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무신론 비판(진화론+유물론)/다윈의 [종의 기원] 비판

진화론의 현대적 종합

heojohn 2021. 2. 13. 22:43

[사이언스N사피엔스]

2021.02.04 14:00

찰스 다윈에게 진화론 영감을 준 갈라파고스제도의 핀치새. 네이처 제공

 

19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성과라면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다윈의 진화론의 등장은 과학사적으로 엄청난 일대 사변이었으며 이후 20세기에도 과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이 20세기에 수용되는 과정에는 다소간의 부침이 있었다. 무엇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유전 메커니즘이 빠져 있었다. 유전은 진화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계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한 변이가 후대에 전해져야 진화가 일어난다. 다윈 자신이 제안한 유전이론이 없지는 않았다. ‘판제네시스’라 불리는 이 이론에서는 생물체의 세포마다 자가증식성 소분체(gemuule)가 있고 소분체가 생식세포로 모여 자손에게 전해진다.

 

이 이론에서는 장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획득형질이 유전될 수 있으며 자손의 형질은 부모형질이 적당히 평균적으로 뒤섞인 형태로 드러난다. 다윈이 이처럼 잘못된 유전이론을 끌어안고 있었던 데에는 그레고어 멘델의 완두콩 연구결과가 제대로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윈과 멘델은 동시대를 살았으나 불행히도 만난 적이 없다. 일화에 따르면 멘델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다윈에게 편지로 보냈으나 다윈은 끝내 열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다윈의 입장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다윈은 멘델이 자신의 결과를 발표했던 1865년에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였다. 아마도 다윈의 책상 위에는 사이비과학을 비롯해 온갖 이상한 이론들로 중무장한 편지들이 각처에서 답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되는 데에 무려 35년이나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 수도원 신부님이었던 멘델의 이름이 학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멘델의 법칙이 알려지지 않고 자연선택을 진화의 기본 메커니즘으로 제시한 다윈마저 라마르크주의를 답습하고 있었다는 점은 진화론 역사의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과학사뿐만 아니라 인간사 모두가 이런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제시했던 월리스는 라마르크주의를 끝까지 거부하고 자연선택을 고집했다. 독일의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체세포가 생식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라마르크주의에 종언을 고했다. 이처럼 라마르크주의와 결별한 자연선택 중심의 다윈주의를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 부른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된 뒤로는 멘델의 유전법칙과 진화론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가 관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출발은 집단유전학이었다. 가령, 멘델의 유전법칙이 옳다면 우열의 법칙에 따라 어떤 집단 안에서 결국은 열성형질이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 질문에 아주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답을 준 것이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였던 하디였다. 하디는 중학교 수준의 간단한 수학, 즉 완전제곱식 을 이용해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어떤 집단 안에서 대립유전자의 빈도가 세대를 거듭해도 항상 일정하게 유지됨을 보였다.


이 결과는 하디와 독립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은 독일의 바인베르크의 이름을 따서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라 부르며, 대립유전자가 둘 이상일 때에도 성립한다. 여기서 특정 조건이란 해당 집단이 충분히 커야 하고, 돌연변이가 없고, 무작위 교배가 이루어지며, 개체의 출입도 없고 자연선택이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조건이라면 마치 화학반응에서 반응 전후로 질량이 보존되듯이 대립유전자의 비율이 세대를 거듭해도 계속 똑같이 유지된다. 사실 위와 같은 조건에서는 대립유전자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생기거나 변하지 않기 때문에 원래의 비율이 잘 유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하디-바인베르크 원리가 깨졌을 때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가 일어났다고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유전학자인 존 홀데인, 로널드 피셔, 시웰 라이트의 선구적인 연구로 집단유전학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집단유전학에서는 한 개체 속에서의 유전자 조성보다 집단 속에서의 유전자 조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집단 속의 대립유전자 집합, 즉 유전자 풀(gene pool)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체 유전자 풀 속에서 특정 대립유전자의 빈도를 연구해 유전자 풀의 조성변화를 추적한다. 하디-바인베르크의 원리가 작동한다면 유전자 풀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고, 만약 진화가 일어났다면 대립유전자의 빈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집단유전학에서는 이를 수학적 통계적인 기법으로 다룬다. 이들은 멘델의 법칙이 집단유전학 속에서 잘 작동하며, 자연선택이 유전자 풀의 변화를 야기해 진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였다. 집단유전학의 결과는 멘델의 유전학과 다윈의 자연선택이 서로 잘 조응하며 하나의 진화이론으로 통합될 수 있음을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또한 수학과 통계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통합된 진화론이 하나의 굳건한 과학이론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수학을 바탕으로 집단유전학이 성공을 거두자 머지않아 다른 분야들도 이 통합의 대열에 합류했다. 물꼬를 튼 이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모건의 초파리방에서 연구했던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였다. 생물학적 전통은 크게 유전학과 현장 생물학, 또는 생리학과 박물학, 또는 실험실생물학과 야외생물학으로 나눌 수 있다.


두 전통은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면서 발전해 왔는데, 도브잔스키는 유전학자이면서 자연학자로서 두 진영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도브잔스킨(900~1975). 위키미디어 제공

 

도브잔스키는 모건의 초파리방에서 연구를 하면서도 실험실에 갇혀 있지 않고 초파리 연구를 위해 야외로 나가는 모험(갈라파고스까지 포함해서)을 감행했다. 이로써 실험실의 표준화된 초파리가 아니라 야외에 자연스럽게 분포하는 변이의 다양성을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도브잔스키가 1937년에 쓴 《유전학과 종의 기원》은 이렇게 야외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해 실험생물학의 예상보다 더 많은 다양성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또한 유전자형과 표현형 사이의 관계를 보다 엄밀하게 규정할 수 있었다.


아울러 도브잔스키는 이전에 수학으로 점철된 집단유전학의 방법론을 대중화하는 데에 기여했다.


도브잔스키의 뒤를 이어 에른스트 마이어, 조지 심슨, 줄리언 헉슬리 등이 합류했다. 이들의 연구로 계통학, 고생물학 등에서의 연구가 진화론과 유전학의 통합 속에 잘 녹아들 수 있음을 보였다. 줄리언 헉슬리는 1942년 《진화: 현대적 종합》이라는 책에서 유전학, 진화론, 고생물학, 발생학 등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조망했다. 줄리안 헉슬리는 다윈의 불독으로 불리며 1860년 영국 학술협회 연례회의에서 윌버포스 주교에 맞서 진화론을 옹호했던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였다. 대략 1942년에 이르러 ‘진화론의 현대적 종합’이 이뤄졌다.

토마스 헉슬리의 초상화 앞에 있는 줄리안 헉슬리. 위키미디어 제공

 

진화론의 현대적 종합은 다윈 이후 진화론의 가장 큰 과제라 할 수 있는 유전론의 포섭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즉 진화의 모든 현상은 기본적으로 멘델의 유전기제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고생물학에서의 큰 스케일에서의 대진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진화를 작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 자연선택임을 확인한 것도 큰 성과이다. 그리고 생물집단 내의 유전적인 다양성이 진화의 핵심적인 요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적인 종합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진화론 또는 생물학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단순한 봉합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다. 1940년대면 이중나선이 규명되기도 전이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이후 분자생물학의 등장은 생물학의 새 장을 열었다. 생명현상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접근은 말하자면 생물학의 물리화라고도 할 만큼 환원주의의 생물학적 끝판왕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기존의 진화론자들은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지점은 과연 모든 생명현상이 분자생물학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어느 순간 창발적 현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어느 정도의 척도에서 시작될 것인가 하는 점들이다.


또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자연선택이 얼마나 강력하게 진화를 추동하는가, 자연선택이 오직 유일한 진화의 메커니즘인가, 자연선택의 단위는 무엇인가, 진화의 속도는 어느 정도인가, 진화는 진보인가, 등등의 문제는 현대적 종합 이후로도 계속 논쟁이 이어진 주제였다. 예컨대 자연선택이 집단이나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 수준에서 작동한다고 주장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197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개체는 그저 유전자를 옮기는 운반체나 기계에 불과하다. 한편 에드워드 윌슨은 1975년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을 펴내 동물의 사회적 행동과 진화의 연관성을 모색했다. 사회생물학은 생물학적 기초 위에서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기술한다. 여기에는 인간의 행동도 포함된다. 윌슨의 생물학적 기초는 유전자이다. 유전자의 수준에서 고찰하면 자연선택이 결정적으로 작동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어떻게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데에 이점이 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에는 1965년 윌리엄 해밀턴이 제시한 포괄적합도 개념이 깔려 있다. 간단히 말해서 유전적으로 가까운 친족이 선택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윌슨과 도킨스의 입장에는 자칫 유전자 결정론이나 유전자 만능론으로 빠질 가능성도 언제나 열려 있다. 특히 인간의 행동이 결부되기 시작하면 논란이 증폭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기적 유전자》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리처드 도킨스(1941~현재)

 

※관련기사

-Britannica,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Neo-Darwinism". Encyclopedia Britannica, 28 Sep. 2010, https://www.britannica.com/science/neo-Darwinism. Accessed 1 February 2021.
-김우재, 《플라이룸》, 김영사.
-에른스트 마이어, 《이것이 생물학이다》(최재천 옮김), 바다출판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이한음 옮김), 까치.
-김웅진, 《생물학 이야기》, 행성비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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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