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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염색체를 아십니까?

heojohn 2020. 9. 6. 20:31

[강석기의 과학카페 131] 기적의 항암제 글리벡이 나오게 된 사연

널리 퍼져있는 오해는 암이 현대성의 질병이라는 것이다. 환경오염물질과 나쁜 식습관,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관련된 다른 많은 요소들 말이다. 진실은 전혀 다르다. 암이란, 빈도는 다소 차이가 있을지라도 모든 다세포 생물을 위협하는 질병이다. 사람에서 암 발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오늘날 우리가 암이 생길 시간만큼 오래 살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과 마찬가지로 암은 주로 노인을 공격한다.


- 로버트 와인버그, 발암유전자 Ras와 종양억제유전자 Rb 발견자

 

1960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세포에서 염색체 이상(필라델피아 염색체)을 발견한 피터 노웰과 데이비드 헝어퍼드. 암이 유전자 질환이라는 첫 증거로 평가된다. - 미국 필라델피아대 제공

 

지난 주 금요일자 학술지 ‘사이언스’의 목차를 훑어보다가 서평란에서 ‘The Philadelphia Chromosome’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뭐지?’ 호기심에 서평을 좀 읽어봤는데 1960년 만성골수성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환자의 백혈구에서 발견된 비정상 염색체를 부르는 이름이다. 당시 필라델피아대의 피터 노웰 교수와 대학원생 데이비드 헝어퍼드가 이 발견을 학술지 ‘사이언스’에 보고했는데 불과 세 문단, 300단어 분량이었다. 그 뒤 관련 연구자들이 대학의 이름을 빌려 이 비정상 염색체를 ‘필라델피아 염색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60년은 DNA이중나선이 발견되고 7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염색체 연구는 시작단계였다. 사람의 염색체가 46개(23쌍)로 이뤄져 있다는 게 확증된 게 1956년이다. 현미경으로 염색체를 비교한 연구자들은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일부가 떨어져나간 21번 염색체라고 추정했다. 아무튼 이 발견은 암세포가 유전자의 이상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첫 결과였다.

 

흥미로운 발견이었지만 마땅한 연구방법이 없던 당시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져갔는데 1970년대 들어 ‘염색체 띠 기법’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즉 염색체에 형광염료를 처리하면 염색체에 따라 독특한 띠 패턴이 나타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염색체 위치에 따라 DNA와 단백질이 뭉쳐진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1973년 필라델피아 유전자가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 사이에 일어난 전좌의 결과임을 밝힌 자넷 롤리. - 미국 시카고대 제공

 

미국 시카고대의 유전학자 자넷 롤리 교수는 이 기법을 써서 1973년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노웰 교수팀의 추정과는 달리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말단이 9번 염색체 말단과 바꿔치기 된 22번 염색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22번 염색체의 말단이 그보다 크기가 작은 9번 염색체 말단과 바꿔치기 되면서 크기가 작아진 것이다. 그 결과 9번 염색체는 약간 더 커졌지만 그 자체가 워낙 커서 노웰 교수팀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이렇게 다른 염색체 사이에 교환이 일어나는 현상을 ‘전좌(translocation)’라고 부른다.

 

‘재미있는 책이겠네….’ 창을 닫고 다시 목차를 보다가 뜻밖의 발견을 했다. 자넷 롤리 교수가 쓴 해설논문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롤리 교수가 필라델피아 염색체가 전좌의 결과임을 밝힌 지 40년 되는 해다. 아마도 이를 기념해 ‘사이언스’가 관련 분야의 전개과정을 회고한 글을 부탁했고 서평과 같은 호에 싣기로 한 것 같다. 읽어보니 꽤 재미가 있어 다시 서평으로 돌아가 마저 읽어보고 결국 책(이북)을 샀다. 과학저술가 제시카 와프너가 쓴 ‘The Philadelphia Chromosome’은 손에서 책(이북리더)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롤리 교수의 글을 틀로 하고 와프너의 책 내용으로 살을 붙여 필라델피아 염색체 발견에서 기적의 항암제 글리벡이 탄생까지 40년에 걸친 이야기를 소개한다.

 

변이 인산화효소가 암세포 만들어

1960년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세포에서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발견했고, 1973년 이 현상이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 사이에 일어난 전좌의 결과임이 밝혀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뀌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1983년 MIT의 데이비드 볼티모어 교수팀은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전좌가 일어난 지점에서 유전자 융합이 일어나 Bcr/Abl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위키피디아 제공

 

한편 1970년대 들어 암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는데, 1978년 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암세포에서 과잉 발현되는 변이 src 단백질이 인산화효소(kinase)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인산화효소는 표적이 되는 단백질에 인산기를 붙여 그 단백질을 활성화시킨다. 즉 평소에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던 단백질이 인산기가 붙으면서 구조가 바뀌어 활성을 띠고 그 결과 일련의 생체반응이 일어난다. 즉 인산화효소가 개입하는 세포내 반응으로 세포의 성장과 분열이 조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산화효소에서 변이가 일어나면 과도한 생체반응이 계속돼 세포가 분열을 멈추지 않게 된다. 즉 암세포로 바뀌는 것이다.

 

1980년대 초 미국 MIT의 데이비드 볼티모어 교수팀은 필라델피아 염색체에서 전좌가 일어난 부분이 bcr 유전자가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좌가 일어나면서 이 유전자가 9번 염색체에서 온 abl이라는 유전자와 합쳐지면서 Bcr/Abl이라는 변이 단백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Abl도 인산화효소였고 역시 Bcr/Abl도 변이로 활동 과잉이 된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전좌로 인해 만들어진 변이 인산화효소가 세포 분열이 통제를 벗어난 결과였던 것이다.

 

연구자로 전향한 임상의 두 사람

프랑스 파리에 있는 제약회사 셰링플라우의 항암제개발 팀장 알렉스 매터는 원래 종양학을 전공한 임상의였다. 그러나 암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는 점점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그의 환자였던, 세 아이를 둔 젊은 여성이 난소암으로 죽는 걸 보면서도 해줄 게 없다는 데 좌절한 그는 결국 “있는 치료법을 갖고 환자를 돌보는 것보다 더 나은 약을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1970년대 병원을 떠나 제약업계에 투신했다.

 

매터는 암과 인산화효소 사이의 관련성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1980년대 초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인 시바게이지로 옮겼고 1984년 인산화효소 억제 항암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전 직장의 동료인 생물학자 닉 라이든을 불러들였고 화학자 유르그 짐머만도 합류시켰다. 이들은 암세포에서 활동하는 인산화효소만을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약물이 모든 인산화효소를 다 방해하면 생명체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화학자들은 열심히 화합물을 합성했고 생물학자들은 이를 암 모델 동물에 적용해 약효와 부작용을 조사했다. 5년여에 걸쳐 만든 화합물 가운데 CGP-57148B라는 일련번호를 붙인 약물이 가장 효과가 좋았는데, 이 약물은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일으키는 Bcr/Abl 인산화효소에 달라붙어 작용을 억제했다. 그런데 회사로서는 실망스럽게도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희귀질환으로 미국에서 연간 5000명의 신규환자가 보고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매터는 특정 분자를 표적으로 한 최초의 항암제 개발이라는 데 의미를 두자며 임상을 시작하자고 간부들을 설득했다.

 

글리벡의 임상 필요성을 설득하고 임상을 진행한 오리건보건과학대 브라이언 드러커 교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의 영웅이다. - 브라이언 드러커 제공

한편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매터와 비슷한 경험과 결심을 한 의사가 있었다. 1955년생인 브라이언 드러커는 학부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의학대학원에 들어가 임상의가 돼 1981년부터 바네스병원에서 암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그 역시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해줄게 없다는 걸 절감했고 1984년 다나파퍼암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기초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암환자가 죽으면 유족들에게 편지를 써 위로해줬는데 아래는 그가 병원을 떠날 때 쓴 편지다.

 

“저는 이제 연구실로 갑니다. 전 지금 여러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걸 만들기 전까지는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암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드러커는 Abl 인산화효소의 작용으로 인산화가 되는 단백질을 항원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개발하는 연구를 했고 오랜 고생 끝에 항체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마침 시바게이지가 다나파퍼암연구소와 협력관계였고 매터가 항체에 관심을 보이면서(항체로 인산화효소 억제제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으므로) 드러커와 알게 됐고 드러커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개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한편 시바게이지에서는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CGP-57148B의 독성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개 일부에서 간 손상이 확인됐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약물개발을 중단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와중에 1996년 회사는 라이벌 제약사인 산도즈와 합병했고 노바티스라는 거대 제약사가 탄생했다. 동물실험을 핑계로 임상이 지연되면서 폭발 직전에 있던 매터는 새로운 경영진을 찾아가 담판을 벌였고 마침내 임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필라델피아 염색체 발견에서 글리벡 개발과 최근 현황까지 50년 역사를 다룬 책 ‘The Philadelphia Chromosome’이 올해 출간됐다. 책 표지 사진은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세포에 있는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 쌍으로, 하나는 정상이지만(각 쌍에서 위) 다른 하나는 전좌가 일어나 9번 염색체는 약간 더 길어졌고(위에서 두 번째) 22번 염색체는 짧아졌다(맨 아래). 짧아진 22번 염색체가 필라델피아 염색체다. - Amazon.com 제공

 

이 과정에서 오리건보건과학대로 자리를 옮긴 브리언 드러커가 큰 역할을 했고 1998년 마침내 이곳을 포함한 세 곳에서 임상1상이 시작됐다. 원래 임상1상의 목적은 약물의 부작용 여부와 적정 복용량을 찾는 것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즉 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상태가 급속히 좋아졌던 것. 게다가 기존의 함암제와는 달리 부작용도 크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골수를 채취해 검사하자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지닌 세포의 비율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던 것.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이듬해 임상2상이 시작됐는데 소문을 들은 사람들 수백 명이 임상에 참여하겠다고 뛰어드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런데 이 약물은 여러 단계를 거쳐 합성하기 때문에 충분한 양을 만들 수 없었던 노바티스는 임상자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임상을 기다리던 수전 맥나라마라는 여성이 인터넷을 통해 청원서 서명을 받았고 3000여명의 서명을 담은 청원서를 노바티스에 보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노바티스는 24시간 비상가동체계로 약물을 만들었고 임상 참여자수를 늘릴 수 있었다.

 

보통은 약효를 보는 임상2상이 끝나고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기존 약물과 비교를 하는 임상3상을 마친 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에 신약 신청을 한다. 그런데 이 약물은 워낙 약효가 탁월하다보니 임상2상까지 데이터로 신청하고 임상3상 데이터는 추후 제출하라는 예외규정이 적용됐다. 노바티스는 2001년 2월 트럭 한 대 분량의 서류를 제출했고 FDA는 초스피드로 처리를 끝내고 5월 판매를 승인했다. 보통 이 과정이 12~15개월이 걸리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결정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병행한 임상3상은 1년 만에 중단됐다. 대조군인 환자들에게 약효는 떨어지고 부작용은 큰 기존의 약물(인터페론)을 투여하는 게 비윤리적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글리벡 분자(빨간색)은 암세포의 Bcr/Abl 단백질(녹색)에 달라붙어 인산화효소 작용을 방해한다. - 위키피디아 제공

제품명 ‘글리벡(Gleevec)’인 신개념 항암제의 등장으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은 14%에서 95%로 극적으로 올라갔다. 게다가 기존의 약물이 끔찍한 부작용을 수반하는 것과는 달리 글리벡의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그 뒤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 뿐 아니라 다른 암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회사의 우려와는 달리 오늘날 년 매출액이 3조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가 됐다. 그리고 글리벡처럼 인산화효소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가 여럿 개발됐다.

 

저자 와프너는 책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강한 집념을 가진 소수의 노력으로 이뤄져 가는 과정을 실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평소 개인의 노력은 시스템을 바꿀 수 없다는 비관론에 젖어있는 필자가 책을 읽으며 감동한 이유다.

 

“지금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걸 만들기 전까지는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던 드러커는 보기 좋게 약속을 지켰고 지금은 이 대학 부설 나이트암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다. 이 연구소의 이름 나이트(Knight)는 글리벡 임상과정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이키의 창립자 필 나이트가 2008년 드러커를 찾아가 연구개발에 써달라며 1억 달러(약 1100억 원)를 기부해 그를 기려 붙인 것이다. 아래는 나이트가 드러커를 만나 기부를 약속하며 한 말이다.

 

"나는 당신의 비전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I want to invest in your vi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