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일 사건들과 신민회의 망명회의, 그리고 제1차 망명 일제는 1908년에 「대한매일신보」가 주관하던 국채보상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재무 담당 양기탁이 의연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그는 재판 끝에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양기탁은 1909년 3월에 그의 집에서 신민회 간부회의(제1차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일제의 강력한 무단통치에 의해 국내에서 활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므로 신민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곳에서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면서 기회가 왔을 때에 독립전쟁을 수행하려는 계획이었다. 그해 5월에는 양기탁이 주필로 있던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이자 반일적인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Ern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