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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 유령 같은 원격작용

heojohn 2022. 3. 19. 00:17

[사이언스N사피엔스] 

2022.03.17 15:00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닐스보어(1885-1962). ‘솔베이 회의(1927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양자역학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설득하기 위해 대토론을 벌인다. 보어는 코펜하겐 학파에서 아인슈타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다. 위키피디아 제공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25년 행렬역학으로 양자역학을 정초한 공로로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해에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했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칼 앤더슨이 양전자를 발견하는 등 과학적으로 풍성한 해였다. 그러나 이듬해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대인 박해정책을 펼치자 독일의 많은 과학자들이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32년 10월에 독일 떠나 결국 미국에 정착했고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서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서 교수직을 얻었다. 여전히 양자역학에 회의적이었던 아인슈타인은 1935년 5월 보리스 포돌스키, 네이선 로젠과 함께 유럽의 닐스 보어에게 큰 충격을 가한 논문으로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그 논문은 저자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EPR 논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논문의 제목은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설명을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가?(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이다. 여기서 물리적 실재에 대해서는 “만약 어떤 계를 방해하지 않고서 어떤 물리량을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면, 이 물리량에 대응되는 물리적 실재의 요소가 존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EPR 논문에서는 얽힘 상태에 있는 두 입자를 다룬다. 두 입자가 얽혀 있다는 것은 두 입자의 양자역학적 상태가 서로 독립적이지 않고 긴밀히 결부돼 있다는 뜻이다. 비유적으로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종지쪽지 하나에 삼겹살을 쓰고 글자가 보이지 않게 접어 상자에 넣는다. 다른 종이쪽지에는 갈비를 써서 접어 같은 상자에 넣는다. 홍길동과 전우치가 차례로 상자에서 종이를 하나씩 꺼내 펴보지 않은 채로 헤어진다. 홍길동은 서울에 남고 전우치는 뉴욕으로 떠났다. 이제 서울의 홍길동이 종이를 펴 본다. 

 

1935년 5월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B. Podolsky), 로젠(N. Rosen)과 함께 유럽의 보어에게 큰 충격을 가한 논문으로 회심의 일타를 날렸다. 저자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EPR(Einstein, Podolsky, Rosen) 논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해당 논문이 실린 리뷰지 이미지. 아인슈타인 아카이브 제공

고전역학에서는 홍길동이 종이를 선택하는 순간 홍길동이 어떤 고기메뉴를 골랐는지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 전우치가 가져간 종이도 결정된다.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도 같다. 반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홍길동이 종이를 펴 보기 전에는 홍길동의 고기메뉴는 삼겹살과 갈비의 중첩상태에 있다. 한편 전우치의 상태는 홍길동의 상태와 결부돼 있다. 홍길동이 삼겹살이면 전우치는 갈비이고, 홍길동이 갈비이면 전우치는 삼겹살이다. 전우치의 고기메뉴는 독립적이지 않고 전적으로 홍길동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전우치와 홍길동은 깊이 얽혀 있다. 만약 두 고기메뉴가 들어 있는 똑같은 상자를 둘 준비하고 홍길동이 하나의 상자에서 종이를 선택하고 전우치가 다른 상자에서 종이를 선택한다면 홍길동과 전우치의 상태는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다. 홍길동이 무엇을 선택하든 전우치의 메뉴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상자가 하나만 있고 그래서 홍길동과 전우치가 얽혀 있을 때에는 홍길동이 종이를 펴 보지 않아 그의 메뉴가 중첩상태에 있을 때 전우치의 상태 또한 홍길동의 상태와 결부돼 중첩돼 있다. 즉, '홍길동·삼겹살-전우치·갈비'의 상태와 '홍길동·갈비-전우치·삼겹살'의 상태가 중첩돼 있다. 만약 홍길동이 마음을 다잡고 종이를 펴보는 순간 중첩상태는 깨진다. 홍길동이 삼겹살 메뉴를 관측했다면 전우치의 메뉴는 그 즉시 갈비의 상태가 된다. 이는 '홍길동·삼겹살-전우치·갈비'의 상태가 하나의 세트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전우치는 홍길동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울-뉴욕이 아니라 우주 끝까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홍길동의 고기메뉴가 결정되는 바로 그 순간 즉각적으로 자신의 고기메뉴 상태가 결정된다. 

 

EPR은 여기에다 식사메뉴를 추가한다.(원래 논문에서는 두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으로 논의를 이끌어 나간다. 여기서는 보다 쉽게 각색해 설명한다.) 새로운 상자를 준비하고 종이 두 장에 냉면과 누룽지를 각각 적어 넣는다. 홍길동과 전우치는 두 상자에서 각각 하나의 종이를 선택해 헤어진다. 다만 양자역학의 규칙이 하나 추가돼서, 두 종이를 동시에 펴 보지는 못하는 것으로 한다. 이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관련이 있다. 홍길동이 어느 종이든 펴보기 전에는 고기메뉴도 식사메뉴도 중첩상태에 있다. 그 결과 전우치의 두 메뉴도 마찬가지로 중첩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1925년 12월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이제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먼저 펴 본다. 삼겹살이 나왔다. 그렇다면 전우치의 상태는 곧바로 갈비가 됨을 홍길동은 알 수 있다. 이제는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다시 접어두고 식사메뉴를 펴서 확인한다. 냉면이 나왔다. 그렇다면 전우치의 식사메뉴 상태는 누룽지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홍길동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전우치에 그 어떤 조작을 가하지 않고도 전우치의 고기메뉴 상태와 ‘그리고’ 식사메뉴 상태를 동시에 알게 되었다!


여기서 고기메뉴와 식사메뉴를 위치와 운동량으로 바꾼다면 EPR의 논의와 거의 같게 된다. 즉, EPR은 얽힘 상태의 두 입자를 이용해 멀리 있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깨는 주장이다. 불확정성 원리에서는 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코펜하겐 해석과 불확정성 원리가 유지되려면 전우치의 고기메뉴와 식사메뉴가 동시에 정해질 수 없어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서울의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펼쳤을 때 홍길동의 고기상태는 하나로 정해지고 그에 따라 전우치의 고기상태도 하나로 정해진다. 이제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다시 접어놓고 식사메뉴를 펼치면, 홍길동의 고기상태는 중첩상태로 돌아가고 식사메뉴는 하나로 정해진다. 이는 홍길동에게 불확정성 원리가 작동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 아주 멀리 있는 전우치의 상태는 어떻게 될까? 전우치는 그 어떤 메뉴종이도 펼쳐보지 않았다. 다만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펼쳐봤을 때 전우치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고기메뉴가 정해졌다. 그렇다면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접고 식사메뉴를 펼쳤을 때, 과연 전우치의 고기메뉴는 홍길동의 고기메뉴처럼 다시 중첩상태로 돌아가고 식사메뉴는 하나의 상태로 (누룽지로) 결정될 것인가?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그렇다. 그렇다면, 홍길동이 고기메뉴를 펼쳤다가 접고 식사메뉴를 펼쳤을 때, 아주 멀리 있는 전우치의 메뉴종이들은 어떻게 홍길동의 ‘변심’을 알고 고기메뉴가 확정된 상태였다가 다시 중첩상태로 돌아간단 말인가? 심지어 전우치가 수백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은하에 있는데도?

 

이것이 가능하려면 홍길동과 전우치 사이에 모종의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 작용해야 하며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의 중요한 결론, 즉 그 어떤 물리적 신호도 광속보다 빠를 수 없다는 사실을 어기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EPR은 전우치에 대한 물리적인 실재가, 전우치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홍길동의 관측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며 “그런 (물리적) 실재를 합리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포돌스키가 그 중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국소성의 원리, 즉 물리적 실재는 국소적이며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곳에 즉각적으로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는 원리가 내재돼 있다. 이런 식으로 EPR은 양자역학의 기본원리를 받아들였을 때 불확정성 원리를 깨는 모순에 빠지게 됨을 보였고, 따라서 양자역학은 불완전한 이론이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숨은 변수’이 있어서 이것이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날려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EPR이 제기한 이런 주장을 EPR 모순이라고도 부른다.

 

닐스 보어. 위키피디아 제공

EPR은 대서양 건너 보어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공격이었다. 몇 해 전 솔베이학회에서 아인슈타인의 공격을 곧잘 성공적으로 방어한 보어였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보어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상보성의 원리를 중심으로 EPR에 대한 답변격인 논문을 같은 해 10월에 출간했다. 그러나 보어의 답변논문은 대체로 EPR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그리 명쾌하지 못했다.


1951년 미국의 데이비드 봄은 자신의 저서 《양자이론》에서 스핀을 도입해 EPR의 사고실험을 재구성했다. 두 개의 원자가 결합해 하나의 분자를 이룬 경우 각 원자의 스핀이 더해져 총 스핀이 0인 경우, 각각의 원자가 분리돼 멀어지더라도 총 스핀은 항상 0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한 원자의 스핀이 특정 방향에 대해 +의 값이면 그 방향에 대해 다른 원자의 스핀은 항상 -의 값을 갖는다. 이때 스핀의 경우 x-방향 성분과 y-방향 성분, z-방향 성분들 사이에는 모두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돼 이들 중 두 성분을 동시에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EPR 모순에 큰 돌파구를 만든 것은 영국 출신의 존 스튜어트 벨이었다. 벨은 1964년 봄의 논의를 발전시켜 거기에 적용되는 부등식을 하나 유도했다. 이를 ‘벨의 부등식’이라 한다. 벨의 부등식은 사실 거시세계에서 일반적인 경우의 수와 관련된 부등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양자역학의 논리를 적용하면 벨의 부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벨의 부등식은 EPR의 숨은 변수이론과 양자역학 중 어느 쪽이 자연의 진실에 가까운지를 판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인 셈이다. 벨의 부등식이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숨은 변수의 국소적 실재성이다. 즉, 홍길동의 관측행위가 아주 멀리 떨어진 전우치의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CERN에서 입자가속기를 연구하던 양자이론물리학자 존 벨은 1964년 안식년을 맞아 EPR 논문을 연구하다 ‘벨의 정리’를 발견했다. 올해는 벨의 정리 50주년이다. 1982년 CERN의 실험실에서.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제공

만약 어떤 실험을 통해 벨의 부등식이 성립함을 보인다면 이는 EPR의 승리이다. 만약 벨의 부등식이 깨짐을 보인다면 양자역학의 승리이다. 이 두 가지 가능성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벨의 부등식이 등장한 뒤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가장 인상적인 결과는 1981~1982년 프랑스의 알랭 아스페가 이끄는 연구진이 발표한 내용이었다.

 

아스페는 레이저로 칼슘원자를 들뜬 상태로 만들어, 이 상태가 다시 바닥상태로 떨어질 때 방출되는 서로 얽힌 상태의 광자를 이용했다. 아스페의 실험결과는 유의미한 수준으로 벨의 부등식을 깨버렸다! 그 이후 다른 연구진의 수많은 실험도 모두 벨의 부등식을 위배하는 결과를 얻었다. 이로써 EPR의 숨은 변수 이론은 우리 우주와 맞지 않으며 양자역학이 계속 승리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관련된 모든 관측결과는 “아인슈타인이 옳았다”는 타이틀을 달고 언론에 소개되지만, 양자얽힘과 관련된 모든 실험은 “아인슈타인이 틀렸다.”는 타이틀로 소개된다. 그러나 양자얽힘을 통해 홍길동의 상태가 전우치의 상태에 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물리적인 신호가 빛보다 빨리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얽힘이 제아무리 신묘하다 해도 특수상대성이론의 광속제한을 위배하지는 않는다.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은 서로 얽혀있는 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멀더라도 한쪽 양자상태가 측정되면 상대쪽도 즉각적으로 결정됨을 뜻한다.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 현상은 양자암호 등에 적용되고 있다. SPL 제공

 

※관련자료
-Einstein, A; B Podolsky; N Rosen (1935-05-15). "Can Quantum-Mechanical Description of Physical Reality be Considered Complete?". Physical Review. 47 (10): 777–780.
-Bohm, D. (1951). Quantum Theory, Prentice-Hall, Englewood Cliffs, page 29, and Chapter 5 section 3, and Chapter 22 Section 19.
-짐 배것, 《퀀텀스토리》 (박병철 옮김), 반니.
-Alain Aspect; Philippe Grangier; Gérard Roger (1981). "Experimental Tests of Realistic Local Theories via Bell's Theorem". Phys. Rev. Lett. 47 (7): 460–3.
-Alain Aspect; Jean Dalibard; Gérard Roger (1982). "Experimental Test of Bell's Inequalities Using Time-Varying Analyzers". Phys. Rev. Lett. 49 (25): 1804–7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