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다윈의 [종의 기원] 비판

『종의 기원』이론의 불가능성

heojohn 2020. 3. 10. 01:25

(1) 광합성 작용: 식물과 동물 사이의 장벽

 

피터 크뢰닝(Peter Kröning, 1937-2003)은 식물의 광합성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를 한 생물학자로서 식물과 동물의 사이에는 광합성 작용이라는 또 하나의 건널 수 없는 장벽이 있음을 알려준다. 광합성 작용이란 식물이 섭취한 무기물과 태양의 빛 에너지가 식물의 엽록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원인 탄수화물과 같은 유기물질로 변환하는 화학작용을 말한다. 이때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놓는다.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이용하여 영양분을 자체 생산하는 독립 영양체이다. 광합성 작용은 엽록체를 가진 깊은 바다 속의 해조류나 지구상 그 어떤 식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동물은 종속 영양체이다. 어떻게 엽록체의 미세한 조직들이 이처럼 복잡한 광합성을 완벽하게 이루어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그는 먼저 유물론적 자연발생론자들이 광합성작용을 되짚어보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크뢰닝은 파스퇴르의 생명체는 오직 생명체로부터 생성될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 말은 자연발생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해도 오늘날까지 그 타당성을 전혀 잃지 않고 있다고 강조해마지 않는다. 크뢰닝은 광합성 작용이란 완벽하게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점진적 발전이란 건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여기서 인용한 크뢰닝의 말들은 진화의 단계에서 동물이 식물에서 진화했다는 연결고리가 없음을 결정적으로 입증해주는 생물학자의 확고한 증언이다.

 

(2) 돌연변이 초기종의 가능성

 

점진적 변이의 누적이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 다윈은 돌연변이진화를 적극 부정했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인 골드 슈미트(Richard Goldschmidt 1878-1958)25년 동안이나 집시나방(gypsy moth, Lymantria)의 계대 실험을 했지만, 새로운 초기종은 물론 중간종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1940진화론의 물질적 기초, Material Basis of Evolution에서 초기종이 생겨날 수 있는 길은 돌연변이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초기종희망적 괴물(hopeful monsters)”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이 실제로는 불가능하지만, 희망적으로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절망의 역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실험의 결과였으므로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주장은 신다윈주의(New Darwinism)라고 불리면서,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과 유전학 이론을 결합하여 점진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현대진화종합설과 경쟁하는 이론이 되었다.

현대의 진화론의 거장으로 도킨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 역시 점진적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중간 화석의 부재를 변명하기 위해서는 슈미트의 주장을 빌려야 했다. 굴드는 1972년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공동으로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을 제안했다. 이것 역시 돌연변이에 의해서만 새로운 초기종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돌연변이에 의해 하나의 초기종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생식장벽에 막혀 새로운 종의 출현은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물론 진화론자들은 아주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는 이런 돌연변이가 우연하게성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고, 무지한 일반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이 있었고, 지금도 수많은 종이 살고 있는데 이것들이 하나 또는 소수의원시 생물에서 점진적 변이 또는 돌연변이에 의해서 변이된 것이라고 한다면, 특히 캄브리아기에는 수많은 종이 동시에 폭발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에서 본다면, 그 많은 종들이 우연하게점진적 또는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종의 진화가 그렇게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우연은 오늘날에도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수백만 개의 종이 생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변이된 초기종을 오히려 일상적으로 쉽게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돌연변이 이론도, 점진적 변이 이론도 모두 허구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와 같이 다윈의 진화론을 검증하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진화의 개념을 나누어서 생물에게 개체의 다양성의 발현을 소진화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해도 생식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이 된다는 개념의 대진화는 사실상 불가능한 거짓 이론이라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광합성 장벽과 유성생식 동물의 생식장벽은 바로 이런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주는 진리이다. 결론적으로 초기종은 발생 가능성도 번식 가능성도 없는 다윈의 허구적 가설에만 존재하는 희망적 괴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 현대 유전학에서의 돌연변이와 기형

 

현대 유전학의 발달에 따라 우리가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인간의 생식 메커니즘을 통해 다윈의 자연선택론에 대해서 검증해보고자 한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각각 23개의 유전자를 가진 부모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46개의 유전자 배아가 성장한 것이다. 이 과정은 직접적인 생식행위를 통해서나 인공수정을 통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인간이 각각 다른 형태로 태어나는 것도 유전적인 메커니즘에서 보면 일종의 자연선택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선택의 한계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 다윈이 주장하는 자연선택에 의한 변이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다른 종으로까지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윈이 주장했던 점진적 변이나 신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돌연변이의 문제가 모두 그런 것이다. 모든 생물의 변이는 수정하는 순간부터 시작하여 태어날 때까지 모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자와 난자라는 성세포가 결합하는 순간부터 배아는 자체적으로 2, 4, 816, 32.....와 같이 계속 배수체로 분열하면서 성장한다. 모태에서 이렇게 성장이 진행되는 동안 배아에 전해진 부모의 유전 정보가 배아의 몸에서 표현된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부모의 유전자형이 표현형으로 실체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난자는 다른 종의 정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식장벽 문제를 검토했기 때문에, 다윈의 변이론이 어디까지 타당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손에게 나타나는 표현형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형의 범위에서 조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의 유전자에 다른 의 유전자가 섞여 들어가지 않는다면 돌연변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다른 종의 유전자는 생식장벽 때문에 서로 섞일 수 없다. 그렇다면 자손의 번식과 대물림을 아무리 많이 해도 변이는 부모의 유전형질의 범위 내에서만 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조상의 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변이는 부모 유전자의 결합 과정에서 일어나면서 표현형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한 변이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변수는 부모의 성세포에 내재된 유전형질이므로 총체적인 변수도 부모의 종에 속하는 유전형질의 한계범위를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자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변이도 이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 자손은 부모의 유전형질이 조합되는 결과에 의해서 태어난 표현형일 뿐이다. 부모가 인간이라면 인간 유전형질의 범주를 벗어나는 표현형의 자손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물은 부모의 유전자 조합에서 벗어나는 표현형을 결코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점진적 변이든, 돌연변이든, 다른 종으로의 종간변이는 유전학적으로 결코 일어날 수 없다.

또한 기형(畸形)의 문제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기형도 하나의 변이인 것은 틀림없지만 새로운 종으로의 돌연변이는 아니다. 기형은 유전자 형질의 조합과정에서 또는 배아 성장 과정에서 어떤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함의 원인은 유전자의 결손과 유전자 조합에서 일어나는 부정합 등의 유전자 문제와 체액의 부조화, 또는 X-선 조사, 어떤 영양물질의 과부족 등 생리화학적인 외부충격에 의해서 유전자가 손상을 입는 경우에 발생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관찰된 사실에 의하면 기형은 모두 부모보다 열등한 표현형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형의 경우에도 정상적인 유전형질을 가진 배우자와 결합하면, 다음 세대에서 단계적으로 정상화되기도 한다. 또한 체내 유전자의 손상은 자체적으로 복구하는 기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이런 현상을 거꾸로 해석하여 열등한 기형만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수한 기형도 태어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검토한 바와 같이 정상적인 유전자 조합을 벗어난다는 표현형은 어떤 오류를 내포한 것이고, 그것이 기형으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변수가 아무리 많아도 변수의 조합은 변수의 총체적 계수(計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리를 이성적으로 이미 이해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유전자 조합처럼 변수가 워낙 많을 경우에는 그 변수에서 나타나는 총체적 경우의 수를 정밀하게 모두 계산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유전적 형질에 아무리 많은 변수가 있을지라도 자손에게 표현되는 것은 부모의 종에 속하는 유전형질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자손에게 나타나는 표현형의 한계는 부모의 유전자 형질의 범위 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이런 것은 다양성의 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종간 변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부모의 유전자 조합의 한계를 초월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신적인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창조주의의 유형론을 부정한다면, 결국 자연발생설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철학적 무신론에 의한 자연발생론은 부정되었고,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 의한 자연발생론도 이와 같이 검증을 통해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