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하신 대로 사는 생활 지식/하나님 백성의 건강 관리

2008년 후기

heojohn 2009. 1. 24. 18:36

2008년 후기

 

  2008년 한 해의 의미는 내게 남다르게 다가온다.

 

  환갑을 지냈던 해이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던 해였기 때문이다. 나는 2007년에 문명의 덕분으로 늘어난 수명을 활용하여 나의 제2기 인생을 시작하기로 계획하고 기존의 모든 생활방식에서 탈피하기로 작정했었다. 그것은 자전적 소설인 [흑암전설]을 출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젊었을 때 나는 인간생활의 일상을 넘어 영원한 가치를 찾아보고자 꿈꾸었지만, 현실은 나의 발목을 잡고 늘 갑남을녀의 생활인으로 머물게 했었다. 가장이 되어 가정을 유지하면서 정해진 좌표는 언제나 그 자리였다. 현실적으로 가정은 경제적 바탕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남자로서 가정을 보전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면 일상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했다. 가장의 책임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내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에 경제적 안정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에 나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경제적 여유의 크기를 논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여생에 불편함이 없으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은 맞춘 것이었다.

 

   나는 필리핀과 중국에서 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총신대 사회교육원에서 부전공 과정으로 신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학은대에 등록했다. 예수를 탐구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창조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 구세주로서 이 세상에 왔다고 하는 예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여정의 출발이었다. [흑암전설]에 이어서 다음 작품을 쓰기 위한 준비였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기회의 나라임을 나는 노래하고 싶다. 1년 동안의 수강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참으로 그랬다. 해외에 나가면 밤새워 마시던 술버릇도 사라졌고, 덕분에 건강도 완전히 회복되었다. 퇴행성 증세를 보이던 관절도 회복되었다. 치매 초기증세라고 하는 깜빡깜빡하는 망각증도 사라졌다. 대부분 나보다 젊은 학우들과 교수들은 나에게 새로운 학구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를 관찰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창시한 예수라는 인물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 가지 희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선택과목으로 수강하는 현대기독교사상 강좌의 세 번 째 수업시간에 나의 엉뚱한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어쩐 일인지 그때까지 예수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이 현대 신학을 강의하는 교수님에게 내가 성급하게 던진 희한한 우문이었다.

 

“현대신학은 예수를 빼고 하는 것입니까?”

 

  그때 수업을 받던 반 분위기의 썰렁했던 반응은 성경을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신학공부에 뛰어든 나를 충분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바보 같은 질문을 했던 나이 많은 학생은 젊은 교수에게 각인되었고, 나중에 내게 전 과목에서 두 개밖에 없는 B학점으로 돌아왔다. 예수에 대한 내 성급한 지적 탐구욕이 불러일으켰던 우발적 사고였다. 예수는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기독교 신학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예수를 아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우선은 전공필수 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하는 일이 급했다. 이 두 개 언어들의 헷갈리는 알파벳 발음과 멋대로 꼬부라지는 글자체를 익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던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마다 단어와 문장을 암기하고 또 해석을 한답시고 얼마나 많은 밤잠을 설쳐야 했던가? 총신대에서 미처 신청하지  못한 과목의 수강을 위해서는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이 있는 양평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한강 북로를 차를 몰고 다녀야  했다. 여의도에서 타기 시작하는 강변북로의 풍경은 워커힐을 돌면서 양수리로 이어지는 환상적 경치였다. 해가 뜨나 비가 오나 한 학기 동안 강변북로를 오갔던 추억은 두 과목의 강의를 듣는 목적보다 드라이브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코스였다. 나는 2008년에 이 모든 과정을 치러냈다.

 

  숭실대 기독교학 대학원 th.m과정에 등록한 것은 이러한 결과에서 얻은 자신감의 반영이었다. 전필과목의 착오로 미처 이수하지 못한 두 과목 때문에 신학사 학위는 추후에 제출하기로 했다. 내가 이제 새삼스럽게 쓰는 2008년의 후기는 2009년에도 엄청 바쁜 일과를 넘겨준 꼴이 되었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나는 예수를 탐구하기 위해 4복음서부터 읽기 시작하면서 2008년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