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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유전학으로 유전자 발현을 제어할 수 있다?

heojohn 2021. 1. 16. 23:25

염기서열 무관하게 특정 형질 나타나…질병 치료 기여

2021.01.15 07:22 김준래 객원기자

19세기 초 프랑스의 생물학자인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는 저서인 ‘철학적 동물학’을 통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했다. 바로 ‘동물들은 일생 동안 자신의 필요에 의해 특정 형질을 발달시키며 이를 자손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의 용불용설(用不用說) 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이후 발견된 DNA 및 유전자에 의해 잘못된 주장임이 밝혀지면서 생물학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생물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얻은 특정한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환경에 의해 특정 형질이 유전되는 후생유전 경로 ⓒ Harvard Univ.

 

그랬던 용불용설이 최근 등장한 후생유전학(epigenetics)으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물론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린 학설이다. 라마르크가 말한 유전은 행위에 의해 얻어진 형질이 후손에게 전달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후성유전학에서 말하는 유전은 행위가 아닌 환경이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다만 한 세대에 특정하게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용불용설의 개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DNA 염기서열이 안 변해도 특정 형질 나타날 수 있어

후생유전학의 핵심은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특정한 세대에 출현한 형질이 다음 세대를 넘어 3세대 이하로 유전될 수 있다는 점도 알려주고 있다.

사실 후생유전학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사실로 인정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미 워싱턴주립대의 마이클 스키너(Michael Skinner)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학계의 관심을 모으면서 후생유전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게 되었다.

스키너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임신한 쥐를 화학물질에 노출시킨 다음, 태어난 수컷 새끼들을 조사했다. 대부분이 화학물질의 영향으로 고환이 비정상적이고 정자도 허약한 상태였다.

문제는 이렇게 태어난 쥐들끼리의 교배 결과였다. 이들 2세대 쥐들에게는 화학물질을 노출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3세대 쥐들의 90% 이상이 부모인 2세대 쥐들과 비슷한 상태를 보인 것이다.

유전학과 후생유전학의 개요 비교 ⓒ nature.com

 

그로부터 약 10년 뒤인 2014년에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 퍼거슨 스미스(Ferguson Smith) 교수가 스키너 교수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스미스 교수 역시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어미 쥐의 식생활이 새끼 쥐와 그 후손들의 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연구였다.

임신 중 자주 굶은 실험 쥐가 낳은 새끼 쥐들은 대부분 당뇨병에 걸렸으며, 그들의 새끼인 3세대 쥐들 역시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후생유전학적 변화가 환경에 의한 영향을 여러 세대에 걸쳐 전달된다는 학설을 입증하는 증거라 할 수 있는데,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DNA의 메틸화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DNA 메틸화란 개별 DNA의 염기에 ‘메틸기’가 달라붙는 현상을 가리킨다. 메틸기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대사물질로서, 이 물질은 유전자가 어떠한 기능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질병 치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

후생유전학이 최근 들어 학계뿐 만 아니라 산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질병 치료 때문이다. 대표적인 질병 치료에는 암과 감염병 등이 있다. 인간의 DNA에 들어있는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oncogene)’를 조절하는 데 있어 후생유전학이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경우, 평소에는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유전자(proto oncogene)’의 형태로 존재한다. 평소에는 proto oncogene 형태로 잠복해 있다가 외부의 자극, 즉 물리적 자극이나 화학적 자극 또는 바이러스 자극과 같은 특정 자극을 받으면 oncogene 형태로 바뀌면서 암을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질병과 관련된 후생유전의 발생 과정을 분석할 수 있게 되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하거나, 반대로 암을 억제시키는 유전자는 발현시킴으로써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감염병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아직도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퇴치에도 후생유전학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생쥐의 심장 근육 세포(우)는 세포 내부가 파괴되어 있다 ⓒ UCLA

 

알려져 있다시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는 폐뿐 아니라 심장과 신장 등 다른 주요 신체 기관도 심하게 손상시킨다. 그동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이런 신체 기관들을 공격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최근 발표된 미 UCLA 의대의 연구결과에서 실마리를 얻고 있다.

UCLA의대 발달생물학과의 아준 데브(Arjun Deb)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신체 기관들 속 유전자의 발현 체계를 일시적으로 변경시켜 세포의 에너지를 생성하는 분자 경로를 망가뜨린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망가뜨리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관련 해당 유전자들이 후생유전 변이를 일으키도록 유전자의 발현 교란 효과가 장기간 지속되게 만드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 중에는 완치된 후에도 적게는 수주부터 많게는 수개월까지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 환자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원인이 이 같은 후생유전에 의한 변이에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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