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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영상칩 팬티 숨겼던 CNN 여기자 "탈레반 가까이서 보니…"

heojohn 2021. 9. 7. 23:10

아! 아프간

중앙일보

입력 2021.09.07 16:34

업데이트 2021.09.07 17:13

박현영 기자

클래리사 워드 CNN 수석 국제 특파원이 지난달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아바야를 입고 방송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손에 넘어가는 현장을 취재한 클래리사 워드(41) CNN 수석 국제 특파원은 카불을 탈출한 날을 잊을 수 없다.

지난달 20일 카불 국제공항 게이트 앞은 아프간을 떠나려는 이들로 아비규환이었다. 서로 놓치지 않기 위해 취재팀 동료들과 손을 잡고 인간 사슬을 만들었지만, 게이트가 열리자 군중에 떠밀려 워드는 맨 뒤로 처지게 됐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팔을 움켜잡아 낚아채듯 문 안으로 끌어당겼다. 곧 게이트가 닫혔다. 워드가 자신을 구해준 영국군 병사에게 "이걸 어떻게 (매번) 감당하느냐"고 묻자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아프간에서 두 차례 근무했지만, 이번 일로 겪게 될 PTSD(심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최악이라고 했다. 군중에 짓밟혀 죽는 사람이 매일 떠오른다는 것이다.

워드는 최근 미 공영방송 NPR 인터뷰에서 "너무 가슴 아프고, 격렬하고 본능적인 감정이 올라와 우리 모두 울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300여명과 함께 미군 수송기를 타고 카타르 도하로 빠져나왔지만, 비행기에 타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왜 나는 들어갈 수 있었지? 이 여권을 갖고 있어서? 뭔가 매우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미국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워드는 영국계 미국인이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을 주도했고, 영국은 둘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 카불이 함락되자 두 나라는 자국민을 최우선으로 탈출시켰다.

"지친 아프간인들, 탈레반과 악마의 거래"

워드는 탈레반을 가장 가까이에서 취재한 외신 기자 중 한 명이다. 지난해 초 탈레반이 통제하는 마을을 취재해 '탈레반과 함께 한 36시간'을 보도하기도 했다.

아프간인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탈레반에 나라를 내준 것을 워드는 "파우스트의 거래"로 설명했다.

오랜 전쟁으로 지치고 두려운 나머지 누가 권력을 잡든 상관없고, 공습이나 총격 걱정 없이 집 밖을 나설 수 있는 평화가 간절했다는 것이다. 특히 시골 주민들은 탈레반이 가혹할 수는 있지만, 아프간 정부군처럼 부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꽤 지지했다.

"탈레반, 고위층과 일반 병사 사이 간극이 위험" 

20년 만에 집권 세력으로 돌아온 탈레반은 과연 달라졌을까. 워드는 탈레반 고위층과 일반 구성원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탈레반 고위층은 친절하고 공손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통상적으로 군사 조직이나 무장단체의 경우 5성급 호텔에 있는 지도자들과 거리에서 채찍과 곤봉을 휘두르는 대원들 간에 단절이 있다"는 것이다.

탈레반이 다른 무장단체보다는 일관성 있는 지휘체계를 가지고, 일반 구성원들도 어느 정도 규율이 있지만, 어느 한순간 일이 확 잘못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문맹인 데다 어려서부터 죽고 죽이는 전사로 키워진 탈레반 남성들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금수저' '엄친 딸' 분쟁 지역 전문 기자    

워드는 '금수저' 출신의 '준비된' 국제 전문기자다. 예일대 4학년이던 2001년 9·11테러를 보고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세상에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에 대한 영미권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넉넉한 환경에서 런던과 뉴욕 맨해튼을 오가며 자랐다. 미국인 어머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영국인 아버지는 은행가였다. 뉴욕타임스(NYT)는 6일(현지시간) 워드가 지난해 펴낸 저서『온 올 프런츠(On all fronts)』를 인용해 "8살 때 이미 유모 11명을 거쳤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전했다. 유서 깊은 영국의 기숙 학교를 나왔다.

2002년 CNN 모스크바 사무소에서 인턴으로 언론계에 발을 디뎠다. 이듬해 폭스뉴스에서 야간 데스크 보조로 정식 고용됐고, 국제부를 거쳐 베이루트 특파원이 됐다.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구사하고, 러시아어·아랍어 등을 배운 덕이 컸다.

2007년 ABC뉴스로 옮겨 모스크바와 베이징에서 2년씩 주재했으며, 2011년 CBS뉴스에 스카우트 됐다. 2015년 CNN으로 옮겼고 3년 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가 맡았던 수석 국제 특파원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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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를 CBS뉴스로 영입한 데이비드 로즈 당시 사장은 그를 "예술과 기술을 겸비한 기자"라고 평가했다. 분쟁 지역 취재는 안전하게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판단력이 가장 중요한데, 워드는 그것이 가능한 전 세계 몇 안 되는 기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 때는 관광객으로 가장해 혼자 잠입해 직접 영상을 촬영한 뒤 메모리 카드를 팬티에 꿰매어 입고 나와 보도했다. 이번 아프간 취재 때는 며칠을 계란과 쿠키, 에너지바로 버티며 생생한 현장을 보여줬다.

카불이 함락되자 아프간 여성들이 입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아바야를 입고 탈레반 전사들을 취재했다. 방송 중에 울린 총성에 움찔 놀라는 모습은 함락 직후 긴장감을 그대로 전달했다.

"종군 기자들은 병적…" 욕한 귀족과 사랑

워드는 2016년 독일인 남편과 결혼해 1세, 3세 두 아들 두고 있다.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디너파티에서 만난 남편 필리페 폰 번스토프는 사업가이자 독일 백작이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남편은 "종군기자들은 병적인 자기중심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사람은 가족을 이뤘다.

워드는 NPR 인터뷰에서 "장기 출장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에 금세 적응하는데, 며칠 쉬고 다시 전장으로 떠날 때는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자신보다 훨씬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이를 돌봐주고 사랑을 듬뿍 주고 있어 안심하고 일터로 돌아간다고 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