달이 발톱으로 펄떡이는 물고기 몸통을 움켜쥐고 산채로 살점을 찢어발겨 우걱우걱 먹는 포식 장면은 반전 중의 반전이라는 얘기들도 합니다. 수달의 메뉴판에는 물고기만 있는게 아닙니다. 뱀과 개구리, 심지어는 물새까지 잡아먹기도 합니다.

수달의 포식자로서의 습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유튜브 동영상(문화유산채널)

수달의 성공적 복원을 기대하게 하는 기분좋은 경사도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야생적응훈련장에서 ‘돌강’과 ‘달봉’이 적응훈련을 받는 동안, 기존 수달우리에서는 새끼 두 마리가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수달의 타고난 생존 능력과 강인한 기질과 세심한 복원 계획이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언젠가는 멸종위기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동네 하천가를 산책하다 마주칠 수 있는 친숙한 이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서울 도심 복판인 청계천 최상류까지 왜가리가 날아들고, 서울 용마산에 이어 인왕산에서도 멸종위기종 산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날아드는 것을 보면, 그런 날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모쪼록 언젠가는 시작될 모험을 수달들이 멋지고 용감하게 해내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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