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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투하 75년 생존한 피폭자들이 남긴 의학적 유산

heojohn 2020. 7. 28. 02:19

2020.07.26 09:00

 

                                                               사이언스 제공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아번주 표지에 일본 히로시마의 모토야스강에 띄운 유등이 등장한다. 배경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 흐릿하게 보인다. 흔히 원폭돔이라고 불리는 건물이다. 1915년 건설돼 히로시마상업전시관으로 쓰였지만 1945년 8월 6일, 미국 원자폭탄 투하와 함께 일부가 파괴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변이 모두 폐허로 변한 가운데 유일하게 돔과 건물 형상을 유지하고 있어 원폭의 참상을 알리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표지에 등장한 유등은 매년 8월 6일 평화 활동가들이 띄우는 촛불이다. 활동가들은 1945년 이날 단 하루에 최대 12만 명의 사상자를 낸 인류 최초의 원폭 투하가 불러온 참상을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모토야스강에 유등을 띄우는 행사를 한다.

 

이번주 사이언스는 75주년을 맞은 원폭의 피해를 되짚어 보고, 참상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온 과학, 의학 연구가 어떻게 인류에게 값진 과학적 유산을 남겼는지 짚는 기획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사이언스는 과학학술지이기 이전에 과학잡지로서 종종 기획기사로 표지를 꾸린다.

 

●원폭 생존자들, 참상 속에서도 방사선 역학 연구에 참여


데니스 노밀 기자는 히로시마 출신 이이다 구니히코 씨의 이야기로 기사를 시작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3살이었던 그는 원폭 투하지에서 900m 떨어진 곳에서 가족과 함께 있었다. 폭탄이 떨어진 순간 집과 함께 주변의 모든 게 날아가 버렸다. 가족은 즉사를 면했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도시를 빠져나가자마자 사망했다. 어린 그는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가족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원폭의 생존자인 그는, 그러나 이후 평생을 질병과 사투를 벌이며 살아야 했다. 빈혈과 궤양, 천식으로 고통 받고 뇌종양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다. 현재는 감상샘암까지 걸렸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원폭의 생존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질병으로 사그라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부는 암으로, 일부는 다른 방사선 관련 질병으로 고통 속에 생을 마감했다.

 

방사선영향연구소의 수명조사 홈페이지다. 약 12만 명의 원폭 생존자가 참여한 연구로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중요한 방사선 건강 영향 지식이 이 장기 코호트 연구에서 밝혀졌다. 방사선영향연구소 홈페이지 캡쳐

이이다 씨를 비롯해 12만 명에 이르는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원폭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인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쓰이도록 허락했다. 과학·의학 연구에 참여해 방사선 피폭이 가져온 장기적인 건강 영향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국이 1946년 구성한 ‘원폭희생자위원회(ABCC)’를 통해 시작한 과학 의학 연구에 참여했다. 1950년 9만400명의 피폭자와 2만7000명의 비피폭자 등 총 12만 명에 달하는 생존자들이 방사선 피폭 환자 장기 추적조사인 ‘수명조사(LSS)’가 시작됐다. 이 연구는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1975년 설립한 ‘방사선영향연구소(RERF)’가 이어받아 현재까지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방사선학 지식의 상당수는 이 거대한 코호트 연구 덕분에 밝혀질 수 있었다.


LSS 연구의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피폭된 부모와 아이의 기형, 사산, 저체중 등에 영향이 없다는 연구결과였다. 1948~1952년 사이에 아이를 낳은 6만 명의 사례를 분석한 것으로 1953년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당시 일본에는 원폭 생존자 특히 여성이 결혼을 거부 당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런 의혹을 일부 잠재울 수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이 연구 결과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백혈병 등의 발병 빈도가 생존자에게 더 높게 발견되면서 피폭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ABCC는 복잡한 피폭의 건강 영향을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생존자 2만8000명을 심층 인터뷰해 피폭 당시 원폭투하지와의 거리와 자세, 지상 또는 지하 거주 여부, 나이, 성별 등을 종합해 방사선 피폭량과 건강 위험 사이의 영향을 연구했다. 이 연구로 방사선 피폭은 어릴수록, 여성일수록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정량적으로 확인됐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는 75년 전 먼 과거의 일이지만, 이 사태를 겪은 생존자와 그 자손에게는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이들이 참여한 의학과 과학 연구 역시 이어지고 있다. 위키미디어 제공

●연구 참여 생존자 갈수록 줄어...게놈 연구와 2세 연구 등 새로운 연구 이어갈 예정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 사용에 의한 피해를 겪은 피폭 생존자들 덕분에 현대 의학과 과학은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장기 영향을 잘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LSS 연구도 서서히 종료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 LSS에 참여하는 생존자의 70%는 질환과 고령으로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참여자는 80세 이상의 고령자다.


하지만 이들의 기여는 끝나지 않았다. 70년간 3만 명의 검체가 확보돼 새로운 연구에 활용될 계획이다. 유전체(게놈) 해독 및 분석 연구를 통해 방사선 피폭이 DNA에 남긴 직접적인 영향인 변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생존자의 자녀를 통한 2세 연구도 진행 중이다. 7만7000명의 2세를 연구 중이지만 아직은 부모의 피폭이 이들에게 건강 영향을 미친다는 증가는 없는 상태다. 일본 정부도 이에 따라 2세에 대한 의료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연구팀은 좀더 많은 사례를 장기적으로 연구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