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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에서 창조”과정(過程)에 대한 과학적 해석 연구

heojohn 2010. 6. 28. 01:29

 “무(無)에서 창조”과정(過程)에 대한 과학적 해석 연구

        -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를 중심으로

      A Scientific Interpretation of the Process of “Creation out of Nothing”

                 - based on "God is spirit" (John 4:24)


                         

목     차                              


1. 시작하는 말


2. 태초의 실존적 상황

   2.1 태초의 실존 이해

   2.2 하나님은 영이시다


3. 우주물질의 생성

   3.1 빅뱅 이론

   3.2 물질과 에너지의 3법칙

   3.3 물리학적 4가지 힘

   3.4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


4. 물질에 나타나 있는 창조의 흔적

   4.1 창조주의 영적 에너지

   4.2 물질의 구조

   4.3 양자역학

   4.4 우주체계를 지탱하는 힘

   4.5 “무에서 창조”의 방법론

 

5. 맺는 말   

                       

Abstract


       Modern men with average knowledge of science increasingly distrust the creation story in the Bible and even regards Christianity as a superstitious religion. There is no forming the Christian world view without establishing the concept of "Creation out of nothing." Furthermore, if you would not assure one of "Creation out of nothing," you cannot believe the creation by God. Therefore the short cut to the Christian faith is to accept "Creation out of nothing."

        Nevertheless, Christian leaders urge to understand the Creation by God on the basis of several sentences in the Genesis. While modern men understand a certain event by six elements of time, place, subject, object, way and purpose, the creation is also an event. Then, the creation story beginning from Genesis 1:1 talks about the time (when), the subject (who) and the object (what).  That is, the story only reveals the time of the beginning, the subject of God as Creator and the universe of the object. In connection with the place(where), I already told in another essay on this Forum in 2009. Now we know about the creation story by God the four out of the six elements required to the report of an event. We have two more, which is how- the way, and why- the purpose. This essay will attempt to prove how God created the universe based on the modern scientific theory and methodology.



1. 시작하는 말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현대인에게 기독교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수준의 과학상식을 가진 현대인들이 성경의 창세기 기사를 믿지 않고 있고, 이는 곧 기독교를 점점 미신적인 종교로 취급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無)에서 창조” 개념을 확신하지 않고는 기독교 세계관이 형성될 수 없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을 아무리 훌륭하게 열심히 가르쳐도 “무에서 창조”를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창조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무에서 창조”를 이해하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기독교에서는 창세기 기사의 몇 줄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라고 강요한다. 성경의 창조기사는 하나님의 창조 방법에 대해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각각 종류대로, 형상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보도한다. 이것은 과정이 생략된 채 너무나도 간단하게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의 방법이 제한되어 있었던 고대에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렇게 단순한 창조사건의 기사를 읽(들)으면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권능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이 창조기사가 너무나 신화적이어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고도의 기계문명 사회에서 과학교육을 받고 자란 현대인들은 이러한 창조기사에 대해 그 사실성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사회에 나타난 현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기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종교를 강제하고 있는 이슬람 국교주의 국가보다 종교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 기독교 국가에서 더욱 심하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국가에서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심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이런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그동안 꾸준히 현대적인 창조론을 연구해왔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창조를 태초에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취재 보도하는 것이다. 창세기 1:1절에서 보면, 하나님의 창조사건에 대해 때(When? 태초에)와 ‘누구(Who? 하나님)와 무엇(What? 천지)을 알 수 있다. 또 창조사건의 장소(Where)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곳, 즉 태초의 ‘흑암’1)에서 일어났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사건에 대해 사건보도 기사 작법에서 말하는 여섯 가지 구성요소 중 네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 두 가지가 남아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How)라는 방법과 ‘왜’(Why)라는 목적이다. 이 글에서는 남아 있는 두 가지 구성요소 중에서, 하나님의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 방법에 대하여 현대의 과학적인 이론과 방법으로 논증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 글의 제목에 들어 있는 ‘무(無)에서 창조’라는 말은 가톨릭교회 성경 마카베오기 하권(2마카) 7:28-292)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카베오기(전3권)는 알렉산더 대제의 사후 그리스 제국을 3분했던 시리아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에 대한 유대인의 항쟁 및 마카비 왕조3)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기원전 175년에 시리아의 왕이 된 안티쿠스는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던 이집트 프톨레미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재물을 탈취하고 지성소를 모독했다. 이 사건에 대해 유대인들은 극렬하게 반발하면서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마카베오기에서 이 구절을 중심으로 읽어보면, 안티쿠스는 그의 성전 모독에 항거하던 한 여인의 일곱 아들들을 모두 잡아 들여서 여섯째 아들까지 처형한다. 마지막 일곱째 아들을 남겨놓고 그는 어머니를 불러 하나님을 부인하도록 설득하면, 하나 남은 막내아들은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그 여인은 하나 남은 아들에게 우주만물을 살펴보고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창조하지 아니하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를 믿고 죽으라고 말한다. 평범한 여인에게서 신학적으로 이토록 의미 있고 중요한 말과 행동이 나왔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조건 없이 아들의 목숨까지 기꺼이 바치고자 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신앙정신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이 사건은 유대인 항쟁이 발발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마침내 승리한 유대인들이 마카비 왕조를 세우는 주춧돌이 되었다. 이 여인의 신앙은 이렇게 “무에서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바탕위에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이 여인이 말한 것과 같이 창조주 하나님이 태초에 무(無)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이 글은 “무에서 창조” 과정에 대한 필자의 이해를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현대인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현대적 과학주의라는 패러다임은 다윈에서 비롯한 진화론이다. 진화론자들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창조기사를 전적으로 불신할 뿐만 아니라, 영원불변한 우주자연에서 생명은 물질적 작용에 의하여 생겨난 우연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우주자연은 영원한 법칙이 지배하며 창조하는 신 따위는 아예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무신론자들은 우주자연에서 우연한 기회에 저절로 합성된 생명체는 돌연(突然)히 발생하는 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는 유물(唯物)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인간도 태초에 우연히 생성된 박테리아와 같은 최초의 원시생물에서 진화했으며, 수백만 년 전에 원숭이와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보는 것이 진화론자, 곧 무신론자와 유물론적 공산주의자들의 세계관이다. 이런 사상은 동양에서도 노장(老莊)의 유생어무(有生於無: 유는 무에서 나온다) 사상을 통해서도 이미 확산되고 있었다.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은 과학주의를 신봉하는 현대인들의 의식에 맞추어 진화론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성경의 창조기사를 믿는 기독교신자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과학적 논리에 밀리면서 이들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하고 젊은 세대를 점점 빼앗기고 있다. 현대 기독교는 노화하고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진화론의 논리를 잘 살펴보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동떨어지게 전혀 과학적인 논증으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과학적이라고 믿는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신론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다윈주의라는 패러다임의 문제이다. 물리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그들의 과학 저술에서 ‘우연’, ‘변이’, ‘자연선택’ 그리고 ‘진화’라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이러한 진화론적 용어들은 과학에서 개념 설명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용어들에 대해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신봉하는 무신론 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이미 부여했기 때문이다. 증명이 필요한 부분에서 애매한 이 용어들을 쓰는 논문은 문제가 없이 통과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신론적 개념이나 창조론적 용어가 조금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그 논문은 예외 없이 기각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학계에서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증의 방법이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이제는 이것이 확산되어 과학에서는 물론, 인문학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이 말들이 너무 흔히 사용되고 있다. 둘째는 상대적 비교에서 창조론이 진화론의 과학적 설명 방법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 신학자와 목회자는 과학의 발전을 아예 도외시하고, 고대에서나 현대에서나 변함없이 성경에 있는 문자대로만 창조론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반인들, 특히 젊은 세대는 창조론을 교회에서나 이야기하는 동화쯤으로 치부하고, 점점 무신론, 또는 진화론에 세뇌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함에도 기독교 지도자들은 과학의 발전에 상응하여 창조론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고대의 신화적인 창조론을 답습하면서 종교와 과학은 별개라고 핑계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너무도 쉽게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자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에 살면서 과학의 진리와 종교의 진리는 별개라고 어찌 말할 수 있는지 필자로서는 반박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는 우주자연에도 있고, 성경에도 있으며, 그것은 결국에는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더 이상 쇠퇴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닥친 이런 문제들을 깨닫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안에서, 그분이 창조하신 질서의 지배를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증명하는 자료에서도 창조의 증거는 숱하게 많이 발견할 수 있다.


2. 태초의 실존적 상황


  2.1 태초의 실존 이해

   

    하나님의 창조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절)라는 바울 사도의 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도 창조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과 능력으로 하늘과 땅을 무로부터 창조했다.”4)고 했다.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태초에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존재자이셨으며, 다른 아무 것도 없었다. 태초는 유일하신 하나님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장소와 때(時空間)이었음을 확실하게 인식해야만 과학적 창조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無)도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일부 창조론의 오류를 시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태초의 실존적 상황을 동양적 태극사상에서 발전시킨 “신태극론”에서 “1=1+0”이라는 방정식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실존적 상황은 영원불변성을 가지고 있다. 1은 존재(存在, 有)의 시작을 나타내며, 하나이며, 창조자이며, 말 그대로 하나님을 표현한다. 0은 아무 것도 없는 절대적인 무(無)이다. 이 말에는 장소적인 의미와 재료적인 의미와 원본의 창조라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홀로 다른 존재가 없는 장소에서, 아무 재료도 없이, 자기 설계에 따라 피조물의 원본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창조는 이러한 태초의 실존적 상황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이다.

    창조과정에서 무(無)로부터 생성된 우주물질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자는 창조 당시의 특수성과 태초의 실존적 상황 세 가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이 실존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창조는 실존적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건이다. 이제까지 정립된 과학적 또는 철학적 개념에서 보면, 실존적인 존재는 필연적으로 실재(實在)이다. 실재는 외연(外延)이 있는 유한(有限)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개념은 하나님을 무한하신 분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사뭇 낯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말은 태초에 하나님이 무한적인 무(無)의 영역 안에 홀로 계신(有) 존재이심을 뜻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태초에 유무(有無)가 공존하고 있으면서, 유는 무보다 크지 않음을 나타내는 동양사상적인 이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진리이지 않는가? 이는 유대인의 신비신학에 속하는 짐줌(Zimzum: 수축의 뜻)의 개념과는 다르다. 짐줌은 무한하신 하나님은 공간의 여지가 없으므로 창조를 위해 자기를 수축시키시고, 수축된 공간에 무(無)의 부분을 만들어서 피조물을 그곳에 두었다는 개념인데, 이것이 기독교 신학에 흘러 들어와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성에서 영원하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뜻하시는 목적과 방법으로 창조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분이심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창조사건의 결과물이며,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다른 뜻이 있으셨다면, 그분은 우주를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창조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어쩌다가 그분의 뜻이 바뀌신다면, 미래에 언제라도 우주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으실 것이다. 모든 피조물의 운명은 창조자의 뜻에 달려 있다.

    둘째, 그렇다면 무를 창조하지 못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하나님을 말할 때에 전지전능과 무소부재라는 표현은 피조물과의 상대성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즉 피조물이 창조자 하나님을 보는 관점에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 영역을 벗어난 무(無)의 곳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창조는 그의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이며, 피조물은 하나님의 외연에 속해 있는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주권적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한적인 영역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이라는 존재는, 무한한 무(無)의 곳에서 홀로 자유롭게 뜻하시는 대로 창조의 권능을 행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존재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능은 그의 주권적 창조영역 곳곳에서 언제나 행사되고 있으므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들은 그분의 외연을 확장하는 창조 작업에서 그분의 권능이 모자람 없이 충분하게 발휘되었고, 앞으로도 그분의 계획과 방법에 따라 창조는 계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분되는 초월적 존재이면서도, 그분의 영역 안에 모든 피조물을 포괄하시면서 통치하신다. 우리 인간은 특별하게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부여받은 존재이다. 이렇게 이성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그의 창조영역에서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며, 절대주권을 보유하신 유일하신 존재라는 사실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셋째, 무(無)는 영원히 무한이며 하나님은 무(無) 안에서 유일하게 존재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 방정식은 1=1+0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방정식은 이원론적 현상으로 보이지만, 동시(同時)적이며 동소(同所)적이고 불가분(不可分)적으로 공존하는 일원론적인 실재이다. 무한은 이미 작아질 수 없는 것이고, 무한 안에서 유한은 아무리 커져도 유한한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무(無) 안에서 유한한 존재이지만, 무한한 무에 흡수되어 어느 순간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유무(有無)적 관계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무(無)는 영원히 공존하는 관계이다. 무에 존재할 수 있는 권능은 하나님 밖에는 없지만, 피조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1)에게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피조물은 하나님에게 의존적 존재이며, 하나님의 외연에 존재하며, 영원하신 하나님(1)에게 포함되는 존재인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면, 니체의 말대로 하나님이 죽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순간에 모든 피조물의 존재도 하나님과 같이 죽어야 한다. 이 말은 피조물의 운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종속되어 있을 뿐이고,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외연에 내포되는 조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하나님과 무(無)의 공존을 증명하는 “1=1+0”이라는 등식은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인슈타인의 말과 같이, ‘영원불변한 방정식’이 된다.


  2.2 하나님은 영이시다


    서양 철학사에서 보면 영원한 존재이신 신을 탐구하는 일은 신학의 영역 밖에 있는 철학에서도 수행해왔다. 가장 먼저 존재를 유일하고 불변하며 영원한 것으로 규정했던 철학자는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5)였다. 물리학은 철학에서 규정하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존재를 거부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가시적 물질에서 모든 존재의 답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발달된 현대물리학도 우주를 만들어낸 제1원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학에서 줄기를 뻗어나간 철학과 과학은 우주의 근원적 힘과 방법의 문제에 부딪치면 학문의 뿌리인 신학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서로의 영역에서 학문적 방법의 차이를 이해하고 통섭(統攝)6)적으로 오고갈 수 있도록 지적 격차를 좁히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신학과 과학을 통섭하는 학문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필자는 신과학(神科學)이라고 이름 짓고 발전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을 실존하는 존재로서 성경에 기록한 대로 “스스로 있는 자”, 곧 “나는 나다”라고 말씀하신 분으로 쉽게 이해한다(출3:14). 그리고 그분은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고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말들에는 철학에서 탐색하는 존재의 ‘제1원인’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또 이 말들에서 물리학이 말하는 우주의 근원적인 힘과 방법의 원인자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도 이해된다. 이 말들은 또한 정상우주론에서 말하는 ‘영원한 자연법칙’ 또는 ‘자연신’이라는 말과 근본적 개념에서는 같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름을 붙이든 처음이자 마지막인 근원적 존재는 창조자 하나님뿐이다.

    여기서 다시 성경(요 4:24)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를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찌니라”7)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이라는 말은 ‘정신적인’, 또는 ‘비물질적인 지적’ 존재라는 뜻이다. 태초 이전부터 하나님은 비물질적인 존재이시며, 창조의 하나님은 지적이며 정신적인 존재이시다. 창세기 1: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영은 태초부터 운행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다. 요한복음 3:8절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임의로”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로 읽혀져야 하며,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에서도 같은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영과 바람과 성령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모두 “루아흐”라는 같은 말로 쓰인다.

    또 지적 존재는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태초에 하나님은 능력이 있었으므로 창조를 할 수 있었다. 능력이 없는 존재라면,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또 무로부터 창조를 하거나, 어떤 법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되지도 못한다. 또 이 말에 영은 곧 진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유의해야 한다. 피조물에게 진리라는 말은 창조주의 주권적 의지와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며, 피조물들로서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1 5:7). “진리의 성령8)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이 말들에서 보면, 우리는 태초에 유일하신 실존적 존재로서 전지전능한 창조자이셨던 하나님이 영이시며, 지적 존재이며, 권능이며, 진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은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비물질적 차원의 존재이므로 물리학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들은 하나님을 창조자로 이해할 수 있으며, 동시에 아득한 창조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본다. 이러한 이해의 능력은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에게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던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과 연합된 사람은 그분과 한 영이다(고전 6:17).” “무에서 창조”와 연관하여 “하나님은 영”이라는 말이나, “성령은 진리”라는 말 등에서 쓰이고 있는 “영”을  생각해보자면, 이제까지 필자가 진술한 것에 더해서 칼빈의 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은 모든 것들의 근거이며 기원이다”(L'espirit etemal de Dieu est la source et origine de toutes choses).9) 그러므로 태초에는 하나님의 영(靈)을 제외하고는 무(無)일 뿐이었다.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다(창 1:2).

    우리는 태초에 유일하신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창조의 권능을 가진 영적 존재이셨음을 이해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영이시다. 우주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우주의 근원인 하나님의 영이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곳에서 하나님이 하신 창조를 생각해보면, 태초에 그분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의 근원적인 재료는 무(無)이거나 영이거나, 이 둘의 혼합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무에서의 창조 과정에서 그의 영과 무를 재료로 사용하여 물질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비물질적인 영과 아무런 존재가 아닌 무(無)가 어떻게 물질적인 존재를 창조하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창조에 대한 이러한 의문들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물리학에서 말하는 물질의 생성과정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에서 보면 우주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 또한 우주의 일부로서 물질을 재료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3 우주물질의 생성


   현대과학자들은 우주물질의 기원과 우주탄생을 설명하는 몇 가지 우주론9) 중에서 이제는 빅뱅이론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물질과 에너지는 원인 없이 결코 생성될 수가 없다고 규정한다. 우주물질과 에너지의 탄생의 원인이 바로 빅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빅뱅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3.1 빅뱅이론


   빅뱅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빅뱅에는 엄청나게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태초에 근원적인 에너지가 존재해야 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빅뱅에 투입된 근원적 에너지는 어떤 근원적 존재를 분명히 암시하고 있다. 빅뱅을 시공간의 기원으로 보는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그러나 우주가 빅뱅 이전에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팽창하는 우주는 창조자의 존재를 배제시키지 않는다.”10)고 말한다. 여기서 태초의 실존적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우리는 태초의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성경의 기록을 연결고리로 삼아 빅뱅의 근원적 에너지는 곧 하나님이신 영이라는 이해를 얻어낼 수 있다. 즉 “스스로 있는 자”이신 하나님, 곧 태초 이전부터 유일하신 영적 존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이 우주창조의 원천적 에너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태초의 빅뱅을 일으킨 근원적 에너지는 태초에 유일한 존재이신 하나님의 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빅뱅은 엄청난 대폭발 사건이었다. 빅뱅이 일어난 순간이 어느 정도의 초고온이었는지는 인간이 측정하지 못한 것이므로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빅뱅의 초고온이 엄청나게 밝은 빛을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사실은 추론할 수 있다. 그 빛의 파장은 그때부터 무의 공간을 광속으로 날아갔으며, 지금도 우주의 끝자락 어디에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사는 우리는 그 빛을 볼 수가 없다. 그때부터 빛은 멀리 날아갔고, 그 빛이 닿아 있는 곳은 무한의 무(無)에 떠있는 우주의 끝이 되며 지구에 있는 우리로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이 날아가면서 빅뱅의 초고온은 순식간에 식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물질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우주물질은 빅뱅의 열과 빛이 남긴 찌꺼기라고 할 수 있다. 빛이었던 초고온의 에너지는 식으면서 우주물질이 된 것이다. 우주의 온도는 계속 낮아져서 현재는 평균적으로 절대영도11)보다 약 2.7k 정도 높은 온도(-270.3℃)로 측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서술을 하자면, 태초의 거대한 에너지는 초고온의 빅뱅을 일으키면서 빛이 되었고, 그 빛은 광속으로 날아가면서 식었으며, 현재는 우주에 평균 2.7k로 측정되는 온도를 가진 찌꺼기만 남겼다. 이 찌꺼기가 우주물질이고, 이때 생성한 물리법칙에 따라 우주물질은 우주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우주를 만들어낸 법칙을 우리는 우주법칙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물리법칙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태초의 빅뱅에서 발생했던 빛의 흔적은 우주 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12)로 남겨져 있어 지금도 관찰되고 있으며, 이것이 빅뱅이론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물리법칙과 우주를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것으로 이해한다. 하나님은 창조 이전의 태초에는 다른 존재가 없는 어둠의 곳, 즉 흑암에 홀로 계셨다. 이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빅뱅의 방법으로 빛을 만드시고 우주만물을 만드신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빛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빛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며, 어둠을 몰아내는 힘이고,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징표이다. 이러한 빛이 에너지라는 것은 물리학의 기본이다. 에너지는 곧 물질이고 힘이다. 빛도 없고, 에너지도 없고 따라서 아무런 물질도 없는 절대무(絶對無)의 곳은 흑암이다. 그런 곳에 빛, 곧 하나님의 권능이 비치면 하나님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빅뱅의 빛으로 우주만물을 만드신 것이다. 빅뱅의 빛은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것이다. 빅뱅의 빛은 우주를 만들어낸 물질의 근원이고 우주의 질서와 생명을 지탱하는 에너지이다. 그러므로 빛의 속성은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하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신비를 알기 위하여 평생을 바쳐 연구했으나, 빛의 정체를 완전히 밝히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에도 아직까지 빛의 의문점들은 다 풀리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빛은 애당초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빛의 신비를 이해하는 만큼 우주를 이해하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3.2 물질과 에너지의 3 법칙


   물리학에서는 빅뱅을 통해 이렇게 생성된 물질적 존재 이외의 존재는 부정한다. 오로지 물질과 에너지만을 연구하는 물리학에서는 물질과 에너지에 관련하여 3가지의 확고한 법칙이 있다. 물리학에서 물질은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재료일 뿐만 아니라, 우주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며 모든 우주 생명체와 그것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이기도 하다. 창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들의 상관관계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첫째는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법칙)이다. 이것은 어떤 닫힌계(係, 체계)에서는 에너지의 총량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열역학 제1법칙이라고 하며,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열린계에서는 이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물질대사를 하는 모든 생물은 열린 체계이다. 그러나 각 체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체계는 외부적인 에너지의 유출이나 유입이 있으면, 열린계에서 닫힌계로, 닫힌계에서 열린계로 변할 수 있 있다. 그러니까 우주에서 절대적인 불변의 계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의 우주는 닫힌계인가, 아니면 열린계인가 하는 문제가 나타나는데, 우주전체는 하나의 닫힌계라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서 보면, 에너지와 물질이 형태는 변할지라도 총량은 언제나 같다고 이해하게 된다.

   둘째는 열역학 제2법칙이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닫힌계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쓸모없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뜻이며, 이것은 우주자연에서는 불가역적인 물리법칙이다. 이런 현상을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에너지는 물질로도 볼 수 있으며, 물질은 원자체계에서부터 자연적으로 붕괴하는 현상을 보인다. 물질과 에너지로 채워져 있는 우주에서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영향을 미친다. 우주의 모든 부분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이것이 모든 우주법칙의 기본이다. 자연에서 외부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는 햇빛, 바람, 물, 공기 등 무수히 많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시공간의 흐름 안에서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변화하고 있으므로, 시공간 자체가 에너지 또는 물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소들은 각각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변화하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 이 법칙에 따라서 한 덩어리의 물질에 포함된 원소의 변화량을 측정하면 그 물질의 생성연대를 알 수 있다. 이 원리를 응용한 대표적인 기구가 지질학 또는 고고학 등에서 활용하는 방사성 우라늄, 또는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기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우라늄 또는 탄소 원자의 반감기 법칙을 이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에너지 물질 등가법칙이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이 에너지로 변화한다는 사실에서 E=mc2의 방정식을 발견했다. 이 방정식은 우리에게 에너지(E)는 물질(m)에 광속(c)의 제곱을 승(乘)한 것과 같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물질(m)에 속도를 곱한다는 것은 물질에 충격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속의 제곱이라는 속도는 인간으로서는 실현 불가능한 속도이다. 사실 인류의 기술은 아직까지 어떤 물질을 광속으로 운반하는 방법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광속의 제곱은 무한수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만 최근의 입자가속기 실험에서는 광속에 더욱 가까워진 속도를 얻을 수가 있었다. 입자를 반대 방향으로 서로 충돌시키면, 두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가 빠를수록 충격이 강하고, 충격이 강할수록 에너지의 방출이 많아지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 충격에서 발생하는 고열로 소량의 물질이 사라지는 대신에 엄청난 에너지(열과 빛)가 발생하는 것이다. 원자폭탄을 만든 기본 개념이 이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원자핵에 연쇄적인 충돌을 일으키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방출하게 된다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그런데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자폭탄의 개량과정에서 핵분열을 일으키는 온도보다 더 높은 고온에 이르면, 오히려 핵분열의 반대 과정인 핵융합이 일어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원자핵이라는 물질은 에너지의 충격을 받으면, 그 충격에서 발생하는 온도에 따라 분열이나 융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물질 탄생의 빅뱅을 이해하는 개념이 된다. 인류는 핵분열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일어나는 핵융합의 원리로 수소폭탄을 만들어냈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보다 약 200배나 훨씬 위력적이라고 한다. 에너지의 값은 물질의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만약에 광속, 또는 그 이상의 가속도를 실제로 얻을 수 있다면, 그때 발생하는 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큰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빅뱅의 순간을 재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우주를 탄생시킨 거대한 빅뱅에 그렇게 많은 질량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에너지는 물질에 어떤 변화를 일으킨 다음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져버린다. 그렇지만 물질의 본질인 에너지는 물질-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하여 우주 안 어디에선가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지구는 물질로서, 또한 에너지로서 소멸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3.3 물리학적 4가지 힘


   물리학에서 “체계(體系)는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이 부분들도 다른 부분들로 이루어진 체계다. 체계는 부분과는 성질이 질적으로 다르다.”13)고 정의한다. 여기서 ‘체계는 부분과 성질이 다르다’는 말은 체계가 달라지면 구성하는 물질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는 힘, 즉 성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크게는 우주에서부터 작게는 원자도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현대 물리학은 빅뱅 이후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에서 4가지의 힘이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핵력과 약력, 전자기력, 그리고 중력이다. 이 네 가지 힘은 물질적 우주체계 사이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질적 우주체계가 질서 있게 존재하는 힘의 바탕이 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영적 존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열쇄가 되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태초에 모든 부분을 만드셨고, 모든 부분의 체계를 완성하여 최종적으로  전체를 만드신 분이시고, 결과적으로 모든 체계의 총합으로 계시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는 우주를 지탱하는 4가지 힘의 상호작용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인류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죽은 후에 현대과학은 이제 겨우 3가지의 힘-핵력, 약력, 전자기력-이 얽힌 물질체계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아직까지 그 어떤 물리학자도 중력을 포함하는 대통일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실재를 객관적인 실험적 방법으로 설명하는 현대과학은 우주 체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더 많은 부분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창조주의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사용하는 최신 망원경과 현미경으로도 우주의 극대와 극소의 차원은 아직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힘이 이렇게 4가지뿐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존재는 차원마다 그 차원을 지탱하는 힘이 필요하다. 인간은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4가지의 힘밖에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적 존재는 4차원의 우주에 구속되지 않으며, 물리학적 4가지 힘에 지배받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4차원의 물리적인 우주를 탐구 대상으로 하고 있는 물리학자들은 영적 존재의 힘을 부정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힘이 하나님이시고, 모든 차원의 존재를 만드시고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시공간을 빅뱅에서 시작한 하나의 차원으로 보려고 하는 호킹의 물리학은 어쩌면 오류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간과 시간은 별개의 차원인 것 같기 때문이다. 공간을 지탱하는 힘은 중력으로 과학적으로 분명히 알려져 있지만, 시간을 지탱하는 힘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로 움직이면, 시간은 정지한다는 이론을 내놓은 적이 있었으나 증명은 하지 못했다. 시간이 정지해도 공간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또는 공간이 사라져도 시간이 정지하지 않는다면, 공간과 시간을 지탱하는 힘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빛과 시간은 아인슈타인과 호킹의 물리학이 미완성의 장에 남겨놓은 것이다. 공간과 시간을 따로 보게 되면 우주는 적어도 5차원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최근에는 초끈이론 등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나와서 10차원 이상의 우주까지 말하고 있다. 나아가 M이론이나 F이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11차원이나 12차원까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만약 10차원 이상의 우주라면, 그런 우주는 10가지 이상의 힘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몇 차원의 우주를 창조하셨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이 모든 차원의 창조주이심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우주만물의 존재는 보이지 않고, 측정할 수 없는 근원적 힘, 곧 하나님의 영적 에너지와 그것으로부터 파생한 우주물질의 바탕 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3.4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 모든 물질은 가시적인 물질인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과학자들은 그동안 인간이 알고 있었던 물질은 극히 일부분이며, 우주의 대부분은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우리 우주에는 암흑물질 23%, 암흑 에너지 73%로 채워져 있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적인 물질은 겨우 4%라고 한다.14) 이것들에 암흑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부르는 것은 과학적으로 그 정체를 규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현대과학은 4%에 지나지 않는 물질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암흑 물질은 아직까지 어떤 종류의 빛이나 전자기파 아래에서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암흑 물질은 원자도 아니고, 원자의 구성요소인 전자, 양성자, 중성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립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고 한다. 암흑물질은 말하자면, 아직 관측하지 못한 미지의 소립자로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암흑물질은 주위에 중력을 미치고 있으므로 그 존재는 확실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수많은 은하단을 측정한 결과, 우리는 은하들이 매우 빨리 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회전        하면서 생기는 원심력이 은하를 은하단 밖으로 날려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천체의 질량보다 네 배에서 여섯 배 더 커야 한다. 마찬가지로 은하는 기이하게 자전하고        있는데, 우리 눈에 관찰되는 부분보다 약 열 배나 더 크고 더 무거운 물질에 잠겨 있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15)

 

   그러나 암흑물질은 보통의 물질과는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으므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암흑물질은 유령물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말은 보통 물질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입자와 입자 사이의 공간을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문을 열지 않고도 마가의 다락방에 오신 예수님은 이러한 암흑물질 또는 암흑 에너지의 실례라고 볼 수도 있다. 과학계에서는 암흑물질의 정체를 규명하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만든 검측기 안에서 아주 드물게 원자핵과 충돌하는 낯선 입자들을 발견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것들은 대부분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방사선이나, 주위의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입자들이 반응을 일으킨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아주 최근에 미네소타 대학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암흑물질 연구 계획 ‘CDMS ll' 팀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입자의 충돌을 관측했는데, 이것이 암흑물질이 일으킨 충돌이 아닌가 하는 가정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16)

   이와 같이 우주의 대부분은 현대과학에서도 알 수 없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채워져 있으므로 우리는 암흑물질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첨단의 장비로 무장한 현대과학자들이 암흑물질의 정체조차 밝혀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처사인가? 이제까지 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우주에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4차원적 공간을 지탱하는 중력을 초월하여 5차원의 시간을 제어하는 힘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만들어내신 창조의 에너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우주물질과 에너지는 물론, 모든 차원을 지탱하는 근원적 힘이 곧 하나님의 영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우리의 견해가 과학적으로도 옳다고 증명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이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모두 은폐한 채, 무신론자들은 전근대적인 이론과 가설로 만들어진 다윈의 진화론을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 모든 현대인들은 이런 사실을 명확하게 알아야 하난미의 창조를 납득할 수 있다.


4. 물질에 나타나 있는 창조의 흔적


   인간의 과학적 발전은 에너지와 물질의 상호관계, 즉 에너지와 물질은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대과학은 물질을 에너지로, 또 에너지를 이용하여 어떤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꾸는 기술은 극도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순수한 에너지에서 물질을 만들어내는 방법에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에너지에서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인 것 같다. 무에서, 또는  순수한 에너지에서 물질을 창조하는 일은 아무래도 창조주의 고유영역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태초에 하나님은 무(無)에서 그분의 에너지로 물질을 만들어내시면서 우주창조를 시작하셨다. 물론 물질은 영원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창조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연주의자, 정상 우주론자 또는 무신 진화론자도 있다.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른다면,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과학의 대명제는 무너진다. 빅뱅을 주장하면서도 빅뱅의 근본적인 에너지의 발생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의 무신 진화론적 주장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그들의 주장을 과학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그분의 권능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창조론이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은 과연 과학적으로 합당한 것일까? 만약 물질의 발생이 자연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그들의 무신 진화론은 타당한 과학적 주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보면, 무에서 물질이 과연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믿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두 가지 답의 선택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믿지 않음의 길이 나누어질 것이다.


   4.1 창조주의 영적 에너지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우주의 제1원인, 곧 근원적 힘은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에너지이다. 모든 우주만물은,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하나님의 영적 에너지에다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태초부터 우주만물을 구성하고 존재하게 하는 힘(存在力)의 근원은 지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빅뱅을 만든 창조자의 영적 에너지이다. 다윈주의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필자는 이를 (1=1+0)이라는 방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방정식은 우주만물은 하나의 원천적 힘에 의하여 무(無)에서 창조되었으며, 우주만물은 이 원천적인 하나의 힘의 범위에 예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이것은 우주만물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상응하고 있다는 동양사상과도 조화를 이루며, 만물은 서로 닮은 꼴로 만들어져 있다는 단지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모든 물질은 입자적 차원에서 진동하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초끈이론에서는, 이 끈의 진동이 곧 에너지인 동시에 에너지의 전달 수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우주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끈으로 연결된 물질의 파동으로 채워져 있다는 말과 같다. 이 말을 다시 바꾸어 이해하자면, 결국 존재는 한 덩어리의 에너지 체계라는 말이다. 그것도 대부분이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로 된 덩어리이다. 물론 에너지 물질 보존 법칙에 의해서 태초의 빅뱅에서부터 현재까지 그 총량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태초의 존재 방정식은 그대로 1=1+0이다.

  이제까지 태초의 하나님은 영적 에너지이시고, 그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시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면 우주물질이 태초의 영적 에너지에 의하여 생성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태초에 영적 에너지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주는 생성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태초에 아무런 에너지도 없고 한 조각의 물질도 없는 무(無)의 상황이라면, 그곳은 측정할 수조차 없는 초극저온의 곳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에너지조차 없었다면, 그런 곳은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초극저온이었을 것이다. 에너지와 물질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영역에서, 에너지의 존재를 나타내는 온도를 측정하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초극저온의 곳에서는 어떤 존재도 존재할 수 없고, 더욱이 존재의 탄생은 있을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토록 무시무시한 초극저온을 극복하실 수 있는 에너지와 물질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으므로, 창조가 이루어졌고, 우주의 존재가 가능했고, 오늘날 우리의 존재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무의 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에너지가 없는 조건이라면, 우주탄생의 기원을  빅뱅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우주를 만들기 위하여 빅뱅의 방법으로 물질을 팽창시켰다는 과학적 이론을 받아들인다면, 물질은 하나님의 에너지로 빅뱅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가 없었다면, 초극저온에서 초고온의 빅뱅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므로 빅뱅 사건을 우주탄생의 시발점으로 주장하는 과학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무신 진화론을 주장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이성을 가진 과학적 현대인의 논리적인 주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들이 우주의 시공간이 빅뱅이라는 시발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빅뱅의 원인자와 재료를 마땅히 설명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런 문제에 대답하지 못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주의 시발점인 빅뱅은 하나님의 창조권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라고 주장함에 있어서, 과학적인 논리와 증거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우주만물이 존재가능한 곳은 창조주 하나님이 그의 에너지로 존재를 보존해주시는 그의 영역 안에서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신 창조자를 그분의 뜻대로 창조신 하나님으로 섬겨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니한가? 이런 사실을 이해하면, 무(無)에서 우주물질이 우연히 저절로 생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과학적으로도 얼마나 어리석은 자이며, 그런 믿음은 또 얼마나 잘못된 지식에  바탕하고 있는가도 알 수 있다. 현재의 우주를 지탱하는 힘, 즉 우주질서 역시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계획과 그의 영적 에너지 밖에서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적 에너지의 장(場) 안에서 존재하며,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연결된 체계의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빅뱅이론을 주장하는 현대과학자들이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의 근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無)에서 우연히 빅뱅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저절로 우주만물이 생겨났고, 그 이후에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무신 진화론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무신 진화론 과학자들에게 성경의 창조기사는 하나의 창작 동화로 읽혀질 뿐이다. 이것은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한 원조상의 존재는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족보를 내놓고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우기는 꼴이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이럴 때를 만나면 매우 당혹스럽다. 이런 현대인들을 구원 또는 선교하기 위해서는 창조기사를 과학적 방법으로 재해석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새로운 과학적 해석은 우주물질의 근원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적 에너지에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4.2 물질의 구조  


   인류는 약 2,000년 전에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했던 만물의 가장 작은 구성요소는 원자이며, 이것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단위라는 원자론을 그대로 믿어왔었다. 그러나 그렇게 믿어왔던 원자는 현대에서 고성능의 전자현미경으로 다시 살펴본 결과,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 것이며, 원자핵은 다시 중성자와 양성자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7) 원자의 속성은 그것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의 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이때이다. 지구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원자의 종류는 92가지로 알려져 있으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20여 가지가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3개의 쿼크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더 이상의 미시적인 차원을 다루는 입자물리학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알아야 할 물질구조의 특성은 원자들의 차원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주물질은 에너지의 산물이며, 우주만물은 이것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체계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태초에 빅뱅을 이용하여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양의 우주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여기까지의 물리학적 지식으로 지지할 수 있는 모델은, 처음에 하나님이 그의 에너지로 직접 또는 초고밀도의 물질을 만들어서 빅뱅을 일으켰고, 초고온의 빛이 무(無)의 흑암을 뚫고 날아갔으며, 이 빛이 식으면서 우주물질과 우주에너지로 환원되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점점 물질의 구조가 체계화 되면서 오늘날 우주의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모델에서 초고밀도의 물질을 ‘하나님의 그의 에너지로.... 만들었다’는 부분이 빠지는 것이 현대의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빅뱅 우주론이다.

   일반물리학에서는 체계를 특성을 가진 물질적 구조의 단위를 말하지만, 원자 이하의 입자를 다루는 입자물리학 또는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의 체계는 장(場)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원자의 구조를 보면 전자가 돌고 있는 껍질 안에 그것의 약 10만분의 1 크기의 원자핵이 들어 있다. 그러나 원자의 질량 대부분은 원자핵에 있으며, 전자가 가진 질량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10만분의 99,999는 질량이 없는 비어 있는 공간의 장(場)이다. 이것을 잘 살펴보면 빅뱅으로 만든 물질의 구조적 원리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최소한의 물질로서 최대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창조방법이다. 하나님은 빅뱅의 효과를 이용하여 뻥튀기 방법으로 물질을 창조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자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분자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체계가 올라갈 때마다 이러한 뻥튀기 효과는 제곱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체계는 기본물질인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의 덩어리로 이루어진 만물에서 행성으로, 우주로 상승하고 있으나, 각 물질체계의 구조를 내부적으로 보면 텅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무(無)를 물질 창조의 재료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암시한다.


   4.3 양자역학

 

   물리학에서 원자 이하의 미립자를 탐구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분야로 떨어져 나갔다. 양자역학 과학자들은 이렇게 극미(極微)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소립자의 내부도 대부분은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원자단위의 10만분의 1정도만이 실질적인 물질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보다 정밀한 현미경의 발명으로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핵보다 더 작은 소립자18)들을 다수 발견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똑 같이 나타남을 관찰한 것이다. 하이젠베르그(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가 이러한 소립자들을 관찰한 끝에 물질의 실체에 대해서 불확정성의 원리19)를 주장하면서 양자역학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다. 이 이론은 물질의 실제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요약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관찰자에 의해 물질의 실체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에 소립자는 원자핵 안의 빈 공간을 멋대로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빽빽하게 채워지고 안정적일 것으로 믿었던 원자 이하의 체계인 소립자도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원자 이상의 물질적 체계와 같이 내부는 텅 비어 있었고, 그곳에는 전자가  무질서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자역학계의 주장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 말에서 아인슈타인이 강조하는 견해는 우주체계가 엄격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우연도 있을 수 없다. 우주질서에 어떤 우연적 요소가 개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에 우연히 우주가 파괴될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주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 양자역학처럼 우연성과 개연성을 가지고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주장에 대해 양자역학의 개척자 닐스 보어(Niels Bohr, 1871-1937)가 즉각 반박하여 논쟁이 벌어진다. 보어는 또 빅뱅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빅뱅이론을 부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원적 문제의 논쟁은 과학적 수준을 넘어서는 철학적 논리 또는 그 이상의 종교적 믿음의 차원이므로 결론이 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을 들어서 그가 하나님의 창조를 믿었다는 일부 주장도 있지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불가지론자라고 스스로 고백했었다. 그는 자연주의 과학자였다. 그렇지만 그의 말에서 우주질서에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양자역학에서 주장하는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간의 수준에서 불확정성일 뿐이라고 보는 아인슈타인의 견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는 생명이 우연하게 탄생할 수도 없다는 뜻이 강력하게 암시되고 있으며, 따라서 필연성이라는 하나님의 창조법칙을 지지할 수 있는 여지를 내포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의 영역은 아직 인간이 접근하지 못한 하나님의 신비에 속해 있을 뿐이지 무질서와 우연으로 채워진 곳이 아니다. 그러나 신비의 영역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는 부분적 탐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우리는 물질적 체계는 텅 비어 있는 공간에 아주 작은 물질 하나가 씨앗처럼 존재하는 내부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우주의 일부 체계만을 겨우 알고 있을 뿐이지만, 우주물질은 모두 뻥튀기를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릴 수는 있다. 물질은 왜 이렇게 텅 빈 공간이 더 많고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 이 의문에 해답을 찾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무에서 우주물질을 창조하셨다는 믿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주가 하나님에 의해 빅뱅의 방법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믿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몸의 실상은 알맹이가 별로 없이 텅 비어 있고, 무질서하며, 거의 아무 것도 아닌 일시적인 허상(虛像)이다. 하나님이 창조하고 가치를 부여해주시지 않았다면, 인생은 그저 한 줌의 흙이 뭉쳤다가 부스러지고 마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까지 설명한 과학적 지식으로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의 한 가지는 창조가 태초의 에너지이신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존재하는 피조물일 뿐이다.


   4.4 우주체계를 지탱하는 힘


   우주에서 물질의 체계를 구성하는 4가지 힘에 대해서는 진술되었다. 그것을 작용 기능별로 살펴보면, 원자핵에는 소립자들을 결합하는 핵력이 있으며, 핵과 전자 사이에는 약력(弱力)이 작용하여 양성자와 전자의 결합으로 인한 붕괴를 막고 있다. 그리고 전자기력과 중력은 원자체계 이상과 이하의 모든 물질에 작용하고 있다. 모든 물질은 구조적으로 이러한 힘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모든 물질 사이에서 힘의 강약은 전자기력의 발생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전자기력은 전자가 원자핵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전자의 회전운동으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자로 이루어진 우주만물은 그 체계가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전자기력의 장(場)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모든 물질 사이에 나타나는 인력(引力)과 척력(斥力)의 균형과 붕괴는 우주물질에게 변화를 가져오는 근본요인이 된다. 이것은 그대로 인간 사이에서 또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도 사랑과 증오의 형태로 나타난다. 필자는 우주법칙이 물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학과 신학에서도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여기에 두고 있다.  

   전자기력에 대한 연구는 페러데이(Michael Faraday, 1791-867)의 공로가 가장 크다. 페러데이 이전에는 전기와 자기는 다른 것으로 보았으나, 페러데이는 전기가 자기를 만들어내고 자기가 전기를 발생하는 것은 같은 힘의 다른 면이라고 보았다. 그는 나아가 빛도 파동의 형태로 나가는 전자기파임을 발견했다. 그는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과 힘을 합쳐 빛이 물질적 입자로 된 전자기파라는 이론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아인슈타인은 이전에 4가지 힘의 총체적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정식, 곧 대통일장 이론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공로로 현대과학은 물질의 3가지 힘-핵력, 약력, 전자기력-의 상호작용을 하나의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물질의 체계뿐만 아니라, 생물적 체계도 전자기력의 생산을 위한 조직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생물도 전자기력을 가진 물질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인간도 당연히 전자기력을 만들어내면서, 또 우주 중력을 포함한 이 모든 힘의 상호작용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전자기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중력을 설명하지 못하는 난제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인슈타인의 꿈은 미해결의 숙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직까지 밝혀내지 못한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작용 때문인 것 같다. 우주는 가시적 물질의 체계가 만들어내는 4가지 힘에다가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미지의 힘을 더한 총체적 상호작용에 의해 운행한다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의 생장소멸(生長消滅)의 비밀은 바로 이렇게 얽힌 힘들의 상호작용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우주만물의 관계도 힘의 상호작용과 같은 우주질서의 관점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영적 에너지에 바탕을 두고 우주를 창조하고 운행의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와 운행의 법칙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인간의 이성이 다만 탐구할 수 있을 뿐, 하나의 방정식을 풀어내는 것처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주의 힘은 하나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물리학에서 말하는 힘의 종류는 하나의 힘이 우주물질의 상호관계에서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힘의 근원이 하나라는 말은 사실상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이다.

  

   4.5 “무에서 창조”의 방법론 이해


    우주는 빅뱅에 의하여 탄생되었다는 현대과학계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요약해보면, 어떤 에너지로 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태초에 빅뱅이 일어났던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빅뱅이 일어난 그 순간에는 엄청난 고열 때문에 빛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의 빛은 광속으로 날아가면서 우주배경복사를 남겼으며, 차츰 온도가 낮아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물질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물질로 우주가 만들어졌다. 마침내 이 우주에서 최초의 생명이 출현하였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우주는 무신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이렇게 단 한 번의 우연에서 시작해서 점점 우연들이 얽히고설킨 결과물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 권능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놓고 결론적인 해답을 구하고 있다.

    물질에서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공전하는 전자의 껍질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다. 원자의 크기는 전자로 된 껍질의 크기이다. 다시 말하면, 원자의 크기는 전자의 궤도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원자핵은 너무나 작아서 원자의 내부는 사실상 텅 빈 공간과 같다고 현대과학은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텅 빈 실내 축구장 가운데 하나의 축구공이 달랑 놓인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전자는 이 축구공을 둘러싸고 있는 지붕이다. 여기서 축구공과 같은 원자핵을 중심으로 아주 빠르게 회전하고 있는 전자는 지붕과 같은 껍질이 된다. 이러한 원자의 구조를 보면, 우주의 체계를 그대로 닮아 있는 꼴이다. 우주는 이렇게 부분이 전체를 닮아 있는 단자론적 프렉탈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태양계 너머에도 우주는 넓게 퍼져 있으며, 우주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물리학은 이러한 우주와 구성 물질을 연구한다. 여기서 태초에 초고온의 빛을 만들어낸 빅뱅이 일어나자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 다시 한 번 유의해야 한다. 이 에너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주와 물질은 이 에너지에서 나온 빛이 식어서 만들어진 것인데, 왜 이렇게 대부분이 빈 공간으로 되어 있을까? 그것은 자기존재의 연장을 확장하려고 창조계획을 세우신 창조주 하나님이 무(無)와 그의 영적 에너지를 재료로 쓰셨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창조주 하나님은 최소의 재료로 최대의 생산효과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빅뱅이라는 뻥튀기를 통해 그의 창조 재료인 영적 에너지와 무를 혼합하는 물질적 창조 작업을 하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뻥튀기함으로써 우주의 물질구조는 아주 작은 핵과 전자 사이에 텅 빈 공간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모든 물질 체계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새로운 별이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주에 지구를 만드셨고,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을 만드셨음에도 아직도 창조를 계속하신다는 말이 아닌가? 우주에 대해 이런 이해와 의문을 계속 가지고 나아가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길로 나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우주론을 주장하는 무신 진화론자들은 이런 의문에 ‘우연’이라는 말밖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인도 없고 목적도 없는 존재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인간 존재는 제1원인자이신 하나님 없이는 원인도 목적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것이 과학적 논증과정을 거친 과학적 창조론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빅뱅은 제1원인이신 창조자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제1원인에 대해서 묻는다면, 그것은 영원한 존재인 영적 에너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만약 제1원인이 없었다면,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날 수도 없고, 그 뒤에 물질과 우주도 나타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1=1+0이라는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제1원인의 존재는 우리가 현재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긍정할 수밖에 없는 진리이다. 제1원인이신 분의 이름은 거룩하게 불리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하신 대로 이분을 창조주이신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모든 물질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모든 물질은 각각 고유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모든 물질은 고유한 빛을 내고 있다는 말과 같다. 색깔과 빛의 종류도 다양하고 물질의 종류도 색깔과 빛의 종류만큼 다양하다. 나아가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는 한 가지 실재의 양면이라고 했다. 이것은 물질이 빅뱅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고백이다. 그러니까 빅뱅에서 초고온의 에너지는 빛에서 물질로 변했다. 우리는 물질에서 에너지와 빛을 얻는 방법은 알고 있다. 또 오늘날의 현대과학자들은 물질에서 다른 물질로 바꾸는 기술은 고도로 발전 시켰다. 그러나 에너지 또는 빛에서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아직까지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빅뱅의 에너지가 기존 물질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해했을 때, 과연 아무 것도 없는 무(無)에서 물질이 생겨날 수 있다고 동의할 수 있는가? 또 지적인 요소가 없는 에너지뿐이라면, 어떻게 빅뱅이 일어나고, 쿼크들이 저절로 만들어지고, 또 상호간에 복잡한 힘을 질서 있게 통일하면서, 우주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물리학적으로 우주탄생의 원인이 되는 빅뱅은 제1원인이신 창조자의 순수한 에너지, 곧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영적 에너지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5. 맺는 말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자들에게는 창조는 기막힌 우연20)이며, 그것은 곧 기적이다. 그것은 무신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연으로 끝나는 우연이 아니다. 창조의 우연이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면, 우주만물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힘이 지탱해주지 않는다면, 우주만물은 존재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우주는 생존을 위하여 고장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주법칙을 그렇게 세우셨다. 왜냐하면,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는 불완전한 인간적 법칙이 우주에서 적용되고, 그로 인하여 딱 한 번이라도 예외적인 사건이 우주질서에서 발생한다면, 그것은 우주의 종말적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하나님이 정교하게 설계하고 만들어내신 우주상수와 운행의 법칙에 따라서 예외 없이 운행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그렇게 운행되어야 한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진화론자들은 꼭 필요한 때를 먼저 아시고 보이지 않게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개입을 우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연적 사건이 발생 가능하려면, 먼저 일상적 법칙이 지배하고 있고, 사건 발생의 여섯 가지 구성요소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한 요소가 있으면서 어느 순간에 일상적 법칙이 오류를 일으키는 사건이 우연이다. 우연은 말하자면 도박게임에서의 잭팟처럼, 인간적 법칙으로 만든 불완전한 체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입력된 프로그람에 따라 잭 팟이 터지는 확률의 수를 이해하면, 우연은 결코 무(無)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할 것이다. 그것은 사전에 게임 프로그람이 입력된 기계에서 일어나는 확률적 사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전적으로 무에서 일어난 것이다. 다만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연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이 우연히 그의 뜻대로 창조하실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다면, 우주만물은 존재할 수 없었고, 아직도 하나님은 홀로 무(無)에 계시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우주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의 창조기사를 진리로 믿고 있지만, 좀 더 지성적인 신자들은 창조기사가 현대인이 수용하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동화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바르게 설명하는 현대적 창조론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오늘날 과학으로 위장한 진화론에 대하여 기독교 신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창조론이 과학적으로도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이대로 계속 인간이 진화한다면, 하나님이 실재(實在)하시거나 말거나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가 만든 인간들에 의하여 인간세상으로부터 추방되고 말 것이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창세기 기사에서 하루의 시간이 24시간 또는 우주의 나이21)가 6천이라는 주장을 놓고 싸우고 분열하고 있는 오늘날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편협한 행태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부모를 내쫓으려하는 자식의 패륜을 방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다만 해석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은 죄악에 빠진 무신 진화론자들 못지않게 기독교 창조론자들도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임을 지적한다. 진화론자들의 과학주의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진화론자들이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그들과 같거나 보다 나은 과학적 방법으로 창조론을 주장하고 증명하면 된다. 그러면 진화론의 오류는 저절로 밝혀진다. 그러자면 먼저 동화적인 창조론을 재검토하고 발전적으로 수정하고 과학적인 논리로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기독교회는 대학생들에게 유치원 수준의 창조론을 가르치면서 “믿어라!”고 외치고 있는 꼴이다. 그것은 현대적인 무기를 가지고 공격하는 적 앞에서 동화 속에 있는 요술 할머니의 지팡이를 들고 나가서 싸우자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시대정신에 맞는 과학적 창조론의 부재 때문이며, 사실상 그 책임은 역사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안일과 나태와 과학에 대한 무지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진화론에 맞서기 위해서는 현대의 과학지식과 과학적인 방법을 가지고 창조론을 설명해야 한다. 진화론을 비판하면서 동화적인 창조론을 대안으로 가르쳐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논증의 방법에서 진화론을 능가하는 과학적인 창조론을 제안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기독교의 앞날은 쇠망의 길이 있을 뿐이다. 과학과 종교의 진리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은 과학에 무지하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물러나야 한다. 이들은 자기의 무지와 게으름을 감추려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창조기사가 아닌 다른 성경구절로 설교해도 얼마든지 목회를 할 수 있다면서, 굳이 골치 아픈 창조기사 부분을 애써 피하거나 알려고도 하지 않고, 더러는 믿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모르거나 믿지도 않으면서, 신자들 앞에서 과연 진정한 기독교 설교자로서 하나님을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제 결론적으로 지금도 하나님의 존재가 영적 에너지이심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본다. 하나님은 지적 능력을 가진 창조자로서 태초의 영적 에너지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그의 원천적 에너지 일부를 물질적 우주창조에 쓰셨고, 그의 에너지는 지금도 그가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지탱하고 있는 힘이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는 무(無), 즉 흑암이다. 물리학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우리 인간은 그의 영적 에너지로 만들어진 물질과 그의 영적 에너지의 일부를 제공받은 피조물로서 그분의 창조영역을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필자로서 한 마디 덧붙이고 싶은 말은, 신의 존재는 증명할 수 있지만 그분의 본질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에 대한 논증은 하나님이 “무에서 창조”하셨다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그 방법을 완전히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 자체가 아직까지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이러한 시도가 한국기독교의 창조론과 세계관의 발전함에 일조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가질 뿐이다.



참 고 문 헌



정승훈, [종교개혁과 칼빈의 영성],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1.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성경], 서울; 분도출판사, 2005,

Andre' Brahic & Isabelle Graenier, Lumie'res D'etoiles. 박창호 역, [별],서울: 열음사, 2010.

Art Sussman, Science, 고광윤 역, [한발 빠른 과학 교과서], 서울, 서해문집. 2008.

Hawking, Stephen, The Illustrated A Brief History Of Time, 김 동광 역,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서울; 까치, 1998.

John Calvin,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고영민 역, [기독교 강요], 서울; 기독교신문사, 2006.

[NEWTON] 2010년 3월호,

브리태니커: 온 라인 검색 가능.

위키 백과: 온 라인 검색 가능, 오픈 백과사전.










1) 이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동양의 태극사상으로 태초의 상황을 논증한 논문 “신태극론” [창조론 오픈 포럼:3권 2호]와 졸저 [흑암전설]을 참조하라.


2)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성경] (서울; 분도출판사, 2005), 1105. 가톨릭에서는 마카베오기 3권 중 2권을 성경에 포함시키고 있으나, 개신교에서는 모두 외경으로 취급한다. 여기에서 나온 본문은 “얘야, 너에게 당부한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살펴보아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있는 것에서 그것들을 만들지 아니하셨음을 깨달아라. 사람들이 생겨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 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 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


3) 하스몬 왕조라고도 불리며, BC 153-63 사이에 존속했다.


4) John Calvin, [기독교 강요]. I. 14. 20.


5)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다수의 사물과 그들의 형태변화 및 운동이란 단 하나의 영원한 실재('존재')의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모든 것은 하나'라는 이른바 파르메니데스 원리를 세웠다. 이러한 존재 개념을 바탕으로 그는 변화와 비(非)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고 말했다. 논리적 존재개념을 바탕으로 현상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는 점 때문에 그는 형이상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르메니데스 Parmenides〉는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다루고 있다. (출처:[브리태니커])


6) 통섭(統攝:Consilience)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편 통섭 이론의 연구 방향의 반대로, 전체를 각각의 부분으로 나누어 연구하는 환원주의도 있다.(출처: 위키백과)


7) 영어 원문(KJB): “God is a Spirit: and they that worship him must worship him in spirit and in truth.”


8) “진리의 성령”, “하나님의 영원한 영”과 같은 표현에서 소유적 의미, 즉 ‘의’(영어의 ‘of’)의 앞과 뒤의 단어는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성령의 진리”, “영원한 영의 하나님”이라고도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저자들이 히브리인들이라는 점에서 성경 이해에 중요하다.


10) 정승훈, [종교개혁과 칼빈의 영성]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39에서 재인용. 


9)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우주론은 고대 사회에서 신화의 주된 부분이었으며, 헬레니즘 문명이 발전되기 이전까지 우주론과 종교는 분리되지 않았다.  


10) Stephen Hawking, The Illustrated A Brief History Of Time, 김 동광 역,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서울; 까치, 1998), 15.


11) 이론적으로 섭씨 영하 273.16도를 말하며, 기호는 k이다. 절대영도에서는 어떤 물질에서도 더 이상 열(에너지)이 남아 있지 않으며, 모든 물질에서 원자적인 성질이 사라진다. 1954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물의 삼중점(기체상·액체상·고체상의 평형점)을 273.16K로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열역학적 온도의 값(섭씨)을 측정하는 온도계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측정한 물의 녹는점은 273.15K, 끓는점은 373.15K이다.


12) 빅뱅 이후에 우주는 팽창하고 식으면서 빅뱅의 빛은 현재 2.7K의 전자기파 형태의 우주배경복사로 남아 우주를 채우고 있다. 이 전자기파는 1965년에 미국의 R.W. 윌슨과 A. 펜지아스에 의해서 검출되어 빅뱅이론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고 있다. 현재 빅뱅이 남긴 전자기파의 파장은 우주의 팽창 때문에 식으면서 적색이동이 되어 초단파(Microwave) 영역의 전파로 보인다. 그러나 국소적으로는 우주물질의 분포가 균일하지 않음과 같이 우주배경복사 역시 편차를 보인다.





13) Art Sussman, Science, 고 광윤 역, [한발 빠른 과학 교과서](서울, 서해문집. 2008), 46. 참조.


14) 과학자에 따라 이 비율은 조금씩 다르나, 가시적인 물질이 5%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15) 앙드레 브라익/이자벨 그르니에, 박창호 역, [별], 289.


16) [NEWTON] 2010년 3월호, 9.


17) 원자(Atom)라는 낱말은 고대 그리스어에 뿌리가 있다. 이러한 어원대로라면 원자는 물질의 가장 작은 기본 단위(현재는 쿼크와 렙톤)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현대 물리학과 화학에서 원자는 기본 단위가 아닌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한 형태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강한 상호작용으로 결합해 있다. 전자는 원자핵과 반대인 음의 전하를 띠며 원자핵 주위에 확률적으로 전자구름을 이루며 존재한다. 이들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에 따라 원자를 주기율표로 분류할 수 있으며 화학적인 성질이 결정된다. 가장 가벼운 핵은 1개의 양성자로 된 수소의 핵으로 이것은 전자보다 1,836배나 더 무겁다. (출처:위키백과, 요약)


18) 소립자[素粒子, elementary particle: 기본입자]: 자연계의 모든 물질은 크기 1억분의 1cm의 원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원자는 극히 (5조분의 1cm) 작은 전자, 양성자, 중성자로 구성되고 있는 데, 이 작은 입자를 소립자 또는 기본입자라 불렀다. 그러나 원자와 마찬가지로 양성자와 중성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기본입자가 아니라 좀 더 작은 쿼크라고 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복합입자라는 사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실험에 의해 가장 작은 단위라고 생각하는 기본입자는 쿼크와 경입자들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이론들이 있으며, 초끈 이론, 프리온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원자구성입자는 2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하나는 우주의 기본 구성요소로서의 역할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을 묶어두는 4가지 기본힘, 즉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이다. (출처: 위키 백과 요약)

   



19)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오차)의 원리는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 시간과 에너지를 정확하게 측정하려고 입자의 위치를 결정하면, 그 순간에 속도, 즉 운동량이 변하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해 뉴턴 이래 물리학의 신조였던 인과법칙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었다. 원자의 세계에서는 단지 확률만 통용되는 것이다.



20)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우연은 필연에 반대되는 말이다. 필연이 '반드시 그러한 것'을 의미하는 데 대해 '예기치 않게 일어난 것'을 가리키는데, 스토아 학파는 우연을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규정했으며 기계론적 유물론자들도 마찬가지로 파악했다. 그 입장에서는 우연은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나 우연은 객관적으로도 존재하고 이런 의미에서의 우연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이거나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인과계열(因果系列) 또는 법칙이 이들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우연이란 무엇에 대해서 우연인가를 떠나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어떤 인과계열이나 법칙은 현실 속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용과 관계없이 순수하게 작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변함없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는 필연적인 법칙이 있어 그 법칙은 많은 곡절과 변형을 겪으면서도 결국 실현되는 방향으로 나타나야 한다. (출처: 브리태니커 요약)



21) “수십 년 동안 격렬한 논쟁과 온갖 관측을 벌인 끝에 2003년 2월 12일, 빅뱅 이후 지금까지 진화해온 우주의 나이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 우주의 나이를 135억 6000만 년에서 138억 6000만 년 사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Andre' Brahic & Isabelle Graenier, Lumie'res D'etoiles. 박창호 [별],서울: 열음사, 2010. p.286