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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된 인삼, 재고만 2조…"이대론 모두가 고사"

heojohn 2021. 9. 5. 23:15
    • 정혁훈 기자
    • 입력 : 2021.09.05 16:32:20   수정 : 2021.09.05 22:39:29 

 ◆ SPECIAL REPORT : 고려인삼 잔혹사 ◆



  • 충남 금산군에 있는 국내 최대 인삼 도소매시장인 금산수삼센터가 추석 대목을 앞두고도 찾는 손님들이 없어 거의 상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정도로 썰렁하다. [정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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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00년 역사의 고려인삼(Korea ginseng). 한국을 대표하는 약용 작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인삼이 전례 없는 위기에 휩싸이고 있다. 가격 급락으로 많은 인삼 농가가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자식에게 삼밭을 물려주겠다는 농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격 하락에도 소비가 늘어날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인삼 수요가 계속 줄고 있는 것이다.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층에서는 인삼(홍삼)을 먹겠다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지난달 30일 찾아간 충남 금산군 금산수삼센터. 우리나라 최대 인삼 시장으로 도매장과 소매장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곳 이름이 수삼센터인 이유는 밭에서 바로 캔 인삼을 수삼(水蔘)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수삼을 세척한 뒤 그대로 말리면 백삼(白蔘), 쪄서 말리면 홍삼(紅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삼 중 80%가량이 홍삼 형태로 사용된다.

    5일장으로 운영되는 수삼센터 도매장이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전날부터 매일 개장으로 바뀌었지만 내부에는 거의 상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한산하기 그지없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소매상들로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북적거리던 모습은 이제 옛 추억이 돼버렸다.

    금산수삼센터 도매장 회장을 맡고 있는 신건종 씨(70)는 "군에서 제대하고 바로 인삼 재배를 시작해 50년이 다 됐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한 채(750g)당 1만5000원 하던 파삼(破蔘·가공용 원료 삼) 가격이 2년 새 8000원까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00평 땅에서 수확한 6년근 인삼을 판매하면 요즘은 8000만원 매출 올리기도 빠듯하다"며 "임차료와 농자재, 인건비 등에 들어간 투자비가 7~8년간 1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보통 6년근 인삼은 파종하기 전에 1~2년간 지력(地力) 향상을 위한 '예정지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재배 기간은 7~8년에 달한다.

    바로 옆 소매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김관엽 금산수삼센터 소매장 대표는 "예년 같으면 추석을 2~3주 앞두고는 손님으로 바글바글하던 곳이 지금은 보시다시피 상인 10명에 손님 한두 명꼴 될까 말까"라며 "9월부터 본격적으로 햇인삼이 수확되는 만큼 가격이 더 떨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하며 한숨지었다.



  • ◆ 코로나19 탓 수요절벽 부딪힌 인삼 시장

  • 인삼 시장의 극심한 침체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이 크다. 인삼은 기본적으로 생활필수품이라기보다는 기호품이다. 전례 없는 팬데믹 위기 속에서 움츠러든 사람들은 기호품 소비부터 줄이기 마련이다. 여기에 해외여행객이 줄어든 것이 치명상을 입혔다. 홍삼 판매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면세점 매출이 급감한 것이다. 한국인삼공사 관계자는 "홍삼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 외국인들이 면세점에서 사 가는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며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면세점 홍삼 매출이 평년 대비 70% 이상 감소하다 보니 인삼 시장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전했다. 홍삼 제품류 매출 부진이 연쇄적으로 농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금산수삼센터가 직격탄을 맞은 것도 코로나19 영향이 크다. 금산은 예년 같으면 내국인들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방문할 정도로 인기 관광지였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관광버스는 물론이고 개별적으로 찾는 사람도 급감했다. 더구나 중국, 베트남 등에서 인삼을 대량으로 구매해 가는 '보따리 상인' 왕래가 전면 중단되면서 금산에서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인삼 물량이 실종되다시피 했다.

    같은 시기에 공급 측면에서도 충격이 발생했다. 인삼 농가들의 생산기술과 병해충 방제 노하우가 발전하면서 단위 면적당 인삼 수확량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작년 여름에 장기간 장마로 인한 수해, 그리고 올여름 폭염 피해 등으로 조기 수확할 수밖에 없었던 이른바 피해삼들이 시장으로 일시에 쏟아져나오면서 수급 여건이 악화됐다. 한국인삼협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부진에 더해 예상치 못한 인삼 공급 증가 여파로 작년부터 가격이 떨어지더니 올해는 하락폭이 더 커졌다"며 "농가들이 체감하는 가격 하락률은 2년 새 30%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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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삼 시장 침체, 일시적 아닌 구조적 문제

    코로나19가 인삼 시장을 어렵게 만들었으니 팬데믹이 가시면 인삼 시장이 살아날 수 있을까. 많은 전문가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코로나19는 인삼 시장에 쌓인 문제를 겉으로 드러나게 만든 방아쇠일 뿐 사실 인삼 시장 침체는 오랫동안 누적된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인삼 재고의 지속적인 증가다. 국내 인삼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는 한국인삼공사가 작년 말 기준으로 보유하고 있는 재고는 1조2734억원어치에 달한다. 재고가 작년 매출액(1조3335억원)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2010년 재고가 4348억원어치였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재고가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매출액이 60% 정도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재고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런 상황은 농협이나 일반 민간기업들도 마찬가지여서 업계에서는 홍삼 판매 기업들이 보유한 전체 재고액이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문제는 악성 재고 사태가 조만간 터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삼 가공 업체 한 관계자는 "판매 부진으로 재고가 누적되다 보니 이제 상품화가 불가능한 악성 재고가 생기고 있다"며 "어느 순간 재고를 털어버려야 하기 때문에 실적이 급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인삼의 생산과 수출 부진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2년에 1조원을 넘어섰던 인삼 생산액은 작년 8191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2008년에 처음으로 8000억원을 돌파했던 점을 감안하면 생산이 12년 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2만㏊ 가까이 늘었던 인삼 재배 면적이 10여 년 만에 1만5000㏊로 줄면서 연간 생산량도 2만7000t에서 2만4000t으로 줄었다. 생산이 줄었음에도 재고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판매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수출은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 1억3300만달러로 저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늘어 작년에 2억2900만달러를 기록했다. 4년째 증가세다. 그런데 달력을 30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0년 인삼 수출액은 1억6500만달러였다. 30년간 수출액이 고작 40% 늘어난 셈이다. 임병옥 세명대 교수는 "30년이 흐르는 동안 수출액이 고작 6400만달러 늘었다는 것은 인삼업을 산업이라고 부르기조차 창피한 수준"이라며 "전체 농식품 수출액에서 인삼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30년 새 20%에서 3%대로 쪼그라들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삼 산업을 그대로 두면 끓는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서서히 고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 소비 트렌드 변화·젊은 층 외면에 속수무책

  • 세계 최고라고 하는 고려인삼이 소비·생산·수출 부진에 재고 증가라는 4중고에 시달리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소비 측면에서는 인삼에 대한 선호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이유가 크다. 수삼에 대한 소비가 줄어든 대신 홍삼 제품류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버텨왔던 것인데, 최근 홍삼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뚜렷하게 하락하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이 크다고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층이 인삼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삼공사 관계자는 "인삼의 대표적 성분인 사포닌의 경우 쓴맛을 특징으로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쓴맛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 때문에 홍삼과 다른 원재료를 섞어 맛을 보강한 제품 개발을 늘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품 개발 트렌드는 인삼에 대한 수요를 줄일 수밖에 없다. 같은 물량의 홍삼 제품류가 팔려도 원료로 들어가는 홍삼 비중이 줄어들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삼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홍삼을 찾던 고객들조차 점차 비타민이나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등 다른 건강기능식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삼을 활용해 다양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지만, 판에 박힌 제품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삼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홍삼 시장은 한국인삼공사가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상 독과점 체제로 운영된다"며 "인삼공사가 홍삼 시장을 키운 공이 있지만 1995년 인삼 전매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유효한 경쟁 체제가 형성되지 못하다 보니 시장 발전이 더디게 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 11곳 지역 인삼농협과 인삼 가공 판매 회사를 운영하는 농협중앙회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농협 역시 재고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선거를 의식한 조합장의 선심성 인삼 수매가 근절되지 못하면서 실적 부진에도 재고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 인삼 시장인 금산수삼센터의 후진적 거래 방식도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농협 등에서 전혀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농산물 도매시장과 달리 금산수삼센터에선 위탁거래가 이뤄진다. 농가가 도매상에게 수확한 인삼을 맡기면 물건이 팔린 뒤에야 가격을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더구나 거래도 경매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도매상별로 알아서 결정하는 시스템이어서 가격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떨어진다.

    금산에서 인삼을 재배하는 김 모씨는 "가격이 경매 같은 절차 없이 불투명하게 결정되고, 거래도 전액 현금으로만 이뤄지고 있어 도매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농민이 수확해 전달한 인삼이 언제 어떻게 얼마에 거래됐는지 농가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인삼은 조선시대 거래 방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배경이다.



  • ◆ MZ세대·생산 조정·의약품 개발이 키워드

  • 인삼에 대한 소비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는 MZ세대 입맛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수다. 인삼 특유의 쓴맛에 대해 기성세대는 건강한 맛으로 인식하는 반면 젊은 층은 싫은 맛으로 규정한다. 젊은 층 입맛에 맞는 새로운 인삼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20년 전부터 인삼·홍삼 초콜릿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본정초콜릿의 이종태 대표는 "인삼을 원료로 하면서 맛과 영양·가치를 다 잡을 수 있는 시장 친화형 제품을 개발해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삼 농가들은 젊은 층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학교와 군대 급식에 인삼을 넣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강상묵 백제금산인삼농협 조합장은 "프랑스에서는 학교 급식에 주 1회 자국 전통 음식이 포함되도록 메뉴를 짜고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인삼을 가까이 하게 하는 것이 젊은 층 수요를 늘리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층이 인삼을 섭취하면 국민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관련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산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극심한 수급 불균형으로 가격이 무너질 경우 인삼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만큼 자율적인 재배지 축소를 통해 공급 압력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삼 농가들의 경작 신고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오랫동안 논의돼온 경작신고제를 내년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확한 경작 통계가 만들어지면 농가들의 자율적인 생산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삼 산업 자체의 경쟁력 확보다. 그러자면 인삼 가공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인삼이 갖고 있는 유효 성분을 분리한 뒤 이를 표준화하고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기능성 식품이나 천연 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위스 파마톤이다. 이 회사는 인삼의 주요 성분인 사포닌의 함량을 표준화해 G115라는 이름으로 세계 특허를 취득한 뒤 진사나(Ginsana)라는 제품을 연간 3억달러어치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삼 수출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다.

    임병옥 교수는 "지금까지는 인삼 연구 방향이 어떻게 하면 재배를 잘할 것인지로 모아졌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인삼에서 좋은 성분을 추출해 의약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효능 연구 쪽으로 집중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