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유신론 이해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본 창조론과 과학

heojohn 2018. 3. 21. 21:53

논평문: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본 창조론과 과학

 

1. 논평을 시작하면서


논평자는 창조론과 과학을 주제로 2018315일 과천소망교회에서 개최된 기독교학술원(AC: Academia Christiana) 67회 월례포럼에서 제출된 3개의 논문들을 논평하는 관점이 개혁신학적 입장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혀 둔다.



 

  1) 창조론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

 

창조론에 대한 개혁신학적 입장은 미국의 장로교 교단 PCA(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OPC(Orthodox Presbyterian Cuurch)2000년대 초부터 목사 안수의 기준으로 받아들인 견해 5가지(일상적인 하루의 날, -세대이론, 문예적 틀, 유비적 날, 미확정된 기간)를 수용한다. 이런 사실은 한국에서 개혁신학적 영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학술원(AC: Academia Christiana)이 이를 포괄적으로 인정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위엄(Magnalia Dei) 아래 창조론의 두 가지 요건은 반드시 일치해야 할 것이고, 나머지는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창조론의 두 가지 요건은 창세기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포한 다음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첫째는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창조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적 입장은 창조론이 이 두 가지 요건에만 일치한다면, 그 이외의 -시간적 해석을 포함하여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지 아니한 아디아포라(adiaphora)적인- 것들은 신앙의 형제들 사이에서 용인할 수 있는 해석의 차이로 보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야말로 적응’(Accommodation)을 강조하면서 개혁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칼빈(Jean Calvin, 1509-1564)의 개혁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2) 창조론과 과학의 분쟁 원인

 

창조론과 과학 사이에는 논쟁을 넘어 분쟁의 차원에 이르고 있다. 분쟁의 원인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는 자연을 이해하는 차이에 있음이 발견된다.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은 물질과 생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에는 물질과 생명에 대한 두 개의 법칙이 존재하게 되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인간이 이 땅에서 자연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생각했다. 고대 유대인들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에는 물질적인 법칙에 대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법칙이 주제가 되었고, 기독교는 이를 믿으려고 연구한다. 이 두 개의 법칙 사이에는 연결되지 않는 단절 부분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학문적 필요성에 의해, 연구대상인 자연을 물질로만 구성된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때부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하나의 자연을 나눠서 반쪽씩만 연구함으로써 기독교와 과학 사이에 견해차가 발생한 것이다.

과학에서의 문제는, 물리학은 물질만을 대상으로 물리법칙만을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생물학조차 생명을 물리법칙에 따라 설명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물리법칙과 생명법칙의 차이를 무시한다. 진화론적 과학이 자연을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의 반쪽만을 연구하는 한계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과학이 자연을 온전하게 설명하는 학문이 되려면, 먼저 물리법칙과 생명법칙을 통섭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 창조론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관련된 문제, 특히 창세기의 구절들을 과학적 문자로 해석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창조론의 문제는 성경이 생명의 법칙을 설명하는 책이지, 물리법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2. 제출된 논문들에 대한 논평 *출된 논문들은 AC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논문1:. 과학자의 입장 창조신앙과 과학”(한윤봉)

 

저자는 기독교 신앙의 바탕인 창조신앙이 무너지는 이유를 과학기술의 급속하게 발전함진화론 교육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진화론보다 더 파괴적인영향을 미치는 타협이론들이 등장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병들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진단과 주장은 저자가 현재 회장으로 있는 한국창조과학회(KACR)가 설립 초기부터 이구동성으로 수 없이 되풀이해오던 것이다. 각론에 서술된 내용에서도 새로운 것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현대과학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과학적으로 더욱 설득력 있는 창조론을 고대하고 있다. 그런 열망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창조과학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창조론은 기독교 신자들보다 선교의 현장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더욱 필요하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과학이 현대문명사회에서 주역이 된 마당에 현대인들을 상대로 과학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오는 화근이 될 수 있다.

진화론을 비판하려면 진화론의 오류를 과학적으로 들춰내야 한다. 진화론을 막연하게 사이비 과학이라는 주장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제 기독교 내에서도 효력이 떨어진 논리이다. 그것을 창조과학이라고 말한다면, 먼저 진화론에 대해서 과학적 방법으로 반론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 로마가톨릭이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지동설을 탄압했던 일은 이미 세계적으로 기독교를 무지의 종교로 비난 받게 만든 유명한 사건이 되었고, 결국 잘못을 사과했다. 최근에 한국 기독교도 사회로부터 크게 역풍을 맞았던 경험이 있었다. 장관 후보에 올랐던 한국창조과학회 임원 한 분이 청문회에서 지구와 우주 나이 6,000년 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과학 따로, 신앙 따로식의 답변을 했다가 이중인격자로 몰려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던 것이다.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비판하고 동시에 창조론도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저자가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를 타협이론이라고 비판하면서 언급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에 대해서는 한국 창조론자들이 모두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견해가 다른 한국 기독교 창조론자들이 아직 한 자리에 모여 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고, 따로 모여 서로 비판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평자는 이 기회에 한국창조과학회를 이끄는 저자가 넓은 도량으로 한국 창조론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자리를 주선하여 창조론을 발전시키는 일에 지도적 역할을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곧 창조론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지름길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논문 2: 지질학적 오랜 연대의 기원과 창조론적 지질연대(이상권)


저자는 주류 지질학과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홍수 지질학을 대비시키면서 그 차이점을 비교했다. 저자에 의하면 주류 지질학은 진화론적인 고생물학의 화석 기록의 해석에 의한 역사과학이다. 역사과학은 저신뢰과학(low-confidence Science)이며 순환 논리적이다. 저자는 지질시대 도표의 변천사를 살펴보면서 1841년에 필립스(John Phillips)진화론과 동일과정설적 오랜연대설에 따라 화석의 종류를 바탕으로 처음으로 전지구적인 지질시대 도표를 출판했다고 밝혔다. 동일과정설이 수록된 지질학 원리1830년부터 1833년 사이에 3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진화론이 서술된 종의 기원1859년에 출판되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지질학과 진화론은 독립적인 계통을 따라 발전한 것이고 저자의 주장은 절반만 맞는 것이 된다.

그리고 지질시대도표에 16억년이라는 수치가 들어간 것은 아서 홈스(Arthur Holmes)지구의 나이(1913)에서였다. 홈스는 뒤에 방사성 우라늄-납 반감기를 연대측정에 이용하여 지구의 연대를 “16억년에서 30억년으로 수정했다. 저자는 클레어 패터슨(Clair Patterson)이 지르콘 결정 속의 우라늄이 붕괴하면서 생성되는 납을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운석을 측정하여 지구의 나이를 약 45.5억년으로 주장했음을 소개했다. 패터슨이 운석을 측정한 수치는 1953년의 것이며, 이후 과학계에서 46억년의 오랜 지구연대를 널리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자는 이어 지사학의 5대원리를 소개하고, 상대연대측정(relative age dating)과 방사성 동위원소 붕괴율을 이용하는 수치연대측정(numerical age dating) 또는 절대연대측정에 기반하는 지사학을 불신한다고 주장했다. 상대연대측정을 불신하는 이유는 측정에 적용되는 5대원리에 한계성과 문제점이 있으므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절대연대측정을 불신하는 이유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모원소와 자원소의 함량비를 확인하는 작업 등에 정밀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고온의 플라즈마 상태에서 원자가 해리된 조건에서는 수억에서 수십억 배의 붕괴가속을 거치게 되어 반감기가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지질시대연대표의 수치연대는 화석이나 화석이 들어 있는 퇴적암을 직접 측정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주장은 현재의 사실이 아니다. 현재는 고생물학자나 지질학자가 화석과 화석이 들어 있는 지층의 시료(관입된 화강암 등) 채취하면, 가속기질량분석기(AMS)를 이용하여 정밀한 수치연대 측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지질학은 각 지질시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도 새로 교체하는 등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창조과학자들도 알아야 할 정보들이다. 특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에서도 고분해능이차이온질량분석기(HR-SIMS, 또는 별칭으로 SHRIMP)를 이미 도입하여 암석 등의 연대측정에 사용하고 있다.

저자는 지구의 형성 과정을 진화론적 입장과 성경적 창조론의 입장에서 비교하면서 창조 6일간은 과학의 한계를 벗어난 하나님의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사건으로 수용한다고 밝힌다. 그리고 논의의 방향을 돌려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성경적 창조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에게는 노아홍수의 역사성문제가 연대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젊은 연대의 문제는 우주가 6,000년 전 창조되었다는 주장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랜 연대는 진화론에 필요하지만, (무신론적) 진화론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진화론의 논리를 빅뱅 이전의 영원한 시간으로 확장하면, 그곳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과학의 한계를 벗어나계신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사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창조론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이 태초에 하신 창조사건을 성경 기록과 사실을 비교하면서 논증하는 것이다. 젊은 연대와 오랜 연대의 쟁점은 태초를 어느 때로 보느냐의 문제이다.

저자는 노아홍수라는 대격변을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들이면, 격변적 판구조 모델, 지진 토모그래피(seismic tomography)에 보이는 맨틀 내부 구조의 단면, 그랜드 캐니언의 초대형 퇴적층, 지자기의 빠른 역전 등의 데이터들이 노아홍수가 현재 상태의 지구를 만들었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론에서 저자는 창조-홍수 모델은 지구 역사의 진화론적 설명보다 훨씬 뛰어나고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류 과학적 주장을 반박하는 창조과학적 주장은 성경을 인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체계적인 논리로 과학적 데이터를 충분히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소논문에서 하나의 학문적 체계를 한 방에 KO시키듯이 주장하는 것은 사실 무리이다. 창조론은 과학의 오류를 찾아 한 번에 하나씩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시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듯이 창조론자들이 단합된 힘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가 과학적 이론과 신학적 해석을 비교하면서 창조론을 논의하는 것은 창조론의 발전을 위해 좋은 시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나무 몇 그루를 가지고 숲이라고 말하거나 숲속에 들어가서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논문 3: 신학자의 입장 (<oy)의 길이”(송인규)

 

미국의 보수주의적 장로교단들은 1961창세기 대홍수의 출판을 계기로 논란이 되기 시작한 의 해석에 관련한 문제를 1980년대 말부터 연구하였다. 그 결과는 2000년대 초에 나왔다. 저자는 이와 관련한 문제들과 보수주의적 장로교단들의 입장을 간명하게 요약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 결론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AC의 개혁신학적 입장에 포괄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다만 저자가 각론에서 PCA4가지 견해만 소개하고, 이보다 1가지를 더 많이 수용한 OPC비확정적 길이일 견해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두로 보충 설명을 요청한다).

의 해석에 관련된 문제는 한국 기독교 창조론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왜냐하면 KACR24시간 을 유일한 성경적 진리처럼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 젊은 우주론에서 24시간으로, 이를 바탕으로 우주연대를 6,000년으로, 보는 견해는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인정하는 다양한 견해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 대해 저자는 욤을 24시간으로 간주하는 견해만이 신학적 보수주의라고 못박는 것은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라고 정확하게 지적해주었다.

아무쪼록 창조론 연구에 필수적인 자료를 잘 정리해서 발표해주신 저자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논평자는 KACR의 창조과학자들이 이 논문을 보면, 신앙의 형제들이 에 대하여 가진 다른 해석을 타협이론으로 몰아 비난하는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

 

4. 논평을 마치면서: 한국 창조론자들에 대한 권면


현재 창조론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ICR이나 KACR은 그동안 창세기 대홍수(1961)에만 의존하고, 현대적 학문 체계를 갖춘 창조론이나 진화론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개발하는 일에는 등한시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창조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사건을 인간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일어난 창조사건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신비에 가려져 있는 부분이 많다. 과학 교과서가 아닌 성경을 가지고 창조 사건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자들은 그 일을 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창조론자들 사이에는 견해 차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창조사건에 관련하여 성경에 분명하게 서술되지 않았고, 과학적 사실로 입증되지도 아니한 것들이라면, 다양한 해석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창조론자들이 그런 것들을 놓고 서로 나와 다르므로 틀렸다고 비난하는 것은 신앙의 형제들 사이에 화목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일반사회와의 관계에서도 부정적 오해만 초래할 뿐이다. 미국 ICR에 대해서는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KACR을 비롯한 한국 기독교 창조론자들이 창조론 운동을 업-그레이드(up-grade)할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그러므로 창조론은 개혁신학적 입장과 같은 방향에서,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일치를 추구하고, 아디아포라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해석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면서 함께 모여 논의하는 것이 합당하다. 창조론자들이 문자적 해석을 성경의 일부분에만 적용하여 도그마처럼 주장한다면, 예수님 앞에서 율법 해석에 대한 특허권 또는 독점권을 가진 것처럼 주장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율법에 따라 돌로 처 죽일 것을 요구했을 때, 예수님이 그들의 문자적 해석에 어떻게 대답했었던가? 오직 문자적 해석을 따른다면 무엇보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한 안식교인들처럼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논평자는 성경의 궁극적 진리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100% 정확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적 진리의 기초인 창조론을 현대인들에게 설득력 있는 수준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앙의 형제들이 서로 터놓고 계속 대화를 가지면서, 합심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이 설혹 창조론을 조금 틀리게 서술했다고 할지라도 죄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개혁신학적 입장은 창조론에 대해서 자기의 입장에 맞지 않다고 상대방을 비신앙적이고 진화론자로 간주하는 것은 성경을 사랑하는 자의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참고 자료

 

허정윤, 과학과 신의 전쟁. 서울: 메노라,2017.

김영한, 기독교 학술원 54회 월례회 및 발표회 개회사”, 54[자료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자료: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open_kbsi&logNo=220603389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