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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들이 새까맣게…” 빈 월세방서 발견된 누더기개

heojohn 2022. 3. 13. 17:58

 

 [개st하우스] “버림받은 줄 모르고”…수개월째 방치된 개가 한 행동

입력 : 2022-03-12 09:03/수정 : 2022-03-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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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경남 거제의 한 빌라에서 3개월 이상 방치된 믹스견이 발견됐다. 해당 빌라의 운영자는 "강아지는 주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달 치 배변을 패드 위에만 모아서 쌌다"고 발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제보자 제공

“그 세입자는 월세가 계속 밀렸어요. 연락하면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엄마가 편찮으시다, 사기를 당했다’며 ‘조금만 봐주세요, 봐주세요’라고 반복하고. 8개월 만에 현관문을 열었는데 집 상태가 말이 아니었어요. 거실에는 악취가 엄청났고요. 그때 구석에서 완전히 누더기 꼴 강아지가 나타났습니다”
-경남 거제의 빌라 주인 이지영(가명)씨

지난달 8일 경남 거제의 한 빌라. 현관문을 열자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고, 눈 앞에 배변 덩어리들이 새까맣게 널브러진 참혹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이어 거실 구석에서 비틀비틀 기어 나오는 털뭉치 하나. 긴 털이 온몸을 뒤덮은 누더기개였습니다. 공과금이 밀려 빌라에는 물과 전기가 차단된 지 오래. 세입자도 떠나 텅 빈 집에 개 한 마리가 홀로 살고 있었던 겁니다.

더욱 놀라운 건 배변 덩어리가 쌓인 장소였습니다. 비좁은 배변 패드 위에만 수 개월 치 분뇨가 쌓여 있었습니다. 마치 주인과의 약속을 절대 어길 수 없다는 듯 오직 패드 위에만 말입니다.

집주인 40대 지영씨는 “녀석은 전 주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달 치 배변을, 진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패드 위에만 모아서 쌌다”며 “세입자가 전화로 두고 간 짐과 함께 강아지를 버려달라고 부탁하더라. 이런 착한 강아지를 버리고 간 세입자에게 정말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밀린 8개월치 월세…빈집서 울리는 개 짖는 소리

사건은 지난해 2월 인근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는 30대 이모씨가 빌라에 입주하면서 시작됩니다. 4개월 동안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세는 이후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지영씨는 “수차례 독촉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 ‘사기를 당해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전합니다.

이후 3개월 이상 요금 체납으로 전기 및 수도공급이 중단되면서 세입자는 아예 빌라를 떠났습니다. 제보자는 버려진 집 상태가 걱정됐으나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여서 내부를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물도, 전기도 끊긴 그곳에 한 생명이 갇혀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계약 만료를 앞둔 지난 달 지영씨는 세입자의 빈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난다는 민원을 받습니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개가 짖는다니? 두고 볼 수 없었던 제보자는 세입자를 추궁해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냈고, 마침내 방치된 빌라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배변패드에 지킨 약속

“읍!” 현관문을 열자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동물 사료와 배설물, 음식쓰레기가 뒤엉킨 최악의 냄새였습니다. 게다가 집안 곳곳에 옷가지와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죠. 그때 놀라서 멍하니 서 있는 제보자에게 무언가가 휘청거리며 다가옵니다. 더러운 털이 온몸을 뒤덮은 2살 남짓 어린 누더기개였습니다.

지난 2월 방치된 개가 발견된 빌라 현장. 수 개월치 분뇨가 배변패드 위에 쌓여 있다. 제보자 제공

둘러보니 거실 구석 벽지와 콘크리트 벽에는 커다란 구멍까지 나 있었습니다. 탈출하고 싶었던 녀석이 온 힘을 다해 파헤친 흔적같았습니다. 녀석의 이빨도 벽을 갈아 대느라 반쯤 닳아버렸죠. 더 마음 아픈 장면은 배변 패드 위에 녀석이 가지런히 쌓아 올린 몇 개월 치 배변 덩어리였습니다.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녀석은 전 주인에게 배운 대로 10여 장의 배변패드 위에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배변을 정돈해두었습니다. 지영씨는 “녀석은 전 주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애썼다”며 “사람인 이상 그 광경을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합니다.

"얼마나 탈출하고 싶었으면 그랬을까요" 벽지와 콘크리트 벽을 파헤치느라 방치된 개의 이빨은 절반가량 닳아 있었다. 제보자 제공

처참한 현장 상황에도 지영씨는 책임을 묻기 전에 세입자 이씨를 달래야 했습니다. 방치된 강아지의 소유권을 받아내기 위해서였죠. 민법상 동물은 물건에 해당합니다. 학대, 방치로 생명을 위태롭게 한 소유주일지라도 동의가 없으면 동물을 구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영씨는 설득 끝에 이씨로부터 “두고 간 물건과 함께 강아지는 버려달라”는 답변을 받아냈습니다.

누더기털 벗고 가족 만나…토르의 견생 2막

구조 즉시 위생 미용을 받은 누더기개. 2시간 미용 끝에 털옷을 벗고 앙상한 몸을 드러냅니다. 다행히 건강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녀석은 구조 3일 만에 경기도 고양의 한 시민에게 입양됐습니다.

"내 이름은 토르에요!" 누더기개는 구조 3일만에 경기도 고양의 한 시민에게 입양돼 행복한 견생 2막을 살고 있다. 제보자 제공

입양자가 보내준 영상 속에서 드넓은 펫공원을 번개처럼 빠르게 달리는 녀석. 그래서 이름도 번개의 신 ‘토르’가 됐답니다. 입양자는 지난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토르는 오랫동안 방치된 탓인지 입양 초기에 실내에 소변을 보고 강한 경계심을 보였지만 현재는 짖음 같은 문제 행동도 사라지고 잘 적응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동물 방치현장을 적발한 경우, 법적 절차는

동물 방치로 인해 금전적인 손실이 발생한 경우, 건물주는 민사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합니다. 이와 별개로 동물 방치 및 유기 행위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및 경찰에 신고 조치해야 합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을 유기한 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동물의 굶주림 질병 등에 적절히 조치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동물학대) 3년 이하의 징역 및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동물단체들은 지자체 및 수사당국이 동물 방치 및 유기 사건에 대응할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동물자유연대의 송지성 구조팀장은 "유기동물의 구조 및 관리는 지자체의 관할이며 사건을 제보받은 경찰은 유기를 저지른 견주의 처벌 여부를 수사할 의무가 있다"면서 "설사 견주가 동물을 다시 데려가는 등 수습이 되더라도 저지른 유기 혹은 방치 행위에 대한 동물보호법상 처벌은 피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제보자는 토르 방치사건을 관할 경찰서에 접수한 지 2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송 팀장은 "개인이 (동물 학대, 방치 등을) 신고하면 관할 지구대에서 출동한 경찰이 현장만 한번 훑고 가는 정도로 마무리된다. 그나마 시민단체가 나서서 압박하고 이슈화해야 지자체와 수사 당국이 움직이는 게 현실"이라고 전합니다.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859193&code=61171811&stg=ws_r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